한일정상회담 각서에 숨겨진 속셈
약 3주 전이었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퇴임을 앞두고 방한하여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많은 국민들은 걱정했다.
“이번에는 또 뭘 내어줄까....?”
언론을 보니, 다행히도 걱정했던 것보다 별다른 사안은 없는 듯했다. 기시다 총리가 퇴임 전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해 “지난 2년 간의 한일 관계 발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양국 관계 발전”을 당부하는 정도였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방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오랜 숙원이었던 사도 광산 세계문화유산(UNESCO) 등재를 동의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다.’
이 외에 정상회담에서 특별한 게 있었다면, 한일 간 출입국을 간소화하는 ‘사전 입국 심사제도’ 도입을 모색해 보자는 합의를 했다는 것 정도였다. 우리 언론에는 이 사안이 주로 보도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부분 중 굉장히 위험한 사안이 있었다. 한일 정상은 ‘제3국 유사시 현지 자국민 대피에 상호 협력하자는’ 양해 각서를 체결했는데, 해당 사안은 이 각서에 숨어있었다.
이 내용이 나왔을 때, 우리 언론은 크게 별스러운 사안은 아닌 듯 보도하고 넘어갔다. 대략 이런 내용으로 보도했다.
‘작년 4월 아프리카 수단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가 마련한 버스로 여러 일본인을 같이 대피시킨 적이 있다. 또 작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을 때는 한국군 수송기가 한국 교민 163명을 대피시키면서 일본인 45명도 한국까지 이송했다. 일본 정부도 보답 차원에서 같은 달에 자위대 수송기로 자국민을 대피시킬 때 한국인 33명을 태워줬다. 제3국 유사시 한일 간에 이런 협력을 강화해 나가자는 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물론 이 말도 맞다. 하지만, 그 각서에 숨겨있는 속셈에는 심각한 것이 숨어있었다.
한국 언론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갔다.
출처-<서울경제>
김태효, 자위대 상륙 근거를 마련해주다
국기에 경례를 하지 않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던 그는 이 각서를 통해 마침내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을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한국의 입장에선 재앙이고, 일본의 입장에선 대업이다.
출처-<대통령실>
지난 한일정상회담은
두 정상 간 12번째 회담이었다.
출처-<일본 외무성>
양해각서란, 기본적으로 ‘국가 간에 문서로 된 합의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과 같은 효력을 갖는 것’으로 공식적인 것이다. 이번에 양국이 체결한 각서 명칭은 「한일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보도자료에서는 한 문장만으로 설명했다.
“아울러, 양 정상은 오늘 양국 외교당국 간 「한일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가 체결된 것을 환영하며, 이를 통해 제3국 내 위기 상황 시 양국 간 협력을 보다 강화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실 보도자료에서
해당 부분에 밑줄 친 것
그러나 한국 정부 및 언론과 달리, 일본 외무성은 이 사안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한일 간 체결된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에 대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내용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이번 양해각서는 두 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졌다. 이 중 두 번째 조항이 실제 핵심 내용인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 양해각서에 근거해 양국은 평상시 위기관리 절차, 훈련 및 연습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비상시 제3국에서의 대피 계획을 포함한 위기관리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제3국에서 자국민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한 경우 상호 지원 및 협력하고, 고위급 논의 및 의견 교환을 실시한다.”
이 조항에서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부분은 두 가지다.
1. 시기를 평상시(in times of peace)와 비상시(in times of emergency)로 구분했다는 점
시기를 구분하면서, 일본이 비상시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한국의 ‘위기관리 절차, 훈련과 연습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 ‘권한’이 생겼다는 것이다.
2. ‘제3국에서 자국민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한 경우 상호 지원 및 협력’을 명문화했다는 점
이 문구에서 제3국을 ‘북한’으로 상정해 보자. 그럼,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자국민을 대피시킨다는 명분으로 한국 정부에게 한국 내 공항이나 항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고는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
일본인들이 북한에 갖고 있는 악감정 중 하나가 ‘납북자’ 문제다. 그간 북한에서 일본인을 납치하여 북한으로 데려갔던 문제인데, 그때 납치되었던 일본인들은 아직도 북한에 있다.
아베가 일본에서 전국구 정치인이 된 계기도 이 문제였다. 2002년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북한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을 때, 당시 관방장관(한국의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아베도 같이 갔다. 그때 아베가 김정일 위원장 앞에서 납북자 문제에 대해 대놓고 항의했다. 아베는 이 사건으로 인해 전국구 정치인으로 올라섰다. 납북자 문제를 항의한 것으로 전국구 정치인으로 떠올랐을 만큼 납북자 문제는 일본인들이 감정을 많이 갖는 문제다.
한반도 유사 사태가 벌어진다면, 일본은 해당 조항을 근거로 이 납북자들을 자국으로 대피시켜야 한다며 한국에게 최대한 협력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02년 방북한 고이즈미와 아베
출처-<일본사진단>
또한 한반도 유사시엔 당연히 북한도 유사 상황인 것이고, 한국에 거주 중인 일본인들도 그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도 위 조항에 따라 제3국인 북한으로부터 대피시켜야 할 자국민이 될 수 있다.
결국,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합법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자위대 한반도 상륙을 끊임없이 노렸던 일본
이러한 해석이 지나친 것일까?
일본 정부는 지난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대피’를 명분으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2018년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시도했다. 심지어 일본 정부는 이를 관철하기 위해 미국과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유사시 주한 일본인 대피 방안’을 의제로 설정하려고까지 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위 기사는 2015년 10월 1일 자 한국일보 기사로,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자국민 대피를 명분으로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을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려 한다는 보도다.
이 보도는 당시 일본 아사히 신문을 인용한 보도이다. 아사히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일본 정부(아베 정부)가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한국 내 공항이나 항만 사용이 제한될 경우, 일본인 구출작전 실행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면서 일본 자위대의 한국 진입 근거를 구체화하려고 노력했다.’
‘일본 정부는 한반도 유사시 한국 내 일본인 대피방안을 협의하자고 제안했지만, 한국의 박근혜 정부가 응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도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2년 후, 일본 정부는 다시 한번 기회를 엿본다.
2017년 9월 5일 자 뉴데일리 보도다. 이 보도는 일본 닛케이 아시아 리뷰 신문 보도를 인용했다. 내용은 이랬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거주 또는 체류 중인 일본인 6만 명의 대피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그러나 당시는 문재인 정부였다. 문재인 정부가 자위대 상륙 근거를 마련해줄 일은 없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2017년 11월 5일 자 한국일보 보도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일본 정부의 요구에 전혀 응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아베는 미국을 활용하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아베는 요미우리 신문의 취재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 측이 일본과의 협상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요청할 것’
이라고 밝혔다.
전술했듯, 일본은 그동안 이 사안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한국 정부가 먼저 제안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이번 한일 양국의 양해각서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을 위한 제도적 토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껍데기는 양해각서이지만, 실제 내용은 일본 정부가 오랫동안 추진했던 안보 정책인 것이다.
그리고 한일정상회담에서 이 각서의 체결을 일본보다도 더 주도적으로 추진한 이가 바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다.
자, 이제 이 배경을 알고 서두에 첨부했던 9월 6일 자 서울경제 보도를 봐보자.
배경을 알고 보면,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김태효 1차장은 이번 양해각서를 두고, 이렇게 밝혔다.
“세계 각지에서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양국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
“우리 측에서 먼저 제안했다.”
김태효 1차장
출처-<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그동안 일본이 줄기차게 제안했지만, 우리 정부(심지어 박근혜 정부조차도)가 끊임없이 거절했던 그 정책을 우리 정부가 먼저 제안했다는 것이었다. 김태효 차장이 결코 이 각서 내용에 담긴 숨긴 뜻을 모르고 추진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난 19일 체코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아 물의를 일으킨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이번 양해각서 체결 사건을 볼 때, 이 정도면 그의 국기는 태극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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