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링크)
북한군 1만 2천 명이 러시아로 파병을 간다.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향한다고 할 수 있다. 이걸 보며 들었던 생각 하나,
“올 게 왔네.”
전 세계에서 에너지와 식량 두 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나라는 딱 두 나라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도 못 한다. 지금 북한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만성적인 식량 위기와 에너지 문제다. 우리가 가끔 잊고 있지만, 북한은 매년 100만 톤 이상 식량부족 현상을 겪고 있고, 에너지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북한에선 여전히 나무를 때서 목탄차를 굴린다.
더구나 올해는 세 번에 걸친 수해로 나라가 아주 결딴이 났다. 압록강 변 근처에 있는 주민들은 지금 천막 속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다. 김정은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건설을 독려하고 있는데 이미 첫눈이 내린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수해로 집을 잃은 ‘인민’들이 얼어 죽을 수도 있다(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죽을 것이다).
북한은 어느 때보다 식량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북한 입장에서 이 두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러시아다. 지금 러시아에 가장 필요한 게 뭘까? 그렇다. 사람이다. 올해 들어서 약빨이 떨어지긴 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러시아 경제는 잘 돌아갔다. 전시 경제 체제로 돌아서면서 경제성장률이 4~6%씩 팡팡 뛰어오르고, 경기가 불타올랐다. 물론, 2024년에 들어서면서 경기과열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10% 가까이 치솟고, 재정 적자는 한계상황까지 간 듯하다(국가 보조 모기지 프로그램도 중단된 상황이다).
이런 러시아에 가장 큰 문제는 ‘사람 부족’이다. 러-우 전쟁 기간 동안 러시아는 약 3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보다 더 무서운 건 징병을 피해 해외로 탈출한 ‘남성’의 숫자다. 추정치로만 약 100만 명 수준이다. 러시아 경제 당국의 가장 큰 고민은, 노동력 부족이다.
현재 약 500만 명의 노동력이 부족하다. 문제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영국 국방부의 계산으로는, 지난 9월 하루 평균 러시아 사상자 숫자가 1,300여 명 수준이라고 한다. 북한과 러시아는 각각 서로에게 필요한 게 있었다. 그리고 두 필요가 만나게 됐다.
북한과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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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그러니까 아직 동구권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북한의 대외무역은 나름 건실(?) 했다. 구소련, 중국, 일본 등과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뤘는데, 동구권이 무너지고 나서부터 가파르게 중국 의존도가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의존도가 수직 상승한다. 그도 당연한 것이 각종 경제 제재 조치에 남북 경제교류까지 완전히 끊기면서 북한으로서는 살길이 없어졌다.
코로나19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기 직전인 2019년, 북한의 대 중국 경제의존도는 95.7%였고, 국경 봉쇄가 풀린 직후인 2023년도에는 97.3% 수준에 이른다. 즉, 북한은 중국에 목줄이 붙잡혀 있다는 뜻이다.
북한의 수입품목을 살펴보면, 북한이 중국에 얼마나 종속돼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대중 수입품목 상위 10개 품목을 살펴보면, 1위가 사람 머리카락이다.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과연, 이 머리카락으로 뭘 할까? 그렇다. 가발이다.
우리가 중국의 싼 노동력을 생각해 현지에 공장을 지었다면, 중국은 북한을 ‘싼 노동력’으로 생각한다. 북한은 이 머리카락을 중국에서 수입한 후, 이를 재가공 해서 중국에 다시 파는 것이다. 머리카락뿐만이 아니다. 합성필라멘트사 직물이나 메리야스편물 같이 중국에서 원료를 들여와 임가공(일정한 돈을 받고 물품을 가공하는 일)해 다시 중국에 내다 파는 형태가 지금 북한과 중국의 무역 거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임가공을 제외하고 북한 내 소비를 위해 수입하는 건 대두유와 쌀, 사탕수수, 의약품 정도다.
그 양이 많다면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2023년 북한과 중국의 무역액은 총 22억 9천만 달러였다. 같은 해 한국의 대중국 무역액은 3천100억 달러였다. 무려 140배나 차이가 나는 금액이다.
자, 그런데 여기서 뜻하지 않은 ‘변수’를 하나 발견한다.
2023년부터 북한의 무역품 중에서 난데없이 ‘코크스’란 게 등장한다. 제철 산업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코크스란 게 뭔지 잘 알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코크스는 철의 불순물을 없애주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제철 과정에서 산소를 뽑아내고, 오로지 탄소만 철에 공급해 강철을 만들어 내는 핵심 원료가 된다. 우리가 아는 산업혁명이 이 코크스 덕분에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코크스가 나오지 않는다.
코크스는 역청탄을 가공해서 만드는데, 한반도에는 역청탄이 나오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코크스는 제철과정에서 철에서 산소를 뽑아내고 탄소를 공급한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역청탄은 탄소 함유량이 80~90%를 차지한다.
이때 북한이 선택한 방식은 ‘무연탄으로 코크스를 대체하는 것’. 이렇게 나온 게 ‘주체철’이다.결론은?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낭비하고, 품질은 더 나쁜 게 나왔다.
그러나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로 늘 배고프고 힘들었기에 쌀보다 우선순위가 낮은 코크스를 마음 놓고 수입하지 못했다. 잘해봐야 1만 톤 내외였다. 그리고 그 수량을 계속 줄여왔다. 당장 먹고살기도 빠듯하니까. 그런데, 2023년도에 코크스 수입액이 2배 이상 뛰어 올랐다. 왜 그런 걸까? 간단하다. 그 뒤에는 러시아가 있었다.
북한이 러시아에 군용물자를 수출하기 위해서 공장을 돌렸다. 말도 안 되는 주체철로 포탄을 만들었다가 러시아에서 쌍욕 먹게 생겼으니, 북한으로서도 코크스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물주’가 러시아이지 않은가?
이 코크스 수입액의 증가는 김정은에게 있어서 하나의 선택이 되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의 對 중국 의존도는 상상 이상으로 높아졌다. 중국의 한마디에 북한이 흔들릴 정도가 됐다. 당장 중국이 국경을 봉쇄하면, 북한은 육지 속에 갇힌 섬으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러시아가 등장한 것이다.
러시아와 북한
6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회담 후 포즈를 취하는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출처 - <로이터>
중국은 북한이 숨이 거의 넘어갈 때쯤 숨을 붙여주는 형태로 북한을 통제했다. 무역 거래를 보면, 딱 죽지 않을 만큼이었다. 북한이 중국에 가진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가장 좋았던 시절이 1960~70년대 중국과 소련이 서로 치고받고 싸울 때였다. 북한이 소련과 중국에 줄 듯 말 듯하면서 빼 먹을 수 있는 건 다 빼먹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런 호시절은 사라졌다. 중국 의존도가 97%가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게 됐다. 이 상황에서 러-우 전쟁이 터졌다.
지난 6월 19일, 푸틴과 김정은이 <북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23개 조로 이루어진 이 조약 중 핵심은 바로 4조였다.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러시아와 북한의 국내법을 거론하긴 했지만, 어쨌든 자동 개입에 준하는 조약이고 이로 인해 예전 구소련 시절의 동맹관계까지 진전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마, 이때부터 북한과 러시아는 북한군 파병에 대한 물밑 접촉을 했을 것이다. 러시아는 사람이 부족했고, 북한은 굶어 죽고 있었다.
그리고 이대로 계속 중국에 끌려가다간 북한으로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감도 한몫했다.
둘 다 손해 볼 게 없다
러-우 전쟁 직후부터 러시아의 병사 월급이 급증했다. 나중에는 직업군인의 계약보너스를 한화로 1억 가까이 지불하는 정도가 됐다. 평균적으로 러시아군 월급은 3천 달러 이상이다(지금 러시아는 군인 임금으로만 연방 지출의 8% 이상을 쓰고 있다).
만약 북한군이 러시아 병사가 받는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면? 북한으로서는 그야말로 잭팟이 터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군이 다치거나 죽는다고 해서, 유족연금이나 상해 보상금이 나갈 리는 없다. 즉, 월급의 대부분이 김정은에게 들어간다는 말이다.
러시아로서도 남는 장사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마당에 누구라도 들어와 총을 들어준다면 러시아 입장에선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일 것이다.
여기에 덤도 오간다. 북한의 경우, 에너지와 식량 외에도 군사기술을 얻어갈 수 있다. 90년대 이후 업그레이드되지 못한 전투기를 들여올 수도 있고, 대륙간 탄도탄 재진입 기술 같은 고급 기술을 얻어올 수도 있다. 비대칭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잠수함 기술을 얻어와도 좋다. 뭐가 됐든 북한엔 남는 장사다.
60년대 우리가 월남전에 파병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70, 80년대 북한이 한국의 예비군을 두려워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때 예비군들은 월남전을 경험했던 이들이었다. 실전을 겪은 군대와 그렇지 않은 군대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격차가 크다.
당시 우리나라 군대는 월남에서 실전을 경험했고, 덤으로 미국 장비와 기술들을 들여왔다(M1 소총을 쓰던 한국이 조병창을 짓고 M-16을 생산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러-우 전쟁을 치르면서 최첨단 현대전을 경험하게 된다. 러-우 전쟁을,
“현대와 과거의 절묘한 하이브리드”
라고 한다. 땅에서는 참호를 파는 1차 대전의 모습을 보이지만, 하늘에서는 드론을 날려 상대편 전차를 박살 낸다. 가진 것 없는 북한에 있어 드론 운용 전술은 하늘이 내린 복음과 같다.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한국군에게는 엄청난 위협이 된다.
당장의 식량 위기를 극복하고, 실전경험을 축적하고, 군사기술을 얻고, 덤으로 현금까지 확보한다면 북한으로서는 남는 장사다. 물론, 러시아도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다. 다만, 누군가가 죽겠지만 북한으로서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이렇게 러시아와 가까워지면, 중국 의존도를 줄일 돌파구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유사시에는 러시아를 방패막이로 꺼낼 수 있다. 괜히 <북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게 아니지 않은가? 러시아에 달려가 피를 한 번 흘렸으니, 러시아도 북한에 한 번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북한은 손해 볼 게 없다. 물론,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는 인민은 꽤 나오겠지만, 슬프게도 그것은 부수적인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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