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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이란에서 날아든 미사일을 이스라엘 상공에서 아이언돔 방공망이 요격 중이다

출처 - <로이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시작된 중동전쟁에 이란이 합세했다. 이스라엘을 향해 200여 발의 미사일을 발포한 이란의 군사작전은 시작에 불과하다. 끝장을 볼 때까지, 누군가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만 끝나는 이들의 다툼은 중동을 넘어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위기를 느끼게 한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걸까?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가 자기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고 있다는 말도 있고, 여전히 미-러의 중동 지역에 대한 보이지 않는 패권 다툼이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보면, 둘의 역사에는 반드시 싸워야만 하는, 또는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만 끝날 것 같은 네러티브가 있다.

 

이스라엘 땅인가 팔레스타인 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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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성서문화교육원>

 

이스라엘이 지배하고 있는 땅, 남으로는 가자지구를 시작해 예루살렘, 그리고 북쪽으로 텔아비브에 이르는 지역은 흔히 팔레스타인이라고 명명한다. 1967년부터 해당 지역에 대한 국가적 의미의 영토는 이스라엘에 속해있지만, 오래전부터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렸다. 이전에 언급했듯, 팔레스타인, 성서에서 블레셋이라 명명했던 민족은 일찍이 멸망했고, 기원전 500여 년에 종적을 감췄다.

 

성서 기록에 따르면, 바다의 민족 블레셋은 강력한 해상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이 높았지만,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다윗(데이빗, 데이비드)의 통치 기간에 급격히 쇠락했고, 이후 200년 가까이 해당 지역에 머물렀지만 이내 사라졌다. 상식적으로 따져봐도, 해당 지역은 팔레스타인(블레셋) 보다는 이스라엘이라고 불려야 맞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지역은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줄곧 팔레스타인이라 불린다. 이유가 뭘까?

 

지금까지는 성서를 기반으로 사실관계를 따져봤다면, 이제는 현실적인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보자.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사용된 시기는 기원 1150년경으로 추정된다. 이집트의 20왕조 시기. 당시의 비문을 살펴보면, 현재 팔레스타인이라고 해석 가능한 '펠레셋(Peleset)'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펠레셋’을 현재 사용되는 팔레스타인의 전신이라고 보고 있다. 이집트는 대국으로 넓은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었는데, 이런 이유로 당시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20왕조 시기에 쓰인 것이라 볼 수 있는 다섯 개의 비문에는 상형문자가 존재하고 이는 'P-r-s-t'로 음역 되었다. 이것이 현대에 사용되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가 역사적 기원이다.

 

‘펠레셋’에 대한 언급은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인 메디넷 하부 사원에서 발견된다. 참고로 메디넷 하부는 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이기도 하지만, 과거 이집트 문명 왕의 장례를 살펴보면, 왕의 무덤을 단순히 왕의 시신을 보관하는 곳이 아닌, 사후 세계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의 건축물을 함께 건축하여 도시형 신전 형식으로 만들었다. 현존하는 이집트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장례 신전 중 하나다. 즉, 이집트의 입장에서는 나름 경계해야 할 민족으로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보를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이 외에도 1894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디이셋의 조각상’(Padiiset's Statue)에도 이스라엘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알려진 가나안과 펠레셋(블레셋) 그리고 고대 이집트 사이의 무역에 관한 비문이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해당 조각상은 검은색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는데, 30.5 x 10.25 x 11.5 cm 크기로 정부의 대신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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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켰다던 앗시리아(앗수르)에도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자료가 존재한다. 물론, 이집트나 앗시리아 모두 가나안과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명확한 경계가 어디인지, 어떤 민족의 이름을 차용했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자료는 (아직까지는) 없다. 하지만, 앗시리아에서는 현 팔레스타인 지역을 ‘팔라슈투’(Palashtu) 혹은 ‘필리스투’(Pilistu)라고 불렀는데 이는 기원전 800년경에 쓰였다고 알려진 니브르드 석판(Nimrud Slab)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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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판은 1854년, 영국의 고고학자인 윌리엄 로프투수(William Loftus)가 발견한 앗시리아의 통치자 아다드 니라리 3세(Adad-nirari III)가 남긴 비문이다.

 

이후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해당 지역에 대한 명칭은 이스라엘보다는 팔레스타인을 연상케 한다. 고대의 이집트, 앗시리아의 자료에도 그렇듯,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표현이 두드러진다.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토스(Herodotus)가 자신의 저서인 '역사'(The Histories)에서 페니키아와 이집트 사이에 있는 시리아 땅 일부를 ‘팔라에스티네’(Palaistinê)라 명명했고 로마 시대에는 ‘시리아 팔라에스티나’(Syria Palaestina)로, 비잔틴 제국 때에는 ‘팔라에스티나 프리마’(Palaestina Prima)로 사용되었다. 이후 여러 강대국들의 속국, 혹은 지역으로 예편되어 있었지만, 지금의 가나안,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스라엘이 아닌 줄곧 팔레스타인과 유사한 이름으로 명명되었고, 20세기, 오스만 제국의 땅이었던 곳을 영국이 확보하면서 영어식 표기인 ‘팔레스타인’이 공식화되었다.

 

사실,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 도 끝도 없는 역사 고증이 필요하다. 중간에 설명을 건너뛴 자료들도 있지만, 어쨌든 분명한 건, 해당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근거에는 이스라엘보다 팔레스타인을 언급하는 자료가 더 많다는 점이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이스라엘도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땅이 없는 민족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실제 그 땅의 주인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땅이 되어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 땅을 빼앗은 것처럼 알아 왔지만, 성서를 제외한 역사적 자료를 종합해 보면 지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그곳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스라엘보단 팔레스타인이라는 증거가 더 많다.

 

여기서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첫 번째는, 블레셋을 멸망의 길로 몰아세웠다던 이스라엘은 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을까? 성경에서 증언하는 이야기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는 편협한 역사책일까?

 

두 번째. 줄곧 팔레스타인이라 불렸던 그 땅을 왜 지금은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가?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왜 찍소리도 못하고 여러 곳으로 나뉘어 (가자지구 등) 변방으로 밀려났을까?

 

다음 편부터 하나씩 짚어 보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