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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만에 정권이 교체된 영국. 노동당 집권과 동시에 영국은 각 지방의 대도시를 필두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 시끌시끌했다. 국가를 위기 속으로 몰아넣은 보수당이 뒷짐 지고 있을 때, 극우성향을 띤 이들은 만만한 노동당을 선택했다. 누가 봐도 화풀이였다. 이유도 명분도 없는 폭동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소요는 잠잠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쫄지 않는 검찰총장 출신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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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수많은 이들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 중 가장 먼저 기소가 된 이는 15세 소년. 영국은 우리와 달리 기소되면 신상을 공개한다. 다만 미성년자일 경우는 예외다. 참고로 이번 폭동은 최대 10년형까지 받을 수 있는 사안으로 결정됐다.

 

지나가던 흑인을 때려 재판에 넘겨진 30세의 조셉 레이(Joseph Ley)는 인종차별적 증오심이 동기가 되어 물리적 폭력을 가했다는 이유로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 외에도 경찰견에 고함을 지르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이에게는 20개월 형이 선고되었다. 언어 폭력도 물리적 폭력 중 하나로 간주했고, 인종차별 발언으로 형량이 가중됐다. 개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고 징역이라니 이게 무슨 오버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수색하는 경찰견에게 위협을 가하는 건 엄연한 공무집행 방해에 해당한다.

 

국가 차원에서 강경 대응으로 맞서자, 폭력시위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징역형을 받게 될 이들이 증가 추세로 접어들자, 폭동의 규모도 작아졌다. 총리를 비롯한 각 정부 부처의 장들은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계속해서 강도 높은 형벌이 가해질 경우, 제아무리 극우라 한들, 인생을 걸고 거리로 뛰쳐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들어맞았다.

 

배후가 누구든, 규모가 어찌 됐든,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종류의 시위가 일어났으니 총리 입장에서는 긴장될 법도 했다. 실제로 거리로 뛰쳐나온 이들의 행동은 매우 과격했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까지 공포에 시달린, 21세기 들어 영국에서는 전례 없이 벌어진 폭동이었다. 게다가 총리가 취임한 지 3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총리는 쫄지 않았다. 매우 단호하게 대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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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총리는 전직 검사이자 검찰총장 출신답게, 폭동에 참가한 이들을 국민이라기보단 범죄자로 보고 정무적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하나둘씩 잡아들여 현재 경찰에 연행된 시위 가담자만 해도 500명을 넘어섰다. ‘총리의 단호한 결단이 폭동의 종식을 일찍 가져다주었다’고 말하기엔 물론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시위 참가자에 대한 첫 재판 결과가 보도된 이후, 시위가 잠잠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소되는 순간 신원(사진, 이름, 나이, 출신 지역 등)이 밝혀지고 언론에 공개되기에 웬만한 철면피가 아닌 이상, 계속 범죄를 저지르기 쉽지 않다. 가족은 고사하고, 친인척과 친구, 그동안 알고 지냈던 모든 사람이 내 이력을 알게 된다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아무튼, 국가의 중차대한 비리 사건을 진두지휘한 이력으로 기사 작위까지 수여 받은, 명실공히 우수 검사 자원이었던 총리는 차분하게 대처했고 폭동은 끝이 났다.

 

영국이 망한 게 아니라 우리가 성장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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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영국 로더럼에서 반이민 시위대가 폭력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 <로이터>

 

한동안 폭동 소식으로 인해 영국이 곧 망하게 될 거라는 예언 섞인 기사, 방송 유튜브가 인터넷을 달궜다.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야 클릭 수 장사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나가도 너무 나갔다. 유럽을 비롯해 영국이 망할 거였음 1,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폐허가 되면서 진작에 망해야 했다. 폭동 때문에 망했으면, LA 흑인 폭동으로 미국이 먼저 망해야 하지 않나.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1500년간 지속되어 온 이곳 그레이트 브리튼 섬의 질긴 운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 영국은 언제 폭동이 있었냐는 듯 조용하다. 직장에서, 각종 모임에서 만나는 친구 중 이번에 있었던 폭동에 대해 언급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당시엔 안위를 묻는 이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걱정과 염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중이다. 폭동 때문에 영국이 곧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든지, 이민자 문제로 결국 극우가 우세해 외국인들이 더 이상 영국에 거주하기 힘들어질 거라는 등의 코멘트는 먼발치에서 뉴스만 보고 하는 상상 정도로 여기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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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동아시아 국가들의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다. 상대적으로 유럽 국가들, 특히 영국이 과거에 선망의 대상으로 보던 그러한 국가는 더 이상 아니라는 것도 맞다. 실제로, 영국과 우리나라의 GDP는 3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격차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국가 행정 시스템을 비롯해 인터넷 설비, 최첨단을 달리는 각종 편의시설을 놓고 보면 영국은 후진국이다. 스크린 도어 없이, 여전히 한 발만 내디디면 철로에 빠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연식 150년의 지하철이 인터넷, 에어컨도 없이 돌아다닌다. 운전면허증 재발급 받으려면 최소 2주는 기다려야 하고, 여권 접수도 우편으로 한다. 3개월씩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개선의 여지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의 시스템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만 나온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온 일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였던 월터 로스토(walt rostow)는 ‘새로운 세계에서의 질서(New World Order)’ 속에서의 한국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향후 경제적 성장과 함께 사회적 발전을 통해 중요한 글로벌 리더로 자리 잡을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 발전 모델을 기반으로 이웃의 개발도상국들에 영감을 주고, 더 나아가 세계 정치 및 경제 질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까지 예견했다. 이렇게 주장한 학자는 월터 외에도 많았다.

 

축구만 봐도 과거와 달리, 이제는 모든 국가가 상향평준화 된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축구 실력을 넘어, 인프라가 얼마나 잘 구축되어 있느냐의 사안으로 연결되고, 결국 해당 국가의 경제력이나 국민들의 삶의 질이 어느 정도 성장했냐의 문제로도 귀결된다. 그러니까 과거 선진국이라 불리던 나라들이 망해 가는 게 아니라, 제3 세계 혹은 개발도상국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눈높이가 높아졌고 기준이 달라졌다.

 

한마디로, 우리가 그만큼 잘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민자 반대 VS 내 집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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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영국은 다수당이 바뀌고 총리가 임명되면 인수인계 기간 없이 곧바로 정책 실행에 들어간다. 여당이 내각(캐비닛)을 운영할 때, 야당은 그림자 내각, 일명 쉐도우 캐비닛을 구성해 동시에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여당에 관철한다. 실질적인 국가 운영은 내각에서 하지만, 야당에서도 언제든 정권이 교체되면 곧바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대기 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정권이 교체되면 다음 날부터 곧바로 업무에 돌입할 수 있다.

 

대중은 노동당이 뭔가 색다른 국가 운영을 할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2/3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하게 해 줬으니 그만큼 성과도 있길 바랐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정권 교체 이후, 노동당과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동반 하락했다.

 

브렉시트와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5년간 올려놓은 금리를 한 번에 내릴 수도 없었고 (실제로 정부의 입김이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의 금리인하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간 쌓인 인플레이션을 단번에 해결하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전 영국 브리핑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유럽연합도 틈틈이 영국과 긴밀한 거래(?)를 시도해 왔다. 영국이 떠난다고 할 때 호기롭게 보내주겠다 했지만, 막상 인구 6천만에 세계 경제, 특히 금융을 쥐락펴락하던 런던의 증권가를 놓으려니 유럽연합도 손해가 막심했다. 게다가 나토(NATO)의 핵심이자, 서유럽 국가 내 가장 많은 국방비를 부담하는 영국이 떠나니 남아있는 나라들도 어려움에 봉착했다.

 

사실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했지만, 국민투표를 했다는 명분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브렉시트에 찬성한 보수당 의원들도 상당했다. 이를 알고 있던 유럽연합도 과거처럼 완전한 연합체로서의 모습은 어렵더라도 어떻게 든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 했다. 특히, 명분을 중요시하는 보수당보다는 실리적인 노동당과의 협상이 더 원활하게 이뤄질 거라 믿었던 유럽연합은 노동당이 집권하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 공공연하게 얘기해 왔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영국 국민을 불편하게 했다. 이유는 이민자였다. 유럽연합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안이, 인/물적 자원의 원활한 이동이다. 한 번 들어오면 다시 나가기 어렵다는(?) 지정학적 한계가 이민자 문제에 있어서는 영국을 늘 예민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노동당과 유럽연합의 친분이 영국 국민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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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그나마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집 마련의 꿈(한국이나 영국이나 똑같다)을 실현해 줄 새로운 정책, ‘Freedom to Buy’를 도입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금리 정책은 중앙은행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금리 인하를 정부가 공약을 걸고 약속할 수는 없지만, 총선 이후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는 있었다. 노동당의 정책이 주택대출 금리 인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있는데, ‘Freedom to Buy’가 대표적인 예다.

 

첫 주택 구매자들이 저렴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임대주택을 포함해 30만 호에 해당하는 주택을 새로 짓는다. 내 집 마련에 대한 혜택이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해당 정책만 제대로 시행만 된다면, 노동당은 다시 지지율 반등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