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했다. 그 담화는 오히려 역풍을 일으켰다. 광장의 촛불집회는 더욱 거세게 불이 붙었고, 대통령은 지지율을 두 번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대로 탄핵당했다.
2024년 11월, 윤석열 대통령은 8년 전 그때처럼 대국민 담화를 열었다. 그리고 야당은 8년 전 그때처럼 매주 장외 집회를 열고 있다. 스산한 가을이다. 혼돈의 가을이 시작됐다.
아직 대국민 담화의 영향이 반영되지 않은 지지율이다. 앞으로 추락의 길만 남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윤석열 대국민 담화를 분기점으로 이제는 누구도 앞으로 펼쳐질 일은 예상하지 못하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후 수습 불가능한 정국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단계에서 당장 상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크게 다섯 가지 정도다.
1. 법적 절차를 따른 대통령 탄핵
2. 대통령 자진하야
3. 임기단축개헌
4. 계엄
5. 기타 상상 밖의 일
하지만 세부적으로 여당 내부 갈등, 차기 대권 주자들의 움직임, 이재명 대표 조국 대표의 사법리스크, 야당의 움직임 등의 변수까지 고려하면 경우의 수는 무한히 늘어난다.
여당 내부 분열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어느 방향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민주 진영을 이끌어 나갈지에 따라 향후 정국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세월이 흐른 뒤에 윤석열 정권 몰락의 분기점이 어디였느냐고 한다면, 역사는 2024년 11월 7일 대국민 담화로 기록할 것이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됐을까, 대국민 담화를 돌아보도록 하자.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약 140분이었다. 15분간 대국민 담화를 한 후 125분간 언론인과 질의응답을 받았다. 대통령은 총 26개의 질문에 답했다. 7일 있었던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빠지게 된 5가지의 결정적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1. 자화자찬
이번 대국민담화가 왜 시작되었는가? 그것은 민주당이 공개한 대통령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와의 육성 녹취록이 공개됐기 때문이었다. 그 녹취록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김영선 전 국회의원의 공천을 지시하는 듯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동안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무혐의, 명품백 수수 무혐의, 주가조작 공천개입, 등 수많은 의혹은 대통령 본인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니 대통령실과 여당은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혹은 “수사 결과를 존중한다”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이런 식으로 검찰의 뒤에 숨어버릴 수 있었지만,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된 이후에는 어떻게든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즉,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공천개입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고 그간 벌어진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사과해야 했다.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해서는 안되는 내용을 말하고야 말았다.
‘자화자찬’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오니,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나라 상황이 매우 힘든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마는, 막상 취임을 하고 보니, 모든 여건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팬데믹의 여파는 아직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었고, 이러한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원유, 식량, 원자재 가격들이 치솟았고,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이 지속됐습니다. 당시에 거시지표를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혹독한 글로벌 복합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11월 7일 대국민 담화 中-
한 줄로 요약하면, 이런 말이었다.
“어려운 경제 상황은 내 잘못이 아니다.”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 경제가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올해 수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경상수지 흑자도 7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올해 경제 성장률도 잠재 성장률 2퍼센트를 상회할 전망입니다. 내년 3월 24조 원 규모의 체코 원전 건설사업 계약이 마무리되면 원전 산업을 비롯한 우리 산업 전반에도 더 큰 활력이 불어넣어질 것입니다.”
모든 경제 지표가 최악의 상황을 달리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데, 대통령은 “경제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률도 2%를 넘고 원전을 통해 우리 산업 전반에도 큰 활력이 불어넣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국민 담화 망조의 시작이었다.
2. 정치권의 요구사항 거절
대국민 담화가 있기 전 정치권의 대표적인 요구사항은 ‘명태균 의혹에 대해 밝혀라’, ‘김건희 여사 활동 중단하라’, ‘인적 쇄신하라’, ‘특검법을 받아라’ 등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요구도 받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했다.
자신의 책상에 ‘The BUCK STOPS here’ 명패를 두고 일한다는 대통령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도 “대통령이라는 것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은 과연 변명하지 않았을까?
명태균 씨와의 의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러 도움을 준 사람에게 매정하게 하는 것이 좀 그렇고 명 씨도 섭섭해하는 것 같아 전화를 받아준 것이다.”
“누구를 꼭 공천 줘라 이런 것도 사실 얘기할 수도 있죠. 그게 무슨 외압이 아닌 의견을 얘기하는 거지만, 대통령이 얘기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한 일은 ‘공천개입’이 아니라 그냥 ‘의견 제시’ 한 것이라는 변명을 했다. 대통령이 공당의 공천에 의견을 제시하면 그것만으로도 공천개입이자 외압이다. 과거 윤석열 검사는 박근혜 대통령 시절 공천 개입을 승인·공모했다는 혐의만으로도 기소한 바 있다. 변명이자 범죄사실 자백이었다.
김건희 여사의 활동 중단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부인이 대통령 도와 국정도 원만하게 잘하길 바라는 일들을 국정농단이라 한다면 국어사전을 다시 정의해야겠다.”
완벽한 변명이다. 김건희 여사는 정치 브로커와 수백 번을 통화하고 공당의 공천에 개입하고 명품백을 수수하는 것도 부족해 마포대교에 나가 경찰에게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명백한 국정 개입이자 국정농단이다. 이 역시 변명이자 영부인과 자신의 범죄 사실 자백이다.
대통령은 이어서 말했다.
”국민이 싫다고 하면 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교 관례상, 국익 활동상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저와 제 참모가 판단’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중단해 왔다.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이어갈 것이다.”
요약하자면,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인적 쇄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적절한 시기에 인사 쇄신 면모 보여드리기 위해 인재풀 물색과 검증 들어가 있다. 다만 내년도 예산 심의와 미국 새 정부 출범 등이 있기에 시기는 조금 유연하게 생각”
국회의 예산안 심의는 올해 말까지다. 그러니까 올해 말까지는 인적 쇄신은 없다는 의미다. 심지어는 미국 새 정부 출범까지 언급했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내년 1월이다. 길면 내년 1월까지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특검 요구에 대해서는 아주 길게 이야기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 말이었다.
“야당의 정치 선동이라 받을 수 없다.”
“삼권분립을 위반하고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 임명은 헌법에 반한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참여했던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법’도 당시 여당의 특검 추천권을 배제했었다. 또한 이러한 특검은 헌법 재판소에서도 합헌 결정이 난 바 있다. 대통령의 말은 거짓이자 변명이다.
3. 의미도 내용도 없는 사과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실에서 준비한 대국민담화의 주요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허리를 숙여 국민께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이는 친정부 성향의 언론에서 이번 기자회견의 썸네일을 어떻게 땄는지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대통령은 허리를 숙였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사과하는지, 대통령은 전혀 모르고 있다.
“제 주변의 일로 국민들께 걱정과 염려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부터 드리고…“
라고 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질의응답 과정에서 “뭘 사과하는 거냐. 두루뭉술하고 포괄적 사과다”라는 기자의 지적에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사과하는지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잘못한 게 있으면 딱 집어서 해 주시면, 그 부분에 대해 제가 사과를 해 드리죠. (내가) 팩트를 가지고 다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니들이 말해보라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은 허리를 숙이는 역할극을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자인하는 장면이었다.
4. 태도
“정치인은 숨 쉬는 것도 메시지다”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들이 이번 대국민 담화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다면, 비언어적 요소들을 메시지만큼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날의 대국민 담화는 명태균, 김건희, 그리고 대통령 본인이 포함된 불법 의혹 때문에 대통령이 반강제로 끌려 나온 것이지 자발적으로 성사된 행사가 아니었다. 대통령은 누구보다 겸손하고 예의 있게 행동해야 했다.
근데 어땠나?
담화의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대통령의 태도에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다. 대통령의 무례한 태도는 대통령이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통령 스스로 자신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 외국인 언론인이 한국말로 준비해 온 질문을 듣고는 “말귀를 못 알아먹겠다”고 발언했다. 처참한 한 장면이었다.
이쯤 되면 변명과 범죄사실 고백, 앞으로도 변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더불어 ‘니들이 어쩔 건데?’라는 식의 태도까지 곁들어진 환장의 콜라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대국민 담화는 정치권 최대 이슈였고, 전국민적 관심을 끄는 초대형 이벤트였다. 이런 자리에서 대통령은 시종일관 비속어를 사용하고 농담까지 섞어가며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함께 거만한 태도를 보여줬다.
5. 대통령실 참모의 수준
최근 여의도에서 언론인과 국민의힘 내부 사람 등 복수의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 있다.
①지금 국민의힘 소속 인재 중에 대통령실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②대통령실 내부 직원들은 매우 사기가 떨어져 있으며, 숨죽이고 소극적으로 일하고 있다.
두 가지 정보는 지금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내부적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과거 정부의 경우는 지지율의 위기가 오거나 불리한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각을 펼치기도 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신기하리만치 개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매우 소극적으로 1, 2명의 장관을 교체하는 데 그쳤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이태원 참사 책임 주무 부처 장관인 이상민 장관도 그대로 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신원식 안보실장은 서로 자리만 바꿔 앉았을 뿐이다. 이진숙, 김문수, 안창호, 김형석, 김행, 하나하나 모든 인사에 실패했다.
최근엔 음주 운전으로 중징계까지 받은 선임행정관까지 다시 대통령실로 복귀했다.
‘인사는 만사다’ 여러 루트를 통해 나오는 정보를 통해 명백히 드러난 사실은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이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없다. 윤석열 정부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 결론적으로 유능한 사람은 오려고 하지 않고 실력 없는 사람들만 죄다 모여 있다 보니 이번 대국민 담화 같은 참사를 일으킨 것이다. 처참한 실력을 드러냈다.
이런 일은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앙일보 기사(링크)가 있다.
해당 기사엔 이런 내용이 있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 라인을 신설되는 제2부속실에 몰아넣으려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런데 파악해 보니 숫자가 너무 많아서 수용이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한다.”
대통령실에 대통령의 인사보다 영부인의 인사가 더 많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영부인 측근들이 대통령실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전횡을 휘두르니 유능하거나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인재가 대통령실에서 일하려고 할 리가 없는 것이다.
대국민 담화를 분기점으로 정치권은 앞으로 큰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역대급으로 낮은 대통령 지지율, 국정 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대통령실, 국민의힘 내부의 자중지란, 이재명 대표 조국 대표의 재판 결과 등의 이슈가 더욱 거대하게 얽히고 있다.
‘시계 제로’ 정국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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