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자동차 산업을 버리고 비행기 산업에 올인한 대표적인 국가다. 자동차가 만연하던 시절, 미래의 교통수단은 비행기가 될 것이 판단하고 이 같은 결정을 단행했지만, 아직 비행기 산업이 자동차 산업을 대체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영국이 여전히 항공업계 선두 주자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이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
콘크리트 벽은 범죄다
새와의 충돌, 착륙 기어 고장 등 다양한 원인 분석이 있었지만, 영국의 주요 항공 안전 전문가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활주로 끝에 있던 콘크리트 외벽은 존재 자체가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국제항공 소식지 ‘Flight International magazine’의 편집장이자 영국의 항공 안전 전문가 데이비드 레어마운트(David Learmount)도 이번 참사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활주로 끝에 있는 콘크리트 벽을 꼽으며, 이 벽의 존재 자체를 “범죄적 행위”라고 표현했다. 콘크리트 외벽이 없었다면, 181명 중 179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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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공항 활주로 말단에 설치되는 유도로 종단 벽은 공항시설의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충돌 시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EMAS(항공기 제동 안전 구역, Engineered Materials Arrestor System)일 경우 특수 소재로 만들어져 활주로를 이탈한 항공기의 속도를 줄여 안전하게 멈출 수 있도록 설계되는데, 그런 활주로에 콘크리트가 웬 말이냐 하는 것이다.
무안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구조물은 항공기의 착륙을 돕도록 하는 로컬라이저라는 네비게이션 시스템이다. 이는 활주로와 평행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무안 공항의 경우 높이가 4m나 되었고 재질도 콘크리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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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컨설팅 전문가 로스 에이머(Aero Consulting Experts 창립자)는 무안공항에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이 탑승객 사망의 원인이 되었고, 그런 구조물은 활주로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48년 조종사 경력의 갖고 있는 Axten Aviation 의 크리스 킹스우드(Chris Kingswood)도 BBC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활주로 특정 범위 내의 장애물은 비행기가 충돌했을 때 파손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비행기는 설계상 효율성을 위해 가볍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구조물이든 충돌 시 항공기의 동체가 파손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활주로 특정 범위 내의 장애물은 비행기와 충돌했을 때 파손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무안 공항의 활주로 설계는 국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영국을 포함한 많은 서구 국가에서는 무안 공항에 있던 것과 같은 견고한 구조물은 활주로 안전 구역에 설치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가이드라인에도 분명하게 적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새 떼? 기계적 결함?
무안은 철새들의 고향으로 불린다. 새 떼와의 충돌을 고려하면, 무안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으며, 이는 애초에 민주당의 계획이었다며 특정 정당에 화살을 돌리는 이들이 간혹 보인다. 하지만, AVLAW의 창립자이자 항공 전문가인 론 바츠(Ron Bartsch) 교수는 새 충돌이 엔진이나 외부 구성 요소를 손상할 수 있지만, 착륙 기어와 같은 안전장치에 치명적인 고장을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항공 안전 전문가이자 현재 호주 센트럴 퀸즐랜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제프리 델 역시 조류 충돌로 인해 착륙장치가 내려가지 않는 사례는 본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조류 떼가 엔진에 빨려 들어갔더라도 그것이 즉각적으로 엔진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조종사들에게는 상황을 처리할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 떼가 문제가 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바츠 교수는 항공기 유지보수 결함이나 항공기 자체의 설계 결함 가능성을 내비쳤다. 영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보잉 737-800 모델은 강력한 안전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고는 철저한 유지보수와 점검이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인 것이다.
즉, 이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핵심에는, 활주로 끝에 위치한 콘크리트 벽과 제대로 된 유지보수 점검이 이뤄졌는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책임 회피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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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 해결 과정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해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토부는 안전에 미흡한 면이 있었지만, 안전 지침에 따라 설계되었고 이 부분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활주로에 있는 콘크리트 외벽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된 바 있다. 시정 조치는 제때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대참사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제주항공도 정비 문제는 아니라고 사고 초반부터 정비 논란을 일축하려 했다. 제주항공 정비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식사 시간을 제외한 15시간의 고강도 업무가 지속됨에도 항공기 정비가 어렵다고 한다.
조종 미흡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데이비드 레어마운트는 기체 착륙은 완벽했다고 평가했다. 항공기는 공기 저항을 받지 않으면서 경량의 소재로 제조되어야 한다.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따라서 동체 착륙 자체도 매우 위험한 시도 중 하다. 항공기 꼬리 쪽이 조금만 높았어도, 앞쪽의 기울기 각도가 조금만 낮았어도 콘크리트 벽에 부딪히기 전, 항공기는 산산조각 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폭발하기 전까지 기체에는 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외벽에 부딪치지만 않았다면 항공기는 활주로를 벗어나, 이번 참사와 같은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 전문가들은 기장의 메이데이 선언 이후 왜 화재 진압을 위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활주로에 비상착륙을 위한 조처를 했다면,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공항 활주로 설계에 문제가 있었고, (기체 결함이 발생한 것이라면) 애초에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주원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원인 제공자인 국토부와 제주항공은 미흡했지만, 규정은 준수했고, 정비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중이다. 책임을 인정하고 사전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오면, 수천억에 달하는 보험료를 받을 수 없고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도 기업이 직접 부담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리고 이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도 정부와 기업은 일관된 태도를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다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고, 이러한 관습(?)은 지금도 여전히 허용되고 있다. 어쩌면 한국에서 주기적으로 대형 참사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할 수도 있겠다.
모의 훈련도 실제 상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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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오랜 세월 살아본바, 영국인들은 한국인보다 비교적 차갑고 이기적이다. 이득에 밝다. 그래서 삶 자체가 지치고 버거울 때가 있다. 하지만, 여로모로 배울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랜 시민 역사 속에서 쌓여온 노하우가 그것인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안전에 대한 인식, 예방, 대응 방안이다.
영국은 1주일 혹은 2주일에 한두 번씩 화재 경보 훈련을 한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가도 경보가 울리면 화재 시 모이는 장소로 이동한다. 간혹, 길을 가다가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수백 명의 사람들의 모여 있는 모습을 런던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 걸 다들 알고 있지만, 안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데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고, 아무도 이러한 활동에 불만을 느끼거거나 귀찮아하지 않는다.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항공 안전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으로 높은 유동성을 자랑하는 히드로 공항. 놀랍게도 이 공항은 단 두 개의 활주로만으로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감당한다. 이렇게 바쁜 공항이 있나 싶을 정도로 늘 인파로 붐비고, 1분에 한 대씩 항공기가 이착륙한다(런던 시내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새로운 활주로를 짓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만큼 늘 안전사고에 노출되어 있지만, 안전 기록이 우수한 공항 중 하나로 꼽힌다. 비단 히드로 공항뿐만은 아니다. 에딘버러, 글라스고, 만체스터, 버밍엄 등 지역을 각 지방을 기점으로 운영되는 국제공항에도 동일한 항공 운영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슬롯 관리 시스템이나 레이더 기술을 이용한 첨단 관제 기술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항공 교통 관리 시스템은 운용하고, 독립 평행 접근시스템을 통해 각 공항이 보유한 활주로를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효율성을 높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반 도심에서 시행되는 화재 훈련과 같은 정밀한 비상 대응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시나리오에 맞춰 모의 훈련을 하면서 사고 예방 및 대응 능력을 평시에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이러한 훈련은 영국 민간항공국(CAA, Civil Aviation Authority)과 같이, 정부와 공항 청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기구를 통해 엄격한 감독 및 정기적인 안전 점검과 감사가 이루어진다.
모의 훈련 당일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훈련에 임하는 일반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서부터 사고는 예방된다. 또한 정부의 정책 시행과 동시에, 이를 관리 감독하는 별도의 독립 기구를 운용하고, 항공 기업에 대한 감사도 철저히 시행한다면 이와 같은 참사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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