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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폭도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나

 

 

 

2021년 미국 의회 폭동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폭동을 본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었다.

 

“어떻게 미국에서 의회 폭동 사태가 일어날 수가 있지? 저런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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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백인우월주의자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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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

 

네오 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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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

 

무장한 우익 민병대? 

 

물론 이런 사람들도 있었다.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미국 의회 폭동으로 체포, 기소된 사람들 가운데 16% 정도가 이런 극우 단체들과 어떤 형태로든 연관이 있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럼, 나머지 84%는 누구였을까?

 

 

폭도들은 누구였나

 

질문을 이어 나가 보자.

 

대다수는 교육받지 못한 실업자 등 사회 불만 세력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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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로이터>

 

워싱턴포스트 조사 결과, 실업자 또는 백수는 폭도의 9%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비율로 집계된 폭도의 정체는 다음과 같았다.

 

1. 회사 사장님 또는 화이트칼라 (40%)

(변호사, 물리치료사, 간호사 등등)

 

2. 경찰 또는 군 경력자 (15%)

(최소한의 교육 수준과 신원조회를 거쳤다는 뜻)

 

3. 그 외 대다수가 대졸자

 

즉, 별다른 특이점이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잘 교육받고 멀쩡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있겠다.

 

“혹시 이들이 보수적인 백인 노년층 남성들은 아니었을까?”

 

그렇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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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

 

1. 폭도의 평균 연령은 41세로 미국인 평균 나이였다. 심지어 가장 어린 폭도는 18세도 있었다.

 

2. 폭도 9명 중 1명은 백인 남성이었지만, 여성도 70여 명이나 있었다.

 

3. 폭도 가운데 전과자는 10%도 되지 않았다.

 

4. 폭도 중 일부는 이전에 민주당 버락 오바마에 투표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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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

 

폭동 과정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여성 애쉴리 배빗의 경우, 백인 여성이며 헌병으로 이라크 전쟁까지 참전한 ‘참전용사’였다. 범죄 기록도 없고 극우단체 소속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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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The Sun>

 

지난 기사(링크)에서 소개한 여성 제나 라이언은 50살 백인 여성으로, 잘 나가는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범죄 기록도 없고 극우단체에 가입한 적도 없었다. 폭동 당시에도 잘 차려입고 자신의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DC로 날아왔다. 그러고는 국회의사당에 침입해 징역 2개월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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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방검찰DOJ>

 

라일리 윌리엄스는 펜실베이니아에서 간병인으로 근무하는 평범한 22세 여성이었다. 이 여성 역시 범죄 기록이 없었고 백인우월주의나 극우단체에 가입한 경력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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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방검찰DOJ>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녀는 추운 날씨에도 동네 마실 가는 복장으로 국회의사당에 침입했고, 자동차 위에 올라가서 “부정선거를 멈춰라”고 소리 지르는 등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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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방검찰DOJ>

 

게다가 TV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방에 침입해 노트북 컴퓨터를 훔쳤다. 펠로시 의장이 ‘부정선거’에 참여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해당 노트북 컴퓨터를 ‘러시아 정보당국’에 비싼 값에 팔려다가, FBI 수사망이 좁혀오자 노트북 컴퓨터를 파괴해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 그녀는 결국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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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방검찰DOJ>

 

제시카 왓킨스 역시 미국 레인저 출신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복무했으며, 트랜스젠더로 군대에서 차별받은 경험이 있었다. 그는 군대 시절 착용하던 철모와 방탄복을 착용하고 의사당에 침입했다. 그녀는 징역 8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다시 말해, 폭도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폭력적이며 일자리 없고 나이 먹은 백인 남성 보수주의자’가 아니었다. 

 

도대체 저런 평범한 미국인들이 뭐가 아쉬워서 국회의사당 폭도가 되었을까?

 

 

폭도들의 공통점

 

워싱턴포스트(링크)는 폭동 한 달 후 기소된 폭도 125명의 직장, 경제 사정, 납세 기록, 투표기로 등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정보를 모두 분석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사례를 발견했다.

 

-폭도 5명 중 1명(18%)이 개인파산 기록이 있었다.

(미국인 평균의 두 배 이상)

 

-폭도 4명 중 1명(25%)은 밀린 세금이나 신용카드 부채로 인해 소송을 당한 상태였다. (부채 액수는 수천 달러 수준의 소액에서 40만 달러 정도로 다양했다)

 

-폭도 5명 중 1명은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빼앗기거나,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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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

 

그러고는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추세를 발견했다.

 

기소된 폭도의 60%가 어떤 형태로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절박한 상태였다.

 

예를 들어, 경찰 총에 맞아 사망한 백인 여성 애쉴리 배빗은, 군대 제대 후 수영장 관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폭삭 망했고, 대금을 갚지 못해 소송에 패소해 2만 3,000달러를 갚아야 할 상태였다.

 

잘나가는 부동산업자 제나 라이언은 겉보기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삐까뻔쩍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당시 파산한 적이 있었다. 또 코로나19로 인한 부동산 경기 침체로 막대한 빚과 세금 부채를 지고 있었다.

 

간병인 라일리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해 온 가족이 파산을 신청했고, 주택 대출을 못 갚아 집을 잃고 쫓겨난 적이 었었다.

 

레인저 출신 참전용사 제시카 왓킨스도 2019년부터 오하이오주에서 술집을 열었지만,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한 집합금지 명령으로 가게가 ‘폭망’했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한 폭도는 의회 폭동 일주일 전에 파산을 신청했고, 또 다른 텍사스 남성은 세금 2,000달러를 체납한 상태였다. 조지아 출신의 50대 남성 변호사도 2만 6,000달러 세금을 체납한 상태였다. 

 

이들이 겪은 경제적 어려움의 공통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또는 ‘코로나19로 인한 영업금지’ ‘세금 체납 등으로 인한 피소’ 등, 젊었을 때 겪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폭도들 대다수가 정부 경제 정책에 불만을 가져서 폭동을 일으켰다고 결론 내리기엔 아직 섣부르다. 그러나 아메리칸 대학 신시이 밀러 이드리스 교수는 독일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이렇게 지적한다.

 

“2011년 독일의 극우 청년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본인들의 소득 수준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극우 청년의 대다수들은 어렸을 때 부모가 파산, 세금 체납 등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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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경제>

 

밀러 이드리스 교수는 이어서 지적했다.

 

“성인이 된 청년들은 자기도 (부모처럼)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기들 부모가 이미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만과 실망을 갖고 있었고, 그 이유를 좀 더 넓은 곳에서 찾으려 했다. 그런데 그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망해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답답한 채 유튜브를 많이 봤는데, 거기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다.”

 

“여러분이 다시 잘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려는데, 선거 부정으로 그 기회가 사라지게 되었다. 가만있을 것이냐?!”

 

극단주의를 연구한 캔사스대 돈 하이더 마클 교수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미국인들에게 트럼프가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다. 잘나가던 시절의 미국은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다시 (잘나가던 시절을) 되돌려주겠다… 라고 말이다.”

 

 

서부지법 폭도들의 정체와 가짜뉴스 대응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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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얼마 전 한국에서 일어났던 서부지법 폭동. 대한민국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정도의 폭동이었다. 폭동이 발생한 이후, 이에 참여했던 폭도들의 정체가 점점 드러나고 있다. 폭도들은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던 ‘아스팔트 보수 노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위 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 

 

1. 폭도의 대다수는 30-50대이고,

 

2. 직업은 자영업, 회사원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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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폭도들의 경향이 미국 의사당 폭도들의 추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물론 미국이든 한국이든 폭도들에 대해, 그 근본적인 이유로 들어가면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과 불안’ 때문에 폭동을 저질렀다고 결론 짓기엔 아직 성급하다. 이들이 폭력을 저지른 이유를 학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면 몇 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시점에 한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폭도들의 기소와 처벌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을 부추긴 가짜뉴스들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래야 제2의 폭도들을 막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워싱턴포스트나 월스트리트저널은 의회 폭동으로 기소된 폭도들 수백 명의 재판기록, 납세 기록, 재정 기록들을 파헤쳐 통계를 내고 일정한 ‘트렌드’를 찾아내려 노력했다. 재판 기록을 일반에 공개하는 미국 법정의 특색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필자는 2020년부터 한 미국 연구기관의 리서치에 참여한 적이 있다. ‘SNS의 가짜뉴스를 연구해 보자’는 소박한 취지였다. 물론 이 리서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대통령 선거나 미국 의회 폭동은 상상도 못 할 때였다. 아이디어는 이러했다.

 

“SNS상의 가짜뉴스를 졸라 많이 수만 개, 수십만 개를 수집해서 ‘빅데이터’를 만들어보자. 수많은 가짜뉴스에 위치를 기록하고 태그를 만들고 기원을 추적해 보자. 그러면 일정한 트렌드가 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이 리서치를 시작하자마자 코로나19가 터지고 대통령 선거, 의회 폭동이 터지면서 가짜뉴스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를 보면서 괴롭기도 했지만, 수십 수만 개가 쌓이면서 일정한 추세가 나오고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코로나19 백신 업데이트가 나오면 이런 백신 음모론이 퍼지겠군. 선제적으로 보도자료와 홍보를 준비하자.”

 

“지난 가짜뉴스 추세로 볼 때, 앞으로 XX 지역 선거에는 이런 부정선거 음모론이 퍼지겠군. 정부와 선관위 차원에서 미리 설명자료 및 홍보를 실시하자.”

 

물론 이런 SNS상 가짜뉴스를 개인이 일일이 찾아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생 노가다’가 따로 없다. 그러나 미국의 SNS 기업은 이런 가짜뉴스 리서치를 위한 ‘앱’을 개발해 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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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메타> 링크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크라우드 탱글(링크)’이라는 앱을 연구자들에 한해 무료 배포했다. 이 앱은 SNS에서 특정 포스트를 검색하면 ‘어디서 누가 최초로 이 뉴스를 퍼뜨렸는지’를 추적할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가짜뉴스 포스팅을 검색하면 ‘누가 이 뉴스를 처음 퍼뜨렸는지’ 어느 정도 추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SNS 추적 앱은 SNS 회사 자체의 협력이 없이는 개발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 SNS 회사들이 단순히 ‘착한 기업’이라서 협력해 준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치권과 연구자 등의 사회적 압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니네들 SNS 회사들. 돈 벌겠다고 가짜뉴스 방치하다 보니, SNS가 가짜뉴스 천지가 됐네. 대책 없이 방치만 할 거야? 너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 들어는 봤냐?”

 

가짜 뉴스를 법적으로 처벌은 못 하지만, 최소한 방지하려는 시늉은 해야 한다. 페이스북 등 미국의 ‘빅테크’ 등도 쏟아지는 비난을 피해 보자고, 연구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추적 앱을 배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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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메타> 링크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트럼프의 집권을 계기로 이러한 SNS 연구 앱은 업데이트 및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뒤집어 말하자면, 경영자와 정치권의 ‘가짜뉴스 퇴치’ 여론이 정권이 바뀌면서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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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

 

우리 언론들도 서부지법 폭동으로 기소된 폭도들을 체계적으로 끝까지 찾아내어 추적했으면 좋겠다. 수천, 수만, 수십만의 자료가 모이면 ‘빅데이터’가 되고 일정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폭도들이 누구이며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 

 

폭도들을 부추긴 가짜뉴스에 대해서도 체계적 연구와 추적을 해봤으면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SNS 플랫폼 회사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카카오톡, 라인,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 코리아 등에 ‘가짜뉴스 연구, 퇴치’ 앱을 개발하도록 여론의 압력을 가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이다. 

 

당장의 가짜뉴스를 퇴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근본 원인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일시적 분노보다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집요하고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다. 그것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