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전드의 시작
전설의 시리즈 <스타워즈>도 많은 회사로부터 거절당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영화 캐릭터들과 우주선들을 장난감으로 만들어줄 회사를 찾을 때의 이야기다.
1976년 스타워즈의 전 제작사 <루카스 필름>은 첫 스타워즈 영화가 개봉하기 전 스타트렉 시리즈의 장난감을 만들었던 <메고(Mego)>에게 스타워즈 장난감 제작 계약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다. 그렇게 1순위였던 회사에 거절당하고, 바비인형으로 유명한 <마텔사>를 포함, 다른 장난감 회사들과도 접촉하지만 모조리 거절당한다. 거절당한 이유는 명료하다. 장난감 회사들이 영화의 폭발적인 흥행을 예상 못 해서도 있지만, 일정이 너무 급박했기 때문이다.
보통 그 시절, 영화를 바탕으로 한 장난감은 1, 2년 전부터 개발에 착수했다. 그런데 스타워즈의 경우 감독이 아이디어 유출을 두려워한 바람에 개봉을 코앞에 두고서야 장난감 회사를 찾기 시작한 터이다. 거기에다 감독은 영화의 개봉과 동시에 장난감과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자 했다. 게다가 디자인은 또 어떤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스타워즈에 나오는 온갖 우주선들과 외계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대략 알 것이다. 각종 디자인툴과 제작 장비가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그런 복잡한 디자인을 영화사가 원하는 일정에 맞춰 장난감을 출시할 수 있는 회사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스타워즈 시리즈가 그렇게까지 흥행할 줄 알았더라면, 다들 목숨을 걸고 달려들어 직원들을 갈아 넣어서라도 출시했겠지만, 흥행이 보증되지 않은 영화에 그렇게까지 할 회사는 없었다.
결국 <루카스 필름>은 상대적으로 장난감 산업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시카고의 작은 회사까지 찾아간다. 그 회사가 바로 <케너>다. 케너는 주로 식품을 제조하는 제너럴 밀즈(General Mills)라는 회사의 자회사였다. 장난감 회사로서는 무명에, 작은 규모였다. 케너 임직원들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시안들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체결한다. 그 결과는 다들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스타워즈는 개봉하자마자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다. 장난감은 불티나게 팔렸다. 케너도 스타워즈가 그렇게까지 흥행할 거라곤 생각을 못 했고 회사 규모도 작았기 때문에 많은 수량을 찍어내지 않았고, 생산량을 맞추느라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결국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스타워즈 장난감은 한때의 허니버터칩이나 포켓몬빵 같은 제품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팔 장난감이 없어, 일종의 ‘예약 구매 티켓’을 먼저 팔았을 정도다. 케너는 스타워즈 장난감 덕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업계 모두가 이름을 아는 장난감 회사가 되었다.
스타워즈 피규어
출처-<Hasbro 홈페이지>
2. 실패의 축적
장난감이나 피규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케너사의 ‘스타워즈’ 이야기를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실패를 감수하고 모두가 외면하던 아이템에 베팅해 로또가 터진 것이나 다름없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케너사는 사실 스타워즈로 크게 성공하기 전에도, 그리고 또 이후에도,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거듭해 온 회사다.
일례로 영화 촬영용 카메라를 모방한 ‘무비 뷰어(movie viewer)’라는 장난감이 있었다. 이 장난감은 실제 촬영은 불가능하지만 영화를 촬영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가짜 청진기가 들어있는 의사 놀이 장난감처럼, 일종의 역할놀이 장난감이다. 혹은 플라스틱으로 된 가짜 립스틱과 칼 장난감처럼, 아이들이 동경할 만한 어른들의 물건을 장난감으로 구현한 상품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카메라 장난감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아 금방 단종되었다. 아마 ‘영화감독’이 좋은 직업이기는 하지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굳이 시키고 싶어 하는 직업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아마 가짜 영화감독 카메라를 갖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가짜 립스틱이나 가짜 총칼을 갖고 싶어 하는 아이들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에일리언, 스타워즈 무비 뷰어
출처-<filmkorn>
케너 사의 독특하고 용감한 시도가 실패한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무비 뷰어보다 더 처참히 실패한 장난감이 있다. 바로 뒤통수에 달린 줄을 당기면 눈동자의 색깔과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인형인 블라이스(Blythe)다. 머릿속에 작은 기계를 넣어 눈동자를 바꿀 수 있는 컨셉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눈 색깔이 바뀐다는 컨셉을 구현하고자 만들어진 인형 디자인이 문제였다. 인형의 몸은 바비인형보다 조금 작은 크기다. 바비인형과 같은 회사에서 출시하는 ‘스키퍼’라는 인형과 호환되는 크기였다. 여자아이들이 옷을 갈아입히는 인형이라, 기존에 유통되는 대중적인 인형과 옷 사이즈를 같게 하고자 채택한 사이즈로 추측된다. 그런데 얼굴 크기가 문제였다. 안구가 돌아가는 기계를 넣고, 안구가 바뀌는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기 위해서였는지, 얼굴이 너무 컸다. 얼굴 크기가 바비 인형의 10배인 이 인형을 좋아하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실제 인간과 너무 다른 비율의 이 인형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결국 인형은 1년도 안 돼 생산이 중단된다.
3.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 작은 변화가 쌓여 큰 영향을 초래하는 시점
그렇게 역사 속에 묻힐 것 같았던 이 인형은 30년 후 뜻밖의 기회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커다란 얼굴, 커다란 눈에 지나치게 작은 몸이 어느 사진작가에게는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뉴욕에 거주하는 사진작가 지나 개런은 70년대에 생산된 케너 브라이스를 주제로 사진을 찍고, 그것들을 모아 사진집으로 출판한다. 이 사진집은 일본 백화점 관계자의 눈에 띄어 백화점 홍보물 사진으로 이용된다. 이 사진들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결국 2002년부터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장난감 회사 중 하나인 타카라(현 타카라토미)에서 이 인형의 복각판을 만들게 된다.
브라이스와 지나 개런
출처-<위메이크프라이스·핀터레스트>
복각판 블라이스는 성인 수집가들을 대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도 이 인형이 알려져 강동원과 함께 ‘썬업뷰티’라는 음료수 광고 모델이 되기도 한다. 이 인형은 현재 피규어로 유명한 일본의 굿스마일 컴퍼니가 제작하고 있는데 전 세계에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이 인형을 커스텀하거나 옷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산리오사의 키티 캐릭터 디자이너인 야마구치 유코, 조니 뎁과 같은 유명인들도 이 인형을 수집한다. 염색약 브랜드 광고모델로도 사용돼 지금도 올리브영과 같은 드럭스토어에 가면 이 인형 캐릭터가 포장지에 인쇄된 염색약들을 볼 수 있다. 1년 생산되고 사라진 인형이 화려하게 재탄생한 셈이다.
그렇다면 70년대에 1년도 못 팔리고 단종됐던 최초의 브라이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브라이스 수집가들에게는 케너사의 빈티지 브라이스가, 명품으로 따지면 ‘에르메스’와도 같다. 비싸기도 비싸지만 구하기도 어려운 ‘끝판왕’이다. 가격도 당연히 비싸다. 일반적인 복각 브라이스가 20만 원대부터 100만 원대까지 거래되는 반면, 케너사의 브라이스들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수백, 수천만 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처참하게 부서지고 망가진 것도 오십 만원 정도에 거래될 정도다. 구매한다고 끝이 아니다. 오래된 플라스틱 인형이라서 습도와 빛을 조절해 가며 조심조심 다루어야 한다. 계속해서 이것저것 수리해 가며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도 수집가들은 이 케너 브라이스를 동경하고, 언젠가 꼭 구매하고 싶다는 평생의 꿈으로 삼기도 한다. 70년대, 아이들에게 외면받아 장난감 가게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재고 떨이를 해도 팔리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장난감이 지금은 누군가의 목표이자 꿈이 된 것이다.
4. 도전하면 실패도, 성취도 쌓인다
케너사의 다양한 시도와 같이, 실패를 감수한 과감한 도전은 외면받을 때가 많다. 외면받는 정도가 아니라 비웃음을 사거나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한 번 도전했다가도 쓰라린 실패와 다른 사람들의 날 선 시선 앞에서 기가 죽어 다시는 도전할 생각을 안 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살면서 한 번은 새로운 도전을 해봤더라도, 실패를 겪고 안정적인 삶의 궤도로 돌아왔을 것이다. 대부분의 도전은 그렇게 끝난다.
하지만 케너사와 같이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큰 과감한 도전’을 목숨 걸고, 진심으로 반복하는 사람은 대성을 거둔다. 흥행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영화의 장난감을 무리한 일정 맞춰가며 꾸역꾸역 만들고, 눈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 하나를 믿고 대중적인 바비인형 10배 크기의 얼굴을 가진 인형을 만드는 식이다. 그런 과감한 시도들은 스타워즈 장난감처럼 엄청난 성공을 곧바로 거두기도 하고, 무비 뷰어처럼 영원히 역사 속에 묻히기도 한다. 더불어 블라이스처럼, 처참한 실패였으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성공하기도 한다. 성공하지 못한 과감한 시도도, 성공한 과감한 시도도 다 남들이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 일로 보였을 것이다.
출처-<위키피디아>
누구나 실패를 하고, 그 실패와 그로 인한 비난은 우리를 바닥까지 끌어내리기도 한다. 한 번의 실패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도전했다가 실패나 거절을 당하는 경험은 우리 내면에 큰 상처를 준다. 그러나 실패의 고통을 알면서도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만이 결국에는 무언가를 이룰 확률이 높다. 실패를 통해 얻는 성과의 크기는 때때로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도 하다.
성공을 거둔 케너사는 이후 이 스타워즈 장난감의 수요를 잘못 파악해 무리하게 생산하다 몇 년 만에 경영난에 처했고, 장난감 대기업인 하스브로에 인수되었다. 블라이스 인형은 마니아층이 스타워즈만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충성도 높은 마니아층을 확보해 20년 넘는 세월 동안 생산되고 있다. 케너사로서는 안타깝지만, 항상 ‘하스브로’라는 로고를 달고 생산되는 중이다.
아마존 등에서 여전히 'Kenner'의 이름을 단
피규어를 판매하기도 한다
(출처-<아마존 캡처(2024.12.31.)>)
케너사의 흥망성쇠에 관한 의미 부여는 그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거다. 도전이 때에 따라 좌절도 초래하겠지만, 실패도 낳을 수 있는 그런 시도와 도전만이 성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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