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무릎이 나으면 추석 즈음부터 친구가 일하는 공장에 들어가기로 했었지만, 생각보다 회복이 오래 걸려서 별 것 아닌 계획도 수정해야 했다.


노동자는 노동을 팔아 밥을 사는 존재다.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양심 연줄 등은 상품성이 없으므로 그나마 팔 수 있는 노동력을 판다. 좀 더 좋은 조건에 노동력을 팔기 원하고, 가격과 조건이 맞지 않으면 거래를 잠시 중단할 수도 있다.


workers-78002_960_720.jpg


근로자는 노동력을 사주는 자본에게 근면성실 고객 서비스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과로사와 산재를 묵묵히 감내하기도 한다. 밥도 안 먹고 똥도 안 싸는 천사 같은 사람들이다. 근로자들이 많아야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져도 사회가 유지된다.


사회의 등골을 빠는 기생충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식탐도 더 커져서 그런지 근로자의 숫자유지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기생충을 줄이는 게 더 쉬울 것 같은데 나라를 경영하는 분들의 넒은 시야에는 다른 해결방법이 보이나 보다.


어떤 이들의 논리로 따지고 보면 험한 세상을 순진하게 살았다. 승산이 뻔한 싸움에 몇 년을 허비하느니 남다른 기술을 익히든가 자격증을 장만했어야 했다. 스스로 선택 했으니 결과도 스스로 감내해야할 몫이다.


관절부위라 그런지 날이 추워지면서 회복이 더뎠다. 가벼운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하중이 가해지는 노동은 버거운, 나이롱환자의 상태를 유지했다. 친구가 일하는 공장에서 철제의자를 만들고 나르기가 버거울 것 같았다.


유일하게 시장에 팔 수 있는 노동력의 품질이 저하되었다. 워크넷에 구직등록을 했더니 시화공단 자동차 부품회사의 최저임금 받는 시간제 정규직을 추천한다. 이명박 정권에서 시간제 정규직을 이야기할 때 뭔 소리인가 했는데, 저렴해진 인건비는 둘째 치고 월 100만 원이 안 되는 급여에서 통근시간과 비용을 제하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좀 더 놀기로 했다.


나라에서 서민들에게만 철저하게 공납 받는 군역을 마흔이 넘으면 면제해주는 이유가 있다. 그 무렵부터 유지비가 더 든다. 우리나라는 ‘민국(民國)’의 이름을 갖고 있지만 아직은 민이 목적이 아니고 자원이다. 몸을 좀 더 아껴 써야겠다. 개인적으로도 밥벌이 할 유일한 자원이다.


조상님들이 하신 말씀 중에 몇 가지는 거짓말이라고 느낀다. ‘때린 놈은 새우잠 자고 맞은 놈이 발 뻗고 잔다’는 말과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다. 당장 어쩔 수 없는 폭력에 고통 받는 당사자를 위로하고 험한 노동에 땀 흘리는 젊은이를 위로하기 위해 하는 하얀 거짓말 같다.


‘간절히 소망하면 우주가 소원을 이루어줄지도 모른다’는 기원을 담아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매를 많이 맞으면 간과 신장이 죽은피를 해독하다 과부하가 걸려서 병에 들어 버리거나 정신이 고장나버린다. 나이 먹고도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젊어서부터 해보지 않은 고생이 없다. 운 좋게 부자가 된 사람들도 쉬면 몸이 쑤신다며 팔을 걷어 부치고 직접 노동을 한다.


부자도 아니면서 노는 기간이 길어지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도서관을 오가고 치장할 필요 없어 마음이 편한 사람들만 가끔 만나던 것도 횟수가 줄었다. 공적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적인 네트워크를 다져야 하는데, 여력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소비지향적인 삶을 살지 않아 돈에 구애를 덜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수입이 없는 삶이 여러 달 계속되자 단조로운 일상도 부담스러워졌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강한 사람도 있다는데 스스로 위축된 나의 정신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나는 강하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비록 작고 약하더라도 살아갈 여러 방편 중에 하나를 선택할 자유 정도는 주어진다. 선택의 순간에 나의 약함을 이유로 상대적 약자에게 악한 선택을 하지 않기를 원한다.


스스로의 약함과 비루함을 새삼 깨닫지만 강자의 위치에 올라있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은 생겨나지 않는다. 강한 자에게 숙이고 약자에게 엄격해지는 하급의 인간들이 더 많아 보인다. 강한 자들을 존중하는 만큼 약자들에게 관대한 중급 정도는 도달하고 싶다. 상급의 인간은 약한 자들의 억울함과 슬픔을 듣고 그 편에 서서 강한 자들과 싸움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다.


시급 6.500원을 받고 콩나물 공장에 들어갔다. 지난 설날, 월급으로 연이 엮어진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봉투를 만들면서 약간의 즐거움과 안도감을 느꼈다. 마음이 참 약하고 간사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콩나물 공장에서 일한지 3개월이 지나자 무릎에도 제법 힘이 붙었다. 이미 상한 관절 주변의 뻐근함이야 평생 안고 가야 하지만 시큰거리거나 찌릿한 통증은 사라졌다. 적당한 육체노동은 오히려 건강에 유익하다. 문제는 적당한 육체노동으로는 보통의 삶을 유지할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거다.


소로의 삶을 흉내라도 내려면 기본적으로 홀로 삶을 선택해야 한다. 밴딩기에 비스듬하게 세워둔 박스묶음에서 박스 한 장을 들어 펼치고 접는다. 오른손으로 박스를 고정하고 왼손으로 콩나물이 담긴 비닐을 들어 입구에 넣는다. 커다란 찐빵 같은 콩나물 비닐을 네모난 상자에 넣는 일을 하려면 요령이 있어야 한다. 비닐의 모서리 부분을 박스의 모서리 부분에 맞추고 넣는 순간 약간의 스냅을 주면 자체 무게로 박스에 흘러들어간다. 부족한 부분은 상자를 들었다 바닥에 내리쳐서 마무리 한다.


박스 윗부분을 닫으며 밴딩하는 것만 하루 400개씩 3개월 정도를 하다 보니, <생활의 달인>이라는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국 노예자랑을 펼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능숙해졌다. 일을 할 때 들리는 파바박(박스 접는 소리), 퍽(콩나물 봉투 박스에 박히는 소리)하는 소리와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리드미컬하다. 이쯤 되면 밴딩기가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지 사람이 밴딩기의 밥을 주는지 모호해진다. 삶이 먹고 싸는 행위의 연속이라면 밴딩기도 살아있다고 해야 한다.


밴딩기에 콩나물이 서너 박스 쌓이면 출고될 물량은 포터에 싣고 남길 물량은 냉장고에 쌓는다. 공장장은 콩나물을 하우스에서 꺼내다 세척기에 세척을 한다. 세척된 콩나물을 저울에 달아 비닐에 담는 아주머니가 있다. 소량 재배하지 않는 이상 원시적인 콩나물 공장은 어디나 최소 3인은 되어야 작업이 가능하다. 


중국산, 캐나다산, 미국산 콩을 공매로 구입한다. 생산연수와 발아율에 따라 기본가격이 달라진다. 공매에서 실패한 경우 지정가로 구매를 하는데, 이 경우 구매량의 제한을 받는다. 허생 같은 분이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숙주를 키우는 녹두는 미얀마산을 쓴다. 이런 곳에서도 세계화를 발견한다.


콩을 재배용기에 담기 전 15시간 이상 불린다. 불린 콩을 고슬고슬하게 말려주고 약을 한다. 농약의 성분은 소독약과 성장촉진제다. 약이 부족하면 병이 돌 수도 있고, 과하면 중국의 농부들이 수박을 밭에서 폭파시킨 것처럼 콩나물이 두툼해지고 잘 부서진다. 약을 쓰지 않고 나물을 기르는 방법도 있지만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다. 가치보다는 가격경쟁력이다. 싸고 좋은 물건을 찾는 소비자의 선택과 잘 팔리는 물건을 찾는 상인의 절충점에서 약이 있다.


fd.jpg


오래 된 콩나물 공장은 축축하고 컴컴한 동굴과 같다. 식당에 납품한 콩나물에서 지렁이가 발견되어 난리가 났을 때, 오랜 경력의 업자는 당황하지 않고 이 콩나물이 지렁이가 살 수 있는 무공해 콩나물임을 주장했다. 생식기가 3~5개씩인데다 암수한몸인 지렁이는 번식률이 높고 세대주기가 짧다. 고농도의 농약에서 헤엄치는 능력까지 갖추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의 내성을 갖춘 개체들이 나타났다.


약을 하지 않고 키운 콩나물은 옥수수수염 같은 실뿌리와 살이 있는 뿌리의 비율이 일대일 정도고 살이 있는 부분도 가늘다. 나물을 한 움큼 쥐어보면 고무줄 같은 탄성이 느껴진다. 단단한 씨앗형태에서 새싹으로 발아하는 과정은 모험이다. 뿌리 눈을 틔고 발아를 시작하는 건강한 콩은 후레쉬 불빛에 반짝거린다. 건강하지 못한 콩은 이 부분에서도 구분할 수 있다. 콩 껍질을 벗어던질 힘도 부족해서 그 부분에 반점이 생기고 뿌리도 잘 자라지 못한다.


식물을 굳이 의인화 한다면, 물과 양분을 섭취하는 뿌리 부분은 입이다. 뿌리는 중력방향으로 자란다. 콩은 크기에 따라 대립·중립·소립으로 나뉜다. 보통 대립은 찜용으로 키우고 소립과 중립은 기호에 맞게 섞거나 따로 키워 곱슬이 콩나물로 기른다. 시장에서 파는 콩나물 뿌리처럼 구불구불하게 휘어지도록 적당히 발아한 콩나물을 다른 재배용기로 옮긴다. 그 과정에서 콩나물이 상하지 않도록 쏟아 붓지 않고 살살 통을 흔들어준다. 곱슬이 콩나물은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방법에 있다.


세척하고 포장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통에 모아두어 소를 키우는 축사에서 가져다 준다. 인근에 승마장이 있지만 말은 입이 고급이라 그런지 잘 먹지 않는다. 소는 600kg정도에서 출하하면 좋은데 등급을 받기위해 800kg까지 찌운다. 소를 키우는 분들도 등급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하는데 축협과 사료회사들의 반대를 넘을 재간이 없어 보인다. 사료를 먹여 근육사이에 지방을 찌우는 한우보다 초지에서 자란 수입소가 오히려 건강에 덜 해롭다.


구제역은 드물지만 사람에게 감염된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먼 훗날 산유국을 만들기 위해 돼지와 소를 수백만 마리를 죽여 묻었다고 들었는데, 구제역이 사람에게 감염되면 뼛속이 썩어 들어가서 절단해도 소용이 없단다. 뉴스에서는 고온에 삶아먹으면 괜찮다고 하면서 소와 돼지를 죽여서 의아했는데 괜찮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좋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신뢰감 있는 목소리로 뉴스를 전하던 앵커들이 생각난다.


‘높이 나는 새는 멀리 본다’는 말에 ‘낮게 나는 새가 자세히 본다’는 말이 나왔다. 새가 되어 날지 못하고 지렁이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삶을 눈으로 보지 않고 피부로 느낀다. 그렇다고 높고 낮게 나는 새들의 창자에 기생하는 기생충들의 격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지렁이들의 본능적인 생존활동은 대지를 살아가게 한다.




범우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