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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해자를 조롱하는 유가족

 

 

 

본 연재는 내란 세력이 승자가 되고, 가해자 누구도 처벌받지 않은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독재에 저항한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모조리 죽였다. 이들이 학살당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도 같이 학살당했다. 최소 100만 명 이상이 죽은 대량 학살이었다.

 

그러나 이 내란 세력은 승자가 되었고,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영웅이 되었다. 이후 인도네시아 사회는 50년간 그들의 논리로 세뇌되어 갔다. 본 기사는 이런 인도네시아 사회의 모습을 다룬 영화 <액트 오브 킬링(2012)>을 통해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내란 세력이 승리한 세상의 모습

 

장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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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와르의 동료이자 판차실라 청년회(과거 학살을 자행했던 깡패 집단) 간부로 활동하는 헤르만 고토. 그는 별다른 지식이나 사명감은 없는 인물이다. 학살 이후에 태어난 세대로 안와르를 옆에서 잘 보좌(?)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별다른 능력은 없지만, 판차실라 청년회 활동을 활발히 했다. <장면 4>에서 상인들에게 삥 뜯는 판차실라 청년회 조직원 중 한 명이 헤르만이다. 이런 활동 덕에 그는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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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만세. 저는 헤르만입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선거일에 꼭 저에게 투표해 주십시오."

 

그는 선거 운동에 따라다니는 조슈아 감독(액트 오브 킬링 감독)과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했다.

 

"만약에 당선이 돼서 건축위원회에 들어가면 저는 온갖 사람들한테 돈을 받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건물이 10센티미터가 짧다고 하면 건물을 허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럼 제발 신고하지 말라면서 돈을 주죠. 건물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해도 어쨌든 협박을 하면 돈을 줄 거예요. 그냥 푼돈이 아니라 건물 10개가 있는 블록에서 만 달러씩 받으면... 계산을 해 보세요. 벌써 10만 달러죠. 한 동네에서만요."

 

그는 위선조차 연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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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조차 보이지 않는 이유는 여기서 나타났다. 선거 운동 중인 헤르만. 만나는 유권자마다 이런 말을 했다.

 

"선물 없어요? 선물 줘요."

 

"선물은 당선되면 드릴게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일일이 다시 와서 선물을 줘요?"

 

후보의 됨됨이와 공약보다는 선물에 집중하는 사람들. 천진난만하게 선물을 요구했다. 잘못이 잘못인 줄 모르는, 혹은 잘못인 걸 알면서도 자포자기한 채 당장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사람들.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접은 사람들. 그렇기에 눈앞의 이익에만 더 매달리는 사람들.

 

정의와 도덕의 잣대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유권자들부터가 부정부패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후보가 아무리 부정부패하더라도 당장 자신에게 조그만 이익이라도 된다면, 그 후보를 택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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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은 결국 선거에 당선되지 못했다. 불법인 판차실라 청년회 소속이라서라든가 됨됨이가 좋지 못해서 혹은 공약이 별거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유권자들에게 뇌물을 충분히 뿌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장면 9.

 

안와르의 동료는 다방면에 걸쳐있었다. 이번에 안와르가 소개한 동료는 북부 수마트라 주의원 마르주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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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감독은 그 자리에서 마르주키를 인터뷰했다. 

 

"판차실라 청년회가 어떤 불법 사업을 하죠?"

 

"도박이지. 나이트클럽도 있고, 밀수도 하고 불법 어업, 불법 벌목... 이런 걸 하죠. 돈 안 갚는 사람들한테 협박도 하고요. 사람들은 날 무서워해요. 내가 폭력배들을 거느리고 있어서 돈을 안 내면 사람을 보내기도 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과 친분까지 있으니까요. 군대나 경찰, 정부... (중략) 정부의 치안 유지에는 판차실라 청년회가 필요합니다. 그걸 경찰한테만 맡기면 제대로 통제가 안 되거든요."

 

"뭘 통제해야 하죠?"

 

"프레만(판차실라 청년회 같은 불법 무장 단체, 즉 정치 깡패)들은 방위와 폭동 둘 다 통제할 수 있어요. 공산당을 몰살하면서 우린 우리의 능력을 증명했죠. 권력 있는 사람들은 이제 알아요. 프레만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걸요." 

 

정치인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게다가 마르주키는 이 발언을 공개적인 촬영에서 당당하게 했다.

 

그는 돌아온 선거에 다시 출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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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차실라 만세'를 외치는 마르주키와 환호하는 사람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돈 받고 모인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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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무장 단체의 조직원이기도 한 마르주키 의원은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득표에 도움이 되었고, 그 무장 단체가 하는 불법적인 일을 드러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이것이 문제인지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장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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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촬영했던 학살 장면을 보며 흡족해하는 안와르. 그는 이 영화가 좋은 가족 영화라고 말했다. 그때 조슈아 감독이 물어봤다.

 

"공산당원 자녀들이 이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당연히 그렇긴 하지만 이게 어떤 영화인지 안다면 아마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모르니까 보고 싶어 하겠죠." 

 

승리한 가해자가 쓴 역사, 그들의 논리가 50여 년을 지배해 온 사회, 그곳에선 진실을 아는 사람도, 궁금해하는 사람도 만나기 쉽지 않았다. 그곳에 진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장면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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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와르와 동료들은 공산당을 무찌른 영웅적인(?) 영화를 찍는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 국영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국영 방송은 학살을 자행했던 판차실라 청년회를 높이 추켜세웠으며 영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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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에 신난 안와르는 마음껏 자신의 학살 영웅담(?)을 맘껏 뽐냈다. 마피아 영화에서 봤던 각종 살인 방법으로 다양한 학살을 했다고 자랑하는 안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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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 방송 진행자는 그런 안와르를 다시 한번 추켜세운다.

 

"안와르 씨와 동료들이 공산당원들을 숙청하는 새롭고 효율적인 방법을 개발한 거군요~!"

 

이러한 진행자의 발언과 함께 방청객으로 온 판차실라 청년회 조직원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진행자는 이어서 질문했다.

 

"이 영화가 젊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안와르와 같이 출연한 판차실라 지도자 중 한 명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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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절대 잊어선 안 돼요. (중략) 그리고 (학살 피해자 및 그 자녀들과) 화해 같은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지난 일이잖아요. 이렇게 흘러갈 얘기예요. 화해 같은 건 없어요."

 

"그 자녀들은 왜 한 번도 보복을 안 한 건가요?"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겁니다."

 

방송은 안와르와 판차실라 청년회를 칭송하며 마무리됐다. 이것이 인도네시아 국영 방송에서 나간 내용이었고, 안와르와 판차실라는 더욱 영웅이 되었다.

 

장면 12.

 

안와르의 동료이자 함께 학살을 저질렀던 아디 줄카드리.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그들이 죽을 때까지 항문에 나무를 넣었어요. 나무로 목을 짓누르고 목을 매달고, 전선으로 목을 졸라 죽이고, 머리를 베고 차를 타고 쳐 버렸죠. 우린 그래도 됐어요. 그러니 사람을 죽이고도 처벌을 안 받았죠. 죽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자기 위로인지 몰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괜찮아요. 죄책감도 안 들고, 우울하지도 않고, 악몽을 꾸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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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중 누구도 자신이 한 일을 잘못된 것이라 말하지 않았다.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없었다. 50년간 가해자의 논리를 세뇌한 인도네시아 사회는 오히려 그들의 학살을 더 추켜세워줬다. 

 

아디는 안와르의 동료 중 그나마 객관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안와르 및 다른 가해자와 달리 자신이 저지른 일이 비판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동료들이 너무 직접적인 표현이나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려 할 때,

 

“그렇게 하면 좋지 않아.”

 

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고, 잠깐씩 영화의 성공을 걱정하기도 했다.

 

“이 영화가 성공한다면, ‘공산주의자들은 잔인하다’는 선전·선동은 거짓이 되어버릴 거야. 잔인한 건 우리들이었다는 걸 보여주겠지. (중략) 우리는 촬영의 모든 걸 확실히 이해해야 해.”

 

그러나 완벽하게 역사의 승자가 된 지금, 그는 티끌의 죄책감, 혹은 잘못된 일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마저 스스로 증발시켰다. 그는 정신 무장을 했고, 견고한 자기합리화를 다시 한번 완성했다. 그것이 그가 현재 아내, 딸과 화목한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장면 13.

 

안와르가 재연한 학살 장면이 다 끝나고, 마지막 부분에 나온 장면은 실로 기괴했다. 이 장면은 안와르가 제안하여 연출된 장면이었다.

 

천국을 묘사한 평화로운 자연 한 가운데에 가해자 안와르와 전선으로 목 졸려 학살당했던 피해자가 같이 있는 장면. 피해자는 안와르를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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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처형하고 천국으로 보내 줘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메달을) 드립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정말 감사합니다."

 

피해자는 안와르의 손을 높이 치켜들며 최고의 찬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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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본 안와르는 말했다.

 

"훌륭하네요, 조슈아. 아주 좋아요. 내가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정말 마음에 드는 한 가지는 저 폭포가 주는 강렬한 느낌이에요."

 

이 장면은 안와르의 의식 세계를 반영한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학살이 죄가 아니라는 걸 넘어 오히려 피해자를 구원한 행위였다는 의식을 완성했다. 가해자가 승리한 역사에서 인간이 의식이 어디까지 왜곡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장면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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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장면을 보던 안와르. 잠시 뜸을 들이더니 갑자기 조슈아 감독에게 다시 앞 장면을 보여달라고 했다. 

 

영화에서 안와르는 학살 가해자로서의 자신도 연기했고, 피해자 역할을 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자신의 '업적(!)'이면서도 인도네시아의 찬란한 '역사(!)'를 영화로 표현하느라 피해자 역할까지 맡았던 것이다. 

 

안와르는 자신이 전선으로 목이 졸려 죽은 피해자를 연기한 장면을 보여달라고 했다.

 

".... 그 장면 있잖아요. 내가 전선에 목이 졸려 죽는 장면, 지금 있어요? 그거 좀 틀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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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지만, 피해자가 된 자신을 한참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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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장면을 보는 안와르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한참 영상을 보다 조슈아 감독에게 질문했다.

 

"내가 예전에 고문했던 사람들도 기분이 나처럼 저랬을까요? 내가 고문한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 같네요. 왜냐하면 저럴 때 나란 사람의 존엄성이 파괴됐잖아요. 그리고 공포를 느꼈죠. 저 순간에... 갑자기 온갖 공포가 내 몸을 파고들었어요. 온 몸이 공포에 휩싸이더라고요."

 

"그때 고문당한 사람들은 훨씬 더 고통스러웠죠. 안와르 씨는 영화란 걸 알지만, 그들은 죽는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느낄 수 있어요. 정말 느껴져요. 아니면 내가 정말... 죄를 지은 건가요? 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짓을 했는데, 그게 다 나한테 돌아오는 건가요? 그건 아니면 좋겠네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안와르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왜 그 장면을 다시 보여달라고 했고, 갑자기 눈물을 흘렸을까. 이후 그는 <장면 3>에서 갔던 학살의 장소를 다시 찾았다. 다시금 찾아온 그곳에서 안와르가 보여준 모습은 그전과 사뭇 달랐다. 그는 그곳을 쭉 둘러보더니 구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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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가 사과와 반성을 한 건 아니었다. 구토한 뒤 그는 이내 정신을 다시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왜 죽여야만 했냐고요? 죽일 수밖에 없었어요. 내 양심이 그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고 했거든요...."

 

그는 또 한 번 구토를 한 후, 그곳을 빠져나왔다.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는 왜 울었을까. 왜 구토했을까.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와서일까. 자신에게 닥칠 내려질 저주가 두려웠던 것일까. 정확한 건 안와르 자신조차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건 여기서 중요 포인트가 아니다. 

 

중요한 건 그의 태도가 이 세 가지를 충족한 후에 변화했다는 것이다.

 

①연기로나마 피해자 입장을 느껴봄

 

②자신이 했던 짓을 (영상을 통해)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봄

 

③이로 인해, 자신이 했던 업보가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계속>(링크)

 

Profile
본명 : 임지현 / 딴지일보 기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국내외 정치를 필두로 다양한 이슈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은 제보 바랍니다.
메일은 ddanzi.limkwonsan@gmail.com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