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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2017년 6월 22일 오전 7시,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는 비행기 안. 인천공항에 무사히 착륙한 항공기가 게이트에 도착해 멈춰 섰다. 모두 내릴 준비로 분주하던 때,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기내에 계신 승객 여러분 중 OOO님께서는 가장 먼저 출구 쪽으로 나오셔서 안내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후,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가려 복도에 서 있던 승객들에게 착석을 요구한 기장은 가장 먼저 내 이름을 부르며 방송을 시작했다.

 

'왜 나를 제일 먼저 내리라고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야 하는 불편함에 다들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대체 OOO가 누구야?” 하며 만원 비행기 속 승객들이 일제히 두리번거리는데, 지체되면 더 민폐가 될까 염려되어 순식간에 짐을 챙겨 나왔다.

 

지명 수배령

 

아내는 학업 중이었다. 내가 혼자 한국에 오게 되면 아내가 육아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평소 자주 왕래할 수 없어 조부모와 함께 할 시간이 부족했던 아이에게도 특별한 시간이 될 것 같아 이번엔 내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왔다.

 

3살짜리 아들의 짐까지 함께 챙겨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호기심이 많던 아이는 하강할 때 창밖으로 보이던 인천 앞바다 풍경에 흠뻑 빠져 있었고, 도착과 동시에 일제히 일어나 짐을 챙기던 사람들의 모습도 신기하게 보았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아이를 재촉해 나서면서 짐도 챙겨야 했으니… 정말이지 정신이 나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우리네 빨리빨리’ 문화 때문이었을까? 다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면서도, 앞에서 꾸물거리는 모습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행히 어린 아이와 동승했다는 이유로 이코노미석 맨 앞자리에 자리를 배정을 해주었는데, 그 배려 덕분에 빨리 짐을 챙겨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손에 아이를 붙잡고 양어깨와 나머지 한 손에는 짐을 들고 출구로 향했다. 게이트 앞, 직원에게 유모차를 건네받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건장한 체격의 두 남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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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OOO 씨 되십니까?"

 

"네, 맞는데요."

 

대답하는 순간 지체 없이 두 남성이 양팔을 잡았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아시죠? 같이 가시죠."

 

순간 내 옆을 숨 가쁘게 따라 걸어오던 아이가 생각났다.

 

"저...잠시만요. 아들이 있는데요. 혹시 저 혼자 따라 가면 안 될까요?"

 

짐과 접이식 유모차를 들고 있던 터라 아이가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내 팔을 놓아주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제 막 만 세 살 넘은 아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보고 있었다.

 

11시간 비행이 어른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아이에게는 무리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유모차를 펴고 앉히려 했지만, 안아 달라 조르는 아들을 모르는 체할 수 없었다. 유모차에 짐을 올려놓고 아이를 끌어안았다. 피로가 쌓였었는지 아이는 내 품에 안겨 겨드랑이 사이로 고개를 푹 묻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마중 나와 있던 경찰은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끌고 어깨에는 산 만한 짐을 메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들을 안고 있었다. 어깨가 빠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힘든 내색을 할 수도 없었다. 어디를 가느냐 물어도, 가 보시면 안다는 짧은 답변만 돌아왔다. 무작정 따라나서야만 했다. 그렇게 5분 정도를 따라갔을까. 조그마한 사무실로 인도되었다.

 

테이블에 ‘지명 통보 사실 통지서’가 놓여 있었다. 정보통신망 사건으로 수사 중에 소재 불명 사유로 지명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라고 했다. 아직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나, 해외로 도피 혹은 도주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조치가 내려졌다며 1개월 안에 서울 서대문 경찰서로 출석, 조사를 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이 발부될 수 있다는 고지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인천지방경찰청에서 서대문경찰서로 보낸 통보서에는, 죄명란에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고 적혀 있었다.

 

부조리한 조직문화에 대해 꼬집어 비판하고, 그걸 글로 적어 올린 것이 문제가 되어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현실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눈앞이 깜깜하다거나, 가슴이 먹먹한 느낌은 없었다. 다만,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렇게까지 할까 싶은, 무척이나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계속되는 경찰의 겁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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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전화도 여러 번 오고 집으로도 찾아오고 그랬어."

 

"근데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카톡으로 연락 와서 해외에 산다고, 당장 조사 못 받는다고 얘기했는데 왜 집까지 찾아와서."

 

"해외에 거주하고 여기엔 살지 않으니, 나중에 귀국하면 연락드리겠다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도 아들이 어디 있느냐 묻지 뭐니… 아주 끈질기더라고."

 

오랜만에 만난 손주를 반기는 부모님. 하지만 반가움보다 걱정이 컸다. 가뜩이나 타지에서 고생하며 살고 있는 아들네 형편 빤히 아는데, 괜한 걱정거리 안길까 알리지 않으셨다고.

 

출입국 조회를 해보면, 한국에 입국했는지 거주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경찰은 내가 영국에 거주하고 있고 한국에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여러 차례 부모님 댁으로 전화해 아들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 지명수배 중이니 만약 한국에 오게 되면 반드시 연락하고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부모님은 “알았다”, “그렇게 하겠다”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응답했는데도 며칠 후 경찰관 2명이 직접 집으로 찾아오기까지 했다. 도대체 내 아들이 뭘 그리 잘못했느냐 물어도 일체 답은 없었다고 하셨다. 그냥 아들이 어디 있느냐, 연락은 자주 하느냐, 아들이 지명수배 중이다, 강제로 체포하기 전에 아들이 있는 곳을 말하라 겁박하기도 했다.

 

혹시나 내가 걱정할까 말 못 하고 꾹 참으셨던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기 가슴이 찢어졌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나이 들어가며 몸에서도 슬슬 삐그덕거리는 고장 신호가 들렸다. 몸을 추스르기 위해 병원도 다니고, 오랜 기간 얼굴을 보지 못해 찾아뵐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처음 계획과는 달리, 가족, 지인과의 만남은 한국에서의 일정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으로 미뤄야 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경찰은 지명 통보 사실 통지서에 있는 대로 1개월 안에 출석 가능한 날짜를 조정한 후 출석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즉시 언제까지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날짜를 고지해 놓고도 경찰은 수시로 부모님 댁에 전화를 돌렸다.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자주 다녀야 하는 상황을 설명했지만, 꼭 그때마다 집으로 전화했다. 그리고 전화 받은 어머니께 아들이 연락이 안 되면 체포영장을 발부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부모님께서는 단 한 번도 나를 다그치지 않았다. 도대체 네가 뭘 잘못했길래 경찰들이 이 난리를 피우느냐고도 묻지 않으셨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죠스바를 냉동실에 가득 채워 넣어 주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