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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못 잡아가는 거야? 너희 대통령 탄핵당한 거 아니었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요즘 핫하디 핫(?)한 한국 뉴스로 대화를 시작했다. 영국인이 봤을 땐,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큰 틀에서는 공화정과 입헌군주제의 차이가 있을 테고, 의회민주주의와 대통령+국회 시스템에 대한 차이도 있다.

 

게다가 영국은 양원제다.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이 나뉘어 있는 구조라 단원제인 우리나라 국회에 하는 일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할 수 있다. 대부분의 수사와 기소를 경찰에서 담당하는 영국과 달리, 우리는 경찰, 검찰 그리고 공수처까지 있다. 이걸 다 설명해 주고 현 상황까지 브리핑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다행히 친구는 언론의 보도를 잘 쫓아오고 있었다. 장황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영국에서도 매일 주요 소식 중 하나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계엄령 및 탄핵 소식을 전한다. 보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보고, 알게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 되었다.

 

요즘 영국인들은 한국 소식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BTS의 음악을 알람으로 해 놓고, 슈퍼에서는 김, 라면 김치 등을 구매하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대한민국 위상도 비례해 올랐고, 덕분에 한국에서 벌어지는 소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쉽게 세간의 이슈가 된다.

 

그래서 더 괴롭다. 좋은 일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12.3 이후로 대답하기 난감하고 부끄러운 질문을 던지는 지인들이 늘고 있다. 오늘도 한 친구가 물었다. 도대체 왜 체포를 못 하는 거냐고.

 

"Why it is so hard to arrest South Korea’s impeached president?"

(탄핵당한 대통령에 대한 체포가 왜 그렇게 어려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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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질문은 비단, 나의 친구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영국인이 궁금해한다. 도대체 왜? 국민을 대리하는 국회의원들이 탄핵한 (엄밀히 말하면, 국민에 의해 탄핵당한) 대통령, 게다가 부당한 계엄령을 선포해 법원의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상황인데 왜 체포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영국에도 계엄이 있을까?

 

영국인들에게는 ‘계엄령’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 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영국에는 비상 대비법(Civil Contingencies Act 2004)이 있다. 1920년, 비상사태법(Emergency Powers Act)을 개정하며, 84년 만에 의회를 통과된 법으로 전쟁이나 테러, 자연재해와 같은 매우 심각한 위기 및 비상 상황에 대해 정부가 특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과거 비상사태법은 대규모 파업이나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집단시위와 같은 내부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제정되었지만,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 및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토니 블레어 시절에 개정했다. 외부적 요인에 의한 위험 상황이 아닌 이상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비상대비법은 특정 지역을 봉쇄하거나 철도, 교통 등과 같은 인프라를 통제하고, 대규모 집회와 같은 민간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군대를 동원하여 민간을 통제하거나 구속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군대의 역할이 비상사태 시 경찰을 보조한다는 ‘Aid to Civil Authorities(민간 당국 지원)’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유사시 군의 배치 자체는 가능할 수 있으나 경찰의 지휘를 받는 보조 역할에 국한된다. 그렇게 되면 경찰에게 너무 큰 권한이 발생하는 것 아닌지 반문할 수 있지만, 만약 경찰을 통해 체포, 구금이 되더라도 법원의 승인 없이 민간인 구속은 불가능하다. 여러 차례에 걸친 권한 감독이 실시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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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털루 학살을 묘사한 그

 

과거 영국에도 군이 투입되어 대규모 집회를 진압한 적이 있다. 1819년, 즉 200여 년 전 즈음 벌어진 일로, 이름하여 피터루 학살 (Peterloo Massacre). 1815년에 있었던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를 풍자적으로 인용하여 명명된 사건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심각한 경제불황과 실업난에 시달리던 영국은 전쟁이 끝난 뒤 곡물법(Corn Laws)을 제정하여 곡물 수입을 제한하여 농산물 가격 상승을 억제하려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공급이 줄어들자, 곡물로 가공된 식품의 가격이 오르게 되었고, 가뜩이나 먹고 살기 어려웠던 민생 경제가 바닥을 치게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법을 제정하는 권한은 의회가 갖고 있었지만, 정치권은 귀족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노동자 계층은 투표권이 없어 정치를 하는 이들이 사회를 지탱하던 노동계급에 속한 국민들의 눈치를 볼 일이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식품값이 올라도 가계에 영향받지 않는 이들에게 곡물법 개정과 같은 사안은 민생보다 이권이나 정치적 명분을 쌓는 정도로 이용될 뿐이었다. 프랑스와의 전쟁 후, 더 이상 수입하지 않아 프랑스에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는데, 이게 민생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예상하지 않았다.

 

중산층과 함께 노동자들은 모든 국민들에게 부여되는 보통선거권(Universal Suffrage)과 의회 개혁을 요구했다. 영국 정부는 이들을 반란분자로 간주하고 군을 동원해 해산시켰다. 그 과정에서 18명이 사망하고 6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신 언론은 이 사건을 피터루 학살이라고 명명했고, 영국 정부는 시민들의 동요를 막고자 집회와 출판의 자유를 제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영국의 민주주의 운동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국민의 필요가 선거를 통해 표현되고, 이를 법으로 제정함으로써 국가적 안녕이 온다는 것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3년이 지난 1832년, 선거법 개혁(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으로 이어졌고, 모든 계층에 투표권이 확대되었다(다만, 이런 때에도 여성들에겐 투표권이 제한되었다).

 

새 농사를 지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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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28시간 경찰과의 대치 끝에 서울로 진입할 수 있었던 전봉준 투쟁단. 시민들의 용기와 힘으로 국가의 부당한 권력을 무너뜨린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 농민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밭을 다 갈아엎어야만 다시 새롭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밭을 가는 심정이다.”

 

4.19혁명과 5.18, 6월 항쟁 그리고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갈아왔던 밭들은 새로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아주 더디지만, 우리 역사는 조금씩 진보해 왔고, 지금도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가 마주한 정치적 위기는 이내 위기를 넘어 기회로, 또 다른 세계로의 안내 지침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