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총리직에 취임했으니 2024년은 그가 총리직을 수행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2014년 당시 2조 달러 수준이었던 인도의 국내총생산(GDP)도 3조 5천억 달러를 기록하며 영국을 넘어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했고, 2023년 8월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달에 우주선을 착륙시키면서 ‘문 클럽(Moon Club)’에도 가입했다. 모디 총리 취임 후 10년의 기간 동안 인도는 무려 7천억 달러가 넘는 해외직접투자(FDI)를 유치했고, 총리 취임을 즈음하여 22,000포인트 내외였던 인도의 대표적 주가지수 Sensex 지수는 2024년말 기준 약 78,000포인트까지 뛰어 올랐다.
그렇다면 인도는 진정으로 성장과 번영이 가득한 곳인가? 지난 10년간 친정부 성향의 인도 언론들은 인도 국민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모디어천가'를 불러대고 있는데, 과연 실상도 그러할까? 그 내막을 살펴보자.
[# 1] 소득수준은 방글라데시에게 뒤지고, 빈부격차는 영국 식민지시대보다 악화되고
일단, 2014년 기준 1,600달러 내외였던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년이 지난 2024년 약 2,485달러 수준이 되었다(World Bank 기준). 10년 동안 1.5배 이상 성장했으니 작지 않은 성과이지만 중국이 같은 기간 7,636달러에서 12,614달러까지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가난한 나라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방글라데시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4년 1,108달러에서 두 배 넘게 성장한 끝에 2024년에 2,529달러를 기록하면서 인도를 제쳤다. 그렇다. 이제 인도는 방글라데시보다도 못 사는 나라이다.
Getty Images
지난 10년 동안 인도가 방글라데시에게 추월당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제조업 일자리를 제대로 늘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는 봉제의류 산업을 포함하여 경공업을 육성하면서 차근차근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저숙련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이들을 중산층으로 진입시키는 우직하면서도 전통적인 성장 전략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겉멋이 잔뜩 들어 있는 인도는 화려하고 ‘뽀다구 나는’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실제로는 고용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IT 산업을 육성하는 데 치중해 왔다.
그러는 동안 인도의 제조업과 중산층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고 결국 1인당 국민소득은 느릿느릿 소걸음을 하고 있다. 두 나라가 수 십년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추진해 온 산업정책의 결과가 성장률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속 빈 강정처럼 소리만 요란스러운 인도 경제의 취약성을 반영해서일까, 2014년 1달러당 61루피 내외였던 인도의 루피화는 끝도 없이 추락하여 2024년 12월말에는 85루피를 주고서도 1달러를 사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둘째로, 인도의 빈부격차 문제는 조금이라도 개선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2024년 3월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는 인도를 주제로 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보고서 제목부터 “인도의 불평등 수준이 영국 식민지시대보다 더 악화되었다(Economic inequality in India: the ‘Billionaire Raj’ is now more unequal than the British Raj’)1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모디 총리가 취임한 최근 10년간 최상위 1%의 소득 및 자산 집중도는 가파르게 상승하였고 2023년 기준으로 각각 22.6%와 40.1%에 달한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 약 12.1%와 20.0% 수준이니 인도는 우리나라보다 부의 집중도가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도의 빈부격차 수준은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전통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했던 나라를 가볍게 제치고 세계 정상급 수준(?)에 올라섰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 보고서가 대놓고 지적하고 있지는 않지만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는 명확하다. 모디 총리가 집권한 지난 10년간 부자들의 살림살이와 재산은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인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민층의 삶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돈벌이와 재산은 그렇다 치고, 삶의 질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10년간 얼마나 좋아졌을까? UN이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는 평균수명이나 평균교육년수 등 계량지표를 활용해 각 국가의 교육과 생활 그리고 건강 수준을 평가하는 지수이다. 인도는 2024년 기준 193개국 중 134등을 했다. 2014년에는 130등이었으니 소폭 뒷걸음질 한 것이다. 인도에서의 삶의 질이 사실상 후퇴하는 10년 동안 방글라데시는 143등(2014년)에서 129등(2024)으로 상승했고, 중국은 90등(2014)에서 75등(2024)으로 올랐다.
살림살이의 기본 중의 기본인 굶주림을 측정하는 세계기아지수(Global Hunger Index)를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안타깝다. 세계기아지수는 아일랜드에 소재한 NGO인 컨선월드와이드(Concern Worldwide)와 독일 NGO인 세계기아원조(Welthungerhilfe), 미국의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개도국의 기아 상황을 측정하여 매해 세계식량의 날(10월 16일)을 전후해 발표하는 지수이다. 인도는 2014년에 조사대상 76개국 중 55위를 기록했는데, 2024년에는 127개국 중 105위를 기록했다. 다른 조사대상 국가와의 상대적 순위를 살펴보면 10년간 꾸준하게 하락했다. 아시아에서 인도보다 상황이 나쁜 나라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북한과 같은 나라들 뿐이다. 한마디로 삶의 질도 나아진 게 없다는 이야기이다.
Figure 1. 아시아 국가별 세계기아지수 (출처 : Global Hunger Index)
먹고 사는 민생문제를 얘기했으니 이제는 정치와 사회분야를 살펴보자. Economist지의 자매기관인 EIU에서 매기는 민주화지수(EIU Democracy Index)는 2014년 27등에서 2024년 47등으로 수직낙하하였다. 국경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arders)의 언론자유지수(2014년 140위 -> 2024년 159위),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 v-Dem Institute 등 유사한 기관들도 모두 모디 총리가 집권한 2014년 이후 인도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어머니’랍시고 자기 자랑을 하던 인도(지난 기사 링크)가 실제로는 국제사회로부터 '선거로 탄생한 독재국가(electoral autocracy)' 내지는 '결점이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라고 평가받고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정치 상황도 점점 독재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EIU의 민주화지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출처 : EIU)
EIU 뿐만 아니라 타 기관에서도 하락세는 일관되다 (출처 : Chatam House, 2024.4월)
부패 문제는 좀 나아졌을까? 세계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라는 비정부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인도의 부패지수는 2014년 85위에서 2024년 93위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동안 방글라데시가 145등에서 147등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는 게 그나마 인도한테는 작은 위안이 될 수 있겠다.
[# 2]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겠으니 랭킹이나 좀 올려보자는 심보
이렇게 각종 경제, 사회, 정치 지표가 악화될 때 정부의 가장 상식적인 대응은 뭘까? 각종 지표의 악화 사유를 정부가 꼼꼼히 살펴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서 실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인도 정부의 대응은 대략 3가지 방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번째 방법은 이러한 현실에서 도망치거나 또는 부정해버리는 방식이다. 둘째로는 인도의 순위가 낮은 지수를 발표하는 기관을 대상으로 각종 압박을 넣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도저도 안 되면 ‘인도 국민들은 지금 만족하고 있다’고 주제와 관계없이 ‘행복타령’을 하거나 ‘인도는 세계 강대국’이라는 드립으로 모든 불만을 잠재운다.
일단, 첫번째 방법인 ‘현실에서 도망치기’를 가장 앞장서서 보여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렌드라 모디 총리이다. 코로나 사태가 인도를 휩쓸며 하루에 40만명의 확진자, 수 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던 바로 그 시기에 모디 총리는 몇 주 동안 언론에서 모습을 감췄다.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가장 들끓던 그 때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대놓고 잠수 모드를 시전하는 바람에 ‘침묵하는 모디’(‘Maunendra’ Modi)라는 별명을 얻었다. 참고로 maun은 ‘침묵(silence)’라는 뜻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궤변을 쏟아내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국제사회의 평가를 공격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2023년 인도의 형편없는 ‘세계기아지수’가 발표되던 날, 영양실조 비율이 전체 GHI(Global Hunger Index) 점수의 1/3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를 두고, 당시 여성아동개발부를 맡고 있던 슴리티 이라니(Smriti Zubin Irani) 장관은 "14억 인구 중에 고작 3천명에게 전화로 ‘너 배고프니?’라고 묻는 지수일 뿐이다. 나도 오늘 아침에 집을 나온 이후 지금까지 아무 것도 못 먹었다. 내게 조사원이 배고프냐고 묻는다면 나도 ‘배고프다’라고 답할거다. 이런 식으로 조사하는 지수가 도대체 어디 있냐?" 라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2 이라니 장관의 발언은 세계기아지수 데이터의 신빙성과 방법론을 공격하려는 의도였지만, 그녀의 발언은 완전히 골대를 벗어난 헛발질이었다.
출처 - THE WIRE(링크)
우선, 수 십 년간 축적된 각종 기아 관련 연구를 바탕으로 전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를 수행해 온 세계기아지수는 아동의 굶주림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는 지수이다. 이라니 장관과 같은 성인을 주 대상으로 하는 지수가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전화조사 이외에 각종 국제기구가 발표한 객관적 통계수치가 동 지수 산정에 사용된다. 이라니 장관은 이런 사실은 쏙 빼놓았다. 둘째로, 동 지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독 인도에게만 불리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잘못된 방법론을 채택할 만한 이유가 없다. 인도하고 무슨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인도만 콕 집어서 불리한 점수를 주려고 하겠는가?
세계기아지수에서는 5세 이하 아동 사망원인을 분석하여 이 중 기아에 의한 사망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도 평가하는데, 안타깝게도 인도에서는 5세 이전에 사망하는 아동 2명 중 1명은 영양실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도 정부는 5세 이하 아동 사망률을 개선하는 정공법이 아니라, 세계기아지수 조사기관을 설득해서 5세 이하 아동 사망률을 지수 계산 시 포함시키지 말라고 압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ㅎㅎ) 한마디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무엇 무엇이 문제다’라고 이야기하는 메신저의 입을 틀어막겠다는 심산이었다. 컨선월드와이드를 포함한 지수 조사 기관은 인도 정부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였다. 결국, 조사방법론을 공격하여 인도에 대한 세계기아지수 순위를 좀 올려보려고 시도했던 인도 정부는 망신만 당하고 흐지부지되었다.
이렇게 현실을 호도하는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 말도 안되게 작은 사망자 숫자 발표는 한참이나 계속되었고, 아직도 집권 여당 소속 일부 정치인들은 북인도를 괴롭히는 공기오염이 호흡기질환이나 이로 인한 사망과는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다고 황당한 주장을 펼친다. 현실에 대해 침묵하는 걸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저러한 시도가 안 먹힐 때 휘두를 수 있는 마지막 전가의 보도를 살펴보자. 바로, ‘인도는 강대국이다’, ‘모디 총리는 위대하다’라는 드립을 시전하면서 정신승리하는 것이다. G20 의장국 역할을 수행하던 2023년 뉴델리에는 모디 총리의 거대한 초상화가 그려진 배너깃발이 수 천 개나 나부꼈다. 대규모 힌두교 축제 개막식이나 신전의 완공식에 꼬박꼬박 등장한 모디 총리는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 된 인도’, ‘곧 G3가 될 인도’를 열심히 외쳤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사람이 바로 본인이라는 말도 당연히 잊지 않았다. 모디 총리가 위대하고, 인도가 위대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만큼은 하위권을 달리는 세계기아지수도, 방글라데시보다 뒤처지는 1인당 국민소득도, 십 년째 하락하고 있는 민주주의 지수도 모두 잊고 잠시나마 ‘국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Toronto Star/AP(링크)
이제 글을 마무리해 보자. 오늘은 과거 10년간 모디 총리의 집권 기간을 되돌아보면서 인도의 실상이 그리 많이 호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요 국제기구가 발표하는 지수를 이용해 살펴보았다. 인도 내 현지 언론은 물론이고 무비판적으로 인도에 대한 칭찬만 늘어놓는 일부 국제 언론과 조회수에 목마른 유튜버들은 ‘인도가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말을 쏟아내기 바쁘다. 하지만, 이러한 언론들이 제대로 다루지 않는 실상들이 앞서 살펴본 다양한 국제지수 속에는 고스란히 담겨있다. 물론, 어떻게든 이런 지수의 평가를 부정하려고 노력하는 인도의 모습 또한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이러니라면, 국제사회의 평가를 부정하려고 노력할수록 인도 사회가 가진 깊은 모순과 한계가 점점 드러난다는 사실일 것이다. 마치 세계기아지수에서 인도의 순위를 높이려고 어설프게 시도했던 이라니 장관의 각종 발언, 그리고 영유아 사망률 포함 여부와 관련된 소동이 결국 인도에서 아동들이 얼마나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더 잘 드러냈듯이 말이다.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