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를 제외하고 전 세계가 분주하다. 트럼프 때문이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행정명령을 남발하며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대외적으로 예상했던 관세와 예상치 못했던 영토 야욕을 드러내며 전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다.
트럼프의 우상과 관세 정치
지난 10일, 트럼프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안토니오 코스타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 그리고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불과 이틀 만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철강과 알루미늄 대미 수출 규모에서 각각 1위와 3위인 캐나다와 유럽연합은 트럼프의 관세 정치를 예상은 했지만,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왼쪽부터)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안토니오 코스타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
출처-<AFP>
지난 10일, 구글은 전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자사의 지도 애플리케이션인 구글맵(Google Maps)에서 멕시코만의 명칭을 미국만(Gulf of America·아메리카만)으로 변경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구글은 정부의 공식 지명을 따라온 오랜 관례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멕시코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앞바다 이름이 바뀌었다.
이와 관련하여, 백악관은 이튿날 세계적인 통신사 ‘AP통신’의 백악관 출입을 금지했다. AP통신이 멕시코만을 ‘미국만(아메리카만)’으로 변경하라는 트럼프 정부의 행정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구글 지도인 구글 맵 한국판에서
멕시코만이
‘멕시코만(아메리카만)’으로
표기되고 있다.
(검색일: 2025년 2월 14일)
출처-<구글 지도>
이런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미국에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 전임 대통령이 있다.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왜냐.
트럼프가 위대한 대통령이라며 떠받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트럼프는 매킨리는 언급했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매킨리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다’며, 북미 대륙 최고봉인 알래스카주 디날리산의 명칭을 매킨리산(Mt. Mckinley)으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까지 했다.
그럼, 트럼프는 왜 이렇게 매킨리를 떠받들까.
매킨리가 ‘관세 왕’으로 유명하고, 미국의 영토를 넓혔기 때문이다.
미국의 언론들도 매킨리를 재조명하며 제25대 대통령인 매킨리를 특집으로 다룬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 12일에 보도되었던 CNN 기사의 경우는 매킨리 특집에서 그를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관세 왕’(tariff king)‘과 ‘트럼프의 우상’(Trump’s idol)

사진 속 남자가 매킨리다.
매킨리(Mckinley)가 뭘 했길래?
CNN의 기사처럼 일반 대중들과 언론들은 대체로 트럼프와 매킨리를 연결하며 ‘관세 정치’를 주 키워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실제 매킨리의 정책과 시대적 맥락을 살펴보면, 트럼프가 매킨리를 언급한 진짜 이유는 매킨리의 제왕적 대통령 권한 때문이고, 그 권한을 통해 영토를 팽창하려는 속셈 때문이다. 이것이 트럼프가 매킨리를 소환한 진짜 이유다.

1897년 3월 4일,
대통령 당선자인 매킨리가
워싱턴에서 대통령 서약을 하고 있다.
출처-<POLITICO>
매킨리는 1843년 1월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다. 1860년대에는 남북전쟁에 북부군으로 자원입대해 보급병으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엔 뉴욕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7년 동안 지방 검사로 근무한 뒤, 공화당에 입당해 연방 의회 하원의원이 되었다.
1890년, 매킨리 하원의원은 평균 수입 관세를 38%에서 무려 49.5%로 상향하는 법안을 주도해 통과시켰다. 이때부터 그는 ‘보호주의의 나폴레옹’으로 불리며 유력 정치인이 되었다. 그는 승승장구하여 결국 1896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미국 제25대 대통령이 되었고, 1900년에는 재선까지 성공하며 20세기 첫 대통령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재선 이듬해인 1901년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사실 매킨리에 대한 ‘관세 왕’이라는 CNN의 평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미국 정치사에서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부터 1929년 경제 대공황까지를 공화당의 황금 시기로 평가한다.
이 황금 시기를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1. 1861년 ~ 1881년
링컨 대통령부터 5차례 연속 공화당이 석권한 시기
2. 1881 ~ 1897년
공화당과 민주당이 두 차례씩 집권한 시기
3. 1897 ~ 1933년
우드로 윌슨을 제외하고 모두 공화당이 집권한 시기
여기서 세 번째 황금 시기 문을 연 대통령이 ‘매킨리’다.

매킨리 제25대 미국 대통령
매킨리가 대통령이 되었을 당시에는 정치적 환경이 매우 좋았다. 1896년에 매킨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는 18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하며 상·하원을 장악한 상황이었다. 민주당의 경우 중간선거에서 처참하게 지며 하원 의석의 경우에는 의석 점유율이 61%에서 29%로 급락한 상태였다.
때문에 매킨리는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 정책이었던 ‘고관세 정책’을 고수하거나 오히려 더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매킨리는 저관세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이유는 당시 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다.
매킨리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당시 미국은 1873년 이후 지속적인 경기 침체를 겪고 있었다. 이 시기에 남부 지역의 대표적인 농산품인 밀과 면화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농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동시에 전기, 석유, 철강 등을 중심으로 한 소위 2차 산업혁명으로 과잉생산이 가능해지며 잉여생산물이 더 쌓여가자, 경기침체 현상은 오히려 고착되었다. 미국의 실업률이 당시의 경기침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892년 4%이던 실업률이 1893년 9.6%, 1894년 16.7%까지 치솟았다.
전기 에너지를 이용하여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 일을
‘2차 산업혁명’이라 한다.
당시 미국 내부적으로는 경기 침체를 회복하고 노동자의 이익을 확보하는 방안은 고관세 정책으로 국내 시장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저관세 정책을 써서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것으로 보았다. 저관세 정책으로 원자재를 저렴하게 확보하고 이를 재생산해 해외시장에 값싸게 많이 판매해야 2차 산업혁명에 의해 증가한 생산물도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고, 이런 선순환이 일어나야 노동자들의 완전고용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매킨리는 저관세 정책을 추진했다. 미국은 경제를 회복해 나갔고 1899년에는 실업률이 7.7%까지 떨어지게 이르렀다.
하지만 다트머스 대학교의 더글라스 어윈(Irwin) 경제학 교수는 19세기 말을 팽창의 시기로 정의하며, 당시 세금은 사실 미국의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보다 앞서 언급한 전기, 철도 등의 발전이 산업화를 촉진했으며, 이와 함께 자유로운 이민으로 인한 저렴한 노동력의 유입이 중요한 요소였다고 강조한다.
어찌 됐든 매킨리 시절 미국은 경제를 회복했고, 저관세로 자유무역 정책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그를 ‘관세의 왕’이라고 하는 건, 고관세를 추진하던 시절에만 집중한 탓인 듯하다.
결국, 매킨리를 ‘관세 왕’으로 평가하는 것은 반은 틀린 것이며, 트럼프가 관세 때문에 매킨리를 소환한다는 주장 또한 반만 맞는 것이다.
트럼프가 매킨리를 소환한 이유로는 ‘관세’보다 ‘제왕적 대통령’에 초점을 맞추는 게 합당하다.
출처-<The Telegraph>
제왕적 대통령 매킨리(Mckinley)
미국 역사학자 월터 라페버(W. LaFeber) 코넬대 교수는 두 가지 이유로 매킨리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으로 정의한다.
먼저, 인사권이다.
매킨리는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는 자신의 사사로운 측근을 중용했다. 예를 들어, 1897년 스페인 대사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외교 경험도 없고 스페인어도 못하는 우드퍼드(S. Woodford) 의원을 공화당 중진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사로 임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정치 참모였던 마크 해나(M. Hanna)를 상원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상원의원이었던 존 셔먼(J. Sherman)을 국무장관에 기용하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 매킨리의 이 같은 인사권 행사는 트럼프가 1기에 장녀 이방카를, 이번 2기에서는 장남 트럼프 주니어를 활용하는 것과 닮아있다.

트럼프 가족 사진
트럼프를 기준으로 오른쪽이 딸 이방카 가족,
왼쪽이 아들 트럼프 주니어 가족이다.
출처-<VOA>
다음으로는, 외교권이다.
매킨리는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의회를 거치지 않거나 선전포고 없이 해외에 파병한 선례를 남겼다. 이는 미국 헌법에 규정된 연방 의회의 외교권에 제동을 건 정치적 행위이며, 동시에 대통령의 외교권을 확대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실험이었다.
매킨리의 실험은 성공했다. 실제 매킨리 전후로 대통령의 외교에 대한 의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매킨리 이전 의원들은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했다면, 매킨리 시절부터는 대통령의 의견을 ‘듣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했다. 이에 학자들은 매킨리는 적어도 외교에 있어 대통령을 ‘선출직 왕’(Elective Monarchy)의 지위로 스스로 격상시켰다고 분석한다.
매킨리가 트럼프의 우상인 이유
매킨리는 제왕적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건, 미국의 영토 확장이었다.
매킨리는 인사권을 활용해 영토 확장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분명히 했고, 외교권을 활용해 실제 영토 확장을 이뤘다.
먼저 인사권을 활용해 1900년 재선 당시 제국주의를 미국의 가치로 주장하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며 영토 확장의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1899년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자신이 집필한 『분투하는 삶』에서 외교의 바탕은 군사력이며, 이에 기반한 팽창주의 외교가 미국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아시아 및 중남미 국가들과의 전쟁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외교권, 즉 전쟁을 통해 미국의 영토를 태평양 너머까지 확대했다. 1896년 첫 번째 대통령 선거에서 매킨리는 하와이 병합, 해군력 증강, 니카라과 운하의 건설, 서인도제도에 해군기지 건설 등을 자신의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럼에도 1898년 초기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 문제로 스페인과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주저했다.
그러나 1900년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1898년 7월 하와이를 병합하면서 카리브해만이 아니라 태평양 너머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을 결정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손쉽게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파리조약에서 2,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필리핀을 양도받고, 스페인으로부터 쿠바에 대한 영유권 포기도 얻어냈다. 또한, 패전국인 스페인은 푸에르토리코와 괌까지 미국에 헌납하기에 이르렀다. 1898년 전쟁으로 미국은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스페인은 지는 해가 되었다.
외교권, 즉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중남미, 태평양, 그리고 아시아 지역의 영토를 확보한 매킨리의 미국은 미주 대륙을 넘어 미국 외교의 원칙을 세계 무대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최근 트럼프의 그린란드, 멕시코만, 캐나다, 파나마 운하, 심지어 화성까지 이르는 발언들을 그냥 하는 말들이 아니다. 트럼프가 생각하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매킨리 시대의 영토 확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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