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작중 명목상 Goal은 여름에 열리는 인터하이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명시적으로 전국 제패를 외치는 사람은 채치수뿐이고, 다른 멤버들은 이에 대해 가타부타 별 언급이 없지만 대체로 동조하고 있다. 서태웅은 일본 최고의 고교선수가 되고, 강백호는 바스켓맨으로서 성장하는 데 집중하고, 송태섭은 복잡한 가정사에서 도피하는 등 각자의 과제를 챙기면서 따라간다.
어쨌든 내용은 자연스럽게 지역(카나가와현) 예선과 여름방학에 개최되는 인터하이를 향해 흘러간다.
고교농구 3대 타이틀
일본 고교농구에서는 여름의 인터하이(번역명 전국대회), 가을 국체(번역명 전국체전), 겨울의 윈터컵(번역명 선발대회)가 3대 타이틀로 불린다. <슬램덩크> 작중에는 겨울 윈터컵이 간단히 언급되고, 국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인터하이의 정식 명칭은 전국 고등학교 종합체육대회(全国高等学校総合体育大会)이다. 줄여서 총체(総体, そうたい)라고 한다. 우리말의 종합(綜合)은 일본어로는 총합(総合)으로, 한자가 다르다. 인터하이(インターハイ)는 영문명인 Inter-High School Sports Championships의 앞부분만 따서 일컫는 말이다. 여름방학 중인 7월 말-8월 초에 개최되며, 매년 개최 지역이 달라진다. 작중에는 히로시마현에서 치러지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슬램덩크>에는 농구만 나오지만, 종합 체육대회인 만큼 종목이 매우 많다. 야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기종목과 양궁, 검도, 펜싱, 육상 등 다양한 종목이 있고, 겨울 스포츠는 동계에 따로 실시한다.
잠깐 딴 얘기인데, 북산고교에는 남자 농구부 외에 야구부, 축구부도 있다. 농구부를 보고 ‘전국대회를 목표로 하는 부는 다르구나’라고 감탄하는 것으로 미루어, 큰 대회 출장보다는 소소하게 활동하는 것 같다.
이 장면에서 등번호 11번을 달고 카메오 등장한 축구부원은 당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11번이었던 미드필더 이케노우에 슌이치(池ノ上俊一)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추측한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노익장의 전설 미우라 카즈요시(三浦知良)도 90년대에 일본 국대 11번을 달고 뛰었으나, <슬램덩크> 연재 초반에는 이케노우에가 11번이었다. 이케노우에는 이노우에와 나이도 같고 고향도 카고시마현으로 같기 때문에, 팬심으로 살짝 출연시켰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윈터컵(ウィンターカップ)은 매년 12월 말에 치러지는 농구 대회의 애칭으로, 현재의 정식 명칭은 전국 고등학교 농구선수권대회(全国高等学校バスケットボール選手権大会)이다. 약칭 선수권대회라고 일컫는다.
2016년 이전에는 전국 고등학교 농구 선발우승대회(全国高等学校バスケットボール選抜優勝大会)가 정식 명칭이었기에, 약칭 겨울 선발전으로 불렸다. 작중에서도 김수겸과 정대만이 겨울 선발대회를 목표로 훈련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언급된다.
그 외에 텐노(일왕)배나 사기업 주최 대회 등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는 여럿 있지만, 규모와 위상에서 여름 인터하이와 겨울 윈터컵이 가장 크고 인지도도 높다.
전국 규모 대회 외에 지역별 대회도 활발하다. 도도부현 대회, 블록 대회 등이다. 이러한 지역 대회들은 전국 규모 대회의 예선을 겸하는 경우가 많고, 상위 입상할 경우 더 큰 대회의 시드권이 부여되는 등 여러 대회가 긴밀하게 얽혀있다.
일본의 광역 행정단위
제199화에 실린 인터하이 남자농구 대진표. 참고로 대진표는 일본어로 組み合わせ表(조합표)라고 한다. 대진표(對陣表)라는 말이 스포츠 경기에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번역판에는 학교 이름만 나왔지만, 원서에는 괄호 안에 지역명(도도부현)이 함께 나왔다. 학교명은 모두 가상의 이름이나, 지역명과 지역별 출장교 수는 모두 실제에 근거하고 있다.
일본의 최상위 광역 행정구역 단위를 도도부현(都道府県, とどうふけん)이라고 일컫는다.
1도(都) 도쿄도(東京都). 흔히 도쿄라고 불리는 대도시로, 영어로는 Tokyo Metropolis다. 23구(区)와 서쪽의 타마(多摩)지역, 부속 도서로 구성된다. 25개의 구(区)로만 구성된 서울특별시와는 구성이 다르며 규모도 훨씬 크다.
1도(道) 홋카이도(北海道). 일본열도의 주요 네 개 섬 중 최북단의 섬으로, 우리나라에는 북해도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섬 도(島)자가 아닌, 우리나라 경기도, 제주도와 같은 도(道) 자를 쓴다.
2부(府) 오사카부(大阪府), 교토부(京都府). 오사카나 교토를 하나의 시(市)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오사카시/교토시와 주변 지역을 묶은 도시권을 부(府)라는 행정단위로 부른다.
43현(県) 아오모리현, 오카야마현 등 총 43개가 있다. 우리나라의 도(道)와 비슷하여, 작중 번역도 초기에는 도라고 하였다. 카나가와현 예선을 도 예선이라고 하는 식이다. 영어로는 홋카이도의 도(道), 오사카부와 교토부의 부(府), 43현(県) 모두 Prefecture라고 한다.
이렇게 광역행정 단위는 총 1+1+2+43=47개이다. 인터하이는 이 도도부현 단위로 치러진다. 도도부현별 출장교는 기본적으로 1교씩이되, 인구 상위 10지역은 2교씩 출장한다(도쿄도는 3교). 개최 지역은 1교 보너스를 받는다. 따라서 47+9+2+1=59, 총 59교가 인터하이에서 자웅을 겨룬다. 명정공업고교가 끝번인 59번이다.
주인공 북산고교가 소재한 카나가와현은 인구수 상위 10 지역에 포함되기에, 정대만이 따로 독자들에게 2팀이 출장한다는 정보를 제공하였다. 일본 통계청 제공 인구 상위 10개 도도부현은 도쿄도, 오사카부, 카나가와현, 아이치현, 사이타마현, 치바현, 효고현, 홋카이도, 후쿠오카현, 시즈오카현이다(1990년 기준). 현재는 카나가와현이 오사카부를 넘어서서 2위가 되었다.
인터하이 대진표가 언제부터 이러한 형태로 시행되어 왔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의 도도부현은 얼추 태평양 전쟁 중인 1943년 이래로 똑같고, 도도부현별 인구 순위도 상위 10 지역은 변함이 없다. 인터하이 농구대회의 전신은 1948년부터 개최되었고, 현재와 같은 이름과 형태로 시행된 것은 1963년부터이다. 언제부터였든 꽤 오랜 기간 이 틀이 유지되어 왔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러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에 변화가 생겼다. 전체 출장교 수가 59개에서 53개로 줄었고(여자는 51교), 도도부현별 출장교 수도 조금씩 조정되었다. 도쿄도 출장교는 3교에서 2교로 줄었고, 2교 참가 지역이 기존 9 지역에서 4 지역으로 줄었다. 개최지 보너스는 유지되고 있다.
윈터컵은 대진표 운영 원리가 다르기 때문에 도도부현 인구 순위 3위(1990년 기준)인 카나가와현에서도 한 팀만 나갈 수 있다.
수퍼 시드
인터하이의 방식, 단 한 번만 패해도 탈락하는 경기방식을 싱글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Single Elimination Tournament라고 한다. 모든 시합에서 전승한 팀이 우승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토너먼트’라고 하면 이 방식을 일컫는다. 운영이 단순하고 승패가 빠르게 결정되는 것이 장점이다. 이 방식에서 대진은 대부분의 경우 순전히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 즉, 승패에도 우연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 이런 점이 흥행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실력 논란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또한 참가자 수가 2의 거듭제곱이 아니면, 그 차이만큼 부전승이 반드시 발생한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시드이다.
토너먼트에서 초반부터 강팀(선수)끼리 맞붙지 않게 하기 위해, 그 강팀들을 대진표상 적절히 (=멀찍이) 흩어놓는 것을 시드를 배정한다(Seeding)고 한다. 이때 대상이 되는 강한 팀 또는 그 팀이 자리하게 되는 대진표상 정해진 위치가 시드(Seed)이다. 어떤 팀이 강한가는, 해당 대회의 이전 회차 성적순으로 하거나 또는 다른 대회의 순위에 따르기도 한다. 주최 측의 재량으로 자체 순위를 매기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시드가 부전승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시드가 반드시 부전승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수한 팀에게 특권을 준다는 의미도 있고, 강한 팀일수록 나중에 등장해야 흥행에 유리하기 때문에 관행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부전승이 다 시드인 건 아니다. 단순히 운으로 부전승을 얻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부전승은 시드 외에도 여러 이유로 부여될 수 있다.
작중 카나가와현의 경우 흥미롭게도 시드를 이중으로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현 4강인 해남대부속, 상양, 능남, 무림은 수퍼 시드라는 이름으로 8강부터 참가한다. 카나가와현 예선은 전체 참가교를 A, B, C, D 네 개 조로 나눈 후, 조별 토너먼트로 진행한다. 이 조별 토너먼트의 승자와 수퍼 시드가 겨루어 이기는 팀이 결승리그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수퍼 시드는 한 시합만 이기면 바로 결승리그(4강)에 들어가는 엄청난 특혜를 받는다. (※ 한국어판에는 수퍼 시드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문맥에 따라 그냥 ‘시드’ 또는 ‘최강팀’으로 번역하였다.)
지난해 카나가와현에서는 해남대부속고와 상양고가 현 1, 2위로 인터하이에 출장하였다. 따라서 해남대 부속고가 제1시드로 A조, 상양고는 제2시드로 B조에 수퍼 시드로 배정되었다.
그에 비해 북산 같은 무명 팀은 수퍼 시드 상양을 만나기 위해 삼포-노성-동화-노량까지 무려 네 경기에서 내리 이겨야 했다.
수퍼 시드 외에 조별로 1차전을 면제받는(부전승) 참가교가 하나씩 있다. 북산이 속한 B조에서는 노량고교(津久武, 츠쿠부, TVA에서의 이름은 진무)가 그 역할을 맡았다. 원작(만화)에서는 수퍼 시드 4교 외에는 딱히 시드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노량고가 시드인지 아닌지 알 방법은 없다. 그러나 이 학교도 작중 전통의 강호(古豪)라고 묘사되는 강팀이다. 주인공 버프를 위해 희생되긴 했지만, 카나가와현 8위 안에 드는 학교일 가능성이 있다. 제2시드인 상양과 같은 조에 속하므로 제7시드일 수 있다.
지학은 왜 시드를 배정받지 못했나
작중 인터하이 대진표에서 형광색으로 표시한 부전승 5교가 시드교이다.
제1시드 - 산왕공업고교 (아키타현)
제2시드 - 명정공업고교 (아이치현)
제3시드 - 하카타 상과대학 부속고교 (후쿠오카현)
제4시드 - 해남대 부속고교 (카나가와현)
제5시드 - 라쿠안고교 (쿄토부)
(※ 1990년대 실제 인터하이에서의 시드는 9교지만, 부전승의 혜택이 주어지는 제1-5시드만이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 나머지 4교는 대진표상 정해진 위치에 배정될 뿐 크게 좋은 점은 없다. 또한 2019년부터 전체 출장교 수가 53교로 줄고, 이에 따라 부전승도 11교로 늘었다. 그러나 부전승과 상관없이 시드에 해당하는 학교는 9교로 동일하다.)
작년 전국 4강인 지학고교가 왜 시드가 아닌지가 의아하다. 게다가 주인공 북산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다. 풍전-산왕-지학 순서로 강팀을 연달아 이기고, 준결승에서 해남도 발라버리고 결승에서 명정공업을 만나는 테크트리가 연상된다. 이렇게 된다면, 작중 곳곳에 뿌려졌던 떡밥도 자연스럽게 회수되었을 것이다.
조사해 보니, 대진표상 하나하나의 자리(枠)는 학교 단위가 아니라 지역 단위에 배정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최근 1년 내 모든 전국 대회에서 북산고교가 우승했다면, 올해 인터하이의 제1시드에는 북산고교가 아니라 카나가와현이 배정된다. 카나가와현 대표로 어느 학교가 출장하든, 그 학교가 1번 시드에 배정된다. 만약 올해 예선에서 해남대부속고가 북산고를 누르고 카나가와현 1위로 인터하이 출장한다면, 북산이 아니라 해남이 제1시드가 된다.
(※ 실제로는 도도부현보다 큰 지역 범위인 블록 단위로 시드가 운용되므로, 카나가와현이 속한 칸토 블록이 제1시드에 배정된다. 그러나 <슬램덩크> 세계관에는 블록의 개념이 없으므로 도도부현 단위로 이해하면 된다.)
같은 원리로, 제2시드의 자리도 지학고교가 아닌 아이치현에 부여되었다. 올해 아이치현 1위는 명정공업이기 때문에 2번 시드에는 명정공업이 배정되었다. 지학은 순전히 뺑뺑이에 의해 북산의 지척에 자리한다. 물론 그 뺑뺑이는 이노우에가 돌렸다. 지학을 그 위치에 배치하기 위해, 시드에서 배제하기 위해 김판석이라는 대형 떡밥을 만들어 낸 것이 틀림없다고 나는 믿고 있다.
‘명정공업이 처음으로 예선 1위로 전국대회에 진출하게 되었다.’는 작중 해설 문장은, 명정공업의 전국대회 진출 자체가 처음이라는 것인지, 예선 1위로 진출하는 게 처음이라는 것인지 모호하다. 일본어 원문도 “名朋工業が初めて愛知県1位で出場を決めた。”라서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내용상 김판석의 입학 이후 명정공업이 농구 씬(Scene)에 ‘충격적 등장’한 것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명정공업의 인터하이 진출 자체가 처음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김판석이 5반칙 퇴장당한 후, 지학고교가 짧은 시간 내에 수십 점의 점수 차를 대부분 따라잡은 것으로 보아 아직은 김판석 원맨팀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지학은 북산 엔딩을 위해 무명 팀에게 현 1위를 빼앗기고, 시드까지 내준 격이 되고 말았다. 오호통재라.
지학은 몇 위?
인터하이 농구 경기는 일본 농구연맹(JBA)에서 주관한다. JBA가 인터하이의 시드배정 방법을 시원하게 공개한 적은 없다. 그러나 다른 경기 대회의 룰이나 언론 보도, 네티즌 수사대의 분석 등을 참고하여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전년도 인터하이 성적과 전년도 윈터컵 성적을 종합하여 점수를 낸 후, 그 순서대로 시드를 배정하는 방법이 유력시된다.
‘아이치(현)의 별’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최강자인 만큼, 아이치현 시드권 획득의 지분은 상당 부분 지학고교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학의 작년 인터하이 성적은 해남과 함께 3위(4강)였다. 위 시드 점수표에 의하면, 지학과 해남 각각 1.5점을 획득했다.
윈터컵에서 지학이 해남보다는 높은 성적을 거두어야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하고, 올해 인터하이에서 더 높은 시드를 배정받을 수가 있다. 대충 계산해 봐도, 지학이 우승(4점) 또는 준우승(3점)해야 합계 점수 4.5점 또는 5.5점이 되고, 올해 인터하이에서 산왕에 이어 제2시드를 배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지학이 윈터컵에서 우승 또는 준우승했다고 가정할 경우 내용상 거슬리는 부분이 생긴다.
전국 4위의 지학고. 이정환의 이 말은 지난해 인터하이 성적을 두고 한 말이다. 인터하이는 3-4위 결정전이 없으므로, 4강에 든 지학과 해남은 나란히 공동 3위이다. 그러나 해남의 입장에서 지학을 3위라고 말하긴 싫었겠지. 암, 이해한다.
작년 윈터컵에서 지학이 우승 또는 준우승했다면, 이정환의 이 대사는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지학은 윈터컵에서 4위 이하의 성적을 거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북산엔딩을 예정하지 않은 대진표
작중 시드는 실제 인터하이의 시드 배정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배정된 것이라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즉, 작년 윈터컵의 성적이 반영되지 않았거나 가중치가 다르게 부여되었다. 윈터컵 외 다른 대회의 성적을 기준으로 했을 수도 있다. 또는 아예 새로운 기준으로 시드를 배정했을 수도 있다.
이노우에는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의 전체 내용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연재를 했다고 여러 번 밝혔다. 정해둔 내용도 일부 있었겠지만, ‘흘러가는 대로 그렸다’는 취지의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카나가와현 예선 중에는 ‘농구 초보가 성장하며 무명 팀에서 분투하여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결국 전국을 제패한다’는 소년 만화의 전형적인 스토리를 은연중에 따라갔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 예선 단계에서는 전국 제패의 현실성보다는 성장과 동기부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했다.
대진표도 실제 규정과 시드 배정 원리보다는, 당시 예상할 수 있는 희망적인 흐름에 따라 미리 틀을 대강 만들어 두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즉, 처음에는 북산엔딩 따위는 생각지도 않은 대진표를 만들었을 것이다. 북산이 전국대회에 가까워지고, 라이벌이 하나둘씩 등장하면서 대진표도 조금씩 채워져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드도 설명되고, 회수되지 못한 대형 떡밥인 김판석이나 마성지가 등장한 이유도 납득이 된다.
막상 인터하이가 시작되고 전국 제패라는 구호가 눈앞의 과제로 다가오자, 이노우에는 진부한 승리 클리셰를 버리기로 한다. 이노우에는 “작중 인터하이가 시작됐을 즈음, 산왕전을 끝으로 작품을 끝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산왕전이 결승전에 상당하는 시합이고, 그보다 밀도 있는 시합을 그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인터하이는 단 두 시합만(풍전-산왕) 그려지고, 북산엔딩으로 종결되었다. 작중 대진표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정말로 북산이 전국을 제패하는 결말을 기대한 사람도 꽤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북산 엔딩은 다른 의미로 극적이었다. <슬램덩크>의 인기 이유는 독자의 수만큼 많을 테지만, 클리셰를 몽땅 파괴한 엔딩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충격이 큰 만큼 여운도 길게 남기 때문이다.
우승은 어디일까
대회의 결과가 밝혀지지 않은 채 완결된 탓에, 우승 팀이 어디인지가 팬들 사이의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이다.
다행스럽게 해남이 준우승했다는 것이 작중 짤막하게 언급되어, 범위를 절반으로 좁힐 수 있다. 대진표상 왼쪽 블록에 위치한 해남이 준우승이라면, 우승은 오른쪽 블록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노우에는 아사히 신문사에서 주최한 대담에서 “내 마음속에 우승교는 분명히 (정해져) 있다. 작중 그려지지 않은 팀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정공업은 확실히 아니다.”라고 밝혔다. 명정공업뿐만 아니라 대영학원고교도 경기 장면이 한 페이지 이상 나왔고, 캐릭터도 한 명 나왔으므로 우승 후보에서 제외해도 될 것 같다.
‘작중 그려지다’의 의미 또는 범위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후쿠이현의 호리고교(堀, 번역명 문익)도 단 한 컷뿐이지만 어쨌든 그려졌기 때문에 우승교 후보에서 제외하겠다.
내가 감히 예상컨대, 제3시드인 후쿠오카현의 하카타 상대 부속고교(번역명 상대)가 우승했을 것이다.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로, 이 학교가 시드라는 점이다.
1974년부터 1996년까지 총 23회의 인터하이 남자농구 대진표를 전수조사한 결과, 제5시드 이내의 팀이 우승한 경우가 16회다. 1974년은 대진표 데이터가 남아있는 해 중 가장 오래된 해이고, 1996년은 <슬램덩크> 연재가 끝난 해다. 범위를 2024년까지 넓히면 제5시드 이내의 학교가 우승한 확률은 통계적으로 약 65%에 달한다.
작중 제5시드 이내의 학교 중 이런저런 이유로 우승교가 아닌 학교들을 제외하면 제3시드인 하카타 상대 부속고교만 남는다. 물론 시드라는 이유로 우승확률이 높은 것은 아니고, 원래 실력이 좋은 학교가 시드에 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것이 정확한 설명이다.
제5시드 이내의 학교라면 1회전이 면제되므로(부전승) 시합 횟수가 적고, 이에 따라 산술적으로 우승확률이 높아진다. 체력 관리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정성적인 요인도 들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학교의 실제 모델이다.
작중 대진표에 등장하는 일부 학교는 당시 일본 고교농구를 주름잡던 강호교를 모델로 했다. 산왕공업의 모델은 노시로 공업고교, 지학고교의 모델은 아이치 공업대학 부속 메이덴고교, 해남은 사가미 공과대학 부속고교다. 이 외에도 이름만 등장하는 많은 학교가 해당 지역의 이름난 농구 명문교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하카타 상대 부속고교는 후쿠오카현의 전통 강호인 후쿠오카대 부속 오호리고교(福岡大学附属大濠高校)를 모티브로 했다. 오호리고교는 인터하이 우승 횟수 통산 4회, 준우승 7회로 노시로 공고에 이어 역대 2위다. 최강자인 산왕공고가 탈락해 버렸으니, 2인자가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정리하면, 우승은 하카타 상대 부속고교, 준우승은 해남대 부속고교이다. 3위(4강)는 어느 학교들일지 예상해 보자. 쌀쌀한 가을날, 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 귤을 까먹으며 진득하게 <슬램덩크>를 정주행하길 권한다. 그러고 나서 이 글을 다시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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