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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 이야기, 한 줄 요약

 

1. 절도범을 잡으러 갔던 안음현 수사관(경찰) 2명(김한평, 김동학)이 죽었다며 다른 지역 수사관 2명이 안음현 관아에 보고하러 왔다.

 

2. 이 상황이 의심스런 안음현감은 두 사람을 옥에 가두고 조사했다.

 

3. 조사를 받게 된 두 수사관, 즉 김태건과 구운학은 절도범 명을석 체포에 실패하고, 다른 절도 용의자 김해창을 체포했으나 이후 김해창이 도망쳤다는 것까진 증언이 일치했다. 그러나 이후에 일어난 수사관 2명의 죽음에 대한 증언은 달랐다. 이들은 서로를 저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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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지난 기사부터 보시길 추천!

 

 

범인의 동기와 알리바이를 조사하라, 2차 조사

 

1751년 6월 19일 - 『영영일기(嶺營日記)』

 

안음현감이 2차 조서를 올렸다.

 


 

<조서>

 

조사관 안음현감 : 너희 둘이 범인임이 분명하다. 서로가 죄를 미루지만, 죄를 면하려는 계획을 함께 한 정황이 분명하니, 살해 동기와 계획을 이실직고하라.

 

피의자 김태건 : 저와 구운학이 도기찰(수사팀장) 김한평을 살해하기 위해 함께 모의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도기찰의 목 부분에 난 칼자국은 정말로 구운학이 벌인 짓입니다. 그가 사람을 빌리기 위해 마을로 향했다는 것도 거짓이며, 김동학을 제가 죽였다는 증언도 거짓입니다!

 

피의자 구운학 : 제가 앞서 말한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사실, 도적 용의자인 김해창이 도주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김동학에게 1냥 5전의 뇌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김태건은 그 정황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동학이 받았던 1냥 5전의 뇌물을 빼앗기 위해 도기찰과 김동학을 죽인 것입니다. 김태건이 칼로 도기찰을 찌르고 이어 김동학을 죽인 상황을 제가 똑똑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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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출처-<조선명탐정2-사라진 놉의 딸>

 

확신을 가진 안음현감의 모진 고문이 이어지자, 새로운 단서가 튀어나옵니다. ‘김태건의 살해 동기’였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수사가 끝나고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갔어야 할 김태건과 구운학이 관아로 향하게 된 까닭은 ‘김해창 도주 사건’ 때문이었죠. 그런데 구운학은, ‘뇌물을 받은 김동학이 김해창을 놔주었고, 김태건은 그 돈을 빼앗기 위해 두 사람을 죽였다’라고 증언합니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이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안음현 도적단 사건’과 관련되어 있음이 드러나는 증언이었습니다.

 

안음현감은 곧바로 관계자를 소환합니다. 이때 소환된 자의 정보는 이렇습니다.

 

김해창(40세) : 도적 사건의 용의자 

 

박상봉(59세) : 김해창의 칠촌 숙부

 

임명(31세) : 용추사의 승려

 

요징(53세) : 장수사의 승려

 

1751년 6월 19일 - 『영영일기(嶺營日記)』

 

안음현감이 관계자를 소환하여 조사한 보고서를 올렸다.

 


 

<조서>

 

김해창 : 제가 도기찰에게 체포되어 북리면의 도장(지구대장)에게 인계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죄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 석방되었고, 저는 그대로 몸을 숨겼습니다. 저의 칠촌 숙부인 박상봉이 김태건과 구운학의 협박을 받아 1냥 5전의 뇌물을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상봉 : 도기찰에게 체포된 김해창이 갑자기 석방된 후, 그대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때 김태건과 구운학이 ‘네가 김해창의 도주를 도왔다고 관아에 보고하겠다.’라며 협박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뇌물 1냥 5전을 김동학에게 주었습니다.

 

임명 : 저는 18일, 절 밖을 지나가는 누군가가 ‘절 밖에서 도적의 습격이 벌어졌다!’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우리 절의 승려들을 장수사 승려들과 함께 김한평이 죽은 곳에 보냈습니다.

 

묘징 : 저는 장수사의 한 승려가 ‘지나가는 사람이 도적에게 습격받았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여러 승려와 함께 현장을 찾으니, 김한평이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그 즉시 관아로 달려가 제가 본 것을 보고했습니다. 구운학이 말한 ‘일주문 밖에 어떤 미친 사람이 지나갔다.’, ‘미친놈이 어떤 승려를 구타했다.’라는 증언은 거짓입니다. 그런 말을 한 승려는 없습니다.

 


 

관계자들은 제각기 자신의 입장을 반영해서 증언합니다. 증언의 교차검증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이렇습니다.

 

1. 뇌물을 준 자는 김해창의 칠촌 숙부인 박상봉이다. 뇌물이 오간 시점은 ‘김해창의 도주’ 이후이며, 김태건과 구운학의 협박으로 인한 갈취에 가깝다. 하지만 여전히 ‘도주를 위해 뇌물을 주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2. 김해창의 체포 및 석방에 대한 일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3. 임명과 묘징의 증언으로 인해 구운학의 ‘장수사 방문’ 알리바이는 파괴되었다.

 

 

주인공은 늦게 나타나는 법... 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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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호의 초상화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조재호가 등장합니다. 사실상 찐 주인공은 안음현감인 심정(沈鋏)이란 사람입니다만, 이 사건을 기록한 자료가 조재호의 글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재호가 해야 할 일이 아직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현령은 상급 기관인 감사에게 조사보고서를 보내고 범인을 이관합니다. 즉, 감사의 수사권이 자동으로 발동되죠. 

 

경상감사 조재호는 가장 먼저 복검(覆檢), 즉 2차 부검을 지시합니다. 이 또한 정해진 절차였는데요. 1차 부검 조사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혹시 드러나지 않은 정보가 있는지 밝히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2차 부검은 1차 부검을 진행한 조사관과는 다른 사람을 임명했습니다. 사건이 오리무중으로 향할 땐 3차, 4차 부검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조재호는 안음현 인근의 함양부사를 2차 부검 조사관으로 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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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부검을 진행한 함양부사는 1차 부검과 똑같은 보고서를 보냈습니다. 이제, 죄인의 처벌이 남아 있었죠. 그런데 죄인이 감사에게 이송되기 전, 구운학이 모진 고문으로 인해 감옥에서 병사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지금 같으면 난리 날 사건이었겠지만, 당시엔 용의자가 고문으로 인해 사망하는 건 부지기수였습니다. 오죽하면 고문이 두려워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죠. 아무래도 구운학은 모호하고 빈틈이 많은 증언을 이어간 끝에 김태건보다 더 강한 고문을 받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10월, 김태건 홀로 경상감영에 이송되고, 조재호가 심문을 시작합니다.

 

1751년 10월 1일 - 『영영일기(嶺營日記)』

 

죄인 김태건(48세)을 직접 심문했다.

 


 

<조서>

 

수사관 경상감사 조재호 : 네 죄를 낱낱이 고하여라.

 

피의자 김태건 : 저는 김한평이 가진 칼을 뺏어서 먼저 김한평의 목 부분을 찌르고, 이어 김동학을 심히 구타하여 죽게 하였습니다. 법에 따라 처벌하여 주십시오. 이전의 조사와 다르게 말할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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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싱거우시죠? 사실, 감사급의 조사는 싱겁기 짝이 없었습니다. 수령급의 조사에서 대부분의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었죠. 수령의 수사에 빈틈이 있어 감사가 수사를 뒤집게 되면, 수령의 고과는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따라서 안음현감은 신임 경상감사가 내려온 이때,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수사할 수밖에 없었죠.

 

이제 조재호는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한 절차를 밟습니다. 먼저, 상급 기관, 즉 중앙에 사건을 보고해야 했습니다.

 

1751년 10월 12일 - 『영영일기(嶺營日記)』

 

죄인 김태건이 김한평과 김동학을 잔인하게 살해한 상황을 낱낱이 실토하였습니다. 전례에 의거하여 직접 심문한 후 보고서를 올리오니, 해당 관청으로 하여금 법조문에 비추어 김태건의 죄상과 처벌을 정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수많은 권한을 가진 감사도 중간관리자였습니다. 법전에 따르면 김태건의 죄는 사형이었는데요. 이 경우 사형의 집행을 위해선 반드시 임금의 결재를 받아야 했습니다. 조재호 마음대로 법을 집행할 수 없었죠. 사형뿐만 아니라, 장형(杖刑)과 같은 형벌도 그랬습니다. 대부분 매뉴얼대로 집행해야 했고, 자기 마음대로 형을 집행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김태건의 처벌은 사형으로 결정됩니다. 하지만 조재호에게 남은 일은 더 있었지요. 바로, 안음현 살인사건의 뒷수습이었습니다. 아직 여러 가지 의문점과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는 것 같은데요. 과연, 조재호는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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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어케 한담...

 

1751년 10월 어느 날 - 『영영일기(嶺營日記)』

 

사건을 보고한 안음현감의 공문에 답했다.

 

「김태건과 구운학의 범행은 금전을 약탈하는 일에서 발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원망에 의한 보복과 같은 다른 동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범행은 분명히 사람이 해서는 아니 될 행위였고, 그들의 진술이 서로에게 죄를 미루고 있으니, 더욱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다만, 그들이 손을 합하여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린 것이 매우 잔인한데, 그들 또한 죄상을 남김없이 자백하니, 누군가 사사로운 원한이 있는가 등을 다시 조사할 필요가 없다. 또한, 김태건이 먼저 김동학을 살해했다는 사실도 자백으로 밝혀졌다.

 

한편, 김해창은 원래 절도사건의 용의자였는데, 그의 뇌물로 인해 살인사건이 촉발되었으므로 사건의 원인을 고려하면 결코 가볍게 처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를 잡아 가두고 보고한 것은 좋은 생각이나, 엄한 형벌을 한 차례 가하고 엄하게 타이른 후에 석방하라.」

 

뒤늦게 등장한 주인공의 활약은 ‘사건 축소’였습니다. 조재호는 두 범인의 증언이 다른 것을 조사하되, 사건의 더욱 정확한 양상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말라고 지시합니다. 심지어 모든 소동의 원인이었던 김해창을 적당히 벌주고 석방하라고 명하죠. 무슨 냄새, 안 나십니까? 권력형 사건이 발생했을 때,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라며 가오를 세우던 검찰이 초라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으신가요?

 

이 사건의 의문점은 한둘이 아닙니다. 조재호가 놓친, 혹은 애써 외면한 의문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김해창 도주 사건’은 과연 정말로 석방일까? 그렇다면 왜 북리면의 파출소장은 무슨 근거로 그를 석방한 것일까? 

 

2. 김해창과 박상봉은 협박을 했던 김태건과 구운학이 아닌, 왜 도기찰의 수행원인 김동학에게 뇌물을 준 걸까? 김동학이 뇌물을 받은 것은 사실일까? 행여 뇌물을 받은 두 사람이 뇌물죄를 김동학에게 덮어씌운 것은 아닐까? 

 

3. ‘안음현 절도 사건’의 수사는 신임 경상감사가 부임하는 와중에 진행됐고, 읍에서 파견된 수사관이 직접 면을 돌았다. 그런데도 체포 성과가 미미하고, 심지어 체포한 범인이 도주했다. 모종의 방해가 있지는 않았을까?

 

4. 부검 보고서를 볼 때, 김한평과 김동학은 심하게 난자당하거나 구타당한 상처가 가득했다. 그런데 김한평과 김동학 두 사람 모두 무예를 단련한 자들이다. 심지어 김태건은 ‘김한평의 칼로 그를 살해했다.’라고 하는데, 자기 칼을 내주거나 빼앗기는 무사가 있을까? 안음현감이 부정했던 ‘도적 10여 명’이 실제로 등장했던 것은 아닐까? 혹은 김동학도 김태건의 공모자가 아닐까?

 

5. 김한평과 김동학의 시신은 왜 따로 떨어져 있던 걸까?

 

6. 김해창은 왜 다시 석방된 걸까?

 

이렇듯 의문투성이의 수사 결과,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아쉽게도 이 사건을 다루는 이상의 자료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때가 하필이면 사도세자가 대리청정하던 시절이라, 훗날 수많은 기록이 검열 삭제되었지요. 하지만 소설을 쓰는 건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수백 년 전의 사건이니, 지금처럼 검찰의 고소와 고발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지요.

 

한편, 조재호가 수사를 축소한 까닭은, 아무래도 사건 발생 지역이 안음현이었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안음현은 1728년 이인좌의 난과 연계된 ‘정희량의 난’이 일어난 지역이었고, 이후 조정의 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조재호는 사건을 파고들수록 더욱 어두운 그림자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던 건 아닐까요?

 

추측과 의문만을 남긴 채, 조재호는 곧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조선의 수많은 지방관이 매일 사건을 마주했습니다. 누군가는 진실을 밝혔고, 누군가는 진실을 은폐했죠. 하지만 제한된 수사기법 속에서도 의지와 환경만 갖춰지면, 분명 진실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 밸런스가 무너졌던 1751년의 안음현과 경상도는 그럴 수 없는 환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재호 본인도 훗날 사도세자의 뒤주 사건에 엮어 죽임을 당하니까요. 수사 기관이 권력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재호의 일기는 어둠 속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영영일기(嶺營日記)』, 『영영장계등록(嶺營狀啓謄錄)』

-스토리테마파크 (https://story.ugyo.net/front/index.do)

-이상호, 『1751년, 안음현 살인사건』, 2021, 푸른역사.

 

 

제 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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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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