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아이들은 수능 때까지 어떻게 살았을까

11월 14일, 수능이 치러졌습니다. 이 글은 학부모님들께 드리는 글입니다. 이제 곧 수많은 입시전문가의 전략과 조언, 그리고 여러 저명인사가 수능을 치른 학생들에게 보내는 각종 훈계나 충고들이 각종 매체를 덮을 것입니다. 여기에 저 같은 무명 인사까지 나서서 잡문 하나 더 보탤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꽤 긴 시간, 현재도 간간히 학생들과 함께 입시를 치르는 사람으로서 학부모님들이 조금 아셨으면 하는 내용이 있어 쓰는 글입니다.
수능을 치른 아이들에게 전략도 좋고 충고도 좋고 질책이나 칭찬도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수능을 치를 때까지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살았나?’
이에 대해, 먼저 두 개의 자료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자료는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란 것입니다.
그것도 2011년 이후부터 2023년까지 연속 13년간 1위란 것입니다. 가장 최근 조사 자료인 2023년에는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보다 자살로 인한 사망이 3배 가까이 됩니다.
두 번째 자료는 ‘사걱세(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와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 등이 진행한 조사 자료를 연합뉴스가 인용한 것입니다. 초중고 상담교사 중 76%가 학업 경쟁과 부담으로 학생들의 심리상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답했으며, 상담 학생 중 61.4%가 자해 또는 자살 충동까지 느낀다고 답한 내용입니다.
두 자료의 연관성을 말하는 것은 지면 낭비일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선에서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부모님이 아이가 십 대 초반일 때부터 ‘지역명+맹모’라는 이름이 붙은 카페에 가입할 정도로 ‘교육(입시)’에 관심이 있다면, 아이는 어린 초등 시절부터 학교가 끝나도 놀지 못하고 학원으로 가야 하는 숨 막히는 생활을 10년 내외로 감수하고 수능을 보았을 것입니다.

밤 10시 대치동 학원가의 학생들
두 자료가 보여주는 명백한 사실, 그것은 이 땅의 청소년들이 대단히 불행하게 살고 있으며 그 원인은 망가지고 왜곡된 교육 때문이란 것입니다.
한국 교육이 망가진 이유
왜 우리 교육은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 정도로 망가졌을까요. 그것은 치열한 무한 경쟁과 승자 독식이라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여러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고용 불안이나 보장되지 않는 미래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학부모들의 자녀 교육 목표가 ‘명문대 진학’을 통한 ‘고소득 전문직’으로 보다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입시생 자녀를 둔 많은 학부모와 상담 또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님이 수입에 비해 교육비로 과도한 지출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2023년 사교육비 총액은 27조 1,000억입니다. 역대 최고액이며 줄어든 학생 수를 감안한다면 실로 대단한 액수입니다.
부모님들은 이러한 지출과 희생에 대해 예외 없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내 아이들이 ‘명문대에 입학’해서 ‘고소득 전문직’이 된다면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실현될 수 없는 자의적인 희망일 뿐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행복해질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더 크고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아이들을 몰아넣을 것입니다. 입시 경쟁을 끝내고 성인이 되면 취업 경쟁이 시작됩니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중년의 생존 투쟁과 곧 다가올 노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존 경쟁과 입시 경쟁은 무게가 다릅니다. 청소년기에야 대학 입시가 가장 큰 시련이었겠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둘째, 확률상 경쟁에서 패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100명의 아이가 최선을 다했다면 그 아이들 모두에게 1등급을 주는 것, 이것이 올바른 교육입니다. 그러나 상대평가를 바탕으로 하는 경쟁 교육, 오직 국영수 점수로 평가해야 하는 교육은 그 아이 중 4명에게만 1등급을 줍니다.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100명 중 4명만이 1등급이 되어야 합니다. 1등급이 안 될 확률이 1등급이 될 확률보다 24배입니다. 이 경쟁에서 이기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념이 아니라 자의적 바람일 뿐입니다.
셋째, 행복할 수 있는 조건들을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치열한 승자 독식의 경쟁사회가 극복 불가능한 것이라면 그것에 맞서 버티면서 살아갈 동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연대’와 ‘자율성’입니다. 교육학에서 성장기 ‘놀이’를 중시하는 이유입니다.
또래 친구들과의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공감’ 능력을 얻게 되고 이것은 ‘연대 의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놀이는 협력의 중요성과 규칙 시행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놀이 중에 맞닥뜨리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며 ‘자율성’을 키우게 됩니다. 이 자율성은 난관을 이겨 낼 ‘주체적 의지’의 토대가 됩니다.
국영수 점수 따기 교육, 부모님이 짜준 학원 투어와 외우기만 하면 되는 학원 내신 대비, 모든 또래가 자신의 경쟁 상대일 뿐인 12년간의 교육 과정을 겪으며 아이들은 이 모든 것을 키우지 못할 뿐 아니라 있던 것도 거세당합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확률상 불가능에 가까운 명문대 입학과 고소득 전문직을 이루더라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능력을 갖추기 힘듭니다. 높은 확률로 소득 높은 ‘마마보이’가 될 뿐입니다.
또한, 평생 ‘학벌’과 ‘직업’만을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며 더 넓은 세상을 볼 안목을 얻지 못한 채 자기만의 편협한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넷째, 행복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처음 경험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두려운 것입니다. 감정 표현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선물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선물을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12년의 교육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법이 아닌 점수를 올리는 법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도 행복해지는 것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수능을 치른 자녀들에게 부모가 해야 할 말


‘어떤 어른이 될래?’가 아닌 ‘얼마를 버는 어른이 될래?’란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교육에 12년간 시달린 아이들이 수능을 치렀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천민자본주의, 부모의 욕망과 자식의 바람을 일치시키는 억압적 가족 문화, 학벌에 대한 숭상과 노동에 대한 천시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집약된 것이 바로 교육 문제입니다.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때도 있었지만, 사실 지금은 포기했습니다.
11월 16일 토요일, 수능을 치른 제자들 몇 명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수시에 필요한 최저 등급을 맞출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아이, 정시를 준비했으나 가채점 후 일찌감치 재수를 결심한 아이, 약술 논술 등의 준비로 수능은 끝났지만 여전히 책을 붙들고 있는 아이들까지. 그중 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부모님께 어떤 말을 듣고 싶냐고.
잠시 생각하던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그냥...... 이제부턴 네가 알아서 해. 고생했어.”
아이들과 똑같이 마음고생 심했을 학부모님들께 참으로 쓰기 싫었고 죄송스러우면서도 이런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입시설명회에 수능을 끝낸 자녀들을 데리고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수능 성적표를 앞에 놓고 아이에게 학교와 전공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공부를 게을리했다고 철 지난 질책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입시 전략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아이에게 ‘이리 와 봐.’란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표준점수 원점수 등을 따지며 학교 학과별 유불리를 계산해 보자고 하는 것 등 말씀드린 이 모든 것은,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알아서 잘할 것입니다.
그리고 12년간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뒤틀린 교육에 시달린 아이들에게 “수고했어. 이제 좀 행복해지자.”란 말을 건네며 대학과 전공 선택, 이것은 아이에게 맡겼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일지라도 자신의 진로와 적성만큼은 스스로 선택하게 말입니다.
이 글이 수험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글이니만큼 학부모님들께 마지막 말씀을 전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아이와 함께) 당신도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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