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내란 중이다. 전 국민이 헌법에 위배되는 내란 행위를 직접 목도했음에도 내란 세력은 끝까지 저항하고 있다. 그들이 법원에 낸 ‘윤석열 체포영장에 대한 이의신청’ 내용을 보면, 이렇게까지 주장한다.

윤석열 법률대리인 윤갑근 변호사
(아직 선임계를 정식 제출하지 않고 있으니
법률대리 호소인이 더 맞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무상 기밀 그 자체이므로 대통령 신체 압수수색은 불가하다.”
며칠 전, 윤석열의 한남동 관저 앞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윤상현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결국 대한민국 체제 그 자체”
아직도 그들을 과소평가(!) 하는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들의 사고가 냉전 시대에 머물러 있는 줄 알았더니 전제군주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300년도 더 전에 존재했던 유럽 어느 절대왕정 군주도 비슷한 발언을 했었다.
“짐이 곧 국가다.”
저들이 내란을 저지르고도 당당하며, 헌법에 따른 사법 집행 절차마저 무시한 채 법 위에 군림하려는 사고와 태도를 당연한 듯 뽐낼 수 있는 근간은 무엇일까.
반역의 역사를 처단하지 못한 우리네 역사 때문이다. 매국 친일을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탓이요. 군부 내란 세력을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탓이다. 그리하여 처단의 역사를 겪지 않은 내란 세력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 기득권으로 살아남아 또다시 우리의 터전을 내란 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질기고도 질긴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본 기사에서 말하려는 바는 명확하다.
‘반드시 이번 내란에서 승리하여 내란 세력을 완전히 척결해야 한다.’
이 당연하고도 간단한 주장을 위해 독자께 몹쓸 짓을 하려 한다. 기사를 계속 읽고 있노라면, 눈살이 찌푸려지다 못해 얼굴 표정이 구겨질 수 있다.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만약 내란 세력이 승리한다면, 어떤 끔찍한 미래가 펼쳐질까?’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다큐 영화가 있다. 한 국가의 모습을 다룬 다큐이다. 과거 내란 세력이 승리하여 기득권을 독차지했고, 지금껏 그들을 처벌한 역사가 없는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도네시아를 다룬 영화 <액트 오브 킬링(2012)>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2012년 개봉한 영화다. 하여, 본 기사에서 지칭하는 ‘현재’ 혹은 ‘지금’은 2012년을 의미하는 바를 밝힌다)
내란과 처벌받지 않은 역사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군부는 독재 체제를 구축하려 했고, 이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학살했다. 피해자는 노조원, 무전 농민, 지식인, 화교 등 다양했다. 꼭 군부에 저항한 이가 아니더라도 무작위로 학살되었다. 최소 100만 명 이상이 살해된 대량 학살로서, 명백한 ‘내란 범죄’였다.
그 많은 국민을 군부가 직접 학살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 하여, 군부는 폭력배들을 고용하여 대리 학살을 자행했다. 그때 고용된 대표적인 폭력 조직 중 하나가 ‘판차실라 청년단’이다.

1965-66년 학살 당시 사진
출처-<한겨레>
인도네시아에서 이들은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학살을 저지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판차실라 청년단’은 오히려 영웅으로 대접받으며 쑥쑥 성장했다. 50년이 지난 현재는 300만 명의 청년 조직원을 보유하는 불법 무장 단체가 되었다.

‘불법’이라고 하지만, 말만 그렇다. 거물급 정치인들이 판차실라 청년회 행사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줄 정도로 정치권과 결탁되어 있고, 판차실라 청년회 내에서도 수많은 정치인이 배출되었다. 사실상 공식적인 단체로서 인정받고 있다.
도덕과 정의의 잣대가 무너진 사회
영국계 미국인이자 <액트 오브 킬링>의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당시 학살 가해자 중 한 사람이자 판차실라 청년회 주요 인물인 ‘안와르 콩고’에게 제안했다.
“당신의 학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은데, 어떤가요?”
안와르는 흔쾌히 승낙했다.
“나를 주인공으로 해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영화로 만든다고? 이건 우리의 대단한 업적을 알릴 기회야!”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출처-<더팩트>
조슈아 감독은 학살의 실체를 알리고자 제안한 것이지만, 처벌받지 않은 역사로 인해 도덕의 잣대가 무너진 안와르는 감독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신이 난 안와르는 자진해서 당시 학살을 저질렀던 동료 폭력배, 군부 인사, 언론인 등을 섭외하고, 각본 작업에도 참여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신이 난 학살자들이 스스로 학살 장면을 재연하고, 이 장면을 영화에 담는 미증유의 방식으로 촬영된 <액트 오브 킬링>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조슈아 감독이 처음부터 이런 컨셉을 생각한 건 아니다. 원래 조슈아 감독은 학살 피해자에 대한 영화를 찍으려고 했다. 그러나 학살, 즉 내란 세력이 승리한 사회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피해 생존자들은 인터뷰를 꺼렸고, 정부 관료들은 촬영을 방해했다.
반면, 가해자들은 인터뷰를 응하는 것을 넘어 자랑스러워했으며, 적극적이었다. 먼저 나서서 살인 장면을 재연해 주기까지 했다. 결국, 조슈아 감독은 영화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주인공이 된 가해자 안와르는 적극적으로 조슈아 감독에게 여러 컨셉의 장면을 제안했고, 조슈아 감독은 그 의견을 따라 촬영했다.
이 영화는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사회가 어떤 모습일 수밖에 없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겉으로는 온화해 보이는 어느 노인을 통해 본 그 모습은 처참하고도 슬펐다.
<액트 오브 킬링>이 보여주는 장면 14
장면 1.


주인공 안와르와 동료들은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학살 장면을 영화에 담기 위해 직접 배우를 구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피해자 역할을 해줄 배우를 구하러 마을로 온 그들. 자신들의 영웅담(?)을 영화로 만들 생각에 신나 있었다.
여기서 놀랐던 건, 마을 사람들의 태도였다.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학살자들의 인식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과거 학살 사건을 장난스럽게 대했으며,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웃고 떠들기에 여념 없었다. 학살자들이 당시 학살을 장난스럽게 재연하며 피해자들을 이토록 조롱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저 재밌는 구경거리 하나 본 듯이 천진난만하게 웃을 뿐이었다.



가장 끔찍했던 건 웃고 있는 마을 사람 중에는 학살 피해자의 유가족이 상당히 있었다는 것이었다. 자기 가족 혹은 친구 가족이 학살 당한 기억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한 채 그 현장을 즐길 뿐이었다. 진실을 모르는 무지(無知) 또한 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장면 2.
안와르는 영화 제작에 적극 참여하며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었다. 자신이 했던 학살을 더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를 보여 줘야 해. 그래야 나중에 사람들이 기억하지.”
도덕의 잣대가 완전히 무너진 사회에서 안와르는 자신이 했던 학살이 어떤 행위인지, 국제 사회에서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전혀 분간하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힘이 곧 정의’라는 논리뿐이었다.
장면 3.
안와르는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조슈아 감독을 안내했다.

"여기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거든요. (중략) 처음엔 때려 죽였는데 그럼 피가 너무 많이 나요. 그래서 여기에 피가 엄청 고이는데, 그걸 치우고 나면 비린내가 말도 못 해. 그래서 피가 많이 안 나게 하려고 이런 도구를 썼지. 보여 줄까요?"

"여기 기둥이 있잖아요. 전선을 여기 묶어요. (중략)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러면 피가 많이 안 나요."
안와르가 안내한 곳은 과거 자신이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던 장소.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람을 학살했는지 자랑스럽게 뽐냈다.
안와르와 함께 있는 남자는 안와르가 마을에서 모집한 배우 중 하나로 안와르의 영화 촬영을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안와르가 신나서 학살을 재연하자, 그는 안와르를 향해 "유쾌한 분"이라는 멘트를 날리며 분위기를 띄웠다.

지금까지의 모습도 혼란 그 자체건만, 더 어처구니없는 반전이 있었다. 이 남자는 과거 안와르와 같은 자들에게 가족을 잃었고,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는 것.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흥겹게 자신의 범죄 행각을 고백하는 안와르, 그리고 자신도 피해를 입은 유가족이면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당시의 학살을 함께 조롱하는 남자.


남자는 이후 안와르를 포함하여 다른 가해자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가족의 죽음을 고백하면서도 별거 아니라는 듯 역사적 비극이자 개인적 비극을 웃어넘겼다.
장면 4.
안와르의 동료이자 판차실라 청년회 지도자 중 한 명인 사피트 파르데데. 그를 중심으로 판차실라 청년회 조직원들이 도시 상점 곳곳을 다니며 돈을 뜯었다.

"돈이 필요할 땐 오래된 친구가 최고지. 다른 데선 돈이 적으면 안 받아."


"돈이 필요합니다. 좋은 말로 부탁하고 있잖아요. 다른 데선 부탁 안 해요. 그냥 주먹으로... 이얍! 배에 어퍼컷을 날리지."

"이번엔 어디로 가 볼까?"

"우리 조직에 큰 회의가 있어서 돈이 필요해요. 평소보다 더 많이 필요합니다. 평소처럼 주면 안 됩니다."
(돈을 받은 후)
"이게 뭐예요? 더 안 주면 안 받아요."
"제발..."
"그런 푼돈은 안 받아요."
"여기....."
"그것도 부족해요. 좀 더 써요. 그럼 받을게요. 이 돈을 어디다 쓰라고. 돈 전부 다 줘요."

50년간 잘못된 역사가 바로잡히지 않은 사회, 학살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사회에서 일반 시민들이 보여준 모습은 정의가 된 가해자들의 인식을 쫓아갔다. 시민들은 힘 있는 가해자의 생각을 닮아가려 했다. 가해자들의 당당한 모습에 익숙해져 갔다. 결국엔 그 모습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며 체념했다. 저항하면 바뀐다는 희망조차 볼 수 없었다.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역사를 당연하게 여겼다. 당연하게 돈을 뜯기는 상인들의 표정에서 그 모든 것이 담긴 공허함이 보였다. 이것이 내란이 제대로 척결되지 않으면 벌어질 진짜 비극의 모습이다.
이 장면에서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의 모습이 보였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끊임없는 사건·사고가 터졌고,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언젠가부터 이를 더욱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져갔다. 윤석열 정부에서 또 다른 부패 사건이 터져 나와도 "그럼 그렇지"라는 냉소적인 평가와 함께 당연한(?) 듯 넘어갔다.
부정부패에 대한 적응, 그리고 익숙함.
12.3 내란사태라는 그야말로 광적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많은 국민들의 도덕적 잣대는 빠르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이제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정의와 도덕을 바로 세우느냐, 더욱 빠르게 무너뜨리느냐.
장면 5.

"우리 판차실라 청년회가 프레만(자유인이라는 freeman에서 유래된 말로 정치깡패를 칭함) 조직이라고 비난하는데, 프레만은 제도 밖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공무원이 아니에요. 프레만은 자유인이죠. 이 나라에는 자유인들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공무원이 된다면 관료의 나라가 돼서 되는 일이 없어요. 뭐든 하려면 프레만이 필요합니다. 일을 처리할 자유로운 개인 말이죠. 우리에게는 기꺼이 위험을 무릅쓸 프레만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주먹을 쓰세요. 주먹은 사람을 때리는 도구가 아닙니다. 하지만 가끔은 사람을 때려야 할 때도 있죠."
(환호하는 소리)
"영원하라. 판차실라!"


한 나라의 부통령조차 무엇이 잘못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그 인식을 가질 사회적 잣대조차 없다. 잣대가 없으니, 최소한의 위선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50년간 가해자의 논리만 학습해 간 모습이었다.
장면 6.
안와르는 자랑스러워하며 조슈아 감독에게 자신의 동료들을 소개했다. 이들은 현재 인도네시아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떨치는 인물들이었는데, 그중 언론인으로서 과거 학살에 가담했던 ‘이브라힘 시니크’가 있었다. 이브라힘은 현재 수마트라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큰 영향력을 떨치는 언론인이 되어 있었다.

또 신나게 무용담을 풀어놓는 안와르.

"이분은 항상 정보를 캐냈어요. 정보를 얻고 나면 이렇게 말해요. '유죄야' 그럼 우리가 끌고 나가서 죽였죠."
조슈아 감독은 이브라힘에게 더 깊은 질문을 했다.

"사무실에서 공산당원 심문할 때 어떤 질문들을 하셨습니까?"
"질문이 뭐든 우리가 대답을 바꿨어요. 죄인으로 보이게 하려고요. 신문 기자로서 내가 해야 했던 일은 대중이 그들을 미워하게 만드는 거였죠."
장면 7.
<액트 오브 킬링>에는 또 다른 고위직 언론인 ‘소아두온’도 출연했다. 안와르가 학살 장면을 재연하는 촬영장에 그가 방문했다. 그는 이브라힘의 신문사 기자이기도 했다.


학살 장면을 재연하는 안와르와 동료들.

해당 장면을 보며 웃는 소아두온.
그는 당시 학살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예리한 기자라고 자평하는 그 역시 당시 학살에 대한 문제 인식을 갖고 있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재연 장면을 본 후,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자네들이 재연하는 걸 보니 (당시) 정말 일을 매끄럽게 처리했다는 걸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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