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0월 15일, 주요 외신은 인도 타밀나두(Tamil Nadu)주에 소재한 삼성전자 현지법인에서 한 달 넘게 지속되던 파업이 종료되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주의 노이다(Noida) 공장에서는 핸드폰 등 통신기기를 주로 생산하고,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스리페룸부두르(Sriperumbudur) 공장에서는 각종 백색가전을 생산한다. 삼성전자 인도 법인의 1년 매출은 약 120억달러(16조원가량)다. 이번에 파업이 발생한 타밀나두 공장은 매출의 약 1/3을 담당한다. 한 달 동안 한국 언론을 통해 삼성전자 인도 법인의 파업 소식이 제법 소상하게 알려졌다. 이 글에서는 한국 언론이 다루지 못한(또는 간과하고 넘어간) 뒷이야기를 각 이해당사자 관점에서 다뤄보자.

인도의 한 삼성전자 제품 매장
1. 인도 노동운동의 핵심
이번 삼성전자 인도법인 파업 발생과 그 마무리를 이해하려면 인도의 노동운동에 관한 이해가 쪼금 필요하다. 인도의 노동운동의 기원은 뭄바이에서 방직산업이 성업했던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00년도 넘는 이야기는 생략하고 현재 그 상황의 핵심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로, 인도가 워낙에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인도 북부와 남부의 노동운동 특성이 다르다. 단순히 설명하면 북부 노동자들의 교육수준과 노동 의욕이 평균적으로 낮다. 단체행동 시 상대적으로 과격한 양상을 보인다. 특히 북동부의 웨스트 벵골 지역의 경우 공산당이 약 33년간(1977년 - 2011년)간 장기 집권하며 노동운동이 탄탄하게 뿌리내렸다. 이번 삼성전자 파업에서 배후로 등장하는 CITU도 북동부를 지역 기반으로 하는 노동조합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번 파업이 있었던 타밀나두가 속한 남부는 전반적으로 노동자의 교육수준과 근로의욕이 높다. 노사협상에 열린 태도를 견지하고, 합리적인 노동 운동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인도 남부의 타밀나두주
출처-<구글맵>
둘째로, 워낙에 땅도 넓고 노동자 숫자도 많다 보니 전국 단위 노조 조직이 12개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양대 산맥이라고 일컫는데, 인도에는 이런 '산맥'이 12개 있는 셈이다. 1926년 인도에서 노동조합법(Trade Union Act)을 제정하기도 전에 1920년에 설립한 노조인 AITUC(All India Trade Union Congress)와 현재 시점에서 조합원 가입자가 가장 많은 INTUC(Indian National Trade Union Congress). 이 둘을 비롯하여 BMS(Bharatiya Mazdoor Sangh, 인도노동조합), HMS(Hind Mazdoor Sabha, 힌두노동의회), CITU(Centre of Indian Trade Unios)까지 5대 노조의 세력이 가장 크다.
인도의 5대 전국 단위 노동조합

출처-<각 노동조합 홈페이지 등 자료>
셋째로, 이들 노조는 특정한 정치세력과 깊이 연계하고, 그 세력이 일정한 지역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인도 최초의 노동조합인 AITUC는 '인도 공산당(Communist Party of India)'과 연결되어 있다. BMS는 모디 총리가 속한 집권당 'BJP'와 연결되어 있다. 최대 노조인 INTUC는 야당인 '인도국민의회(Congress Party)'와 연계되어 있다. 이번 글의 주인공인 CITU는 정치적으로 '마르크스계열 인도공산당(Communist Party of India(Marxist))'과 연결되어 있다. 참고로 이 정당은 '인도공산당'과 별개다. 인도 공산당의 농본주의 노선에 반대하는 파벌이 1964년에 탈당해서 창당한 정당으로 괄호를 비롯해 '(Marxist)'까지가 정식 명칭이다. 지역으로서는 인도 북동부의 트리푸라(Tripura)주, 웨스트 벵골(West Bengal)주 및 남서부의 케랄라(Kerala)주에서 세력이 강한 편이다. 타밀나두와 안드라 프라데시에서도 존재감을 보이고는 있으나 앞서 언급한 3개 지역에는 미치지 못한다.

왼쪽이 '인도 공산당'(CPI, Communist Party of India)
오른쪽이 '인도 공산당(마르크스주의)'
출처-<위키피디아>
마지막으로, 타밀나두주를 살펴보자. 이 지역은 인도 제조업의 메카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1,400여 개에 달하는 해외 기업이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산업은 첸나이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산업이다. 타밀나두에는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닛산과 다임러, 르노, 푸조 등 유명 자동차 기업이 자리 잡았다.1)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전자산업을 포함한 기타 제조업도 동반 성장하면서 폭스콘·지멘스·모토롤라·ABB·텍사스 인스트루먼츠와 같은 외국계 기업들도 타밀나두에 뿌리내렸다. TV와 세탁기 등을 주로 생산하는 삼성전자 가전부문 공장도 2007년에 가동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16년 동안 무노조 경영을 유지해 왔다.

타밀나두주 엠블렘
출처-<위키피디아>
2. 이해당사자들 시각
전체 종업원 약 1,800명 중 절반이 넘게 참여했던 이번 삼성전자 타밀나두 공장의 파업은 최근 몇 년간 인도에서 일어났던 파업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다. 이번 파업이 종료된 시점에서 각각의 이해당사자들은 어떠한 입장일지 살펴보자.
첫째로, 삼성전자 측에서 인도에서 노사관계를 관리하는 게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인지를 호되게 경험했다. 2007년 삼성전자가 타밀나두에 공장을 설립한 것도 인도 내 타지역에 비해서 비교적 안정된 노사관계를 중요하게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부터 16년간 무노조 경영을 시행하면서 안정적인 경영 성과를 시현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권과 강성 노조 그리고 언론까지 복잡하게 얽힌 고차원의 노사문제 방정식을 풀어나가야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게다가 이번에 파업을 사실상 주도한 CITU는 인도 공산당 중에서도 좌파에 속하는 마르크스 계열 정당으로, 무노조 원칙을 견지해 온 삼성에 껄끄러운 존재다. 보수 및 복지 관련 쟁점 사항은 대부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CITU의 도움을 받아 설립한 삼성 노동자 노조가 적법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삼성 측은 한숨을 돌렸으나, 이제 곧 법정에서 벌어질 치열한 법리 다툼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 파업현장에
CITU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출처-<ND Next>
둘째로, 타밀나두 주정부 입장으로 빙의해 보자. 주 정부에게도 이번 파업은 적지 않게 곤혹스러운 사태였을 것이다. 우선, 이번 파업의 배후인 CITU는 타밀나두 주정부의 집권당인 DMK당(Dravida Munetra Kazhagam. 드라비다 진보당. 사회민주주의 성향으로 인도 남부의 지역 정당)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DMK당 소속인 타밀나두 주지사가 다른 이유도 아닌 해외투자를 유치하고자 미국을 방문하던 시기에 CITU 주도의 파업이 갑작스럽게 시작되면서 DMK당이 상당히 불쾌해했다는 뒷소문이 들려온다.2) 반면, CITU는 DMK당이 지나치게 기업 친화적이라고 비난한다. 실제로 CITU의 타밀나두주 위원장(Tamil Nadu State President of CITU)은 삼성전자와 타밀나두 주정부가 공모하여 삼성전자 노조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뭉그적거리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3)
집권당인 DMK, 파업을 주도한 CITU, 그리고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와 삼성전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머릿속 깊은 곳에는 약 10년 전 타밀나두에서 벌어졌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있다. 바로 2013년에 있었던 노키아 공장 폐쇄이다. 핸드폰 사업 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한 노키아는 타밀나두에 소재하던 자사의 핸드폰 공장도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기려 했다. 하지만 인도 정부가 세금 미납을 이유로 노키아 공장의 자산을 동결하면서 매각은 무산되었다. 결국 노키아는 6,600명에 달하는 종업원을 해고하고 사업장을 폐쇄해 버린다. '강 대 강'의 대결이 최악의 결과를 낳은 셈이다.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겨우 싹을 틔우던 타밀나두의 제조업 기반은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겨울잠에 빠졌다.

타밀나두주 첸나이 인근 삼성전자
가전 공장을 보안 요원이 지키고 있다
출처-<AFP 연합뉴스>
변덕스럽고 불투명한 조세 행정으로 회사의 구조조정을 방해하며 한 푼이라도 더 뜯고자 달려드는 인도 정부가 노키아 눈에는 마치 하이에나처럼 보였을 터이다. 반면, 만성적인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인도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에서 사업을 정리하고 떠나려는 대형 외국계 기업에 자비를 베풀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몇몇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인도의 투자 환경에 질려서 노키아처럼 떠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었다.4) 삼성전자는 타밀나두 공장을 폐쇄하는 수준의 극단적 조처를 하지는 않았고 타밀나두 주정부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결말이었다.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자면 타밀나두 주정부는 파업 동안 노조보다는 삼성전자 편을 들었다. 결국 10월 15일에 파업이 종료된 것도 주정부의 파업 종료명령 덕분이다. 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의 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외국계 기업의 유치를 통해 경제 발전을 지속해야 한다고 계산한 것이다.

출처-<뉴시스>
셋째로, 인도 연방정부로 빙의해 보자. 인도 정부가 한국 및 ASEAN과 한창 자유무역협정의 개정을 협상하던 중에 삼성전자의 파업이 발생하였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2014년 집권한 이후로 인도의 제조업을 육성하고자 'Make in India'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제조업 일자리 확대를 위해 기회 있을 때마다 외국계 기업에 '인도는 외국 기업이 사업하기 좋은 곳'이라고 떠들어 왔다. 이러한 인도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터이다.
영국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방직 산업의 역사도 있고 인건비도 낮은 인도이지만 뜻밖에도 세계 섬유·의류 시장에서 인도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중국이나 베트남, 방글라데시가 '세계의 옷 공장'으로 차례차례 등극하는 동안 인도는 저만치 뒤처져 있었다. 중화학공업을 중시한 인도의 계획경제 탓이 가장 크겠지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인도의 섬유·의류산업에 마지막 사형선고를 내린 것은 1980년대 이후 인도 섬유산업의 중심지인 뭄바이와 칸푸르 등에서 벌어진 수백 건의 파업이었다. 노조의 과격한 시위, 이에 대응한 사업주들의 강경 대응과 사업장 폐쇄는 결국 대규모 실직과 산업기반 붕괴를 불러왔다. 인도 연방정부로서는 1980년대에 섬유·의류산업에서 겪었던 실패가 21세기에 다른 제조업 분야에서 되풀이되는 것을 막고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파업 중인 노조
출처-<PTI(indianexpress)>
마지막으로, CITU에 빙의해 보자. 인도의 5대 중앙노조 중에서 가장 역사가 짧고(1970년 설립), 가입한 조합원 숫자도 가장 적으며, 주로 인도 북동부 지역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해 오던 CITU의 입장에서 '인도 제조업의 심장'인 타밀나두 지역은 탐나는 블루오션이다. 게다가 인도 정부가 중점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성장산업인 전자산업을 선도하는 삼성전자라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큰 물고기이다. 앞으로 타밀나두에 추가로 진출할 외국계 기업을 영향권 아래에 두고 싶다면 삼성전자는 반드시 장악해야 할 '1루 베이스'인 셈이다.
하지만 파업을 멈추라는 집권 DMK당의 계속적인 압박과 회유에 CITU는 결국 37일만에 꼬리를 내렸다. 파업이 종료된 후 노조 집행부는 '통상 폭력적 양상으로 발전했던 과거 다른 파업사태와는 달리 이번 삼성전자 파업은 평화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애써 정신승리를 시전했다.5) 또한 노조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할 법원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추가 파업은 없으리라고 밝혔다. 달리 말하자면 '비록 지금은 파업을 종료하지만, 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또 다른 국면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놓은 터이다.
최근 몇 년간 세계적인 가치사슬(밸류체인) 재정비가 일어나면서 중국의 대안으로 인도가 급속하게 부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외국계 기업들은 이번 파업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속된 말로 '똥차(중국 정부)를 피하려고 인도에 투자했다가 쓰레기차(인도의 노동조합)에 치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외국 기업이 사업하는 데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기회 있을 때마다 세금이나 더 뜯어내려 혈안인 인도 정부, 월급을 2배 올려달라, 자기 가족도 채용해달라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노동자, 그리고 이런 노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세력 확대에만 급급해하는 강성 노조까지…. 이래저래 인도는 외국계 기업에 만만치 않은 곳이다.
<계속>
주
1) 'Hosting global companies in Tamil Nadu', The Hindu, 2022. 2. 18. 기사
2) ’As Samsung strike enters second month, ruling DMK faces alliance heat, Tamil Nadu police detain union leaders’, 2024. 10. 10. The Indian Express 기사
3) ‘Why Samsung workers’ strike in Tamil Nadu has entered its 4th week, with no sign of let-up’, The Mint, 2024. 10. 4. 기사
4) 'Samsung Strike In Tamil Nadu Risks Repeating Nokia's Decade-old Collapse', Businessworld, 2024. 9. 25. 기사
5) ‘Stalinist CITU shuts down Samsung India workers’ militant strike on orders of DMK government’, 2024. 10. 20. World Socialist Web Site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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