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기술과 국제 정세 등 많은 것이 급변하고 있다. 지난 몇십 년 그 어느 때보다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 시대다. 최소한 관심만이라도 가져야 한다. 세계 최강대국이거나 최소 지역 패권국도 아닌 우리의 경우는 급변하는 물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IMF는 미 대선 이후,
미·중이 다시 무역 전쟁을
강화한다면
한국이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타까운 건 우리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래 하루가 멀다고 나라가 망가지고 있다. 매일 터지는 국내 문제만 소화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허나, 그렇다고 국제 정세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국제사회는 냉혹하다. 우리의 이 불쌍한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본 기사로나마,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리려 한다.
주요 강대국들이야 그래도 뉴스를 통해 보는 소식이 있을 것이다. 본 기사에서는 어느덧 우리에게 잊혀진 존재가 된 ‘동남아 국가들’의 민심과 상황을 흥미롭게 살펴보려 한다. 물론 이 지역을 다루다 보면 강대국들에 관한 이슈도 자연스레 언급될 수밖에 없긴 하다.
세계 속 동남아
아세안(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에 속한 국가들
동남아는 우리에게 중요한 지역임에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언론 및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곳이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세계관을 넓혀가며 동남아와 관련된 이슈가 오르내리곤 했는데, 지금은 도로아미타불, 여행 갈 때 알아보는 국가 정도로 되돌아왔다.
2019년 한국에서 열렸던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당시 한-아세안 가수들의
특별 공연도 펼쳐졌다.
그럼,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우리에게) 국제 정세의 빈 공간이 되어버린 ‘동남아’. 그 빈 공간을 채우러 출발해 보자.
먼저, 어떻게 동남아를 살펴봤나
본 기사는 현재 동남아 시민들의 여론을 조사한 보고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민심과 상황을 분석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구 기관으로 꼽히는 싱가포르의 ‘유소프 이삭 동남아시아연구원(ISEAS–Yusof Ishak Institute, ISEAS)’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싱가포르의 국책 연구기관으로 동남아 외교관들이 한 번쯤은 연수나 파견을 가보길 원할 정도의 압도적 명성과 명망을 가진 최고 연구기관이다.
이곳에서 작성하는 보고서는 동남아 정세 분석에 독보적인 도움을 준다. 이 지역을 공부하는 전 세계 학자 중 많은 이들이 ISEAS의 보고서가 발표되면, 자신의 관점과 해석이 얼마나 맞는지 비교 확인을 해보기도 한다.
(참고로, ISEAS를 보유한 싱가포르는 아세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국가다. 아세안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브레인 역할을 하는 게 싱가포르다. 지금까지 아세안 내에서 논의된 여러 사안을 보면 싱가포르가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 많다.
싱가포르는 다른 아세안 국가에 비해 엘리트들이 잘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대학의 연구소와 싱크탱크도 잘 되어 있어 아세안에서 가장 정책, 전략을 잘 만들어낸다. 많은 경우, 싱가포르가 만든 정책/전략에 다른 아세안 국가들이 설득되어 아세안이 그 방향을 향하게 된다)
본 기사가 엄청 분석력 있고 권위 있는 기관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기반으로 현재의 동남아를 분석했다는 말을 길게 했다.
ISEAS에서 기관에서 2019년부터 매년 발간해 온 “The State of Southeast Asia”라는 동남아 시민들의 여론을 조사한 보고서가 있다. 역시 2024년에도 발간되었다. 조사 대상은 동남아 각국의 여론을 주도하는 엘리트, 지식인들이다. 쉽게 말해 ‘여론 주도층’이라고 보면 되겠다.
해당 보고서 표지와 첫 장
(어느 조사가 그렇듯, 이 조사를 완벽하다고 할 순 없다. 미흡한 부분도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동남아 정세를 분석하기에 최고의 자료 중 하나라는 건 분명하다)
질답으로 푸는 동남아 정세
Q1. 아세안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전략적 경쟁자 중 어느 한쪽을 지지하도록 강제되는 상황에 놓인다면,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합니까?
1% 차이로 중국을 선택한 비율이 더 높게 나왔다. 2024년과 2023년의 조사 방법 차이가 있어서 정확한 비교는 힘들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최근 1년 사이에 상당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2023년 결과
미국 선택 : 61.1%
중국 선택 : 38.9%
2024년 결과
미국 선택 : 49.5%
중국 선택 : 50.5%
현재 아세안 국가들의
미국과 중국에 대한 선호도를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엄청나게 떨어졌다. 그 이유로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같은 동남아 이슬람 국가들의 영향이 컸다. 이 국가들은 2023년 10월부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이란, 헤즈볼라, 예멘 반군까지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중동 문제'에서 이스라엘 편만 드는 미국의 행태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 미국이 정말 믿을 만한 국가인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2023년 12월 말레이시아 미 대사관 앞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
출처-<EPA>
이 말은 즉, 중국에 대한 선호가 더 높게 나온 이런 결과가 중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올라가서라기보다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급격히 올라간 결과라는 것이다.
해당 보고서에는 이를 증명하는 부분이 있다.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을 보자.
Q2. 특정 국가의 경제적 영향력이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
왼쪽은
각 세력의 경제적 영향력에 대한
부정 평가,
오른쪽은 긍정 평가
위 도표를 보면 알 수 있듯,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대해 동남아 지역 국민들은 67.4%나 부정적으로 봤다. 1년 전에 비해 3%나 부정적 인식이 더 올랐다. 동남아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세력 중 부정적 인식이 제일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중국과 친하게 지내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국가에서도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를 꽤 보였다는 것이다)
다만, 같은 기간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중국보다 훨씬 올랐다.
2023년 : 34.3%
2024년 : 48.0%
약 14%나 부정적 인식이 올랐다.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면, 그만큼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대한 긍정으로 전환되기 쉽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에 대한 긍정 평가가 더 큰 폭으로 줄었고, 그만큼 부정 평가는 더 큰 폭으로 올랐다.
이걸 보자면, Q1에서 중국을 선택한다는 비율이 1% 더 높게 나온 건 중국에 대한 긍정 평가가 오른 게 아니라 중국보다 미국에 대한 부정 평가가 훨씬 오른 결과라는 것이 더욱 명백해진다.
전략·안보적 측면에서 미국의 중동 정책이 동남아 지역 여론에 부정적 영향을 크게 미쳤다면, 경제 부문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배타적 공급망을 강하게 구축하며 각종 미국 보호주의 정책을 쓴 것이 부정적 영향을 크게 미쳤다.
물론,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증가가 바이든 정부 탓만 있는 건 아니다. 트럼프 정부 때부터 쌓여오던 실망감이 최근 들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America first”를 외치며 동남아에 대한 무시, 방치 등의 행태를 보였다.
아메리카 퍼스트!!
그런 트럼프 정부가 물러가고 바이든 정부가 들어섰을 때 동남아 국가들은 높은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도 기대만큼 동남아에 신경을 안 쓰고, 보호 무역주의 정책을 쓰자 실망감이 증폭된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다시 트럼프의 재선이 유력해지는 상황이다.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으로 등장하는 상황에서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에 거는 기대 및 희망은 더욱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중국 선택’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미국의 대동남아 외교에 경고등이 켜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가
동남아 정책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평가한 것
앞으로 미국이
적극적으로 동남아 정책을
할 것이라는 기대 정도
(동남아 국가 중 미국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베트남과 최근 남중국해를 고리로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필리핀(마르코스 정부) 이 두 국가만이 미국이 동남아 정책을 잘 신경 쓸 것이라는 의견이 50%를 넘겼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현재 중국과 가장 갈등이 고조되는
국가가 베트남, 필리핀이다.
Q3. 동남아 지역에서 정치적, 전략적 영향력은 어떤 세력이 가장 큽니까?
이 질문은 ‘미·중 사이에서 어디를 택할 것이냐’가 아니라 ‘현재 동남아에서 어느 세력이 가장 정치·안보적 영향력이 세다고 느끼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서도 동남아 지역 국민들은 압도적으로 ‘중국’을 택했다.
2024년 조사 결과, 중국을 택한 비율은 43.9%, 미국을 택한 비율은 25.8%였다. 중국은 1년 전에 비해 약 2%가 올랐고, 미국은 6%가 떨어졌다.
미국에 대한 영향력은, 중국에 의존하는 국가(ex-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든 미국의 전략적 관여를 지지하는 국가(ex-인도네시아, 싱가포르)든 할 것 없이 전반적으로 전에 비해 낮게 평가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그동안 미국의 전략적 관여가 동남아 국가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의미가 된다. 즉, 바이든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일명 ‘인태 전략’이 동남아 국가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쿼드(Quad), 오커스(AUKUS), 한미일 3국 협력, 즉 가까운 동맹 국가 및 힘 있는 동맹 국가를 중심으로 인태 전략을 진행했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안보협의체 ‘쿼드’
출처-<매일경제>
미국, 영국, 호주의
안보동맹 ‘오커스’
일본도 각종 오커스 훈련에
참여하면서 오커스에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출처-<매일경제>
동남아 지역이 포함된 인도-태평양에 대한 전략을 진행하며 동남아 국가가 아닌 다른 세력들을 중심으로 진행한 것이다. 이런 바이든 정부의 행보는 동남아 국가들에게 지지는커녕 오히려 위협이 되었다.
동남아 국가들이 이렇게 느낄만한 단적인 사례로 볼 수 있는 건, 바이든 대통령이 아세안 정상회의에 2년 연속 불참했다는 점이다. 2주 전에 열렸던 미국-아세안 정상회의에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대신 보냈다.
(흥미로운 점은 정치·전략적 영향력에서 중국이 압도적 1위를 하긴 했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73.5%라는 압도적인 동남아 국민 비율이 우려를 표했다. 2023년에 비해 6%나 더 증가한 수치였다)
(다만, 말레이시아가 튀는 결과를 보여줬다. 중국에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체로 말레이시아는 미·중 사이에서 동남아 국가들의 평균 감정에 수렴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이 나온 것이다. 이는 2022년에 안와르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과 긍정적 협력 분위기가 조성된 결과이다)
2023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안와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출처-<신화통신>
Q4. 미·중 사이에 끼인 아세안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아세안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질문이다. 해당 조사에서는 이 질문을 하며 다음과 같은 보기를 제시했다.
1.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 편 선택
2. 제3세력과 연대
3. 중립적 태도 유지
4. 아세안의 회복탄력성과 단결력 강화 (아세안 자체 강화)
이는 아세안이 단순하게 미국과 중국 중 선택해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닌 더욱 다양한 전략적 고려를 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답변 결과는 다음 같았다.
1. 아세안 자체 강화 (46.8%)
-베트남, 태국, 필리핀, 라오스, 인도네시아에서 이 의견이 높았음. 라오스를 제외하고는 아세안 내에서 목소리가 큰 국가들이라는 특징이 있음.
2. 중립적 태도 유지 (29.1%)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이 의견이 높았음. 전통적인 아세안 중심 세력이 중립적 태도 선호 경향.
3. 제3세력과 연대 (16.1%)
4.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 편 선택 (8%)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필리핀에서 이 의견이 높았음.
여기에서 ‘제3세력과 연대해야 한다’고 답변한 이들에게는 ‘그 제3세력으로 어떤 국가를 중요 대상으로 생각하는지’를 추가로 물어봤다.
이에 대한 답변이 흥미로웠는데, 우리(한국)에게 큰 시사점을 주는 결과였다.
그건 다음 기사에서 이어서 다루겠다.
<계속>
같이 보면 좋은 기사
(feat.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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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및 인용 자료
(1)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4 SURVEY REPORT
(2) 싱가포르 ISEAS의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4 Survey 결과 분석 보고서(고려대학교 아세안 센터 / 신재혁 엮음, 김형준, 이재현, 서정인, 정호재 지음)
(3) 아세안주간동향 WEEKLY ASEAN-Mission of the Republic of Korea to ASEAN(주아세안대한민국대표부)
(4) 유튜브 채널 '윤진표교수의 아세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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