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월 2일, 당 싱크탱인 민주연구원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AI 산업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이 과정에서 "특정 개인과 기업이 독점하지 않고 국민 모두가 상당 부분 공유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제가 꿈꾸는 기본 사회, 국민의 기본적 삶이 공동체에 의해 보장되는 사회에는 재정력이 필요하다", "그 길을 AI가 열어주지 않을까"와 같은 발언들이 나왔다.
민주당 지지자를 오래 해 보면 생기는 일종의 예지능력이 있다.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의 입에서 ‘공동체’, ‘보장’, ‘기업이 독점하지 않고’ 같은 말들이 나오면 대충 30분 뒤에 언론이 무슨 말을 쏟아낼지 기사를 읽지 않고도 먼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은 유승민 등의 유력 정치인의 입을 빌려 ‘빅테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계획 경제’, ‘색깔론’이 빠지면 섭섭하다.
원문 기사 (링크)
아마도 칼 세이건 이후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명일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2024년 연말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와 관련해 꽤나 흥미로운 발언을 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이 발언의 맥락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나와 있으니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시청을 권한다.
상황은 이렇다. 일론 머스크의 팬들(언론 포함)이 마치 스페이스 X가 인류의 우주 과학의 발전을 온전히 주도하거나, 혹은 스페이스 X가 NASA는 아직 실현해 내지 못한 것들을 실현에 옮기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우주의 프론티어를 개척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NASA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발언은 일론 머스크 팬들을 자극했고, 자연스럽게 그가 하지 않은 말까지 더해져서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일론 머스크를 모욕했다’로 발전하고, 클릭 장사를 위한 수많은 기사들이 양산됐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한 법이다.
위에 링크한 영상은 닐 디그래스 타이슨의 길고 차분한 반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상에서 그는 일론 머스크를 추종하는 언론이 잊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망각한 사실을 지적한다. 몇 년 전, 스페이스 X가 우주 정거장에 화물을 운반하기 시작했을 때, 언론은 이것을 경천동지할 일로 포장했다. 물론 사기업이 우주산업에 진출한 것은 놀라운 일이 었지만,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정리한 방식을 따라가면 매우 담백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나사는 수십 년간 우주정거장으로 화물을 운반해 왔다. 시간이 흘러 이제 이 일은 민간기업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안정됐고, 그래서 민간기업이 하게 된 것이다.
출처 - BUSINESS INSIDER (링크)
저 문장 어디에도, ‘스페이스 X가 NASA는 하지 못한 무언가를 해 냈다’라는 말이 성립할 공간은 없다. 그러나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과 찬양 덕에, 마치 일론 머스크가 혼자 인류의 우주 과학을 모두 발전시킬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건 일론 머스크에 대한 호오와 무관하게 그냥 사실이 아니다. 여전히, 우주 개발과 관련해서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 내고 있는 것은 NASA를 비롯한 각국의 연구기관이고, 민간기업은 이 중 일부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수준이다.
닐 디그래스 타이슨의 말을 좀 더 따라가 보자. 역사적으로, 인류가 이뤄낸 가장 거대한 업적들은 예외 없이 국가에 의해 지정학적으로 주도됐다. 피라미드, 만리장성, 유럽의 거대한 성당과 교회들, 달에 착륙한 우주선, 그리고 핵무기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엄청난 규모의 자본과 인력이 장기간에 걸쳐 투입돼야 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집단 중에 이런 규모의 투자를 버텨낼 수 있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만큼 성장한 몇 개의 국가 밖에 없었다(혹은 종교집단도 있지만, 이건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자).
국가가 먼저 그 ‘비싼’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프로젝트엔 얼마나 많은 인력과 돈이 얼마나 오랫동안 필요한지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면, 그 중 일부를 민간 기업이 감당할 수 있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를 수행하는 기업들이 국가의 일 중 일부를 하청받는 구조다. 즉, 스페이스 X는 NASA와 같은 국가기관이 ‘개척’한 프런티어 안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뿐, 새로운 프런티어를 ‘개척’하는 일은 여전히 국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국가가 선하고 기업이 악해서가 아니다. 이런 프로젝트는 너무 많은 돈이 들고, 이것은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4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접견한다. 이 접견에서 손정의 회장이 한 발언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AI, AI, AI’가 될 것이다.
영상에도 나오지만, 손정의 회장은 이미 1998년에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한국이 집중할 것이 세 개 있다. 초고속 인터넷, 초고속 인터넷, 초고속 인터넷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보수 언론이 한국이 IT 강국이 된 것이 오롯이 기업의 역할이었고 정부는 ‘각종 규제로 기업의 발목을 잡기만 한’ 것처럼 묘사할 때마다 사람이 이렇게 후안무치할 수 있구나 싶어 매번 새롭게 놀란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사업은 매우 전형적인 국가주도 발전사업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정부는 ‘게임 회사에 입사하는 프로그래머는 병역 특례를 인정한다’라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의 파격적인 지원책까지 내놓으며 국가의 IT 산업 발전에 온 힘을 쏟았고, 그러한 국가적인 지원 끝에 한국은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타국과도 충분히 경쟁해 볼만한 IT 기업을 몇 개 가지게 됐다. 그리고 보수 언론은 이 과정에서 민주정부가 쌓아올린 업적을 철저하게 폄하하거나 감추고, ‘기업 2류 정치 4류’라는 캐치프레이즈나 반복하며 ‘유능한 기업인,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가’라는 정치혐오를 고착화하는데 성공해 냈다.
이제 시대가 흘러 한국이 AI 분야에서 ‘생존’을 걸고 한 판 승부를 벌일 시기가 도래했다. 나는 한국이 이 경쟁에서 이길 유일한 길이 ‘국가가 주도하는 AI 분야의 성장’ 이라고 확신한다. 이건 한국에게 새로운 일이킨 커녕 그동안 아주 잘 해 왔던 ‘주특기’ 분야에 가깝다. 한국이 현재 국제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모든 분야, 자동차・화학・조선・반도체・방산 그 무엇이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 성과를 낸 분야는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에 속한 그 어떤 기업도 한국보다 크지 않다. 한국이 AI 분야에서 타국과 ‘최소한 지지 않는’ 무언가를 이뤄내려면, 국가적인 규모의 인적 물적 재정적 지원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개별 연구는 산학협력 혹은 기업주도로 이뤄내더라도, 이를 지원할 밑바탕은 국가만이 마련할 수 있다.
2024년 9월 9일
이재명 대표는 국회 사랑재에서 실리지 마왈라(Tshilidzi Marwala) 유엔대학교 총장, 우니 카루나카라(Unni Karunakara) 유엔대학교 국제보건연구소장과 ‘AI시대, 미래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이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CEO들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인공지능 기술이 특정 소수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인공지능 시대에는 대한민국과 국제사회가 함께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편집부 주 -
그런 가운데 이번 AI 분야의 성장이 기존의 모든 성장과 달라야 하는 것은, 그 성장의 열매를 특정 기업・가문・집단이 독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분배와 관련한 담론이 처음부터 동반해야 한다.
AI 혁명이 특히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를 얼마나 잠식할지는 그 누구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엄청나게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고, 그로 인한 소득 분배 불균형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오픈 AI의 최고경영자인 샘 알트먼조차 잊을만하면 분배에 대해 언급할 정도로, AI가 인류의 삶에 미칠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이 영향력을 가능한 모두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연착륙시키려면, 성장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그 열매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를 처음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는 이 당연한 화두를 적절한 시기에 던진 것일 뿐이다. 이 당연하지만 중요한 이야기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늘 하던 색깔론으로 한 며칠 난리를 쳤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이젠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봐야 한다.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가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고민이 여기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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