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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철저한 무당파. 당파적 관점에서 벗어나 저 양반은 국회에서 봤으면 싶은 사람들 이야기를 해 둠. 


예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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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에 없는 법원행이 몇 년간 잦았다. 내가 직접 담당한 아이템은 아니었지만 함께 했던 프로그램이 법정 소송에 휘말려 그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던 탓이다. 집안 말아먹으려면 송사하라고 했다더니 그 치다꺼리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허구한 날 변호인은 이것 저것을 요구해 왔고 일상 업무 외에 여기 저기를 찾아다니면서 그 증거 자료와 증언들을 갖다 바쳐야 했다. 고등법원 판결까지 만 3년이 흘러갔으니 지긋지긋하다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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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안을 두고 원고와 피고의 증언은 자주 상충됐고 피고인 우리 쪽은 그 차이를 메우는 증언들을 끌어대야 했다. 처음에 변호사가 길다란 증언 요청자 리스트를 보내 왔을 때 나는 그 방대함에 질리기는 했지만 그다지 어렵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별다른 결정적인 증언이라든가 무리한 진술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들이 촬영 진행 시 해 주었던 일들, 그리고 보고 들었던 사실들, 전문가로서 진단하고 분석한 얘기만 리바이벌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전화기를 돌리고 찾아가기도 하고 메일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나는 세상이 그렇게 다정하지는 않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아야 했다. 일단 당시 그 상황을 지켜본 인근의 주요 증인들은 원고측의 집요한 방문과 설득에 질려 있었고 이 건과 관련된 어떠한 증언도 하지 않겠다고, 전화조차 하지 말라고 간청했다. 구태여 반대쪽 증언을 하여 원고와 얼굴 붉히기 싫다는 것이었다. 이해가 갔다.


이제 전문가들을 만날 차례였다. 당시 상황을 분석,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던 사회복지사, 사회복지학과 교수, 의사 등등. 그런데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당신이 방송에도 버젓이 나와서 증언했던 얘기를 당신 자의로, 당신의 전문적 식견으로 했노라는 사실확인만 해 달라고 해도 거절했다. 어떤 경우는 면전에서는 기꺼이 하겠다고 해 놓고 30분 뒤 이런 문자를 보내 왔었다. “죄송합니다. 개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실 ‘우리 일’이란 곧 ‘내 일’이기 마련이고 내 일이 아니면 우리 일이 될 수 없고 곧 남의 일인 법이다. 그거야 나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 득이 될 것이 없고 귀찮게 왔다 갔다 불려가거나 괜히 찝찝한 서명을 하여 “위증 시에는 처벌을 감수함” 따위의 문구를 눈에 담아야 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척을 질 이유가 어디 있을까.


나는 이해하면서도 허탈했다. 그래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한 것이라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아닌가. 패소해 봐야 나 자신은 아플 것도 없는 시다바리일 뿐이었지만 눈 앞이 막막해졌다. 더욱이 내 개인이 단독으로 어떤 사건의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멀쩡한 증인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했을 때에는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었다.


변호사가 보내온 그 길다란 리스트에는 하나 하나 X표가 그어지기 시작했다. 거절. 거부. 전화통화 거부. 만남 거부. 서면도 거부. 그러나 그 즐비했던 이름들 가운데 딱 한 사람의 이름 위에 O표가 쳐졌다. 그는 경찰대학교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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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통해 피해자의 상황을 분석한 그는 피해자의 상처를 볼 때 원고측의 주장대로 자해(自害)에 의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의 심리 상태가 범죄 피해자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는 증언을 했었다. 법정 소송 중임을 밝히고 사실 확인 요청서를 보냈을 때 한동안 응대가 없었다. 그래서 역시 이분의 이름에도 X표를 쳐야겠다 싶은 찰나 답 메일이 왔었다. 나는 그 메일의 한 구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메일 꼬리에 달린 추신이었다.


"내가 보았던 모든 사실에 대해서 확인드립니다. 제 판단이 틀릴 수는 있으나 당시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더 필요한 점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후 원고 측에서 증인 신청을 하여 (서면증언으로 대체됐지만) 법정에까지 나와 주실 수 있는지를 통화로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겁날 거 있습니까 내 판단을 내가 얘기하는데. 내가 틀린 말하는 것도 아니고. 출두요구서 보내라고 하세요.”


그때 열 두 명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에서 O표가 쳐졌던 이름. 그는 표창원이었다. 나는 그가 증언을 해 줘서 고마운 것이 아니라 세상이 이렇구나, 이렇게 자기 일이 아니면 냉정하고 개입하지 않으려 드는구나 학습해 가던 내 뒷덜미를 잡아채준 것이 고마웠다. 개인주의란 “그건 내 일이 아니야.”라는 무관심의 성채가 아니라 “내 영역은 정당하게 지킨다.”는 책임으로 이룩되는 것이며 “남이야 알 게 뭐야.”하는 비겁함이 아니라 “네가 생각할 때 옳은 일을 하라.”는 용기가 곁들여질 때 그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는 교과서적인 사실을 나는 당시 그를 통해 배웠다. 그는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지 않았고 그가 생각할 때 옳은 일을 스스럼없이 했던 것이다.


그의 사실확인서. 맨 말미에 “위 본인은 상기의 내용이 모두 사실임을 확인합니다. 끝.”이라고 무표정하게 덧붙인 문장을 다시 본다. 그리고 그 한 자 한 자를 타자치며 자신의 증언 내용을 두 번 세 번 살피면서 사실과 어긋남이 있는지를 살폈을 그의 표정이 문득 떠오른다. 그런 그에게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벌어진 말도 안되는 상황이 어떤 의미였을지는 굳이 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7급 공무원’들이 음습한 오피스텔에서 댓글달기로 대국민 ‘심리전’을 전개하고 경찰은 여당 간부들의 지시를 받아 수사 결과를 급조해서 발표하고, 되레 원장님 말씀에 따라 선거에 개입한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이 강변되는 상황에서 그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아마도 이런 심경이었을 것이다. “위 본인은 상기의 내용이 모두 불의라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평생 직장을 내던졌다. 왜. 이것은 불의하므로. 이것은 옳지 않으므로. 이 사실을 경찰이 될 젊은이들에게 부인할 수 없으므로.


그는 그가 자임하다시피 보수(保守)다. 그는 경찰에게 물병을 던지는 사람을 보면 발을 구르며 경찰을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는 보수고, 법의 준수라는 것에 민감하고 그 테두리를 벗어나기를 어려워하는 보수다. 그 보수가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오늘 우리 나라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수 표창원. 어차피 진보가 아닌 나는 그와 같은 보수라도 되기를 원한다.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일을 하는 보수. “상기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며 정의가 아니다.”고 할 말을 할 수 있는 보수. 이러다보니 어설픈 진보보다는 보수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지만.


물론 그도 사욕이 있을 수 있고, 대선 당시의 행동은 일종의 '베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의도에 가는 수백명 선량 가운데 욕심 없는 자 누구고 베팅 안 한 이 누구랴. 그를 여의도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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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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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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