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과서로 참 말이 많다.
결론은 간단하다.
최소 시기상조. 최대 교육 역사상 최악의 정책.
마음 같아선 AI 교과서와 이주호의 그 유구한 역사와 수많은 논점을 다 짚어보고 싶지만, 내 역량도 안 될뿐더러 사안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어 그럴 여유도 없다.
이 글에서는 거대 담론을 가급적 제외하고, 현직 교사이자 AI 교과서 업무 담당자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집중해서 현장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주절주절 해보려 한다.
무지능 교과서
아, 우선 용어의 문제. 디지털교과서, AI 교과서, AI 디지털교과서, AIDT 등 여러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국회나 언론에서 ‘AI 교과서’로 정리되는 것 같으니, 그 용어로 통일하겠다.
다만 혹여나 진짜 대단한 AI 기능이 이 교과서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덧붙이자면, 그딴 건 없다. 인공지능은커녕 지능이 있나 의심될 정도의 수준이다. 뭐든 AI 붙이면 있어 보이고, 팔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꼰대들, 제발 정신 차리자.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자녀가 있거나 최근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에듀넷을 알 것이다. 국가 기관이 운영하는 학습 지원 사이트인데, EBS가 동영상 강의 중심이라면 에듀넷은 플래시로 만든 학습 자료 중심이다. 코로나로 원격수업을 할 때 교사들이 많이 활용했던 것인데, 지금 공개된 AI 교과서의 수준이란, 대략 이 에듀넷과 큰 차이가 없다.
에듀넷 홈페이지
코로나 때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지금도 그 후과로 학교 현장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허접한 자료로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다.
“공교육은 우수한 기능을 못 해주고 있어 잠자는 학생들이 나오고 수학과 영어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나온다.”
-고영종 교육부 책임교육정책실장-
특히 이런 무책임한 사람들. 메가스터디나 시대인재에서는 슈퍼컴퓨터를 30대쯤 들여다놓고 AI 교재로 수강생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걸까? AI 교과서를 추진하는 교육부 핵심 관료의 이런 발언은 그들의 교육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저열하고 얄팍한 것인지 잘 드러내 준다.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출처-<한겨레>
일찍이 여러 조사를 통해 교사와 학부모 대다수(80~90%)가 AI 교과서에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두 알다시피 어떤 사안에 여론이 이렇게 압도적으로 쏠리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체감할 수 있는 최근의 이슈로는 의대 정원 확대 찬성 비율이 80~90% 사이로 나타났다(물론 윤석열식 정원 확대는 대부분 반대하겠지만).
내가 현장에서 느낀 반대 여론은 수치보다 더 강했는데, 이야기를 나눈 모든 교사들이 AI 교과서가 너무 싫다고 하거나, 너무 서두른다고 말했다.
특히 작년 12월 3일이 중요한 기점이었는데, 이날 AI 교과서의 전시본이 공개됐다. 막연히 ‘싫다’고 느끼던 것이 실제 교과서를 본 다음에 무엇이 얼마만큼 싫은지 수치화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리고 교과서 담당인 나는 이날부터 “이걸로 정말 3월부터 수업을 해야 한다구요?”라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설마요, 그렇게 막 나가진 않겠죠.”
라고, 나이브하게 답했던 나. 격하게 반성한다. 이주호는 MB 빙의라도 된 듯 불도저가 되어 AI 교과서를 밀어붙였고, 이대로면 당장 다음 학기부터 ‘강제’로 모든 학교에서 이 교과서로 수업을 해야 했다. 1만 명의 선도 교원, 15만 명의 교원 연수가 이뤄졌다고 보도자료를 열심히 뿌리는 것 같던데, 현장에는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
누가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때 교사들은 민주당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관망하고 있었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국회에서 막아주지 않을까 하고. 12월 17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교과서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했다.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강등시키는 것으로 강제성이 있는 교과서와 달리 교육자료가 되면 학교 재량에 따라(실제로 100% 재량이 주어질 리 없겠지만) AI 교과서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학교에서는 AI교과서를 선정하지 않고 시간을 뭉개며 법안 통과만 손꼽아 기다렸고, 12월 27일 본회의에서 무난히 법안이 통과되어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교육자료를 누가 쓸까
기자 : AI 교과서를 얼마나 수업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하나.
고영종(교육부 책임교육정책실장) : 30~50%로 시작할 것으로 예상한다. 1학기가 시작하면 주변 학교나 선정하지 않은 학교의 학생·학부모의 관심이 높아질 걸로 본다. 또 학기 중, 2학기 중 추가되는 학교가 나올 수가 있어 하반기에는 70~80%까지 갈 것으로 예상한다.
AI 교과서가 교육자료가 되어 선택권이 주어진 후, 기자가 얼마나 이용될 것 같냐고 물은 질문에 교육부는 패기롭게 30~50%를 말했다. 현실감각이 아예 없거나, 아주 영악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간략히 교과서 선정 절차를 보자. 그것이 교과서이든 교육자료이든 크게 보면 2단계를 거친다.
1) 선정
2) 주문
첫 번째 선정 단계에서 교과별 선생님이 모여 적합한 출판사의 책을 정하고, 학교운영위원회에 심의해 학부모들의 의견도 취합한다. 그리고 이렇게 취합한 교과서를 출판사에 주문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여기서 눈속임 혹은 뻥튀기가 발생할 수 있는데, AI 교과서를 선정한 모든 학교가 주문까지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케이스를 보자. 12월에 AI 교과서가 공개되고, 모두가 실망하고 민주당에 희망을 걸고 있었을 그때, 행정적으로는 AI 교과서 선정 절차를 시작했다. 그 시점에는 AI 교과서 사용이 필수였고, 탄핵과 특검 등으로 국회 상황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민주당 법안이 통과되지 않거나, 여러 이유로 본회의에 법안이 상정되지 않으면 내년에 꼼짝없이 AI 교과서를 사용해야 하니 선정을 해둬야 했다. 무엇보다 12월에 행정 작업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방학이 시작된 1월에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건 업무 담당자인 나도 교과 선생님들에게도 극강의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었으므로 “일단 선정은 해두자”는 것이 현장의 여론이었다.
즉, 많은 학교에서 실제 사용하거나 주문할 생각이 없음에도 선정 과정은 거쳤다는 말이다. 그러니 추후에 AI 교과서를 만들었더니 현장에서 이렇게 좋아하더랍니다~ 라며 구라를 칠 때 ‘90% 학교에서 선정’ 따위의 워딩이 나오면 믿고 거르시면 된다.
거기에 쁠러스, 정확한 통계는 전국 몇 개 학교에서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과목별로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통계가 나와야 하고, 학교장의 압박으로 구입까지 했더라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아주 비일비재할 것이기 때문에 실제 이용률에 대한 통계도 나와야 한다.
거기에 쁠러스 쁠러스, 연구학교나 여러 승진 가산점 등으로 AI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독려할 것인데, 이에 대한 감시와 관찰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실제 승진과 직결되는 올해 연구학교 과제 중 AI 교과서가 포함된 것이 여러 개 있다).
도대체 교육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조만간 AI 교과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사용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피가 거꾸로 솟을 만큼 열받는 소식이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된 마당에 지가 뭔데 대다수가 반대하는 법안을 밀어붙인단 말인가.
‘학생 수준 맞춤형 학습으로 교육 격차 해소 가능’
교육부에서는 AI 교과서를 사용하면 획일적 교육을 일거에 해소하고, 사교육이 감소하며, 기초학력이 쑥쑥 자라날 것처럼 말하고 있다. 무릎을 맞대고 앉아 묻고 싶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학생들의 학업 성취가 떨어지는 이유가 자기 점수가 몇 점인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을 하지 못해서냐고.
눈 감고 모든 의견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AI 교과서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모두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형으로 지도하는 것, 휘황찬란한 기술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저 양반들, 교육과 학습이 뭐가 다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들이다. 학교가 교육 불가능의 공간인지 학습 불가능의 공간인지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철학이나 가치를 들이대는 것부터 잘못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마르지 않는 샘물인 교육에 빨대를 꽂으려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교육 민영화라는 오랜 꿈을 AI라는 허울로 이뤄보려는 것이다. 벌써 AI 교과서 시장이 열리면 2~5조까지 이를 것이라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아, 여기서 시장이란 우리가 낸 세금이다.
교과서냐 교육자료냐. 말장난 같은 법안 하나이지만, 교육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기점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교육을 시장에 내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
다른 하나는, 기계-기술에게 배울 것인가, 사람에게 배울 것인가 하는 것.
하여 최상목에게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 같은 대행의 대행, 임시, 순장조가 결정하기에 이것은 너무 중대한 문제 아니냐고. 당장 거부권에서 그 더러운 손을 떼라고. 당신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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