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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스포는 아니다.

 

<오징어게임 시즌 2>의 중심에는 ‘투표’가 있다. 게임의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하고, 참가자의 죽음이 곧 생존자의 상금으로 치환되는 게임 시스템에 대한 투표를 통해 다음 게임의 지속 여부가 결정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이니 여기서 한 판이라도 더 게임을 하고 살아남아 상금을 차지하겠다는 부류와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내 목숨까지는 걸지 못하겠다는 부류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어느 쪽에 속하든 저마다의 절박한 사정이 있으므로 냅다 손가락질부터 하기는 어렵다.

 

허나, 게임 안에서의 투표 결과가 어떠하든 오징어게임은 불법이다. ‘한 판 더’를 외치는 개인의 절박함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만약 우리나라에서 그런 게임이 어디에선가 진행되고 있다면, 그 현장이 공권력에 발각된다면 마땅히 게임은 중지되어야 하고 운영자와 부역자는 처벌 받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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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은 불법이었다. 당시 윤석열은 위헌적인 계엄을 선포했다.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대해서도 할 말 많지만 여기서는 옆으로 치워둔다. 여론조사 결과 윤석열의 지지율이 50%가 넘는다 해도 12.3 계엄이 합법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계엄을 옹호하는 세력이 주장하는, 야당이 입법 독재를 하고 탄핵을 남발했다는 등의 어떤 이유를 들이밀어도 마찬가지다. 12.3 계엄으로 대통령은 불법을 저질렀다. 아직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핏대를 세우며 주장한다면 그나마 존중해줄 수 있다.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일뿐 결과가 뒤집히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런데 계엄을 옹호하는 여당은 진작부터 사법부의 공정성을 들먹이며 불복의 불씨를 지피고, 자칭 자유우파세력은 최종판단은 커녕 구속영장 발부단계에서부터 법원을 때려 부수고 쳐들어갔다. 불법이 아니라고, 불법을 저지르며 주장하고 있다. 집단 자백이라고 불러야 하나.

 

 

-양비론

 

국민 여론이 돌아서고 있다! 여론이 윤석열 편으로 돌아서면 헌재는 탄핵을 기각할 것이다! 

 

아무리 헌재가 정치적 판결을 내리는 곳이라 해도 윤석열의 계엄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사법적 해석의 여지가 최소한은 있을 때나 가능하다. 윤석열은 그걸 아득히 넘어서버렸다. 국민의힘과 보수언론, 극우 유튜버들도 실은 다 알고 있다. 그들이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어떻게든 수치로 보여주고자 하는 여론조사의 목적은 윤석열이 아니라 민주당, 이재명이다.

 

‘그러는 민주당은 잘했어?’

 

‘그래도 이재명은 아니잖아?’

 

코너에 몰렸을 때 꺼내드는 최후의 수단은 언제나 양비론이다. 지금 떠도는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가 잘못했지만 너희도 아님’의 근거로 이용된다. 어쩌면 탄핵을 저지할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 계엄은 불법이 아니라는 망상을 지지층 앞에서 흔들면서 결집도를 최대치로 만든다. 내란옹호 정당이라는 오명 따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진짜 여론도 관심 밖이다. 여론조사로 만들어낸 가상의 여론이라는 꼬리를 마구 흔들면 진짜 여론이라는 머리까지 움직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계엄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의 지지도가 이렇게나 상승하고 있다’, ‘윤석열을 대놓고 엄호하는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추월하고 있다’, ‘국민 다수는 윤석열의 계엄을 옹호하거나 아니면 윤석열이 그런짓까지 했음에도 민주당에 마음을 주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민주당 또한 잘한 게 없고, 이재명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조금이라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여론조사가 필요했다.  

 

그러면서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한다. ‘이재명은 안된다’고 생각하는 민주당 내부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터져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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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극체제

 

‘민주적인 집단이라면 소수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한다’ 

 

‘단 한 명의 인물, 단 하나의 주장에 경도되는 일극체제는 위험하다’

 

‘상대의 잘못에 편승하는 정치는 후진적이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성찰해야 한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이런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보수 언론과 정당만 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 측 일부 인사들도 하는 말이다. 말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이 없다. 그런데 말만 놓고 봤을 때는 윤석열도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 맞는 말은 누구나 한다. 평가는 말 자체가 아니라 말을 한 자가 걸어온 길 위에서, 그 말이 향하는 목적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한 말을 뱉는 여당과 보수 언론을 보자. 윤석열 정권이 소수의 의견을 존중했는가. 야당을 둘째치고 당내 소수 의견 조차 힘으로 눌러 없앴다. 윤석열의 여당은 일극체제가 아니었나. 윤석열을 따르지 않으면 당대표도 제거됐다. 상대의 잘못에 편승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무슨 일만 터지면 전 정부를 들먹였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하였는가. 대통령 지지율이 30퍼센트에 못박혀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들이 지금 민주당에 하는 말을 온전히 말 그대로 평가해야 하나. 그 목적이 작금의 상황을 야기한 여당의 위기탈출용 면피에 있지 않은가. 

 

이제 이런 말을 하는 민주당 내 인사들 차례다. ‘단 한 명의 인물, 단 하나의 주장에 경도되는 일극체제는 위험하다’는 말만 여기서 짚어보자. 민주당이 견지해 온 단 하나의 주장은 ‘윤석열 정권을 끝내자’였다. 그 앞에는 ‘이재명 당대표를 중심으로’가 붙었다. 일극체제 어쩌고 하는 일부 민주당 인사들의 비판은 ‘이재명 당대표를 중심으로’를 향한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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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일극체제는 누가 만들었나? 이재명 외 ‘다극’이 될 만한 인물들이 그간 뭘 하고 있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윤석열이 정권을 잡자마자 검사들을 총동원해서 대선 경쟁자였던 이재명을 처단하려고 할 때 다극 후보들은 당대표의 사법리스크를 거론하며 사실상 이를 거들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윤석열 정권의 온갖 반민주적, 반헌법적, 반국가적 행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입을 열었는데도 알려지지 않았다고 억울해 한다면 그건 자신들의 발언이 필요에 따라 이용당해 왔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다. 

 

이재명 일극체제는 이재명이 경쟁자를 억압하고 눌러 없애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처럼 자신의 정치 생명, 나아가 진짜 목숨까지 걸어가며 윤석열 정권 앞에 맞서 싸우는 다른 리더가 없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일극이다. 그런 이재명을 지키자고 나선 민주당 경선후보들을 이기게 한 당원들, 그렇게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가 된 자를 국회의원으로 만든 유권자들이 만들어낸 일극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없었다면 윤석열이 자기 파멸적 계엄을 선포했을 리 없다. 계엄을 끝내 좌절시키고 지금의 탄핵 정국이 만들어질 수도 없다. 그 어느 지점 하나에서라도 일극체제를 비판하는 민주당 인사가 기여한 바가 있었는가. 아무리 곱씹어도 말에 힘을 실어줄만한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말의 목적은 결국 지분을 인정해달라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염치가 없다.

 

치욕을 느끼며 민주당을 떠난 분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 정도의 공감 능력이라면 한 때 민주당 정부의 총리였던 자가, 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였던 자가 총선을 앞두고 당을 박차고 나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이준석과 손을 잡았던 그때, 이를 악물고 윤석열 정권을 버티고 있던 민주당 지지자들이 느꼈을 치욕에 먼저 공감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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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그래서, 윤석열 탄핵은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는 전제하에 보수 언론, 정당과 민주당 내 비명계가 바라는 이재명 일극체제의 균열은 가능할까. 전망의 근거는 가까운 과거에 있다.

 

현 상황과 아주 비슷한 일이 불과 1년 전에 있었다. 4월에 있을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정권은 온갖 의혹에 파묻혀 있었다. 의혹의 앞글자를 딴 ‘이채양명주’가 유행어가 됐다. 영부인 김건희가 명품백을 받는 동영상을 전국민이 볼 수 있었다. 마치 12.3 계엄 당시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장면을 전국민이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런데 쏟아지는 여론조사 결과의 상당수는 정권 심판이 아닌 야당 견제를 향하고 있었다. 언론은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따져 묻지 않고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들먹였다. 양비론이 활개를 쳤다. 민주당 내 반명 인사들이 이를 거들다 ‘치욕을 느끼며’ 당을 박차고 나갔다.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탄핵열차는 지연 없이 종착역을 향해 가는 중이다. 현재로선 갑자기 철로를 이탈할 만한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예상보다 이른 도착의 징후가 보이는데, 탄핵이라는 종착역에 ‘조기 대선’ 손팻말을 들고 나온 보수 진영의 자칭 차기 대권 주자들이 그렇다. 그 옆에 슬쩍 ‘반성과 성찰’이라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나와 있는 비명계가 보인다. 종착역 대합실이 웅성거리는 걸 보니 도착이 머지 않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