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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해 선거 기간 동안 여러 트럼프 지지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대화하다가 2021년 국회의사당 폭동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J6 그거 폭동(riot) 아니야. 모두 평화롭게 국회의사당 구경하고 나갔어. 그거 관광이었어. 폭력 없었어. 내가 거기 있었는데 잘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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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보통 사건 발생일인

1월 6일(January 6)을 축약해

’Jan 6’ 또는 ‘J6’이라고 부른다. 

출처-<AP>

 

싸우기 싫어서 그냥 입 다물긴 했는데, 하마터면 이렇게 물어볼 뻔했다.

 

“J6이 폭동 아닌 관광이었다면 왜 사람이 죽었을까? 그것도 다섯 명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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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회의사당 폭동으로 사망한 5명의 모습

맨 왼쪽 브라이언 시크닉은 경찰관이고,

나머지 4명은 시위대였다. 

출처-<게티이미지>

 

한국의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2021년 국회의사당 폭동 사건이 화제로 오르고 있다. 미국이 ‘엄벌주의’로 유명한만큼, 많은 이들은 국희의사당 폭도들이 단호한 처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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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대 ‘프라우드 보이즈’의

지도자 엔리케 타리오는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출처-<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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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대 ‘오스 키퍼즈’의

지도자 스튜어트 로즈는

내란죄로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출처-<Financial Times>

 

이 정도면 엄중한 처벌을 받은 게 아니냐고? 그러나 이들은 군사훈련을 받고 총기로 무장한 민병대의 지도자들이었다. 속된 말로 ‘반군 지도자’ 급인 셈이다. 이들이 중형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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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회의사당 폭동 당일

노란 모자와 검은 옷을 맞춰 입은

‘프라우드 보이즈’의 모습.

누가 봐도 이건 시위대가 아니라 군대다. 

출처-<AFP>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이런 정식(?) 반군 외에 대다수 수천 명의 민간인 폭도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느냐일 것이다. 

 

 

‘인증샷’ 찍자마자 신속하게 체포된 바보들

 

폭동이 일어나자마자 신속하게 체포된 건 역시 자기 스스로 ‘인증샷’을 찍은 폭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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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Faktor>

 

‘Q아논 샤먼’이라 불린 제이크 챈슬리는 워낙 특이한 복장 때문에 폭동 사흘 만에 체포됐고, 징역 3년 5개월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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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방검찰>

 

리차드 바넷은 TV 카메라가 보는 앞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실에 침입해 현금과 물품을 훔치는 등 자기 범행을 ‘생중계’했다. 그는 폭동 이틀 만에 체포돼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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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방검찰>

 

아담 존슨은 TV 카메라 앞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연설대를 훔치다가 폭동 이틀 만에 체포됐고, 징역 3개월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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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

 

카메라 앞에서 ‘케이블 타이’를 휘두른 어머니 리사 아이젠하트와 아들 에릭 먼첼은 각각 징역 2년 6개월과 4년 9개월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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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The Sun>

 

부동산 중개인 제나 라이언은 깨진 유리창 앞에서 “집 구입하려면 저한테 연락하세요.”라고 자기 이름과 연락처를 선전했다. 당연히 즉각 체포돼 징역 2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사람들은 이름과 얼굴 까며 그야말로 자기 범죄를 자랑스럽게 생중계했고, 광속으로 체포돼 신속하게 처벌받았다. 

 

그럼, 얼굴 가리고 자기 정체를 꽁꽁 감춘 수천 명의 대다수 폭도는 어떻게 됐을까?

 

 

느려터진 폭동 가담자 처벌

 

폭동 다음날 워싱턴DC 연방검찰은 “폭동 가담자를 신속하게 체포, 기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문제는 현직 대통령이 아직 트럼프였고, 그걸 ‘감히’ 실행할 법무부 검사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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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법무장관 윌리엄 바

출처-<로이터>

 

검찰 수사를 지휘할 법무장관 윌리엄 바는 트럼프에 반발해, 폭동 2주 전에 이미 사표 내고 ‘런’ 한 상태였다. 따라서 법무부 장관은 차관 대행 상태였다. 당연히 수사 동력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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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 초대 법무장관 메릭 갈랜드

출처-<AP>

 

의회 폭동이 발생하고 2주 후 새로 들어선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섰으나, 법무장관은 그 후로도 2개월이나 지난 3월에서야 정식 취임했다. 따라서 폭동이 발생하고 2개월 동안 법무부 검찰 지휘부가 그야말로 ‘붕 뜬’ 상태였던 것이다. 

 

메릭 갈랜드가 신임 법무장관으로 취임해 ‘철저한 기소’를 다짐했지만, 체포된 폭도들의 수는 터무니없었다. ‘공백의 2개월’ 동안 체포된 폭동 가담자들은 ‘딸랑 278명’에 불과했다. 그 외 나머지 수천 명의 폭도들 신상은 파악이 쉽지 않았다. 신속하고 체계적인 수사와 체포가 이뤄져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결과였다. 

 

폭동 가담자 파악에 어려움을 겪은 FBI는 국민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폭동 가담자 제보 웹사이트를 만들고 제보 접수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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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의 의회 폭동 가담자 제보 웹사이트

출처-<FBI>

 

그 결과 체포, 기소된 폭동 가담자는 점점 늘어났다. 연방검찰은 2024년 말까지 1,570명을 체포하고 1,400여 명을 기소했다. 이 중 900명이 유죄 인정 또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무죄 판결은 단 1명뿐이었다. 트럼프 취임 전까지 재판 진행 중이었던 폭동 용의자는 300여 명이었다.

 

그러나 실제 폭동 가담자 수와 그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 이 결과는 애석하기 짝이 없었다. 수많은 폭동 가담자는 체포조차 되지 않았고, 영원히 처벌받지 않았다. 결국 처벌받은 이들보다 처벌받지 않은 이들이 훨씬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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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의 의회 폭동 가담자 제보 광고 

출처-<wikipedia>

 

 

정치권과 사법부의 방해

 

의회 폭동이 4년째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폭동 가담자 수사 및 처벌 방해도 이어졌다. 먼저 권력욕에 취해 폭동을 부추긴 공화당 정치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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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버벳 하원의원

출처-<게티이미지>

 

콜로라도주 하원의원 로렌 버벳은 폭동이 한창 중일 때 트위터에 “경찰과 민주당 하원의장이 여기에 있다”라고 생중계했고, 사실상 폭도들에게 의회 내부 정보를 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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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홀리 상원의원

출처-<게티이미지>

 

미주리주 상원의원 조시 홀리는 폭동 직전 의사당 앞에서 ‘팔뚝질’을 해서, 현직 의원이 폭도들의 의사당 침탈을 부추겼다.

 

이들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비난과 사퇴 요구를 받았지만, 4년을 버티며 국회 진상조사를 방해했다. 더욱 문제는 이들이 2024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폭도들을 편들어준 보답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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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대법원 판사들 

출처-<게티이미지>

 

게다가 연방대법원은 2024년 8월 ‘피셔 v. 미국(Fischer v. United States) 판결’(링크)을 통해, 유죄판결 받은 폭도들의 형량을 대폭 줄여줬다. 상당수 폭도가 감옥에서 조기에 풀려났다. 판결을 내린 대법관 9명 가운데 3명이 트럼프 임명을 받은 사람이었다.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v. 미국’ (Trump v. United States (2024)) 판결을 통해서는 “대통령은 광범위한 불소추 특권을 갖고 있으므로, 재임 중 행동으로 기소될 수 없다”는 판결까지 해버렸다. 그 결과 트럼프의 의회 폭동 관련 사법처리는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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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가 대법원 앞에서 

‘부패한 판사가 부패한 대통령에게

불소추 특권을 부여했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출처-<게티이미지>

 

이 판결에 대해 반대의견을 낸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이렇게 외쳤다.

 

「이번 판결은 대통령이 헌법과 정부 기관 위에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네이비실에게 정치적 라이벌을 암살하라고 명령하면?

 

기소 불가능.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하려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시도하면?

 

기소 불가능.

 

대통령이 사면을 대가로 뇌물을 받아도?

 

기소 불가능.

 

불가능, 불가능, 불가능, 미국 대통령은 영원히 기소 불가능이다.」

 

이렇게 폭도들이 풀려나거나 기소가 지연되는 가운데 마침내 폭도들이 기다리던 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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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6일

대통령 선거 승리를 선언하는 트럼프

출처-<가톨릭신문>

 

 

폭동 가담자 전원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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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대통령에 다시 취임하자마자 의회 폭동 가담자 전원에 대한 ‘무조건적 사면’을 명령했다. 

 

“지난 4년간 국가적 차원에서 불의가 저질러졌으며, 이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반성하고 회복할 때이다. 미국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으로 2021년 6월 의회와 관련한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한, 무조건적인 사면’을 내린다.” 

(원문은 백악관 홈페이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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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사면 당일 교도소에서 풀려난

민병대원과 폭도들

출처-<Viory>

 

트럼프 사면에 따라 기소된 폭도 1,590명이 혜택을 받게 됐다. 명령 몇 시간만에 수감 중인 폭도 수백 명이 교도소에서 풀려났다. 몇몇을 제외한 폭도 전원이 전과 말소, 투표권 회복, 공직 취임 자격, 심지어 총기 소유 자격까지 받게 됐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딴지 기사 <지금 우리는 전쟁 중이다 : 트럼프의 행정명령과 서부지법 폭도들>(링크)를 참고하시라)

 

또 재판을 받고 있던 폭도 300여 명도 검찰의 기소 취하로 ‘자유의 몸’이 됐다. 트럼프의 사면령 앞에서 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판결문에 몇 마디 적는 것밖에 없었다.

 

사면 다음 날, 베릴 하웰 워싱턴DC 판사는 폭도 2명의 기소 취하 문서에 서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선거에 패배한 후보자를 지지한 자들, 헌법에 따라 진행되는 연방의회 업무를 방해하고 이를 찬양한 자들, 이들 가련한 패배자들에게 ‘국가적 회복’ 따윈 있을 수 없다. (폭도의 사면은) 무법천지 사회를 만들 위험한 행동이며 ‘법에 의한 지배’를 방해할 것이다.”

 

 

미국 의회 폭동 처벌이 한국에 말하는 것

 

미국 의회 폭동 4주년과 그에 따른 폭도들의 처벌, 그리고 사면은 대한민국에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필자가 마음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폭도의 체포와 기소가 전부가 아니다. 재판과 처벌은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리는 장기간 과정이다.

 

2. 미국에서도 법원은 중립적이 아니며 정치적이다. 

 

3. 시민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몇 년 동안, 판사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눈치를 본다.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릴 수 있다.

 

4. 지연된 재판과 처벌 기간 폭도들은 여전히 자유를 누릴 수 있다.

 

5. 폭도들의 처벌은 정치권의 말 한마디로 ‘완전 무효’가 될 수 있다.

 

6. 따라서, 폭도의 체포와 기소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몇 개월 몇 년 동안 꾸준하게 수사와 재판에 주목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2021년 미국 의회 폭동에 가담한 폭도들의 구체적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막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