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주년 국군의날 행사에 등장한 정조대왕함 CG
작년 이맘때쯤 10년 만에 진행된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 대해 기사(10년 만의 국군의 날 시가행진: 놀랍도록 의미 없었다, 정조대왕함 빼고(링크))를 썼다. 1년이 지나고 올해 다시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이번엔 병력 3천여 명과 83종 340여 대의 장비들이 대거 출동했다.
이번 국군의 날 행진을 보면서 느낀 첫인상은 ‘격세지감’이다. 1980년대부터 기억을 더듬어보면, 현재 대한민국 군대는 환골탈태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변했다.
어린 시절 보던 대한민국 군대는 대잠수함 장비라고 나오는 게 알루에트 헬기와 폭뢰였고, 기어링급 구축함에 미스트랄 올려놓고 대공 장비라고 자랑스럽게 떠들던 게 엊그제였다(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지만, 이게 2000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잠 초계기라고 P-8 포세이돈을 날리고, 우리가 만든 국산 전투기로 공중 곡예 팀을 날리는 수준이 됐다.
잠깐 추억을 되짚어 보려 한다.
대만 상공을 나는 블랙이글팀
출처 - <방위사업청>
2000년대 초반, 한 영화사에서 블랙이글팀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작 중이었다. 그때 나는 각색 작가로 투입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블랙이글팀이 사용하던 기체는 드래곤플라이였다. 당시 성남 비행장에서 에어쇼 장면을 촬영할 때, 촬영감독과 스태프들이 한참 이륙 장면 촬영을 위한 준비를 마쳤는데, 기상 문제로 비행이 취소되어 인서트만 주구장창 땄던 기억이 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영화는 2회 촬영 만에 무산됐다. 만약 나왔다면, 또 다른 의미의 국방홍보 영화가 나왔을 텐데...
이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한참 지나 국방부 대변인실과 일을 할 때쯤, 한 관계자가 말했다.
“내년에 비 입대하면, 진짜 제대로 된 영화 하나 준비할 겁니다.”
그리고 2012년에 나온 작품이 <R2B>였다. 이때 블랙이글팀이 사용한 기체는 FA-50이었다. 드래곤플라이 보면서 한숨 쉬며 시나리오 쓰던 기억이 엊그제 같았는데, 우리 손으로 만든 기체가 나왔다는 것에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국군의 날 행사를 보면서, 처음 든 감정은 뿌듯함이었다. 개인적인 경험과 추억이 떠오르면서 우리나라 국력이 이 정도로 성장했다는 걸 피부로 체감했다고나 할까? 이 기분은 80년대부터 대한민국 군대를 지켜봐 온 필자의 개인적인 감정이다. 이제부턴 이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제외하고 든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구나.”라는 체념, 두 번째는 “이거밖에 할 게 없구나.”하는 포기의 마음이었다. 하나씩 풀어보겠다.
혹시나가 역시였던 순간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거수 경례하는 윤석열 대통령
출처 - (링크)
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때 윤석열 대통령은 ‘부대 열중쉬어’를 못해 멍때렸다. 다행히 이때 제병지휘를 맡았던 손식 육군 소장이
“부대 열중쉬어!”
구령을 내렸고, 기념식은 진행되었다. 이에 대한 당시 대통령실의 반응이 대단했다.
"대통령 기념사 시작 직전 제병지휘관이 '부대 열중쉬어' 구령을 하였으며 대통령께서 별도로 '부대 열중쉬어' 구령을 하지 않아도 제병지휘관은 스스로 판단하여 '부대 열중쉬어' 구령을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부대원들이 장시간 부동자세를 유지하는 등의 불편은 일체 발생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의전행사에서 진행되는 모든 사소한 행위들은 모두 의미를 지닌다. 특히나 이런 군 행사에서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제병지휘관의 지휘하에 병사들이 대통령에게 경례하고, 대통령이 그 경례를 받고 부대 “열중쉬어”라고 구령을 하는 건 문민통제.
즉,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로 뽑힌 대통령이 군을 통솔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군의 최고 통수권자가 대통령임을 명확히 하는 자리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멍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2024년 10월 1일, 대통령실은 만반의 대책을 세웠다.
“이번에 실수하면, 끝장이니까... 그래, 이번엔 진행자가 아예 멘트하면 대통령이 따라 하는 걸로 하자. 이렇게 하면 까먹지 않겠지?”
대통령실도 대통령을 믿지 못했던 모양이다. 2년 전의 그 악몽! 두고두고 짤로 돌아다니는 그 악몽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진행자가 ‘부대 열중쉬어’를 말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절었다. 진행자가 부대 열중쉬어를 말하자 옹알이하듯이 부대 열중쉬어를 말한다. 절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 자신감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어제 술을 마신 걸까?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느껴졌다. 1년 차에 멍때린 건 이런 의전행사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핑계라고 되겠지만, 3년 차에 들어서는 대통령이 이렇다는 건... 마치 대통령은 따로 있고, 밖에서 대통령 흉내만 내는 것처럼 보인다.
제병지휘에서 구령 하나 못 붙이는 사람이 대통령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전 국민이 보는 생중계에서도 이러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모습일지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이거밖에 할 게 없구나
출처 - (링크)
75주년 국군의 날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시가행진이 이어졌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뒤 1980년부터 1984년까지 매년 시가행진하면서 분위기를 띄운 걸 생각하면, 군사정권 때의 그것이 생각이 난다. 다시 말하면, 윤석열 정부는 1984년 이후 40년 만에 2년 연속으로 군 시가행진 퍼레이드를 실행했다는 말이다.
국방부도 이 부분을 의식했는지
“이게 장병들 사기 함양에도 좋고, 대북 억지력에도 좋고... 그, 그래! K방산! 외국에 한국 방산무기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리야!”
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2년 연속하는 건 좀 에반데... 작년에도 100억 까먹었다고 눈치 좀 보였는데...”
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작년에 썼던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체로 서방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군사 퍼레이드를 안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권위주의 정부에 가까울수록 군사 퍼레이드를 하려고 한다. 한국도 민주화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군사 퍼레이드를 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1998년 이후로는 대체로 5년에 한 번 진행하는 게 국룰(?!)이 됐다.
권위주의 정부에 가까워질수록 군사 퍼레이드를 자주 하는 걸 보면, 윤석열 정부의 색깔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을 보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출처 - (링크)
군사 퍼레이드 비용이 작년에 비해 20억을 줄인 80억이라고 아무리 선전해도, 북한의 최대 탄두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현무 5를 보여줬다고 해도... 그것들이 보여주는 현시 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군사 퍼레이드가 상대국에 전쟁 억제의 현시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이건 꽤 유구한 역사를 가진다. 관함식 같은 걸 대규모로 진행해 상대국의 전쟁 의지를 꺾어버리는 건 어제오늘 있었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과의 반세기 넘는 대치 상황과 이미 국력으로는 어찌 상대할 수가 없이 벌어져 버린 격차를 생각해 보면 글쎄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군사 퍼레이드를 하지 않았음에도 대한민국의 군 전력은 유례 없이 확장됐고, 이를 북한도 시시각각으로 살펴본 걸 생각하면, 이제 그 현시 효과라는 것도 얼마나 될지 미지수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다 걷어내고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이거밖에 할 게 없구나.”
포항 앞바다에 석유가 나온다고 하면, 국민들이 좋아할 거로 생각해 대통령이 직접 나와 산유국의 꿈을 팔고, 군대를 동원해 시가행진하면 국민들이 환호하고 지지율이 오를 거라 믿는 단순한 생각. 이 모든 게 70, 80년대 사고방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구시대적인 모습이다. 아니, 생각이 아예 거기서 멈춰 서서 굳어버린 거 같다.
진짜, 이 정부는 할 게 이것밖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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