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허리가 무너지고 있다
2023년 군을 떠난 간부는 9,481명이었다. 2022년 7,639명에 비해 무려 24.1%가 늘어난 수치다. 그 내용을 보면 더 심각한데, 제대한 간부 중 43%인 4,061명이 군 복무 5년 이상, 10년 미만 복무자란 소리다.
장교라면 대위~소령급, 부사관이라면 중사~상사급이 대거 군을 빠져나갔다는 소리다. 까놓고 말하자면, 터질 게 터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군을 전역하는 간부들의 숫자는 2010년대 중반부터 7천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가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늘어났고, 2023년이 되면서 폭증하게 됐다.
“터질 게 터진 거다.”
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미 군 간부들에 대한 문제는 거의 한계까지 온 상황이다.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군 내 자살 사고가 계속 급증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병사들의 자살을 생각했을 테지만, 요즘은 간부의 자살을 걱정하고 있다. 농담 같겠지만, 사실이다.
최근 5년간 군내 자살 사고를 보면, 부사관 계급이 13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 중 하사와 중사가 91명으로 가장 많았고, 장교도 46명이나 됐다. 병사의 경우는 117명으로 뒤로 밀려난 상황이다. 전체 병력을 살펴보면, 간부들의 자살률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을 거다.
군 간부의 아내들은?
알고 있는 육사 출신 장교가 있다. 그 친구가 늘 입에 달고 사는 한마디가 있다.
“이혼하고 싶다.”
3차 진급도 넘어가서 이제 별 보기는 포기해야 할 놈인데, 아내와는 소령 시절부터 좋지 않았다. 결국 전방부대 부임을 핑계로 단신 부임을 하게 됐다. 이후 그냥저냥 주말 부부 비슷하게 생활하게 됐다. 그나마 이 친구의 경우는 괜찮은 경우이다. 단신 부임을 선택해서 나름 경기도권에 집 한 채를 장만했고, 안정적으로 자식 교육도 하고 있다. 부부관계가 좋진 않지만, 이 나이 되면 그 정도는 다 이해하고 넘어갈 부분이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혼하고 싶다는 그 친구에게 실제로 이혼을 해본 나는 이렇게 말한다.
“사고 안 쳤으면, 그러려니 하고 살아.”
문제는 이 친구의 부하 장교들이다. 특히나 나이가 어릴수록 상황이 심각하다. 군인은 대체로 일찍 결혼한다. 문제는 육사를 졸업할 정도의 장교라면, 그 비슷한 수준의 여자들을 만난다는 거다. 인서울 4년제 대학이 기본이라는 거다.
자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자.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20대 여성의 일반적인 생활 패턴이 어떨까? 많은 이들의 경우, 직장을 다니더라도 퇴근하고 나면 친구들 만나고, 맛집 다닐 터이고, 주말에 데이트를 할 것이다. 여기저기 핫플레이스를 돌아다니며 인스타에 올라갈 사진을 찍을 거다. 집에서 집 데이트를 하면 배달 음식을 시켜서 먹을 것이고, 호캉스를 간다면 최소한 별 몇 개가 찍힌 호텔을 갈 것이다. 여름휴가 때 동남아 정도는 기본으로 갈 것이다.
당연히 모두 그렇진 않겠지만, 최소한 그 비슷한 삶을 살 것이다. 이 MZ 여성들이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와 결혼한다면 이후 어떤 삶이 펼쳐질까?
남편이 난데없이 강원도 인제나 원통으로 부임하게 된다. 아내인 MZ 여성도 같이 간다. 그곳으로 이사 가서 배달 음식을 주문하려 한다. 깃발 하나 뜨지 않는다. 배달을 시켜 먹을 수가 없다. 커피숍은 차 타고 30분을 나가야 있는 다방이 있다. 언감생심 친구들과 만남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게 된다.
그나마 이 모든 환경 변화를 바꿔 줄 만한 ‘메리트’가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관사라고 배정받은 집은 녹물이 콸콸 쏟아지는 30년이 넘는 구축 아파트이고, 월급이 드라마틱하게 높은 것도 아니다. 잘해봐야 300만 원 언저리 선(그나마도 이런저런 이유로 뜯겨나간다).
사랑하는 남편 하나 믿고 그곳까지 갔으니 남편 얼굴이라도 자주 보며 시간을 보내면 그나마라도 이해하겠지만, 당직이니 야근이니, 훈련이니 하면서 부대에서 살다시피 한다. 아직 계급이 낮아서 그런가 보지 진급이라도 하면 낫겠지하고 기다려 보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써먹을 만한 직장은 근처에 없다. 남편 하나 믿고 왔지만, 고립된 상황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사. 2년마다 한 번씩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하기에 자식 교육도 최악이다. 집 구하는 것도 어렵고, 자식 키우는 건 더 어렵다.
사실 이건 요즘 MZ 여성이 아니더라도, 결혼 생활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신병에 걸리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지금 현역 간부들의 상황을 알고 싶다면, 유튜브 ‘캡틴 김상호 채널(링크)’을 찾아보면 이해가 빠를 거다. 국방부에서 상당히 경계하는 곳이기도 하다)
결혼하기도 힘들고, 결혼해도 결혼 생활 유지하기는 더 힘들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더라도 아이들 교육, 내 집 장만하는 건 더 어려운 게 군인 생활이다. 군복을 벗는 게 너무 당연하다.
나가는 게 당연하다
1만 명이면 1개 사단급 규모다. 2023년 대한민국 군대는 1만 명 가까운 숙련된 간부들이 소리 소문 없이 군을 떠나갔다. 군의 허리가 무너진 거다.
능력 있는 이들일수록 군을 기피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엘리트 군인 양성을 위한 사관학교 인원들도 매년 퇴교생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육사의 경우, 학년별 정원의 10% 가까운 인원이 자퇴하는 게 실상이다.
이건 장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사관의 경우는 더 큰 문제다. 해가 갈수록 부사관 지원현황이 아주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2023년의 경우, 육군 부사관을 8,800명 모집하려 했지만, 그 절반도 미치지 못한 4,000여 명을 선발하는 게 고작이었다. 또 문제는 임관하는 부사관 숫자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부분이다. 한 기수에 82.5%가 여군 부사관인 상황도 벌어졌다.
어떻게 보면, 인구 부족 상황에서 남성들이 군을 떠나고 여성들이 그 빈자리를 여성들이 메우고 있다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여군 부사관이 급격하게 늘어난 이유와 일선 부대에서 여군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를 고려해 본다면, 긍정적으로 보기 힘든 상황이다. (조만간 이 문제에 대해 기사를 써보겠다. 대한민국 군대는 아직 ‘여군’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군을 받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여군을 받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된다)
일선에서 능력 있는 인원들은 너나 할 거 없이 군대를 전역하는데, 여군 경쟁률은 7:1 이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여성의 직업으로서는 괜찮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전문대 출신 여성들의 부사관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
무미건조하게 보자면, 5~10년 차 되는 경력 있고 노련한 병력이 빠지고, 그 빈자리를 갓 하사를 단 여군들이 메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한 이야기는 계속되는데, 언제부터인가 군 병력이 부족해지면서 군 간부들이 해야 할 일을 군무원들이 하기 시작했다.
군무원들에게 총기와 군복을 지급하겠다고 나서고 있고, 군무원들을 당직 근무에 투입하거나 위병소 근무에 넣기도 한다. 군인이 부족하니 민간인인 군무원을 군인처럼 부리는 거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걸까? 간단하다.
“군인이 직업으로서의 메리트가 없다.”
이게 핵심이다. 사회에서의 임금 체제는 껑충 뛰어 올랐다. 최저시급이 1만 원을 돌파한 지금, 그냥 편의점 알바만 해도 군대 있을 때 월급이 나온다. 군인이 사회 나오면 뭘 할 수 있을까? 군 경력을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특수부대 출신이라면, PMC에 들어가도 되고, 경찰특공대, 소방청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 거다. 해군 출신이라면 해경을 노릴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그 나머지의 경우 대부분은,
‘노가다 경력’
정도로 군 경력을 바라볼 거다(군 비하가 아니다. 일선 부대에서 행보관으로 근무하던 상사가 전역하면, 이를 경력을 인정할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기에 군에 대한 희망이 없거나, 장기에 붙은 이후에도 군 생활이 어떻게 흘러갈지 걱정되는 이들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군을 빠져나오려 한다.
10여 년 전 만 하더라도 나름 안정된 직장이고, 나이 들면 연금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물가는 가파르게 올랐고, 집값은 수직상승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서 임금도 훌쩍 올랐다.
거기에다 병사들에 대한 처우는 계속해서 개선되고 있지만, 간부들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당직 근무비 2만 원이나, 훈련 중 식대를 사비로 내라는 것은 일반인들 기준으로 봐도 너무 나갔다는 느낌이 든다.
국가에서 군인에게 훈련을 시키는데, 그 전투식량 비용까지 군인에게 내라고 한다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결국 폭발해 버린 거다. 문제는 이게 아직 시작일 뿐이라는 거다. 직업군인들이 지금 가장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군인연금’이 그것이다.
군인연금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군인들
대한민국 연금 중 (수령자 입장에서) 가장 좋은 연금이 바로 군인연금이다. 다른 연금, 그러니까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이 65세까지 기다려야 수령을 받는 것과 달리 군인연금은 20년을 복구하고 퇴역하면, 그 즉시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더구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서 근무하더라도 연금은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군인연금이 이미 1973년에 고갈됐고, 이걸 정부가 국가보전금을 투입해서 유지하고 있다는 거다. 공무원 연금을 개혁한 직후부터 군인연금도 손을 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많았고, 주기적으로 한 번씩 군인연금에 대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은 국가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기에 기재부에서도 틈나는 대로 군인연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만약 군인연금을 손대는 순간, 간부들의 이탈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가속화될 거다.
(2024년 기준으로 공무원연금에 6조 6,071억 원, 군인연금에 3조 4,169억 원이 투입되고 있다. 정부로서도 슬슬 압박이 되는 상황이고, 이를 개혁하기 위해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고, 연구용역을 핑계로 간을 보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지금 군 간부에게 젊은 시절 자기 경력 다 포기하고 군에 남아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간부 열에 아홉은 연금 때문이라고 말할 거다. 말도 안 되는 당직 근무비와 훈련, 부자유스러운 군 생활과 격오지에서 근무함에도 묵묵히 수행하는 이유가 바로 연금에 있는 거다.
그런데 이 연금이 사라진다면? 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을 거다.
현재 군 간부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이 군인연금에 대한 연구와 함께 슬슬,
“군인연금을 개혁해야 하는 거 아니냐?”
라고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올 초에는 국방부가 연구용역까지 맡기며 본격적으로 군인연금을 개혁하겠다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
이 연금 문제가 군인들에게 얼마나 예민한가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지난 2022년 12월에 윤석열 대통령이 연금 개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늘 그렇지만, 남들이 풀지 못한 일을 자신은 욕을 먹더라도 해내는, 그러니까 적폐 청산의 일인자란 이미지를 내세우며 연금을 개혁하겠다고 나선 거다.
“과거 정부에서 연금 얘기를 꺼내면 표가 떨어진다, 여야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해서 연금 얘기가 본격적으로 논의가 안 됐고 (중략)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 앞으로 수십 년간 지속할 수 있는 연금 개혁의 완성판이 나오도록 지금부터 시동을 걸어야 한다.”
이때 군인들의 마음을 뒤흔든 소문이 나왔다. 출처 불명의 문서 한 건이 등장한 건데, 이게 SNS에 퍼졌다.
SNS에 돌아다니던 문서 사진
내용은 간단하다. 군인연금 개혁안이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퇴직 연도에 따라 연금 지급이 시작되는 연령이 다르게 분류된 거다. 퇴직 직후부터 수령 받던 게 가장 큰 장점이었는데, 그 장점이 사라진 거다.
이 괴문서가(?!) 퍼지자마자 군 간부들의 마음은 요동쳤다. 이 군심을 잡기 위해 국방부에서는 공문을 발송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 군인연금을 어떻게든 손보고 싶어 한다. 그걸 아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떤 형태가 되든지 간에 군인연금은 손 볼 거 같다. 그렇게 되면, 군 간부들의 마음은 다시 요동칠 것이고, 다시 한번 군 간부들의 전역 러시가 이어질 건 불 보듯 뻔하다.
이래저래 군인들의 전역은 늘어날 거 같다.
“군 탈출은 지능 순”
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지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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