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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교의 대서양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20세기 미국 외교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대서양주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카고 대학의 석좌교수인 브루스 커밍스(B. Cumings)는 대부분 미국인은 해외 정세나 외교 정책에 관한 글을 쓸 때 대서양주의 혹은 유럽 우선주의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지적한다. 

 

‘그들(미국인들)은 대서양 국가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우선시되어야 하며, (그에 대해) 항상 그래왔다고 단순히 가정한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미국 외교의 엘리트 집단에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최근 새로 집권한 트럼프의 백악관에서는 전혀 다른 기류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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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출처-<AP>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먹으려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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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8일 자

미국 일간지 『뉴욕포스트』 1면

출처-<뉴욕포스트>

 

트럼프는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변경하고,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시키고, 1999년에 파나마로 소유권을 넘겨준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고 발언했다. 

 

트럼프의 야욕(野慾)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트럼프는 연일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 한반도 약 10배 크기에 달하는 ‘그린란드’를 넘보고 있다. 

 

그린란드가 어떤 섬인지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1. 미국과 유럽 사이 북극해에 위치하는 섬

 

2. 1953년 공식적으로 덴마크에 편입(식민지→자치령)되어 덴마크령 영토가 되었음

 

3. 2009년부터는 외교와 국방 분야를 제외한 모든 정책 결정에 자치권을 갖게 되었음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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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위치

출처-<구글 지도> 

 

근데 트럼프가 이 그린란드를 느닷없이 미국 땅으로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다. 대서양 관계는 모르겠고,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기반해 나의 길을 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답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치인 이전에 비상(非常)한 기업가다.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

 

 

화들짝 놀란 유럽 : 우리도 가만히 있진 않겠다

 

그린란드는 미국과 유럽 사이에 있다. 그 전부터도 오랜 지배 역사가 있지만, 덴마크가 본격적으로 그린란드를 지배한 건 약 300년 전인 1721년부터이다. 그전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광활한 땅은 20세기 들어 천연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특히 스마트폰, 전기자동차, 전투기 등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가 상당량 매장되어 있다. 

 

국제 규범은 아랑곳하지 않는 트럼프가 돈 냄새를 맡아서일까.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당선자 신분으로 가진 1월 7일 기자회견에서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를 장악하기 위해 향후 경제적 압력은 물론 군사력 또한 배제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대통령 취임식 이후 있었던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국제 안보를 고려해 미국이 그린란드를 통제해야 한다. 덴마크는 그린란드의 안보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다시 한번 그린란드를 먹겠다고 발언하며 동맹국인 덴마크의 심기를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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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트럼프의 영토 야욕에 덴마크를 중심으로 유럽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먼저 가장 당혹스러운 입장을 보인 것은 당연히 ‘그린란드’다. 

 

트럼프의 취임식 바로 다음 날 에게데(Egede) 그린란드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그린란드는 미국인도, 덴마크인도 되고 싶지 않다.”

 

“미국과 안보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은 할 수 있지만, 그린란드의 미래는 그린란드인들이 직접 결정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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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데(Egede) 그린란드 총리

출처-<로이터>

 

실제 덴마크의 유력 일간지인 베를링스케(berlingske)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그린란드 주민 가운데 85%는 미국에 합병되는 것을 반대했으며, 6%만 이에 찬성했다. 9%의 주민들은 결정하지 않았다(undecided)고 밝혔다.

 

다음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덴마크’다. 

 

트럼프의 취임 1주일 만인 지난 27일, 포울센(Poulsen) 덴마크 국방부 장관은 그린란드 안보를 위해 한화 약 3조 원(146억 크로네)의 방위비 지출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와 함께 덴마크 정당들은 그린란드가 위치한 북극의 안보를 위해 더 많은 군사비를 담은 방안을 올 상반기에 제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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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울센(Poulsen) 덴마크 국방부 장관

출처-<Kronen Zeitung>

 

이튿날 프레데릭센(Frederiksen) 덴마크 총리는 독일과 프랑스, 벨기에를 차례로 방문하며 외교전을 펼쳤다. 가장 먼저 독일을 방문한 프레데릭센 총리는 유럽이 처한 위기를 우려하며 유럽의 단결을 촉구했고, 이에 숄츠(Scholz) 독일 총리는 유럽은 국제사회가 합의한 규범을 존중하고, 국경은 무력(by force)으로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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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덴마크의 프레데릭센(Frederiksen) 총리가

트럼프의 그린란드 매입 발언 이후

독일의 슐츠 총리와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을

잇달아 만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다른 유럽 주요 인사들도 트럼프의 행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안토니우 코스타(Costa)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

(유료뉴스(Euronews)와 인터뷰 中)

 

“그린란드 문제에 대해 덴마크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로베르트 브리거(Brieger) 유럽연합 군사위원장

(독일 언론과 인터뷰 中)

 

“(유럽연합 차원이 아닌 사견임을 밝히며) 향후 그린란드에 유럽연합 병력이 주둔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반응을 보면, 유럽 주요 인사들은 그린란드를 단순히 덴마크만이 아닌 유럽 차원의 안보 문제로 접근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미국과의 갈등도 일정 부분 불사하겠다는 생각임을 알 수 있다.

 

 

그린란드를 먹으려는 이유

 

이런 반응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30일 마크 루비오(Rubio) 미국 국무장관은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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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루비오 미 국무장관 

출처-<로이터>

 

“그린란드는 단순히 하나의 영토가 아니라 미국의 국가적 이익에 부합한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매입에 진심”

 

“향후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적 방안도 배제하지 않을 것”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기 당시에도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특히, 2020년 12월에는 당시 미국 외교부에서 약 300페이지에 달하는 ‘새로운 북극의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Greenland and Iceland in the New Arctic」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과 관련해 전혀 미국의 역사적 배경이 없는 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덴마크가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에 항복하자 그린란드는 미국의 보호를 받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그린란드는 비행기 생산에 필수적인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크라이오라이트(cryolite) 광산에 대한 통제권을 미국에 넘겼다. 또한, 이곳에 비행장을 설립할 수 있는 면허권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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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그린란드 툴레 미 공군기지에

캐나다 공군 비행기 2대가

비행 임무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출처-<Today Defense>

 

1945년 전쟁이 끝나고 그린란드는 다시 덴마크로 복속되었으나, 냉전의 시작과 함께 소련의 위협이 대두되면서 1951년 미국은 그린란드에 툴레(Thule) 공군기지를 건립한다. 이후 수십 년간 미국과 그린란드는 방위 협정을 체결하고 있으며, 최근 이 툴레 공군기지는 피투피크 우주기지(Pituffik Space Base)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기지는 현재 미군이 운영하는 최북단 기지로, 탄도 미사일 조기 경보 시스템의 일부인 레이더 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하에, 트럼프가 공격적으로 그린란드 매입에 나서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크게 3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째, 위 공군기지가 보여주듯 미국의 안보적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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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위치

출처-<워싱턴포스트>

 

그린란드는 미국과 유럽 사이에 위치하며, 동시에 러시아와의 거리도 가깝다. 이에 냉전 시기 미국은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그리고 영국과 함께 소련의 대서양 진출을 차단하는 데 집중했다. 또한, 그린란드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약 3,500㎞이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 러시아의 미사일을 조기에 방어하는데도 매우 용이하다. 실제 미 공군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와 함께 매년 알래스카와 그린란드에서 북미를 위협하는 항공기와 순항미사일에 모두 대응하는 노블 디펜더(Noble Defender) 작전을 펼치고 있다. 

 

둘째, 해상 운송로 확보와 관련된 경제적 요소다. 

 

최근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그린란드는 미국과 유럽을 잇는 최적의 해상 운송로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지난 10년간 북극권을 통한 운송은 37%가량 증가했다. 이에 미국은 그린란드를 경유하는 북극 항로를 개발할 경우, 미국 서부와 유럽의 항로 거리가 수에즈 운하를 활용할 때보다 약 40%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린란드에 매장된 엄청난 양의 자원과 관련된 경제적 요소다. 

 

그린란드에는 원유, 천연가스는 물론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는 희토류가 풍부하게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세계 희토류 생산에서 중국이 약 90%를 독점하고 있다. 미·중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는 물론 F-22, F-35 등의 스텔스기 생산에 핵심적인 자원인 희토류의 중요성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미국이 그린란드를 먹는다면, 이 부분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고 새로운 자원 파워를 갖게 될 것이다. 

 

 

숨어있는 노림수 

 

하지만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먹으려고 하는 건은 비단 위 3가지 이유뿐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사실 이게 진짜 트럼프의 노림수다.

 

트럼프의 국내 지지층들을 향해 미국이 본격적으로 패권 국가로 등장하던 19세기 서부 개척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

 

브루스 커밍스는 900여 쪽에 달하는 『미국 패권의 역사』라는 저서에서 19세기 미국 성장의 핵심으로 대서양을 향하던 과거와 달리 서부 개척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을 지적한다. 

 

“미국은 풍부하고 값싼 땅을 장점으로 대도약을 거듭하여 세계의 시간 속에서 후발 개발국이 되었다. 동부에서 입증된 방법으로 서부를 개발했기 때문에 투자의 위험성은 낮았고, 투자자도 별로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왜 미국이 ··· 다른 산업 국가들보다 빠르게 성장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면서 커밍스는 미국은 당시 쉽게 얻은 다섯 개의 조각으로 지금의 미국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다섯 조각

 

1. 초기 13개의 식민지로 출발한 미국

 

2. 프랑스로부터 얻은 루이지애나

 

3. 텍사스

 

4. 태평양쪽 영토(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하와이를 포함하는 영토)

 

5. 러시아로부터 얻은 알래스카

 

특히, 루이지애나와 알래스카 매입은 지금의 미국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순간이다. 먼저, 1803년 토마스 제퍼슨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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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미국이 프랑스 정부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할 당시의 지도.

왼쪽은 이를 주도한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이다. 

출처-<knowUSA>

 

위 지도와 같이 당시 1,500만 달러에 확보한 루이지애나의 크기는 미국 본토의 약 1/3에 해당한다. 이는 단순히 엄청난 규모의 미개발지라는 점뿐만 아니라 미국의 서부 지역과 태평양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이었다. 또한, 이러한 영토 확장은 이후 앵글로-색슨이 자유와 번영을 미 대륙과 전 세계에 전파하는데 우월성이 가진다는 미국 개신교의 선민의식과 연결된다. 특히 루이지애나 매입은 당시 세계 패권국이었던 프랑스를 아메리카 대륙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한 것으로, 미국인들은 유럽 열강으로부터 미국의 자유를 확보한 것으로 인식했다. 

 

다음으로, 1867년 앤드루 존슨은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한다.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매입하며 미국은 북태평양 연안 북방 영토까지 확보하게 된다. 즉, 1803년의 루이지애나 매입이 미국 본토 확장을 통해 서부 지역으로의 본격적인 확장이었다면, 1867년의 알래스카 매입은 미국 본토를 넘어 태평양으로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미국인들에게 루이지애나와 알래스카 매입으로 대변되는 19세기 서부 개척의 역사는 위대한 미국의 서곡이다. 2016년 대선부터 트럼프가 줄곧 외치고 있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시작이 바로 19세기 서부 개척의 역사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트럼프가 왜 그린란드를 무리해서라도 매입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지난 대통령 취임식에서 트럼프가 제25대 월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대통령을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떠받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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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매킨리 제25대 미국 대통령

 

1897년 취임한 매킨리 대통령은 관세와 영토 확장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활용해 강력한 미국을 추구했다.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를 침략해 사실상의 미국 영토로 만든 것이 매킨리 대통령이었으며, 하와이를 합병한 것도, 파나마 운하 건설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국제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트럼프가 추구하는 대통령이 바로 이 매킨리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매킨리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다’며, 북미 대륙 최고봉인 알래스카주 디날리산의 명칭을 매킨리산(Mt. Mckinley)으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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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취임 첫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다양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트럼프 

출처-<경향신문>

 

정리하면, 트럼프는 그린란드 매입 발언으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는 세계의 대통령이 아닌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위대한 미국이 아닌, 자국민들에게 인정받는 위대한 미국이 되고자 한다. 

 

1970년대 인권을 강조하며 도덕적인 미국을 꿈꿨던 지미 카터는 연임에 실패했다. 트럼프에게는 세계의 인정이 아닌 자국민, 그 가운데 자신의 주요 지지층들에게 확실한 인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그린란드 매입 노력은 ‘서부 개척의 향수를 자극하는 정치적 노림수’로 볼 수 있다. 

 

Profile
이름은 박민중입니다.
생일은 3.1절입니다.
정치학을 전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