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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해자를 조롱하는 유가족

 

2. 위선조차 없는 사회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주인공이자 자신이 저질렀던 내란 범죄(학살)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던 안와르. 자신이 피해자를 연기해 보고, 자신의 학살을 재연한 영상을 보더니 눈물을 보였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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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잡힌 역사의 중요성

 

가해자를 가해자로 보여주는 ‘객관성’과 가해자는 그 대가를 받게 된다는 ‘두려움’이 안와르의 태도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안와르는 자신이 한 행동이 범죄였으며 자신은 가해자라는, 있는 그대로의 교육 및 사회적 지탄을 받은 적이 없다. 법적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자신이 한 짓을 가해자의 논리로 합리화했으니 그 업보가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무속적 두려움조차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촬영한 영상(학살을 재연한 영상)을 통해 각색 없이 있는 자신의 행동을 바라볼 기회를 가졌고, 이로 인해 법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지만, 무속적 업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 (물론 오랜 기간 가해자의 논리로 무장한 안와르는 이내 정신을 다잡고 자기합리화를 시도했다)

 

(안와르는 <액트 오브 킬링>이 개봉된 지 7년이 지난 2019년 사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슈아 감독은 자신이 인터뷰한 수십 명의 가해자 중 안와르만이 유일하게 학살에 대한 트라우마를 내비쳤던 인물이라고 했다. 안와르는 반성과 사죄를 한 건 아니었지만, 악몽을 꾼다는 말을 했었다. 조슈아 감독은 ‘만약 그가 살았던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였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건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해도 마찬가지다. 가해자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역사의 객관성’,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역사의 두려움’. 이 두 가지가 바로 서야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최근 최재천 교수가 뇌과학적 시선으로 ‘양심’을 분석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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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

출처-<김영사>

 

“결국은 양심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도 필요하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필요한 거죠. 그런 것들이 잘 맞아떨어져야 양심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거니까. 양심적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환경이 자꾸 만들어지면, 솔직히 여러분 상당수가 비양심적으로 살게 될 겁니다. 지난 한 십몇 년 동안 우리 사회가 자꾸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았나 하는 게 걱정돼서 이런 이슈를 던져 본 거죠.”

 

역사의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과 비양심적인 짓을 했을 때 받아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사람들의 반응 및 처벌)가 합쳐졌을 때 개인의 양심이 바로 서고, 결국 사회 전체까지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양심에 대해서는 한강 작가도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군인의 총부리보다도 더 강한 게 양심이다.”

 

-‘소년이 온다’ 中-

 

 

양심 : 산 자가 노력한 결과

 

한강 작가는 지난달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작금의 내란사태와 관련하여 두고두고 회자될 질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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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

출처-<노벨상 페이스북>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답한다.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붙는다. 현재가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해야 하며, 산 자가 죽은 자의 메시지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죽은 자의 메시지를 기억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산 자의 몫이다. 우리 사회가 1980년 광주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면, 1980년의 광주와 그 시민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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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1>

 

비상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국회로 달려와 계엄군을 막은 시민들, 위법한 명령을 거부하거나 일부러 태업한 계엄군, 국회 봉쇄를 뚫고 악착같이 국회로 들어와 계엄 해제 투표를 한 정치인은 모두 1980년 광주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진행된 탄핵 과정에서 거리로 나선 수많은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기억이 명분 없는 비상계엄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켰다. 그간 우리 사회가 드라마, 영화, 문학, 역사 교육, 가요, 기념행사 등을 통해 죽은 자의 메시지를 이어받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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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일보>

 

우리 사회가 항상 과거를 기억했던 건 아니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의 손바닥 王자와 흰색 눈썹을 비롯한 여러 무속적 행태가 드러났지만, 우리 사회는 결국 그를 선택했다. 구한말 총애하는 무당에게 진령‘군’이라는 군호(왕족 등에게 주어지는 최고 작위)를 내릴 만큼 무속에 빠졌던 고종과 명성황후. 우리 사회는 이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무속을 국정에 깊이 개입시킬 때 나라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백성들의 삶은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우리 사회는 기억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사회가 1980년의 광주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윤석열이 명분 없는 계엄을 선포했을 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이 이하로는 떨어뜨릴 수 없다는 기준이 1980년 광주에 의해 우리 사회에 박혀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한 그간의 노력이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

 

과거 정치는 소수 귀족·양반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백성들은 개개인의 먹고 사는 문제에만 신경 쓰면 됐다. 반면, 현재 정치는 그 과정이 전 국민에게 공개된다. 싸우는 과정 하나하나를 보게 되며, 전 국민이 참여하는 일이 되었다. 시민들은 이제 본업과 더불어 정치에도 참여해야 한다. 투표 날에 직접 투표소에 가서 대리인을 뽑아야 하며, 그 대리인들이 잘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보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 때문에 스트레스는 더욱 쌓이고, 신경 쓸 일은 더 많다. 골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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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하지만 원래 민주주의란 게 골 아픈 것이다. 자유를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건 그만큼 자유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제도는 민주주의니까.

 

민주주의가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다. 기득권이 무너뜨리려 하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언론이 망가지고 시민이 게을러지면 언제든 중우정치로 흘러 무너질 수 있는 게 민주주의다. 이익만을 좇는 악은 그 욕구만큼이나 강력하고, 연대를 기반으로 한 정의는 삶의 고단함에 비례하여 나약하다. 그렇기에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국민들의 관심을 요구한다.

 

피곤한 제도지만, 민주주의가 지켜져야 자유가 있고, 자유가 있어야 기득권이 고정되지 않고 순환될 수 있다. 그래야 교육이 골고루 퍼져 꿈을 펼칠 수 있고,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성장도 가능하며 볼거리, 먹거리, 등 다양한 문화가 풍성하게 생산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자유가 있어야 개개인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유식한 말로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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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없었다면 이 영화도 없었을 것이다.

출처-<연합뉴스>

 

 

반드시 내란에서 승리해야 한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인정하긴 싫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 현실이 그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12.3 내란사태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승리하여 다시는 내란 세력이 이 땅에 고개 들 수 없도록 처절하게 처단해야 한다. ‘12.3 내란 진상규명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모조리 찾아내서 처단해야 한다. 내란을 설계한 자, 실행한 자, 극우 유튜버를 포함하여 동조한 자, 앞으로 동조하는 자 모조리 처벌해야 한다. ‘5.18 특별법’으로 인해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한 지만원이 현재 감옥에 있듯 ‘12.3 특별법’을 만들어,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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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링크

 

역사를 바로 세워 후대에 12.3 내란사태를 옹호하는 이가 나올 수 없게 해야 한다. 이런 일을 저지른 자는 반드시 처단된다는 교훈을 못 박아야 한다. 이 과정이 완성되기 전까진 내란은 끝난 게 아니다. 그때까진 방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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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관저

출처-<뉴스1>

 

이번 내란을 어떤 자세로 처리해야 하는지 잘 담겨있는 발언으로 마무리하며 본 연재를 마치겠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프랑스는 나치부역자 6,763명 사형. 26,529명 징역. 정치인, 언론인, 작가, 시인 등은 가중처벌을 할 정도로 엄격하게 질서를 잡아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프랑스 보수주의자들이 

 

“너무 지나치다. 이 정도면 됐다. 이쯤에서 멈추자!”

 

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 프랑스 공화국의 국부 ‘샤를 드골’과 프랑스 대문호 ‘알베르 카뮈’가 남긴 발언이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공화국 프랑스는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을지라도 또다시 민족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샤를 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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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임지현 / 딴지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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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정치를 필두로 다양한 이슈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은 제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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