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의 그림자
중국에 가서 두 번째로 놀랐던 점은, 겉으로 드러나는 중국의 모습이 지나치게 평안해 보인다는 점이다. 어느 시스템이나 “문제”라는 게 존재하는데, 중국에서는 철저히 문제가 눈에 보이는 부분으로부터 은폐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 미국 길거리에는 거지와 약물 중독자가 넘쳐나는데, 중국의 대도시에는 부랑자 한 명 보이지 않는다. 이건 중국의 시스템이 결코 우월해서가 아니라, 많은 문제를 눈에 보이는 부분으로부터 감추고 통제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에서는 그 은폐된 부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주로 다루기 때문에(어떤 기사가 바이두에서 갑자기 내려갔다거나, 검열된다던가), 우리가 뉴스로 접하기로는 중국에 문제가 많은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관광객으로 중국에 방문했을 때, 이러한 문제를 직접 볼 기회는 거의 없다. 단, 위화감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간혹 대도시 지하철역 주변에 장갑차가 배치되어 있다거나, 지하철에 탑승하려면 반드시 보안검색대를 거쳐야 한다. 길거리에는 공안뿐만 아니라 완장을 찬 다양한 안전요원들이 정말 많이 돌아다닌다. 한국도 CCTV가 많이 배치돼 있다지만, 중국의 모니터링 시스템과 안면인식기술은 단연 전 세계 최고이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중국인은 이러한 통제를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를 의심하는 게 금기시되어 있기도 하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일상생활을 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중국 베이징의 한 지하철역에서
보안요원이 승객 짐을 검사하고 있다.
출처-<AP뉴시스>
중국에 있을 때 일이다. 내가 호텔 방에 돌아와서 평소처럼 정치적인 얘기를 지껄이니까, 와이프가 알았으니까 중국에 있을 때만은 좀 닥치라는 소릴 들었다. 어디서 누가 듣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인 대부분은 자신이 통제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어떤 선을 넘으면 본인이 위험분자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행동에 많은 부분을 스스로 제약한다.
이런 제약과 통제를 벗어던지고 싶진 않을까가 궁금했다. 내가 얘기해 본 중국인들은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건 그만큼 공산당이 국민의 관심을 국내 정치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부분 중국인은 정치시스템보다 자신의 통장 잔고를 더 신경 쓰면서 산다. 오히려 내가 얘기해 본 중국인들은 공산당이 없어졌을 때 찾아올 정치적 혼란이나 무질서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앞서 설명한 중화사상과 결합하여, 공산당에 의한 통치를 더욱 강력하게 한다.
공산당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힘으로만 제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눈치를 보고, 국민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 민심을 받아들일 만큼 유연하다는 면에서, 공산당이 유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연재에서 중국 공산당이 한국과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에 위협이 된다는 생각을 밝혔다. 유능하지 않은 적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이 현존하는 권위주의 체제 중 가장 유능한 집단이기 때문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고 여긴다.
공산당의 한계
나는 앞에서 이 글에서 공산당의 유능함에 관해서 설명했다. 공산당 조직의 실체와 역할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유능함만을 다루다 보면, 공산당 시스템을 찬양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래서 공산당 시스템이 민주주의를 대체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분명히 아니다.
2024년 7월에 베이징에서 진행한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
출처-<신화통신>
공산당 시스템 내에서 모든 권력은 공산당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독재는 구조적으로 부패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본인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하면, 막대한 사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이미 태자당으로 대표되는 특권집단이 등장했고, 중간 간부들도 재산과 가족들을 해외로 빼돌려 부를 쌓고 있다.
시진핑 집권 초기, 정권 차원에서 당내 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이 벌인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부패문제는 개개인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적인 문제이다. 반부패 캠페인으로, 상하이방(장쩌민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을 비롯한 다른 정파의 부패는 해소되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뽑혀 나간 이들을 대체한 이들은 더 많은 권력을 얻었을 것이고, 그들의 부패는 견제할 세력이 없다.
출처-<2022년 11월 30일 연합뉴스TV>
이러한 문제점들을 중국인들이 모를 리 없다. 중국인들이 꽌시로 대표되는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은 반응한 것이다. 그런데도 공산당을 용인해 왔던 것은, 공산당은 사회를 잘 통제하고 유능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의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흔들릴 때는, 중국 인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라고 생각한다.
공산당의 과제
현대 공산당은 매우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제조업 국가로서 경쟁력이 나빠지고 있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불 이상으로, 이미 중진국 수준이다. 경쟁자인 베트남(4천 불대)이나 방글라데시(2천 불대)에 비하면, 중국의 인건비는 더 이상 싸지 않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내의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하여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다만, 단순히 물건을 싸게 많이 만드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와 성장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게다가, 중국의 노동 가능 인구는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인구 고령화 문제를 겪는 중이다. 지금도 산업현장에 가면 노동자들이 더 이상 젊지 않다.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려면, 더 많은 농민공을 도시로 유입시켜야 하는데, 농촌 인구의 고등학교 졸업률은 10%대의 불과하다. 이는 인구 구조상 앞으로 중국의 산업경쟁력이 급속도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것은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다. 최근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18.8%에 달한다. 이는 공식 통계치 (실제는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이며, 그나마도 최근에는 발표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청년실업률이 치솟는 근본적인 이유는, 청년들의 교육수준과 산업구조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얘기다. 대부분의 대학교 졸업생은 대기업 사무직에서 근무하길 희망한다. 그러나 한국이나 중국의 기업은 대부분 제조업 기반 회사이고, 이들이 원하는 건 건 낮은 임금으로 라인을 채워줄 생산직 노동자다.
고부가가치를 발생시킬 수 있는 서비스업 (IT, 금융)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학력자들의 수만 늘어나면서 발생한 일이다. 사실, 이건 한국이나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을 제외하고 나면, 서비스업으로만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는 아직 없다.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는 미국에만 있다. 그리고 대형펀드가 수백조를 굴리고, 수억 명이 사용하는 앱이나 AI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가 않다.
출처-<김현정(머니투데이)>
중국의 경우가 이 문제 (서비스산업 경쟁력 약화)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이미 하드웨어는 미국을 기준으로 마련되어있기 때문이다. 베이징, 상하이, 청두 같은 1티어 도시뿐만 아니라, 2티어 / 3티어 도시에도 어김없이 고층 오피스 건물과 금융지구가 차려져 있다. 문제는 이 건물들에 제대로 된 입주자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외국계 기업은 아예 없고, 공기업이나 지방은행들이 입주해 있는 경우가 고작이다. 그나마도 심각한 공실률로 인해, 완공되지 못한 채 버려진 경우가 허다하다. 건설 붐을 통해 경기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리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새로 지어진 건물들을 활용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중국이 부동산 시장 붕괴로 인해 경기침체를 겪는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대부분의 제조업 국가는 과거 비슷한 패턴을 경험했다. 일본은 앞서 고속성장기가 끝나면서 1980년대 버블 붕괴를 겪었고, 우리나라 역시 1990년대 IMF를 경험했다. 최근 중국의 상황은 고속성장기가 끝나고, 그 후유증으로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겪는 중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이 공산당 영도체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이 영도한다는 것은,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지도자가 실패하면 욕을 먹고,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는다. 공산당이 모든 책임을 지는 중국에서는, 불만이 발생했을 때 이를 내부적으로 해소할 방법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중국이 더욱더 중화사상을 부추기고 서방세계와 대립각을 세우는 걸지도 모른다.
공산당은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중국경제가 고속성장을 할 때는, 모든 문제(부의 불평등, 공산당의 부패, 청년실업 등)를 일단 제쳐두었다. 경제가 성장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개선될 여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자, 그동안 쌓아 두었던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공산당은 급격하게 벌어지는 도시·농촌 간의 소득 및 교육격차를 줄여나가야만 한다. 동시에 서비스산업을 육성하여, 청년 실업 문제와 경제성장을 이뤄 나가야 한다. 분배와 성장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노령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탓에, 중국 정부는 앞으로 막대한 은퇴연금과 의료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복지 문제가 점점 더 해결하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이미 올 초에 중국은 건국 이래 최초로 은퇴연령을 늘리고, 은퇴연금의 보전비율을 깎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중국 공원에 가면,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는 중국인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내가 가장 부러웠던 부분이기도 하다) 은퇴자들도 요즘엔 불만이 많아지는 것 같다. 딱 15년간 지나면, 은퇴연금 고갈문제가 가시화될 것이다. 그때 중국 정부가 어떤 대응을 할지가 궁금하다.
출처-<서울경제>
그 와중에 미국이 중국산 공산품에 과세를 매기고,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는 등, 본격적인 견제를 하자 중국의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앞다투어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고, 중국이 꿈꾸던 첨단 제조업 육성은 이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문제가 없는 국가는 없다. 그리고 공산당이 특별히 더 무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공산당의 문제가 심각한 것은, 중국의 모든 문제를 혼자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공산당은 끊임없이 늘어나는 중국 인민들의 기대를 언제까지 충족시켜 나갈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당장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여, 공산당 체제가 해체될 거란 얘길 하는 것은 아니다. 공산당 조직은 건재하며, 아직도 중국 인민들은 대체로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공산당은 존재 자체가 시대착오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공산당 체제는 과거 중국이 단기간에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용했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인들의 스탠더드는 선진국에 맞춰져 있다. 정말로 미국 같은 선진국이 되려면,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 단순히 건물을 크게 짓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콘텐츠와 서비스를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공산당의 강력한 통제와 검열은, 이러한 질적 성장을 하는데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되고 있다.
만약 중국 공산당이,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새로이 입증하지 못한다면, 나는 가까운 미래에는 공산당이 중국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을 것 같다. 그리고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중국 공산당의 집권은, 모두에게 끔찍한 시절로 기억될 거 같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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