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여성 재소자
‘청주여자교도소 싸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유일한 여성전용 교도소인 청주여자교도소에 매일 싸움판이 벌어진다는 뉴스였다.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들의 타이틀에는 '이은해' '고유정'을 언급하고는 했다. 일부 기사에서는 마치 둘이 싸운 것처럼 제목을 달기도 하였다. 이상하지 않은가. 남자 교도소에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살인마가 훨씬 더 많고 수감자 사이의 싸움도 더 난폭할 텐데, 왜 ‘여자 교도소’의 싸움이 화제가 될까. 그보다도, 아내를 살해하거나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것은 어지간해선 뉴스거리도 안 되는 세상에 왜 이 두 여성 범죄자만 이렇게까지 유명 인사가 된 걸까.
고유정은 전남편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뒤 시체를 훼손했다. 이은해는 보험금을 위해 내연남과 함께 남편을 살해하고 시체를 훼손했다. 이 둘은 모두 한때 연인이었고, 가족이었던 상대를 계획적으로 살해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남성이 여자 친구나 아내를 살해하는 경우에 비해 여성이 남성 연인이나 배우자를 (그의 폭력에 저항하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 아닌) ‘계획적으로’ 살해하는 경우는 매우 적어서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 다 아이가 있는 어머니였다는 점도 충격적으로 보인다. 미디어에서 모성은 자애롭고 생명력 있는 것으로 신격화되기 때문이다.

이은해와 고유정
출처-<연합뉴스>
이를테면 술과 도박에 빠진 남성이 가정폭력을 행사하다 아내를 살해했다든가, 자식들을 살해했다는 얘기는 욕은 나올지언정 별로 놀랍거나 충격적이진 않다. 또는 치정에 휘말린 남녀 사이에 불륜한 상대를 살해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죽인 사람이 ‘나쁜 놈’인 건 맞지만, 그 얘기가 별로 새롭거나 충격적이진 않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여성스러운 외모의 젊은 어머니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얘기는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악인이나 범죄자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성별이 무엇이건, 외모가 어떻건, 아이가 있건 없건 악인은 악인이고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2. 오타쿠
또 다른 예시로, ‘오타쿠’의 이미지를 안 좋게 하는 데 한몫한 범죄자가 있다. 80년대 후반 여러 명의 어린 소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1962년생 미야자키 츠토무다. 그가 붙잡힌 뒤 그의 방에서는 다량의 만화, 애니메이션이 쏟아져나왔고, 비디오테이프만 6,000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몇몇 사람들은 ‘오타쿠’에 대해 음습하고 변태적인 범죄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같은 오타쿠여도 좋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미야자키 츠토무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지난 5월, 대만에서 지하철 흉기 난동을 제압한 27세의 헬스트레이너 쉬뤼시엔도 오타쿠다. 그는 흉기를 휘두르는 범인과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흉기에 얼굴을 베이고 광대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범인과 싸워 결국 그를 제압했다.

출처-<한국경제 기사 캡처>
"사건 당시에도 그랬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겁니다. 만화 <장송의 프리렌>에 나오는 용사 '힘멜'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동그란 안경에 비슷한 나이대 남자들은 잘 하지 않는 긴 생머리 헤어스타일을 한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만화 대사를 인용했다. 또한 자신이 ‘오타쿠’임을 당당하게 밝혔다.
"저는 한 분야에 푹 빠진 오타쿠입니다. 저의 행동이 오타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누군가를 살인자로 만든 특정 성향이나 취향, 그 사람의 상황은 어떤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만든 이유도 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악’이라 부르는 것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악이 깃드는 공통적인 조건이 있다. 강력 범죄를 저지르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소위 ‘악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나르시시즘’이다.
3. 나르시시즘
모건 스콧 팩(Morgan Scott Peck, 1936년 5월 22일~2005년 9월 25일)은 미국의 정신의학과 의사이었고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악’을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명명하고 분석하고자 했던 스콧 팩 박사는 악의 심리적 핵심이 ‘나르시시즘’이라고 말한다.

모건 스콧 팩
여기서 말하는 ‘나르시시즘’은 단순히 자신의 성취나 우월함에 심취하는 성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머릿속에 ‘나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다’라는 확고한 자아상을 심어놓고, 그 자아상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남을 희생시키는 일도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나르시시스트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빠져나갈 자신만의 핑계를 만든다. 그리고 절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하건, 그것은 남의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려한 패션을 즐기고 콧대가 높다고 병적인 나르시시스트인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아 벽을 치는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수수한 외모에 선해 보이는 사람도 나르시시스트일 수 있다. 공감 능력이 아주 높아 보이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 또한 나르시시스트일 수 있다. 즉 의외로 사회적인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나르시시스트의 공통적인 특징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헌신해 줄 ‘먹잇감’을 공들여 기르는 것을 즐긴다. 먹잇감은 직장 동료일 수도, 배우자일 수도, 혹은 친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관계이든 그 관계가 진행되어 가는 과정은 비슷하다.

해당 이미지는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누군가를 유혹해 제 어항 안에 넣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도도하거나 벽이 높아 보이는 건 오히려 방해가 된다. 따라서 이들은 오히려 친근한 미소와 경계를 허무는 대화에 능할 수 있다. 또한 관계의 초반에는 상대를 사로잡고자 자존심을 내려놓고 과한 호의와 물질을 베푼다. 이를 ‘러브 바밍(love bombing)’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폭탄같이 투하되는 대량의 애정 공세인 셈이다. 이렇듯 관계 초반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앞에서 마음을 연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 나를 이렇게 위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이 사람은 나를 정말 좋아하나 봐."
나르시시스트가 연인이라면, 상대는 로맨스 영화나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다. 나르시시스트가 친구나 직장 동료, 스승이라면 상대는 평생 가도 못 만날 ‘귀인’을 만난 것 같다고 여기게 된다. 그렇게 고마운 감정이 호의로, 그보다 더 깊은 신뢰와 애정으로 무르익을 무렵, 타깃이 된 사람이 나르시시스트가 아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사고는 이렇게 이어진다.
"이 사람은 내게 정말 소중해.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 위하니, 나도 이 사람을 위해줘야겠다."
이 시점부터는 먹잇감이 완전히 나르시시스트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부터 나르시시스트는 돌변한다. 연락을 줄이고, 호의를 줄인다. 이후 간헐적인 호의를 동정하듯 베풀며 그것으로 이미 자신을 신뢰하고 좋아하고 있는 상대를 조종한다. 때때로, 먹잇감을 그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기도 한다. 그와 함께 평가절하, 가스라이팅을 시작한다.
"너는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다."
먹잇감의 태도나 행동은 물론, 존재 자체를 깎아내리는 말들을 하며 자존감을 좀먹는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을 상대의 탓으로 돌린다. 나르시시스트가 사는 세상에서 그는 항상 고결한 피해자이고, 잘못한 것은 항상 외부 세계이기 때문이다.
악한 사람들은 자신이 악하다고 믿지 않는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악하다고 믿는다.
-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1962년 2월 21일~2008년 9월 12일. 미국의 소설가)
이는 병적인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을 아주 잘 설명해 주는 문장 가운데 하나다. 병적인 나르시시스트의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자신밖에 없다. 나머지 외부 세계는 자신의 자아를 돋보이게 만들 도구 혹은 고결한 자신을 공격하는 적이다.

카라바조의 '나르키소스'(1597-1599)
4. 타인을 도구로 삼는 사람들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은 도구 혹은 적이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버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방해가 되는 경쟁자를 모함해 끌어내려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필요한 사람에게는 화사하게 웃으며 선물과 호의를 베풀다가, 만만한 사람에게는 가혹하게 대한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나르시시스트’와 ‘나르시시스트가 아닌 사람’, 즉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으로 나누는 것도 위험한 일이기는 하다. 모든 사람에게는 약간은 나르시시스트적인 기절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본인이 병적인 나르시시스트면서, ‘나르시시즘 이론’에 빠져 나르시시스트와 보통 사람들을 구분하는 데 집착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흑백논리, 이분법이기 때문이다.

오귀스트 톨무슈의 '허영'(1870)
그러나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이기심의 범위를 벗어난, ‘병적인 나르시시스트’는 분명히 존재한다. 나르시시스트 상태에서 공감 능력이 더 결여되어 ‘소시오패스’인 사람들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들로 인한 각종 범죄와 법이 처벌할 수 없는 수많은 정서적 학대가 벌어진다. 만약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있는데 점점 고통만 커진다면, 그것은 그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주변 모든 사람을 ‘나르시시스트일까, 아닐까?’ 끊임없이 분석하고 시험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분명히 내게 큰 고통을 주고 있는 관계가 있다면 거기에 관해서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 ‘악인’은 ‘병적인 나르시시스트’로서 보통 사람, 혹은 ‘근사하고 매력적인 사람’의 가면을 쓰고 당신 주변에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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