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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윤석열 :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

 

지난 기사(링크)에서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에 대해 소개해봤다.

 

1. 1990년 대선에서 ‘친일’을 내세우며 대통령 당선 

 

2. 여대야소로 뜻대로 안 되자 집권 2년 만에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3. 국회와 대법원에 탱크와 군대를 출동시키고

 

4. 비판적 언론인과 자기편 정치인에게 체포조, 암살조를 보냈다.

 

5. 특수부대로 공포정치를 펼치며 10년간 3선 대통령이 되었다.

 

6. 그러나 부정부패와 학살이 들통나며 일본으로 망명

 

7. 사실은 ‘일본 국적자’임이 드러났다.

 

8. 결국 망명 7년 만에 체포돼 징역 25년 선고 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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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윤석열’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

출처-<뉴스1>

 

 

1990년 대선에서 다른 후보가 당선됐다면

 

여기서 가정 하나 해보자. 만약 1990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지모리가 패배했다면? 그래서 다른 후보가 당선됐다면? 그렇다면 적어도 친위 쿠데타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없지 않았을까?

 

후지모리가 당선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되었을 사람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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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대선에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후지모리 

출처-<ATV>

 

그는 당시 후지모리에 맞섰던 야당 ‘민주행동’의 대통령 후보였다. 

 

“엉? 뭔가 이름이 낯익은데?”

 

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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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andina>

 

맞다. 

 

그는 2010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소설가였지만, 현실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결국 정치가의 길을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99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바르가스 요사는 당선될 수 있을 정도로 지지율이 높았지만, 페루 국민은 미래를 알지 못한 채 ‘후지모리’를 선택했다. 페루의 대통령이 미래의 노벨 수상자 대신 ‘독재자 겸 일본인’으로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이 결정으로 이후 페루의 역사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노벨문학상 작가가 쓴 후지모리 독재 정권

 

선거에 패배한 바르가스 요사는 1993년 후지모리의 탄압을 피해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바르가스 요사는 후지모리가 페루 국민에게 남긴 상처에 대해 글을 썼는데,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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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이웃들> (The Neighborhood)

(2019년 출간)

아쉽게도 한국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이웃들>은 후지모리 정권의 비극에 대해 그리고 있지만, 주인공은 후지모리가 아니다. 바로 ‘닥터’(The Doctor)라는 인물이다. ‘닥터’는 후지모리 정권의 2인자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국가정보국장의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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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국가정보국장

출처-<AP>

 

바르가스 요사는 ‘닥터’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원래 포병 장교였던 그는 CIA에게 포섭되어 기밀을 건네다 체포됐다. 복역 중이던 그는 감옥에서 법을 공부했고, 결국 변호사가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닥터’(The Doctor)라고 불렀다. 사면, 석방된 그는 마약상을 변호하고, 판사와 검사를 협박해서 형량을 줄여 악명을 높였다. 심지어 파블로 에스코바르도 변호했다. 

 

그러나 1990년 대통령 선거에서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의 인생도 역전된다. 선거 기간 중 한 해군 장교가 ‘후지모리는 페루인이 아닌 일본인’이라는 증거를 발견했다. 이 소식이 언론에 공개되려 하자 후지모리는 겁에 질렸다. 그래서 후지모리는 ‘닥터’와 결탁했다.

 

‘닥터’는 빠르고 영리했다. 며칠 만에 후지모리의 일본 국적 문제는 언론에 사라졌고, 이를 발견한 해군 장교는 뇌물을 받고 증거를 인멸했다. 

 

그 사건 이후, ‘닥터’는 후지모리의 오른팔이 됐고, 국가정보국장이 됐다. 그러고는 10년 동안 페루에서 자행된 마약밀수, 강도, 정치적 범죄 등 최악의 범죄를 배후에서 조종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은 후지모리다. 그러나 모든 명령을 내리고 조종하는 것은 ‘닥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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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국가정보국장

출처-<게티이미지>

 

바르가스 요사의 <이웃들>에 묘사된 ‘닥터’는 군대와 법조계, 그리고 언론을 조종해 온갖 정치적 권모술수를 저지른다. 그중에도 기자들에게 특종 거리를 주는 대신, 언론을 이용해 정치적 라이벌을 매장하는 것이 특기였다. 바르가스 요사는 ‘닥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모든 신문은 출판되기 전에 나(닥터)에게 허가를 받으시오. 때론 내가 직접 ‘헤드라인’(기사 제목)을 뽑아주겠소. 나는 헤드라인을 잘 뽑거든. 앞으로 누가 검찰 수사를 받는지, 또 누가 수사에서 빠지는지, 누가 XX가 될 것인지 내가 알려주겠소. 하지만 당신(기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거요. 내가 XX해버리라고 말한 사람은 철저하게 XX로 만들어버리시오.

 

‘닥터’는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잊지 마시오. 나는 배신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소. 나에게 철저하게 충성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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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유명한 편집국장이 있던 것 같은데...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페루판 편집국장’ 몬테시노스의 권력 역시 10년을 가지 못했다. 2000년 후지모리 정권이 무너지면서, 그 역시 베네수엘라로 망명했다. 

 

몬테시노스는 한때 CIA에 포섭됐을 정도로 미국과 가까웠다. 그러나 믿었던 미국이 그를 ‘토사구팽’하면서, 그는 망명 1년 만에 페루로 강제송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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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송환 되어 체포되는 몬테시노스

출처-<enlinea.pe>

 

몬테시노스는 마약밀수, 부정부패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지난 2024년 정치적 반대자 살인 혐의로 징역 19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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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받는 몬테시노스

출처-<andina>

 

 

감옥에서 정치권을 조종하는 ‘닥터’

 

후지모리는 2024년 죽었지만, ‘닥터’ 몬테시노스는 아직도 살아있다. 생명뿐 아니라 영향력까지 말이다. 후지모리와 몬테시노스가 뿌린 ‘친위 쿠데타’와 ‘부정부패’의 악몽은 아직도 페루 정치권에 어른거린다. 

 

2021년 페루 대통령 선거는, 몬테시노스가 감옥에서 정치를 조종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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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은

게이코 후지모리(왼쪽)와 페드로 카스티요

 

2021년 페루 대통령 선거에는 후지모리의 딸인 보수파 ‘게이코 후지모리’와 민중파 ‘페드로 카스티요’ 후보가 격돌했다. 모든 언론이 ‘독재자 아버지’의 후광을 얻은 게이코 후지모리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어떻게 후지모리의 딸이 대통령 유력 후보가 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 독자는 한국의 경우나 필리핀의 경우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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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카스티요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민중파’ 페드로 카스티요가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후지모리 일가를 지지하는 ‘닥터’ 몬테시노스가 이런 상황을 두고 볼 리 없었다. 몬테시노스는 최고 경비 수준을 자랑하는 해군 교도소에서 게이코 후지모리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페루 리마 주재 미국 대사관에 가라. 거기 CIA 요원에게 ‘부정선거’ 증거물을 제시하라. 쿠바와 니카라과가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하고 이야기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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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불렀어? 

 

다른 전화 통화에서 몬테시노스는 군대와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선거 담당 판사 3명을 매수하라. 판사 1명당 1백만 달러씩 쥐여줘라. 그러고는 판사들에게 선거 결과를 재점검하라고 해라.”

 

그러나 이 부정선거 공작은 곧 발각되었다. ‘블라드 오디오(Vladi-audios)’라고 불리는 이 전화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자 페루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보수파는 “난 몰라요”라며 배를 쨌고, 교도소 경비를 맡은 해군은 “몬테시노스가 전화 두 통밖에 안 걸었다”고 발뺌했다. 카스티요 대통령은 해군을 문책하고, 몬테시노스를 다른 교도소에 이감하여 더욱 엄중하게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후지모리 대통령의 독재에 앞장선 몬테시노스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생각해 본다.

 

1. 내란범이 친위쿠데타를 한 번만 성공해도 그 후유증은 수십 년을 간다.

 

2. 내란범이 권력을 장악하는 수단은 법조계, 언론, 군대다.

 

3. 내란범이 나라를 어지럽힐 때 내세우는 명분이 ‘부정선거’다.

 

4. 내란범을 감옥에 가뒀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철저하게 뿌리 뽑아 처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서도 ‘옥중 정치’를 펼쳐 나라를 어지럽힐 수 있다.

 

그렇다면, 몬테시노스의 옥중 공작까지 드러난 지금은 후지모리와 몬테시노스가 뿌린 ‘친위 쿠데타’의 망령이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계속>

 

 

다음 편 예고

 

과거 ‘친위 쿠데타’ 후유증을 특히 겪고 있는 분야는 정치권이다. 그로 인해 현재 페루 정치권은 그야말로 ‘혼파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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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뜬금없이 페루 정치권에 다시 나타난 노벨 문학상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그는 “친위 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