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김건희 일본 망명 의혹

 

윤석열 내란수괴의 탄핵 재판이 판결을 앞두고 가운데, 한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PNG

출처-<오마이TV>

 

2.PNG

출처-<MBC 뉴스하이킥> 링크

 

바로 ‘김건희 국외 도피 또는 일본 망명’설이다. 내란을 일으키고 윤석열이 체포되기 전 윤석열에 대해서도 망명설은 제기된 적이 있었다.

 

3.PNG

출처-<jtbc> 링크

 

이런 의혹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 영부인이 외국으로 망명 갈 리가 있나?”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내란범 망명을 받아줄까?”

 

그러나 친위쿠데타를 저지르고 일본으로 망명한 다른 나라의 내란수괴가 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내란수괴의 망명을 적극 도왔다. 페루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 이야기다.

 

이 영화보다 더한 현실 이야기를 들으면, 김건희의 일본 망명설도 “에이~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어?”라고 취급하진 못할 것이다.

 

4.jpg

알베르토 후지모리

출처-<위키피디아>

 

그렇다면 후지모리 대통령은 어떻게 내란을 일으키고도 일본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까. 

 

 

후지모리의 친위 쿠데타와 역쿠데타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의 인생은 말 그대로 ‘성공한 윤석열’이라고 할 수 있다. 후지모리는 합법적 선거로 집권했지만, 총칼로 10년을 독재했다. 

 

5.PNG

 

1. 엘리트 출신이지만 정치 경력 없는 신인이 대통령 출마

 

2. “저팬(Japan) 머니로 부자 만들어주겠다” 공약해 당선

 

3. 친일 정책 추진하며 일본에 국부 유출

 

4. 그러나 여소야대 정국으로 뜻대로 안 됨

 

5. 집권 2년 만에 계엄령 선언하고 친위 쿠데타 발동

 

6. 국회에 탱크 진주, 군대가 의회에 최루탄 까 넣음

 

7. 국회 해산, 대법원 판사 해임해 삼권분립 붕괴

 

8. 계엄군, 비판적 언론인 납치 구금

 

9. 자기편 정치인까지 암살조 파견

 

10. 헌법 뜯어고쳐 재선, 3선 성공

 

(후지모리의 당선부터 친위 쿠데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들은 지난 기사(링크) 참조)

 

6.PNG

출처-<한겨레> 링크

 

“나도 후지모리 센빠이처럼 장기집권 하고 싶었는데…”

 

그러나 후지모리 쿠데타와 독재체제가 처음부터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후지모리가 1992년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지 반년 만에, 후지모리에 대항하는 ‘역쿠데타’가 발생했다. 

 

7.PNG

역쿠데타 주모자 중 한 명인

호레 파스토 비베스 페루 육군 중장

출처-<Public Domain>

 

퇴역 장군 4명이 이끄는 역쿠데타군은 11월 13일 대통령궁을 습격해 후지모리 일당 등을 체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거사 직전, 역쿠데타 음모가 들키고 말았다.

 

후지모리가 제일 처음 취한 행동은 튀는 것이었다. 후지모리는 대통령궁을 버리고 방탄차를 타고 일본 대사관으로 튀었다.

 

8.jpg

페루 수도 리마에 위치한 일본대사관

 

일본 대사관에서 숨죽인 후지모리, 여차하면 일본으로 망명할 태세였다. 후지모리 입장에선 다행히도 역쿠데타는 곧 진압되었다. 10시간 정도 일본대사관에 머물러 있던 후지모리는 다시 대통령궁으로 복귀했다.

 

불리해지면 ‘일본 형님’을 찾는 후지모리의 버릇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뇌물 비디오’로 군부를 장악하다

 

역쿠데타로 혼쭐이 난 후지모리는 후지모리 정권의 2인자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국가정보국장을 시켜 군부를 장악할 것을 지시한다. 군인 출신 법조인 몬테시노스는 막대한 뇌물을 뿌려 군대, 법조계, 언론계를 주물럭거렸다. (나르코스 뺨치는 몬테시노스의 인생은 지난 기사(링크) 참조)

 

9.PNG

출처-<Liaison>

 

몬테시노스는 뇌물 장부를 만들었고, 뇌물을 받은 공직자들로부터 뇌물 영수증까지 받았으며 그 광경을 비디오로 찍기까지 했다. 그는 공직자에게 뇌물을 대놓고 주면서 말했다.

 

“저기, 저거 보이지? 비디오야. 이 장면 다 녹화되고 있다고.”

 

10.PNG

몬테시노스가 몰락한 후

그의 사무실에 있는

뇌물 비디오와 장부를 살펴보는

페루 의회 

출처-<Newsmakers>

 

몬테시노스의 사무실에 보관된 ‘뇌물 비디오’는 3만 개에 달했다. 그 덕분에 군인, 법조인, 언론인은 꼼짝 못 하고 몬테시노스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몬테시노스에게는 ‘마틸데 핀치’라는 개인비서가 있었다. ‘비서 겸 애인’이었던 핀치는 막대한 권력과 이권을 챙겼지만, 몬테시노스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핀치는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11.PNG

마틸데 핀치 

출처-<Caretas>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릴 거야!”

 

핀치는 곧바로 비디오테이프 수십 개를 들고 방송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2000년 9월 13일 페루의 카날N(Canal N) TV에 다음과 같은 비디오가 방송되었다.

 

12.jpg

출처-<infobae>

 

“탈당해서 언제 우리 당에 입당할 거냐?”

 

“얼마 줄 건데?”

 

“10장 주겠다.”

 

“20장은 줘야지”

 

“알았다. 지금 이 가방에 10만 들어있다. 나머지 10만은 다음번에 주겠다.”

 

“액수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

 

“자 여기 2만 5천, 또 2만 5천, 5만 해서 10만. 맞지?”

 

몬테시노스가 야당 의원에게 탈당을 대가로 20만 달러 돈다발을 주는 모습이 방송된 것이다. 후지모리 정권에 ‘폭탄’이 터진 것이었다.

 

 

출국금지를 뚫고 망명한 정보기관장

 

당시 후지모리는 4달 전 대통령 선거에 승리해 ‘3선 대통령’에 막 취임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절대 권력’ 후지모리는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져 불안정한 상황을 맞이했다. 페루 국민들은 불같이 분노했다.

 

13.PNG

14.PNG

후지모리와 몬테시노스 체포를

요구하는 페루 시위대

출처-<AFP>

 

‘빼박’ 증거에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후지모리는 몬테시노스를 ‘토사구팽’하고, 국외 망명을 강요했다.

 

“니가 가라, 하와이…아니 베네수엘라.”

 

“내가 무슨 희생양이냐? 날 구속하면 넌 한 달 안에 탄핵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결국 몬테시노스는 베네수엘라로 튀려고 했지만, 이미 전국에 지명수배와 출국금지가 떨어진 상태였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몬테시노스는 11월 21일 페루에서 열리는 국제 요트대회 출전 선박 한 척에 숨어들어 출국금지망을 뚫는 데 성공했다. 그는 공해상에서 요트를 버린 후, 코스타리카 위조여권으로 베네수엘라에 망명을 신청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몬테시노스 성형수술.jpg

몬테시노스 성형수술2.jpg

해당 사건은 우리나라에도 보도되었다.

 

이런 식으로 몬테시노스가 토사구팽당하자, 페루 군부가 들고 일어났다. 

 

“우리 군부에 뇌물.... 아니, 특활비를 챙겨주던 몬테시노스를 토사구팽하다니! 쿠데타 맛 좀 한번 볼래?”

 

15.PNG

“내 앞에서 굽신거리던 군바리들이 감히 날 배신해!”

후지모리의 심정이 이랬을 것이다.

출처-<게티이미지>

 

후지모리는 민중의 퇴진 요구와 군부의 쿠데타 위협을 동시에 받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태였다. 잔뜩 쫄은 후지모리는 대통령궁을 떠나 몬테시노스가 만들어준 비밀 안가로 도망갔다.

 

이때부터 ‘후지모리 망명설’이 페루 정가에 공공연히 돌기 시작했다. 

 

“정보기관장도 출국금지 뚫고 망명하는데, 대통령이라고 못할쏘냐?”

 

마침 후지모리에게 국외로 나갈 핑곗거리가 생겼다. 2000년 11월 14일 브루나이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16.jpg

출처-<위키피디아>

 

“허허, 이 기회에 외국에 가서 외자도 유치하고 경제를 살려야...”

 

그러나 후지모리의 속셈을 알아챈 시위대는 “후지모리 도망가지 마라”는 구호를 외치며 공군기지 앞으로 몰려왔다. 경호처가 시위대를 두들겨 패는 사이 후지모리는 철통 보안 공군기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다(여기도 경호처가 문제다).

 

17.PNG

군과 경호처의

삼엄한 호위하에

출국 비행기에 타는 후지모리 

출처-<Newsmakers>

 

18.PNG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후지모리

출처-<AFP>

 

19.jpg

출처-<elcomercio>

 

그러나 친위 쿠데타와 뇌물 등으로 자국민에게 독재자 및 부패 정치인으로 평가받으며 그 위신이 바닥까지 떨어진 후지모리를 상대해 주는 국가원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국제 왕따’였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후지모리가 믿는 구석이 뭐다?

 

그렇다. 바로 ‘일본’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APEC 회담을 대충 마친 후지모리는 11월 19일 일본에 입국했다. “외자 유치” 명목으로 며칠 머물다 페루로 귀국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후지모리는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고급 호텔에 투숙한 후, 한 일본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선언했다.

 

“저, 일본에 남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쇼!”

 

후지모리가 만난 일본 인사는 누구였을까?

 

두구두구두구~~~~~

 

바로 이 사람이었다.

 

사사카와 재단(일본재단) 회장 ‘사사카와 요헤이’.

 

20.jpg

사사카와 요헤이

출처-<leprosy.jp>

 

사사카와 재단은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적 곳곳에 신친일파를 양성하는 일본의 핵심 극우 단체다. 

 

앞으로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친일파] 한국의 인재들에게 ′장학금&생활비′ 지원 차이나는 클라스 51회 1-30 screenshot.png

사사카와 재단을 설립한

A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

사사카와 요헤이의 아버지다.

 

호사카유지.jpg

[신친일파] 한국의 인재들에게 ′장학금&생활비′ 지원 차이나는 클라스 51회 1-22 screenshot.png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