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연재>
(1)청와대 습격 사건 전말: 서울에 나타난 바바리코트 사내들
(2)청와대까지 300미터: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총격전
(3)684 부대의 비극: 실미도에 갇힌 인간병기 31인
|

교육대장은 누구보다 상황의 심각성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이대로 넘어가면 절대 안 된다. 훈련병 기강을 확실히 잡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기간병을 구타한 오소리 훈련병을 잡아 와 연병장에 묶어라. 최종 지시는 내가 내린다.”
총으로 무장한 기간병들이 연병장에 모인 훈련병들을 에워싸자, 충격적인 명령이 내려졌다.
“지금부터 기강을 무너뜨린 오소리를 너희들이 즉결 처분한다. 너희들이 처단하지 못하면 우리의 총에 너희들이 죽는다.”
망설이던 훈련병들에게 위협사격이 가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기간병들은 자신들을 향해 실제 사격을 하고도 남을 자들이었다. 이윽고 죽을 고비를 함께 넘긴 동료를 자신들의 주먹으로 때려죽여야 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받아들였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네 원수는 꼭 대신 갚아주마."
"나는 사람이 아니다. 짐승이다. 아니 악마다. 나를 죽어서도 용서하지 마라."

실미도 실제 부대 모습
출처 - <한겨레>
지옥 같은 680여 일을 보내는 동안 31명의 훈련병 중 24명만 남은 어느 밤이었다.
"내가 섬을 나가면 다 같이 마시려고 여태 간직하고 있던 술인데, 오늘 다 같이 마시고 죽든지 죽이든지 사생결단을 내자.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다. 작전이고 나발이고 우리는 연병장에 백구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데 살아서 뭐 하냐."
소주를 마신 실미도 훈련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망설일 것도 없다. 저것들 다 죽이고 청와대로 가서 우리의 억울함이라도 알리자.”
“그래! 총만 있으면 저 것들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야.”

출처 - 영화<실미도>
무장공비가 된 북파공작원
1971년 8월 23일 새벽 6시. 이미 인간병기가 되어버린 훈련병들은 교육대장을 제거하고 총기 탈취에 성공했다. 뒤늦게 잠에서 깬 기간병들이 반격을 시작했지만 애초에 승부가 되지 않는 전투력이었다. 양측 교전으로 오소리 훈련병 2명, 18명의 기간병이 사망하며 상황은 20분 만에 종결되었다.
실미도를 벗어난 북파공작원들은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했다.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김포공항과 한강 다리를 폐쇄했다. 그리고 긴급 기자회견에서 놀라운 발표를 한다.
"지금 버스를 탈취한 무장공비가 서울로 향하고 있습니다. 군 당국은 즉각적인 조치를......."
국가의 요구로 양성된 북파공작원들이 국가의 필요에 따라 무장공비로 탈바꿈되었다.

실미도 부대원들은 서울에서 다른 버스를 탈취하고 청와대로 향하던 길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방송과 대한민국 국군의 총격에 자괴감을 느꼈다. 섬 탈출 3시간 만에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한 이들은 동작구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 버스가 멈추자, 수류탄을 터트려 자폭했다. 사망자들의 신원은 철저히 숨겨졌다. 헛된 죽음을 당한 부대원들의 가족들은 그저 몇 년째 소식 없는 아들을 기다릴 뿐이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국방부 장관의 기자회견에서 이들의 신분은 군 특수범죄자로 또다시 둔갑하였다.
"지난 8월 23일 일어난 사건은 우리 공군이 특별히 관리되던 군 특수범 24명이 저지른 극악무도한 범죄입니다. 군 당국은 살아남은 4명을 상대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버스에서 수류탄이 터지는 와중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네 명의 훈련병이 있었다.
“살아남은 애들을 어떡하죠?”
“질긴 놈들이구만, 뭘 어떻게 적당히 알아서 잘 처리해.”
“큰일입니다. 야당 놈들이 수상한 냄새를 맡았나 봅니다.”
“뭐야? 이거 골치 아프게 됐구만.”
야당 국회의원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국회에서 진상조사가 열리게 되었다. 자신들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청와대로 향하던 북파공작원들이 국회에서 모든 것을 증언한다면 정부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국회에 나온 네 명의 훈련병은 어찌 된 일인지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국가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이야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요? 먼저 간 전우들을 위해서라도 증언을 해주세요. 실미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국회에 나서기 전,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봐. 너희들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어차피 사형이야. 너네가 사람 몇 명을 죽인 줄 알아? 그리고 감히 청와대로 버스를 몰아? 이러다 너희만 죽는 게 아니라 아주 재미없는 일이 가족에게 생길지도 몰라!"
“제발......”
“그래도 너희가 그동안 고생한 걸 특별히 참작해 주기로 했어. 윗분들의 처분에 고마운 줄 알아. 우리가 생각하기에 너희는 최고의 대한민국 군인이 될 자격이 있어. 지금 월남에서 전쟁이 한창이니까 가서 너희들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해. 목숨도 구하고 돈도 벌고 얼마나 좋아. 그리고 가족은 잊어. 너희 같은 괴물을 너희 가족들이 받아 줄 거 같아?"
국회에서 묵비권을 행사한 대가는 군사재판으로의 즉각 회부였다. 재판은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70여 일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뭔가 잘못됐습니다. 월남으로 보내준다고 약속하셨잖습니까?”
실미도에서 살아남은 기간병들은 비밀 유지 서약서를 써야 했다. 섬 안에서 일어난 모든 참혹한 일들이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일처럼 매장되어 버렸다.
총 대신 가스통을 들어야 했다
실미도 부대를 비롯한 북파공작원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월드컵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였다. 정확히는 2002아시안게임을 조금 앞둔 시점이었다. 국가로부터 버려진 블랙요원들의 울분과 억울함은 수십 년 동안 억눌려 있었다. 시위대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가스통을 들고 나섰다. 그들은 자신들을 버려진 북파공작원이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억울함을 들어달라고 울부짖었다.

설악동지회 회원들이 가스통에 불을 붙여 경찰들을 위협하고 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HID 북파공작원 실태폭로에서는 충격적인 주장과 증언이 쏟아졌다.

'H.I.D 북파공작 설악동지회'는 13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입증하는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하고 그동안 은폐되었던 부대 내 인권유린 실태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상급 부대 보고를 위해 부대에서 자체 제작된 훈련 영상은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실미도 사건이 제대로 된 진상조사 없이 일단락되자 1980년대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인력을 충원했다. 일명 물색관이라는 자들이 가난한 집안의 자식들을 상대로 제대 후 막대한 금액이 지급된다는 감언이설과 함께 순박한 청년들을 유인했다.
군부대 내 게시판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원자 대부분이 외출은 물론 휴가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훈련기간 도중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물색관의 언론 인터뷰는 모두의 공분을 샀다.
"주로 관청이나 국가에 항의하지 못하는 가난한 시골 부모들의 자식을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남겨진 가족들 특히 어머니들의 속은 타들어 갔다. 늦은 밤, 그저 장독대에 물 한 사발 떠 놓고 대답 없는 하늘을 향해 빌기만 할 뿐, 물색관들의 예상대로 순박한 시골 어머니들은 동사무소조차 찾아가지 못했다.
'나라가 우리 아들에게 해코지할 리가 없지 않나!'
제대 후, 소식 없던 아들을 보고 실신한 후 그 자리에서 눈을 감은 어머니도 있었다.

2017년 거행된 실미도 부대원 합동 봉안식
1968년 실미도 부대에서 일어났던 인권유린 사태는 80년대에도 이어졌다. 교관들은 역기를 내려놓으려는 훈련병의 몸을 불에 데워진 연탄집게로 지지고, 망치로 머리를, 해머로 가슴을 내리쳤다.
"너희는 인간병기가 되어야 한다. 이것 또한 고문을 견디기 위한 훈련 과정이다."
81년 이후, 구타와 장애로 순직한 대원들이 20명이 넘는다는 것이 그 들의 주장이다.
또한 탈영하면, 실미도 부대처럼 대원들이 동기를 때려죽이게 하는 즉결 처분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차마 동기를 때릴 수 없어 모두가 망설이니, 교관들이 우리를 4시간 동안 때렸습니다. 그렇게 맞다 보니 저 아이를 안 죽이면 내가 죽겠다 싶어......"
북파 공작원의 역사
육군 첩보부대 HID는 1951년에 창설되었다. 6.25 전쟁 전후 북파공작원은 월남한 이북 출신이 다수였다. 이들 중에는 열 살을 갓 넘긴 소년들도 있었다.
함경도의 작은 어촌 출신 김성길(2025년 기준 83세) 씨는 13살의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한국군에 납치되었다. 한국군은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협박했다.

1955년 국군 북파 공작원들에게 아버지와 함께 납치돼 남한에 끌려온 김성길 씨가 4일 춘천 자택에서 부친의 전사 확인서와 특수임무 유공자 증서 등 관련 자료들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
"아버지를 살릴 방법은 오직 하나다. 네가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
"아들을 살릴 방법은 오직 하나다. 당신이 북에 다녀와야 한다."
1950년대라는 시기적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국가가 개인에 가한 폭력은 끔찍했다. 북한에서 남파공작원에게 가해진 인권유린은 더욱 처참했을 것이다.

1950년대 HID 훈련생들 모습
출처 - <한겨레>
실미도 사건이 있고 35년이 지나서야 당시 실미도 훈련병들의 명단이 공개되었다.
당시 환갑을 넘긴 한 여인은 국방부에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삼십 년 넘게 소식을 모르던 자기 오빠가 대한민국 공군 소속으로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사망했다는 것이다. 35년 만의 소식이 부고라니.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유해를 어디에 모셨는지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실미도 사건 희생자에 대해 53년 만의 사과를 했으나 사형된 네 명의 시신이 묻힌 곳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북파공작원의 유족들은 아들과 오빠의 뼈 한 줌이라도 찾기 위해 대한민국 곳곳을 헤매다 주저앉아 서럽게 울고 있다.
"오빠! 절대로 용서하지 마! 이 나라를!"

국내 정치에 동원되는 북파공작원
2004년, 시사저널은 5공화국, 6공화국 시절 북파공작원이 야당 정치인과 재야인사 테러에 동원되었다는 기사를 공개했다.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 가택침입과 서류 탈취(1985년 11월), 문익환 목사 가택 침입과 서류 탈취(85년 12월), 양순직 국회 부의장 가택 잠입과 서류 탈취 (1986년 5월), 양순직 국회부의장 린치 (1986년 6월), 김동주 민주당 의원 린치(1986년 7월) 등이 북파공작원에 의한 것이라고 전직 요원 이종일 씨의 증언을 보도했다.
또한 1988년 문익환 목사를 위원장으로 남북공동 행사를 준비하던 재야 문화운동 단체인 ‘우리마당’ 사무실을 습격하고 여학생을 성폭행하는 일명 우리마당 사건도 정보사의 지시에 의해 북파공작원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증언했다.

지난 5일, 내란혐의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노상원 전 사령관의 잔인성이 드러났다. 2016년 대북 임무가 끝나면, 요원들에게 폭파 조끼를 입혀 '폭사'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증언이다. 해당 내용을 증언한 박민우 준장은, 당시 속초 북파공작원 부대장이었다. 박 준장은 속으로 쌍욕이 나왔지만, 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부대원들을 안전하게 복귀시킬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극한의 훈련을 통과한 HID 부대원들은 5공화국 실미도부터 12.3 내란사태까지 국내 정치에 이용되고 있다. 작전이 끝나고 효용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곧바로 '제거' 대상이 되기도 한다.
2024년 12월에는 HID 부대를 동원한 주요 인사 납치, 암살 계획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용현 전 장관은 작년 10월부터 최정예 요원 선발에 착수했고, 그렇게 22명의 요원을 모아 국회의원 체포를 위해 국회 대기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그 증언이 한낱 음모론에 지나지 않을지 혹은 철저히 계획했지만 결국 실패한 작전이 되었는지는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
슈퍼팩토리공장장이 이제와서(?!?!) 유튜브를 시작했다.
기나긴 역사 중 흥미로운 주제를 집어 |
|
필자의 지난 책들
|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