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접한 국가끼리는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랫동안 국경을 맞대면서, 서로 지지고 볶아 된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 인식 문제로 모든 걸 퉁치기에는 석연치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어떤 나라의 정치와 그 나라의 국민을 구분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이라는 국가는 싫어하지만, 우리나라를 찾아준 일본인 관광객에 대해선 얼마든지 친절해질 수 있다.
근데 중국인들에 대해선, 유독 이러한 거리 두기가 안된다. 온라인상에 보면, "착한 짱깨는 죽은 짱깨밖에 없다"와 같은 혐오적인 표현이 버젓이 베스트 댓글에 올라간다. 우리는 왜 그렇게 중국인을 혐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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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된 목적은, 중국과 중국인들을 이해해 보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너무나도 다르다. 두 나라는 안드로이드와 IOS 이상으로 두 나라의 운영체제와 사고 시스템이 다르다.
내 와이프는 중국인이다. 내 와이프가 그리고 친척이 딱히 중국인이라고 해서, 근본적인 차이를 느끼진 못한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문화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한국인과 유사하다.
같은 유교문화권으로서, 외부로 드러나는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중시하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매우 특별하게 생각한다. 중국에 갈 때마다, 와이프 친척들은 나한테 뭐라도 더 먹이려고 하고, 챙겨주려고 한다. 미국 생활에선 느낄 수 없었던 정이라는 감정을, 중국에 가서는 흠뻑 느끼고 온다. 말은 안 통하지만, 진심은 전해진다.
한국과 중국은 팀이 다르다
국제정치적으로 봤을 때, 한국과 중국은 다른 진영에 속해있다. 한국은 미국이 이끄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속해있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최근 굉장히 오염되었지만, 원래는 좋은 의미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체제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한 가지 더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바로 같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국가끼리는 어지간해서는 전면전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서유럽같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들끼리는 전쟁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서로 잃을 게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이 프랑스를 침략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지금은 이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불과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총력전을 치렀던 게 두 나라이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가 안정된 것은, 두 나라가 같은 민주진영에 속하게 되면서부터다.
동북아의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하지만, 한국군이 요코하마에 상륙하거나, 반대로 일본군이 부산에 전면적으로 상륙하는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없다. 왜냐하면,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에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우리는 미군이 직접 개입하여 침략자를 응징하거나(걸프전), 무역 및 금융제재로 한 나라를 완전히 고립시키는 것(북한, 이란)을 봐왔다.
만약 한국이 도쿄를 무력으로 점령하더라도,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군을 마주해야 하고 그렇게 점령하고 난 도쿄는 경제적 가치를 대부분 상실한 빈 껍데기일 확률이 매우 높다. 강력한 미국의 존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 전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제로 혹은 마이너스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대놓고 일대일로라는 독자적인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위안화로 석유대금을 결제하는 등, 기존 미국이 만들어놓은 질서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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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중국은 지역 내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이다. 남중국해, 대만 등에서 영토분쟁이 발생하면, 미국 눈치 안 보고 노빠꾸로 들이박을 수도 있다.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민주진영에 속한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가령, 중국이 대만을 무력침공한다고 해보자.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분쟁에 끌려들어 갈 것이다.
미국이 국군의 파병을 요구했을 때, 우리는 과연 이러한 요구를 대놓고 거절할 수 있을까? 반대로, 중국이 북한을 동원하여 한국을 공격할 수도 있다. 대만 침공 시 가장 큰 위협이 될 주한미군을 한국에 붙잡아 둘 수 있으니까.
미·중 분쟁에서 우리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중국과 미국이 붙었다고 했을 때, 누가 이길지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미국이 이길 확률이 높지만, 확실하다곤 할 수 없다), 우리가 피해를 볼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은 미국을 통해 안보를 보장받고, 중국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뤄왔다. 두 나라 모두에게 줄을 대온 우리나라는, 둘 중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것 자체가 손해다.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선택하지 않은 다른 쪽으로부터 보복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동의한 대가로, 우리나라는 중국으로부터 대대적인 경제적인 보복을 당했다. 한한령이 시행되면서, 영화, 음악, 게임 같은 콘텐츠의 수출길이 막혔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화장품, 자동차, 휴대폰 같은 제품의 인기가 본격적으로 떨어진 것도 이때이다. 지금도 중국 선양 시내에 가면, 롯데그룹이 매입한 백화점, 테마파크 부지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조 단위에 자금이 들어간 거대 프로젝트였는데, 사드 보복의 직격탄을 맞아 좌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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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도 최후의 순간에는 무조건 미국 쪽에 붙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지금 당장 중국과 미국이 붙는다면, 중국이 이길 시나리오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현대에 미국을 적으로 돌리고 무사한 나라는 없다. 다만, 무조건 미국에 강한 충성을 내보이는 것이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우리에겐 이미 과잉 충성을 통해, 미국의 태평양 안보 전략에서 중요한 주춧돌(Corner Stone) 자리를 얻어낸 일본이라는 라이벌이 있다. 일본과 충성경쟁을 해서 이기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내줘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반면, 우리는 당장 중국과의 사이가 더 나빠지면 잃을 게 아직도 많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으로써 책임은 다하되, 주요 교역국인 중국에 대해 존중을 보인다는 스탠스를 취하는 게 우리의 몸값을 높이는 길이다.
중국의 국뽕, 중화사상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한국과 중국의 진영이 다르다는 게,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얘기해 보자. 그 차이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중화사상
중화사상의 핵심은, 중국이 가장 위대한 국가라거나 전 세계 모든 영토가 중국 땅이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실제 내가 만나본 대다수 중국인은, 한국이나 미국이 더 잘 산다는 것을 알고, 선진국의 삶을 동경하고 있다. 중국 대도시의 거주하는 중산층 대부분은 자녀를 캐나다 등으로 유학 보내고 싶어 하고, 명품을 비롯한 외국산 제품을 훨씬 더 선호한다.
중화사상의 핵심은 피해의식이다. 중국인들은 중국이 오랫동안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으로부터 억까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은 아편 전쟁 때부터 겪은 수모와 울분을, 현대 미국에까지 투영하고 있다. 중국 인민들끼리 힘을 합쳐서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꼴을 보기 싫은 외세가, 중국을 분열시키고, 왕따시키고, 수모를 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남중국해 분쟁은 미국이 따까리들을 시켜서 시비를 거는 일뿐이고, 미·중 무역 분쟁은, 노골적으로 미국이 성실하게 제조업으로 돈을 벌려는 중국인들을 차별하기 위해 벌인 수작일 뿐이다.
중화사상은 어디까지나, 세상 모든 일을 중국에 입장에서 바라본 것뿐이다. 여기에 우리를 포함한 비중국인이 동조해야 할 이유는 없다. 어느 나라에나 이런 자국 중심적인 시각이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그 나라 안에서도 극단주의로 치부된다. 예를 들면, 현재 한국에서 환빠나 과도한 국뽕은 밖에 내놓기 좀 부끄러운, 이상한 애들 취급을 받는다.
국뽕은 콘텐츠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과거 우리나라에도 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다는 강박이 분명히 존재했었다. 그러나 정말로 한국의 경제와 문화가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한국의 우수한 점을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게 촌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창작자들이 이러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한국 콘텐츠의 질은 어나 더 레벨로 올라갔다.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소비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이 최고라는 자의식이 탈색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산 콘텐츠의 문제점이 여기 있다. 거대한 내수시장의 존재는, 중국산 영화와 드라마의 모양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작품이 중국인만을 고려해서 제작되다 보니, 과도한 국뽕이 주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애국 마케팅은 어디서나 흥행 치트키이다.
최근 나오는 중국산 드라마들은, 국가가 아닌 개인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다. 이는 분명히 중국 작품이 나아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다만, 정치적 사회적 논란을 모두 피해 가려다 보니, 스토리라인이 지나치게 플랫 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창작 환경은, 퀄리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중국산 게임의 약진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는, 원신을 비롯한 중국산 게임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오공이라는 AAA 급 게임이 출시되어, 전 세계에서 흥행을 얻어냈다. 왜 유독 게임 분야에서 중국산 콘텐츠들이 성공하고 있는지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다.
중국의 다른 점은, 중화사상이 일반 중국인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점이다. 그 가장 큰 원인은, 공산당이 중화사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을 만듦으로써, 내부를 결속시킨다. 이는 고전적이지만, 인간의 본성을 건드는 통치수단이다.
중화사상 내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는 “외부의 적”이고, 중국 공산당은 그에 맞서 중국인들을 지켜주는 “우리”이다. 중국 공산당 체제를 비판하거나,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중국인들은 외부의 적과 내통하는 스파이이거나, 잘못된 사상에 세뇌당해 동포에게 피해를 끼치는 철없는 자들이다. 이러한 프레임이 너무나도 편리하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관영 언론과 교육시스템을 동원하여 중화사상을 계속해서 주입한다.
중화사상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강력하다. 가령 미국이나 캐나다 대학교에서는, 중국과 중국의 독재 시스템을 비판하는 미국인 교수들과 중국인 유학생들 사이에서 설전이 오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자발적으로 유학을 올 정도로 서방세계와 자유주의를 동경해왔더라도, 자기 국가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이다.
사실 애국심이라는 것은, 국가라는 공동체를 지켜주는 긍정적인 가치이다. 성실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사람일수록 애국심이 강한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좋은 이웃이 애국자가 되기도 되는 것이다.
나는 왜 중화주의를 싫어하는가
이 글에서 중화사상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것은, 중국의 이해관계와 한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공산당 영도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도구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국심이 문제가 되는 건, 타인과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때이다. 애국심 자체는 긍정적인 가치이다.
악담을 더 퍼붓자면, 중국은 중화사상 때문에 패권국이 될 수가 없다. 여러 인종과 지역을 아우르는 것을 우리는 제국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국은 무력이 아닌 자비로 성립된다.
서유럽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 모두 미국을 패권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미국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게 이들 국가 이익의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무역적자를 보는 나라이다. 또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지출해, 국제 정치의 기강을 잡는 역할을 해왔다. 전부 미국의 국익(기축통화국으로써의 지위 유지)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동맹국 또한 그 혜택을 누렸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린 미국 덕에 자유롭게 교역을 하고, 단기간에 경제를 성장시킨 우등생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질서는 동맹국들에 윈-원이었다.
반면, 거대한 중국 시장에 들어가서 큰돈을 벌어 갖고 나온 외국기업은 거의 없다. 중국은 얄미울 정도로 수입 대체화를 잘했고, 합작회사 시스템을 통해 외국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대부분을 중국 시장에 재투자하게 했다.
각종 영토분쟁 문제에서도, 중국은 무조건 힘으로 눌러 찍으려고 한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이겨 먹으려고 하는 나라 밑에 들어가서 실리를 챙기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다들 패도를 추구하는 중국이 아니라, 자비로운 척이라도 하는 미국 편에 붙는 것이다. 중국이 정말로 패권국이 되고, 제국이 되려면 우선 자신의 동맹국들에 어떠한 이익을 보장해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된다. 그리고 이러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데,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중화사상이 걸림돌이 될 것이다.
중국인 장인과 한국인 사위
몇 가지 덧붙일 내용이 있다.
첫째, 모든 중국인이 중화사상이 가진 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국인 중에도 균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은 많다. 내 글이 섣부른 일반화에 사용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대도시 중국인들의 생활 수준은 계속해서 향상되고 있고, 시민의식 또한 그에 비례해 성장해나가고 있다. 다만 현명한 사람들은 SNS 같은 곳에 드러내놓고 자기 생각을 밝히지 않을 뿐이다.
둘째, 사람들은 정치적 의견이 다르더라도 얼마든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은 일상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떠올리지 않는다. 중화사상의 목소리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불특정 다수의 의견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이다. 오프라인에서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중국에 놀러 갔다고 해서 동북공정이나 사드 문제를 가지고 현지인과 드잡이를 한다는 건 사실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외모적으로 한국인과 중국인은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밝혀도 , “아 한국 영화 너무 재밌어요”, “나도 한국 음식 먹는 거 좋아해요”처럼 친밀감을 표시하는 게 지극히 상식적이다. 자국을 찾아준 외국인에겐 환대해 주는 게 정상인들의 반응이다.
문제는 유학이나 사업 등으로 중국인들과 깊은 교류를 하게 될 때이다. 평소에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다가, 국제 정세라든지 공산당 얘기만 나오면 사람이 표변하는 때도 있다. 대화하면 할수록, 얘기는 겉돌고 서로의 입장 차이가 얼마나 큰지만 확인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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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놓고 보면, 나는 중화사상이나 공산당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가정을 하고, 중국인과 대화를 했던 것 같다. 너는 얘기를 해보니까 참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인데, 왜 이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냐 식으로 접근했다.
매우 많은 시행착오와 내 나름대로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중화사상과 공산당은 그 나름대로 정합성을 갖춘 논리 체제라는 것이다. 모든 사안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를 뿐,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내가 말 몇 마디로 설득해서, 그 사람이 평생 동안 갖고 있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한 거다. 그게 가능했으면, 20세기 내내 인류가 이념을 놓고 대화가 아닌 전쟁을 치렀을 리가 없다.
지금 우리는 이념전쟁이 완전히 끝났고, 자유민주주의가 완전히 승리했다고만 생각한다. 그러니까,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국가가 비정상적 국가로만 보이는 것이다. 현실을 말하자면, 지구상 여러 나라에는 아직도 권위주의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는 권위주의 정권이 상당히 인기가 좋다. 특히 중국의 공산당은 현존하는 권위주의 집단 중 가장 유능한 편에 속하고, 중화사상은 공산당이 가장 잘 써먹는 레퍼토리다.
가장 현명한 것은, 민감할 것 같은 주제를 서로 피하는 것이다. 만약 그 얘기를 꼭 해야겠다면,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 끝을 보겠단 생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듣는 사람이 많은 공개된 장소에서는 이런 민감한 주제를 꺼내는 것 자체가 상대를 당황 시킬 수 있다.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좁힐 수 있다.
굳이 이런 불편한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나와 정치적 신념이 다른 상대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아무 문제가 없다. 내 경우엔, 중국인인 장인과 정치적인 의견이 전혀 맞지 않는다. 이 글에서 다룬 많은 차이점은 사실 장인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다. 나는 지금도 장인의 정치적 시각이 국수적이라 생각하고, 그게 좀 후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실은 내가 장인을 존경하는 데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왜냐면 평소 내 장인은 항상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살피고, 배려하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가진 사상이 싫은 것과 그 사람 자체가 싫은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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