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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기간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보다 더 많은 포탄을 쐈던 건 2023년 여름 대공세뿐이었다. 우크라이나는 하루 평균 7천 발을 쏟아부었다.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했던 젤렌스키는 조급했다. 미국과 유럽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그에 비례해서 전쟁물자 지원도 줄어들었다.

 

2023년 여름이 지난 뒤 우크라이나는 하루 평균 2천 발 정도의 포탄을 사용했다. 반면 러시아는 하루 평균 1만 발 이상의 포탄을 사용했다.

 

원래 러시아는 내구도가 좋다는 걸 알았지만, 역시 전쟁이 터지니 그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벨라루스부터 북한까지 긁어 올 수 있는 포탄들을 다 긁어모아 우크라이나 전선에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다.

 

이 부족한 포탄을 보충하기 위해 우크라이나가 들고나온 것이 드론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프로파간다를 위해 뿌리는 수많은 드론 관련 영상들은 반대로 말하면,

 

“포탄이 부족하다”

 

는 뜻이다. 포탄이 부족하니 자폭 드론을 날려 버틴다. 즉, 전술적으로 드론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드론 활용을 ‘강요’ 받고 있다. 이 모습 자체가 우크라이나가 수세에 몰렸다는 걸 의미한다. 공세를 위해서는 화력을 집중해 전선을 뚫어야 하는데, 그럴 여건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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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소련제 전차를 운전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

출처 - (링크)

 

자폭 드론은 화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침투하는 적을 요격한다. 러시아군 탱크나 장갑차를 향해 날아가는 드론은 치고 들어오는 적을 막아낸다. 즉,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을 끌어들여 싸우는 중이다.

 

물론, 우크라이나가 드론을 사용해 전술적으로 많은 이익을 본 건 맞지만, 드론으로 전쟁을 끝낼 수는 없다. 동부 회랑을 뚫기 위해서는 드넓은 참호 지역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데, 이걸 받쳐 줄 화력이 없다. 1차 대전 당시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다. 참호를 파고 버티는 이들을 향해 준비 포격을 하고 돌진해야 하는데, 그럴 포탄이 없다.

 

우크라이나군이 반전을 노리겠다며 러시아의 쿠르스크까지 밀고 올라갔지만, 그 이상은 보여주지 못했다. 서울시보다 약간 더 큰 지역인 쿠르스크를 치고 올라간 것까지는 좋았지만, 러시아의 반격으로 점령지의 절반 이상을 빼앗기며 빛이 바랬다. 애초에 체급이 다르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우크라이나는 이길 수 없다. 아니, 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의 지원까지 끊어지면 우크라이나는 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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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스크 내 북한군 훈련영상 캡처

출처 - (링크)

 

미국조차 슬슬 등을 돌리려는 상황이다. 그럼, 결국 전쟁은 끝을 향해 가게 된다. 당장 물주가 전쟁물자를 보급하지 않는데,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지속할 수 있을까? 물밑 협상이 오갈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보인다. 지난여름 젤린스키가 러시아와 협상을 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고,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평화 협상에 대한 의사를 내비쳤다.

 

결정적으로 우크라이나 군의 쿠르스크 공세가 러시아와의 협상을 위한 ‘재료’였음이 우크라이나 측에서 나왔다. 미하일로 포돌라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이 쿠르스크 공세에 대한 이유를 X에 올렸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에 관심이 없다. (중략)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 

 

즉, 평화 협상을 위해 쿠르스크를 치고 이를 지렛대 삼아 협상테이블을 꾸려 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사인은 가시적인 협상으로도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서로의 에너지 시설에 대해서는 공격하지 않기로 상호 협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쟁이 끝물로 들어서고 있다.

 

 

1968년의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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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21사태 당시 생포된 김신조

 

1968년, 북한은 부지런히 한반도에 긴장 상황을 만들었다. 1월 21일 김신조를 포함한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치기 위해 내려왔고, 며칠 뒤에는 미국의 푸에블로호가 납치된다. 그리고 10월 30일 120명의 무장 공비가 울진 삼척에 등장한다. 이때 우리가 잘 아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멘트가 나왔다.

 

우리는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주목해 봐야 한다. 한때 울진 삼척 사건에 대해서 김일성과 호치민 상호 간에 협상이 있었다는 말이 있었다.

 

“남한이 파병을 한대! 양심상 너희도 우리 도와야 하는 거 아니냐?”

 

“우리도 돕고 싶은데, 이게 좀 그래... 우리 아직 휴전 중이잖아. 대신에 우리가 파병을 보낸 효과를 보게 해 줄게.”

 

“어떻게?”

 

“남한 놈들이 월남으로 못 가게 만들게.”

 

즉, 한반도에서 소란을 일으켜 남한이 2개 사단 이상의 병력을 못 빼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사회주의 맹방을 위해 피 흘릴 정도로 감성적인 국가가 아니다. 겉으로 보면 1968년 북한이 저지른 짓은 미친놈처럼 보였지만, 그 속 내용은 지극히 이성적인...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 미친놈처럼 보여서 상대방이 날 자극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략. 헨리 키신저가 닉슨을 ‘미친놈’으로 포장해 소련을 긴장시켰고, 북베트남을 움직여 협상장에 나오게 했다)이었다.

 

북한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1968년도에 ‘깽판’을 쳤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1968년이라는 시간대를 주목해 봐야 한다. 당시 월남전은 끝물이었다. 미국은 슬슬 철수를 생각했고, 파리에서는 강화회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전쟁을 끝내자.”

 

미국은 전쟁을 끝내려 했고, 월맹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사적으로는 68혁명이라는 거대한 회오리가 불어닥친 해로 기억되지만, 당시 정치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했던 건 미국 대통령 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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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공세 당시 미 대사관 앞에 전사한 미 헌병들

 

1968년 대통령 선거는 혼란 그 자체였다. 당시 유력한 대통령 후보는 존슨 대통령이었다. 그대로 가면 린든 존슨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갔을 텐데... 월맹이 제대로 한 방 먹였다. 바로 테드 대공세, 소위 말하는 구정 공세였다.

 

“베트남 전쟁은 곧 끝이 날 겁니다.”

 

이렇게 존슨은 성명을 발표했는데, 바로 구정 공세가 터져버렸다. TV에는 베트남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 공격을 당하는 장면이 계속 나오고, 이 상황에서 매카시(빨갱이 때려잡던 조지프 매카시가 아니라 유진 매카시다. 조지프가 빨갱이 때려잡던 정치인이라면, 유진은 반전 좌파 진영의 수장이었다. 극우와 극좌의 양극단의 두 인물이다)가 대통령 후보로 부상했는데, 이때 로버트 케네디가 치고 들어왔다.

 

JFK의 동생인 그는 일찌감치 196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구정 공세로 인한 여론 악화를 이유로 린든 존슨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그는 출마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매카시와 경선을 치른다. 이때 로버트 케네디가 치고 올라갔으나(그대로 갔으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됐을지도 모른다), 암살을 당한다. 형제 모두가 총에 맞아 죽는 불운을 겪는다.

 

대혼돈의 카오스라고 해야 할까? 1968년의 대통령 선거판은 뭐가 어떻게 돌아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은 공화당의 닉슨이 당선되긴 했지만, 1968년 한 해 동안 수많은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월남전을 어떻게 처리할지 전 세계가 쳐다보고 있는 상황. 1968년을 뜨겁게 달궜던 68혁명의 주장 중 하나가 월남전 반대였다는 걸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사이 마틴 루터 킹이 죽고, 로버트 케네디가 죽고, 체제에 저항하는 68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이런 혼란 속에서 서방세계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권력이 누구에게 향할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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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북한은 이런 정권 교체기의 혼란한 틈을 노렸다(늘 그렇지만, 북한은 미국 대통령 선거 즈음해서 외교적으로 무언가를 터트린다. 존재감을 드러내기엔 최적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1968년은 앞에서 언급했듯, 전쟁은 끝물이었다. 사회주의 맹방이라 말한 월맹은 파리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1969년부터 미군은 순차적으로 철수하기 시작했고, 1971년이 되면 지상 전투부대 대부분이 떠나갔다. 물론, 1973년 파리 강화 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미국은 남베트남에 계속 있었다. 그러나 1968년을 기점으로 전쟁이 끝나가고 있단 걸 북한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북한은,

 

“나 여기 있어!”

 

외쳐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베트남 전선이 서서히 정리되고, 냉전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베트남전이란 ‘똥’을 치우다 보니 동서 양 진영도 서서히 대결 분위기가 가라앉는 상황이었다(그도 그럴 것이, 쿠바 미사일 위기부터 시작해서 60년대는 언제 핵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냉전이 극단으로 치닫던 시절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베트남 전쟁은 동서 양 진영의 대리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드디어 베트남 전쟁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동서 양 진영의 긴장 관계가 낮아지게 된다(닉슨 시절에 난데없이 중국으로 탁구 치러 가고, 데탕트의 물결이 등장한 게 아니다. 이미 물밑으로 이런 기류가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가장 경계했던 나라가 바로 북한이었다.

 

“소련이랑 중국의 원조를 받으려면,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해!”

 

한반도 긴장 상태가 이어져야만, 북한은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각종 원조를 받을 수 있었다. 즉, 자국의 이익을 위해 또 다른 전쟁을 계속해 만들어 내야 했다.

 

그 결과 1968년 내내 한반도에서는 충돌이 이어졌고, 10월에는 120명의 무장 공비를 직접 침투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다.

 

북한은 베트남 전쟁이 끝나는 게 싫었고, 냉전의 긴장된 분위기가 외교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2024년의 한반도에서는 그때와 정확히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2024년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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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우리가 1960년대 월남에 파병한 것과 같은 이유로 북한도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보내려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1960년대 북한의 행보를 따라가는 중이다.

 

1960년대 북한은 자기 이익을 위해 베트남에, 비밀리에 파병하고, 한반도에 긴장감을 조성했다. 2024년 대한민국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참관단을 보내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려고 한다. 아울러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한반도 긴장감 조성에 애쓰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러시아를 적으로 돌려놓았다는 점이다. 푸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문제는 우리 관계(한러 관계)를 파괴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북한과 군사 분야 협력을 재개한다면 한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2024년 7월 푸틴 대통령의 발언 中

 

냉정하게 생각해서 러시아는 미국과 같은 동맹이 될 수는 없다. 뭐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대결 구도가 지속된다면 근본적으로 러시아와 함께하지 못한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과 충돌이 없는 유일한 열강이란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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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한국 정부 대표단 단장인 홍장원 국정원 1차장이 브뤼셀 나토 본부에 도착한 모습

출처 - <연합>

 

중국과 일본이 영토 문제 혹은 역사문제 등으로 한국과 불편한 모양새를 보이고 때가 되면 외교적으로 시끄러워지는 것과 달리 러시아는 국경을 함께하고 있지만 우리와 충돌이 없다.

 

러시아가 지난 2019년 조기경보기를 보내 우리나라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이때 우리나라 공군은 플레어 터트리고, 기관포 쏘면서 강경하게 대응했다. 당시 러시아는 중국과 합동 훈련 중이었고, 누가 봐도 고의로 영공을 침범했다. 놀랍게도 6.25 한국 전쟁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영공이 침범당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러시아가 처음으로 영공을 넘어왔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외교 군사적인 행보를 보면, 확실히 우리나라에 호의적인 부분이 있다.

 

“굳이 너희와 싸우고 싶지는 않아.”

 

라는 뉘앙스가 곳곳에서 보인다. 2019년에 중국과 함께 우리 영공을 침범한 것을 러시아가 우리를 공격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다르게 봐야 한다.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영공을 침범하려 했다면, 일본에 했던 것처럼 했을 것이다.

 

냉전 시절부터 러시아의 일본 영공 침범은 유명했다. 폭격기를 보내 일본을 유람했다. 지금은 중국과 손잡고 있지만, 그 속사정은 그리 편치 않다. 이미 냉전 시절부터 중국과는 불편한 관계였다(국경분쟁부터 이념논쟁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싸웠다).

 

분명 러시아는 레드팀의 대장으로 한국에는 ‘적’의 입장이었지만, 잘 살펴보면 냉전 이후 러시아와 한국은 큰 충돌 없이 무난하게 잘 지내왔다. 직접적인 충돌 원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러시아가 굳이 한국과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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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경제적으로 봤을 때, 한국과 러시아 교역액은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2021년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인 298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던 것이 전쟁이 발발하자 교역이 급감하게 됐고(러시아 제재하고), 교역액은 계속 줄어갔다. 2024년이 되자 상반기에만 66억 달러 수준이 된다.

 

전쟁 때문에 교역액이 줄어든 건 맞지만, 하나 더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있다. 러시아는 전쟁 중에도 한국에 손을 내밀었다. 우크라이나의 여름 대공세를 막아냈던 2023년, 그해 겨울에 푸틴은 러시아와 데면데면해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관계가 악화된) 21개국 대사들을 모은 자리에서 한국을 언급하며, 한러 양국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로 돌아갈지는 한국 손에 달렸다며 관계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

 

러시아 입장에서 한국은 굳이 건들 필요가 없고, 친해지면 나쁘지 않은 관계이기에 우리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솔직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3개의 열강 중 우리와 가장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게 러시아다.

 

북방영토 때문에 늘 시끄러운 일본이나, 손은 잡고 있지만 자본과 인력이 러시아를 잠식할지 걱정해야 하는 중국과 달리 한국은 나름 경제 규모도 있고, 전쟁 직전까지 의욕적으로 러시아에 진출해 러시아 내에서도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다(전쟁 직전 무역 순위로 보면 12위권까지 올라왔다). 러시아 국민들의 평가도 우호적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한국의 외교적 위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3국 중 우리와 괜찮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나라가 러시아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 현 정세에서 미국과 같은 동맹국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굳이 나서서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러시아가 그걸 원하지 않는데, 우리가 나서서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혈맹까지는 아니어도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로 지내면, 이를 레버리지로 활용해 대미, 대중, 대일 외교에서 힘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그런 러시아를 적으로 돌려세우려 하고 있다. 이념을 위해서? 아니다. 전쟁을 통해 자신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