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의 뜬금없는 강성범 비판
기괴한 세상이 되면 기괴한 자들이 튀어나온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감히 나서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던 자들이 자기 세상을 만나면 그간의 자기검열(?)에 대한 울분이라도 토하듯 거세게 창궐하는 것이다. 캐나다 국적의 가수 JK김동욱부터 한국사 강사 전한길 등이 그 예이다. 반대로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이 기괴한 현실과 맞서는 과정에서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며 빛나는 경우도 있다. 개그맨 출신으로 최근 시사평론가로서 여러 유튜브 채널에서 활동하는 ‘강성범’ 씨가 그 예이다.
![[봐뉴스 578회_최진봉] 어젠 ‘67분 윤석열’.. 67분 동안 무슨 궤변을 했나_ 12-5 screenshot.pn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532/234/836/46bd6a8cb3f9ab2d845d5eba56fe66d8.png)
얼마 전 한 소식이 들렸다. 강성범 씨가 민주당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유튜브 채널 ‘델리민주’에 고정 패널로 출연한다는 소식이었다.
민주당 유튜브 채널 <델리민주>
해당 소식을 접하고 떠오른 첫 단어는 ‘어울린다’였다. 현실이 현실이니만큼 무겁고 딱딱해질 수밖에 없는 민주당 채널에 강성범 씨의 재치와 풍자가 더해진다면, 내용이 좀 더 풍부해질 것이고, 대중 친화적이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실 정당의 홍보 채널이기에 외부 인사 섭외가 쉽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런데...
충분히 예상했었다. 언론이라는 이름이 아까운 온갖 매체들이 강성범 씨에 대한 가십성 기사들을 내보낼 것이란 것을.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다. 그간 진보 언론으로 분류되어 온 언론들의 문제점이 많이 지적되었음에도 조금의 발전도 없이 다시 또 한겨레 신문이 그들과 똑같은 단어로 강성범 씨의 델리민주 출연을 비판할 것이란 사실을.
한겨레 고한솔 기자는 민주당에서 ‘여성 언어폭력’ 강성범 씨를 홍보 유튜브 출연자로 낙점했다며 사명감에 가득 찬 기사 하나를 올렸다.
기사에서는 강성범 씨가 과거에 TV에서 ‘이화여대 비하’ 발언을 했으며 정의당 류호정 국회의원을 ‘쓰레기’에 견주었다는 내용을 자세히 보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조선일보가 가장 잘하는 짓, ‘민주당 한 여성 재선의원’이란 익명의 제보자를 이용한 따옴표 저널리즘을 선보였다. 또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란 기사를 가장한 바람으로 끝을 맺으니 이 역시 조선일보의 가장 흔해 빠진 수법이다.
한겨레가 여성 비하 발언이라 소개한 것은 대략 15년 전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강성범 씨의 대사였다. 참담하다. 사회의 모든 것, 아니 사회 자체가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그 시절의 ‘시꺼먼스’ 개그는 ‘흑인 비하’이고 ‘옥동자’가 출연했던 모든 개그는 ‘외모 비하’이다.
오늘날의 잣대를 들이대면 본부인 외에 10명의 후궁을 두신 세종대왕님은 ‘호색한’에 ‘말종 가부장’이 될 것이다. ‘쓰레기’ 발언 역시 박원순 시장님을 조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류호정 의원에게 “국회의원이 쓰레기들하고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고 자신의 개인 채널에서 비판한 것일 뿐이었다.
결국 강성범 씨는 민주당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타 언론 등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한겨레도 평소 민주당에 대해 유독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숨기지 않았음을 알고 있긴 했다. 그러나 이번 강성범 씨 기사만큼은 도가 지나친 것이었다.
도대체 한겨레는 왜 이럴까.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칼럼과 기득권의 당파성
당파성(黨派性)이란 당파적 경향성을 뜻한다. 정치적으로는 자신의 이념이나 정치적 목적을 가치의 중심에 놓고 그에 부합하는 세력의 확장과 이익을 위한 편향적 경향성을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당파성을 극단적으로 지향하는 기관지가 있다. 자신들만의 ‘이익’을 이념으로 치장하여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든 말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나아가는 기관지다. 맞다. 누구나 예상하듯 정답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 ‘주필(主筆)’ 양상훈의 1월 16 일자 칼럼이다. 언론사의 주필이라는 직책은 우리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막강한 자리이다. 주필은 보통 논설주간이라고도 하며 발행인(사장)으로부터 편집에 관한 권리를 위임받아 그 언론사의 논조와 편집 방침을 결정하고 책임을 진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백윤식 배우가 열연한 ‘이강희’가 바로 주필이다. 따라서 주필의 칼럼은 곧 그 언론사의 공식 입장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尹(윤석열), 李(이재명) 둘 다 없어졌으면"이란 제목의 이 칼럼은 ‘생각이 많이 치우치지 않은 분들에게서 요즘 자주 듣는 말’이란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는 ‘윤만 없어져야지, 이는 왜?’란 의문을 품는 이들을 ‘생각이 치우친 이’로 만드는 교묘한 말장난이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원천봉쇄의 오류’라 한다.
만약 비위가 강해 이 칼럼을 끝까지 읽었다면 ‘이런저런 자리에서 “이재명만 아니면 이번에는 민주당을 찍겠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는 도대체 누가 했는지 모를 말을 인용한 ‘따옴표 저널리즘’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희망에 담긴 뜻을 무시한다면 큰 벽을 만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란 ‘기사를 가장한 바람’으로 글을 끝맺는 수법 역시나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한겨레 고한솔 기자가 강성범 씨 기사에서 써먹은 수법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어 있는 윤석열과 국민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 다수당이 된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를 동급으로 만든 제목의 이 칼럼은 한마디로, 조선일보의 간절한 바람을 담은 것이다. 양상훈도 알 것이다. 윤석열은 끝났다는 것을. 그와 조선일보, 그리고 조선일보가 대변하는 세력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수는 윤석열과 함께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재명 대표까지 함께 정치적으로 사망하는 것임을.
(조선일보 애독자가 아닌 일반적인 수준의 통찰력만 있다면 파악할) 얕은꾀를 부리는 이 칼럼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조선일보의 기득권에 대한 흔들림 없는 당파성이다.

시대별 권력자에 맞춰
보도된 조선일보 기사들
‘천황폐하 만세’로 시작하여 ‘김일성 장군 만세’를 지나 ‘대다수 국민에게 극히 축복스러운 일(박정희 쿠데타 찬양)’과 ‘아! 전두환 각하!!’로 반환점을 돌아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조선일보. 그리고 이제는 이재명을 죽이고 새로운 기득권 대통령을 만들려고 한다. 지난 100년간 조선일보의 흔들림 없는 반민주 반언론 친이익 행보는 그들의 강력한 당파성을 보여준다.
‘한겨레가 왜 이럴까’란 의문이 들었던 이유
우리 사회에서 부와 권력과 여론을 쥐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조직이나 결사체는 ‘반민주당’이며 ‘반민주 인사’이다. 이것은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고 일방적인 폭행의 수준이다. 언론 부분만 살펴보아도 한국ABC협회가 조사한 조선일보의 유료 발행 부수는 100만 부 이상이다. 이는 압도적 1위이다. 2위는 동아일보로 80만 부 이상이며 3위 중앙일보는 70만 부 이상이다. 4위는 한겨레신문인데 발행 부수는 20만 부 정도로 말이 좋아 4위이지 3위와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모두 21년 기준 한국ABC협회의 정식 조사 결과이다.
대한민국 검찰 권력이 무서운 이유는 오직 그들만이 기소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기소하지 않을 권력 때문이다. 김학의 별장 성 접대 및 강간 사건과 김건희 부패 혐의를 떠올려보라. 검찰은 누구나 범죄자로 만들 수 있지만, 반대로 어떤 범죄자에게도 면죄부를 줄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론의 힘은 보도할 권리보다 보도하지 않을 권리, 경중을 뒤바꾸는 ‘침소봉대’, 지엽으로 본질을 가리는 ‘여론호도’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개혁이 가능할 것이란 희망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고졸 출신의 변호사, 변호사란 신분으로 최루탄을 맞고 노동자의 편에 섰다가 구속까지 된 사람, 김영삼의 3당 야합에 당당하게 맞서 싸운 사람, 대선을 앞둔 정치인으로서 무려 조선일보에 맞선 사람. 노무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였다.

출처-<오마이뉴스>
“진정으로 부패한 자는 부패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개혁가였다. 범죄자들은 범죄를 가지고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영국 더타임스 24일 기사,
South Korea’s ‘Mr Clean’ leaps to death 中-
기득권의 추악한 범죄는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하고 민주 진영의 작은 과오 혹은 문제 되지 않을 일도 문제로 만들어 굶주린 하이에나 떼처럼 물어뜯으며 수십만 건의 기사를 생산해 내는 언론들, 이들의 당파성이 (기득권이 아니라) 시민을 향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 진영의 큰어른으로 있으며 우리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수백 번의 압수수색을 받고, 별의별 것을 쪼개서 기소당한 후 일주일에 서너 번씩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이런 ‘사법 살인’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국 대표 또한 지금 감옥이 아니라 대학(혹은 국회)에서 사회 개혁에 힘쓰고 있었을 것이다.
‘한겨레가 왜 이럴까’란 의문이 들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겨레의 역사와 창간 취지를 잘 알고 있고 한겨레가 공룡 언론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겨레만큼은 적어도 민주와 진보라는 당파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한겨레에 언론으로서의 당파성을 요구한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한겨레출판,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中-
언론사의 당파성은 객관 보도, 진실 보도와 대립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당파성이 없는 기사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모든 인식과 사고 자체가 당파성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당파성은 곧 주관이며 주관이 없는 인간은 없다.
E.H.카는 그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가란 자기의 해석에 맞추어서 사실을 형성하고, 연구하는 사실에 맞추어서 해석을 형성하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는 가장 객관적인 사실을 다룬다는 역사마저도 결국 현재 시점에 있는 역사가의 주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뉴욕타임스가 올린 카멀라 해리스 지지 선언
지난 미국 대선에서 ‘뉴욕타임스’지는 ‘해리스’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지지는 160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후보를 ‘부적격자’라고 표현했다. 현재 한국의 기성 언론 중 뉴욕타임스보다 더 언론답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한겨레는 과연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제 한겨레에게 당파성을 요구한다. 민주와 진보를 향한 당파성이 아니다. 이런 높은 차원 요구는 한겨레에게 바라지도 않는다. 15년 전의 개그 프로그램 속 대사를 끄집어내어 민주 진영 인사를 ‘여성비하’라는 그물 속에 가두는 지금의 한겨레는 그럴 역량조차 없다. 한겨레에게 요구하는 당파성은 ‘언론으로서의 당파성’, 즉 언론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당파성이다.
중립을 지켜라. 그것이 언론으로서의 당파성이다. 객관보도를 하라. 그것이 언론으로서의 당파성이다. 그렇다면 기계적으로 똑같이 보도하라. 오십보백보를 같다고 하는 것은 중립도 아니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백보는 오십보의 두 배이다. 국민의힘 인사들의 과거 발언을 보도하라. 그리고 그 발언이 15년 전 개그 대사보다 두 배쯤 여성 비하적이라면 두 배의 분량으로 보도하라. 이것이 언론이라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당파성이다.

우리는 언론과 언론인이라는 자들이 어떻게 윤석열 정권의 탄생에 일조했는지를 똑똑히 알고 있다. 검찰과 언론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야합했을 때 어떤 일이 가능한지를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한겨레의 역사 따위는 굳이 꺼내지 않고 모두 잊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겨레는 중립 보도, 객관 보도라는 언론사로서 최소한의 당파성을 가져라. 그것이 무섭도록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그나마 한겨레가 ‘언론’이라는 명패라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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