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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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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TV>

 

1. 이 이야기는 윤석열, 김건희 망명설이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거 실제 일본으로 망명했던 다른 나라의 내란수괴 이야기를 다룬다.

 

2.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국회와 대법원을 장악하고 자국민 수천 명을 살해한 페루 독재자 알베르토 후지모리.

 

3. 3선 개헌으로 10년 독재했지만 비리가 들통나자, 탄핵 직전 ‘해외 순방’을 이유로 아득바득 우겨 어거지 출국한다.

 

4. 일본에 도착한 후지모리는 한 일본인을 찾아가 요청한다. 

 

“저, 일본에 망명하고 싶습니다!”

 

 

 

지난 기사

    

1. 일본 재단이 개입한 사례가 있다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한 분은 클릭!

 

 

일본으로 망명한 대통령

 

후지모리가 만난 일본 인사는 바로 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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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leprosy.jp>

 

일본재단(사사카와 재단) 회장 '사사카와 요헤이'. 

 

사사카와 요헤이는 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이자 일본재단을 설립한 '사사카와 료이치'의 아들이다. (정확히는 사사카와 료이치가 재단을 설립할 당시에는 ‘일본선박진흥회’란 이름이었고, 이후에 사사카와 요헤이가 회장이 되며 ‘일본재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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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카와 재단에 대해 르포작가이자 JP뉴스 발행인인 유재순 대표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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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TBS>

 

“일본선박진흥회라는 재단이 있습니다. 이 재단을 만든 사람이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인 사사카와 료이치(1899~1995)입니다. 징역도 3년 살았고요. 그리고 이 재단이 사실은 일본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 진보 세력에게 문제가 되었던 게 이 사람이 마약이라든가 무기를 팔아서 돈을 모았습니다.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서,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통해서 돈을 번 것이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상당히 돈을 모았거든요. 

 

우리나라 뉴라이트 멤버들도 일본선박진흥회라던가 일본연구기금이라는 명목하에 지원금을 받은 학자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행한 학자들을 목표로 한 친일파 만들기 정책은 상당히 성공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일본재단(사사카와 재단)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는 호사카 유지 교수가 출연한 방송이 있으니 참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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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희열2 6회

2019년 4월 6일 방송 편

출처-<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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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파파이스 152회

출처-<한겨레TV 파파이스>

 

‘신친일파 양성’에 앞장서 온 사사카와 회장은 페루에서도 병원 설립 투자 등으로 페루의 환심을 사고 있었고, 일본계인 후지모리 대통령과도 가까운 사이였다. 사사카와 본인 말에 따르면, 후지모리는 호텔 밀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사카와 씨. 나, 일본에 남고 싶습니다!”

 

“대통령, 그건 일본에 망명하겠다는 말입니까?”

 

후지모리의 의사를 확인한 사사카와는 일본재단 관계자의 자택으로 후지모리를 숨겨주고 자금을 모아 보냈다.

 

“대통령, 여기는 안전하니까 움직이지 마시오.”

 

사사카와가 마련해준 거처에서 후지모리는 2000년 11월 20일 페루 정부에 팩스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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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public domain>

 

“페루 헌법에 따라 정식 사직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한다.” 

 

팩스를 받은 페루 정부는 뒤집어졌다.

 

“일국의 대통령이 지금 장난하나? 일본 정부는 범죄자를 숨겨주겠다는 것이냐!”

 

“망명한다길래 남미나 미국일 줄 알았는데, 설마 일본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일본 정부도 (겉으로는) 모르는 척했다.

 

“일본 외무성은 정식 망명 신청 받은 적이 없다. 일본에 얼마나 머물 것인지는 본인 의사에 달렸다.”

 

분노한 페루 의회는 사직서 접수를 거부하고 11월 22일 필살기를 시전했다.

 

“띠바, 탄핵이다! 후지모리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일본은 범죄자를 당장 페루로 송환하라!” 

 

이 사건으로 인해 국제 사회는 떠들썩했지만, 이미 후지모리는 사라진 상태였다(사실은 사사카와가 마련해준 안가에 숨어있었지만).

 

그러나 언제까지 영원히 숨어있을 순 없었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후지모리가 믿을 구석은 뭐다?

 

그렇다. 일본이다.

 

 

일본이 후지모리를 보호한 방법

 

12월 12일, 일본 법무성은 갑자기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고향 구마모토에서 후지모리 일가의 호적을 찾았다. 호적에는 어렸을 때 후지모리 이름이 발견됐다. 따라서 후지모리는 일본 국적자이다. 일본은 자국민을 외국에 인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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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리의 일본 호적 발견을

대서특필한 페루 신문 라 레푸블리카

 

일국의 대통령이 ‘이중국적자’임이 발각되자 페루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뒤집어졌다. 

 

“일국의 대통령이 이중국적자라니! 후지모리는 10년간 전 국민을 속였다!”

 

“10년 동안 찾아도 없던 호적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냐?”

 

“범죄자 망명 받아주면 국가 위상이 실추되니까, 일본 정부가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

 

사실 후지모리의 이중국적 의혹은 1990년 페루 대선 때부터 제기돼왔는데, 이 의혹을 뇌물로 무마한 장본인이 바로 몬테시노스였다. (자세한 사연은 딴지 기사 <윤석열이 내란에 성공했다면? 2 : 내란범이 수감돼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링크)를 참조하시라)

 

본인으로 인해 전 세계가 난리 났는데, 정작 후지모리 본인은 사사카와가 마련해준 고급 아파트에 머물면서 일본 언론과 여유롭게 인터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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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

 

“페루 법상 이중국적은 불법이 아니다. 페루 국적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분간 페루로 돌아가지는 않겠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와 우익단체가 후지모리 ‘쉴드’에 나서는 이유는 뻔했다. 후지모리는 재임중 “외자 유치” “민영화”를 이유로, 페루의 자원과 국부를 외국에 유출했고, 상당수는 일본 정부 또는 일본 기업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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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신타로 등 일본 극우 정치인들은 언론에 대놓고 주장했다. 

 

“후지모리 선생과 같은 훌륭한 일본인이 대통령으로 다시 복귀하도록 돕는 게 우리의 일이다.”

 

 

일본에 무시당하는 페루 특별검사

 

8개월 후인 2021년 8월 20일, 이번에는 주일본 페루대사 빅토르 아리토미가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 정부가 허가해준 것은 물론이다. 아리토미는 회계사 출신이기도 했고, 가장 중요한 건 후지모리의 매부(여동생의 남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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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아리토미(좌)와

후지모리(우)

출처-<idl-reporteros>

 

갈수록 막장으로 가는 상황에서 후지모리의 전 부인 ‘수산나 히구치’는 한 가지 폭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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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기 전의 수산나 히구치와 후지모리

출처-<AP>

 

“아리토미는 후지모리의 돈세탁 담당자였다. 후지모리는 빈곤층 원조자금 1,500만 달러를 일본 계좌로 빼돌렸는데, 그 일을 담당한 게 주일대사 아리토미였다! 그래서 망명한 거다.”

 

이에 대해, 후지모리는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런 계좌는 존재하지 않는다. 찾고 싶으면 일본으로 직접 오시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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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

 

분노한 페루 정부는 후지모리를 살인, 납치, 부정부패 혐의로 인터폴에 국제 수배를 때렸다.

 

뿐만 아니라 ‘안토니오 말도나도’ 특별검사를 임명해 일본 정부에 후지모리 송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후지모리는 태평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맞다. 역시 ‘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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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말도나도 특별검사

출처-<OjoPúblico>

 

일본 정부는 “추가 자료를 달라”고만 할 뿐, 후지모리 송환은 차일피일 미뤘다. 말도나도 특검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일본은 페루라는 국가를 조롱했다. 일본 정부는 대놓고 후지모리를 감싸고 돌았다.”

 

결국, 말도나도 특검은 일본까지 달려와 후지모리의 송환 협상을 벌인다. 그러나 말도나도 특검의 말에 의하면, 일본 정부 당국자의 반응은 차가웠다고 한다.

 

“이건 시간 낭비에 불과하오. 페루는 가난한 나라야. 그리고 우리가 주는 원조 자금도 제대로 못 쓰고 있어. 자금을 좀 더 효과적으로 써야 하지 않겠소?”

 

“일본 정부가 협력하지 않으면, 우리 페루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에 후지모리를 고문살인 혐의로 제소하겠소. 일본도 UN고문방지협약에 가입돼 있을 텐데?”

 

“흥!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도 (자금 원조를) 다시 생각해 봐야겠군. 지금 일본 정부가 페루 마추픽추 복원 재건 사업에 자금원조 중인 사실은 알고나 있겠지요?”

 

페루 정부는 일본 정부가 후지모리 송환 거부를 하는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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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

 

분노한 페루 국민들은 페루 리마에 있는 일본대사관 벽을 부수고, 그 앞에서 일장기를 불태우기도 했지만, 일본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일본 극우파 지원으로 재기를 꿈꾸는 후지모리

 

일본 정부가 겉으로는 “망명이 아니다. 법에 따라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뿐”이라며 모른체 하는 사이에, 후지모리는 일본재단, 이시하라 신타로 등 극우세력의 후원을 받으며 각종 강연 및 방송 출연을 하며 잘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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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The Fall of Fujimori’에서

일본 보수단체 후원자들과

건배하는 후지모리

출처-<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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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각하의 요리사

출처-<학산문화사>

 

심지어 후지모리를 소재로 한 일본 만화까지 나왔고, 후지모리의 일대기를 영화 또는 드라마화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일을 벌이고도 후지모리는 계속해서 페루 정치권을 조종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페루 정치권을 조종한 방법은 바로 ‘인터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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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으로 연설하는 후지모리

출처-<후지모리 홈페이지>

 

후지모리는 www.fujimorialberto.com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스페인어로 연설문과 동영상을 부지런히 올리고, 일본 도쿄의 사무실에서 지속적으로 언론에 자신을 노출했다. 후지모리의 사무실은 일본 극우 평론가 가세 히데아키가 마련해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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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세 히데아키는

일본 혐한 서적의 원조 ‘추한 한국인’을

날조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출처-<SBS>

 

일본재단과 일본 극우파는 왜 이렇게 후지모리를 감쌌을까? 이에 대해 사사카와 본인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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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재단 돈을 받은) 장학생 전원을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고 있다. 50개 대학에서 매년 1,000명 정도 졸업생이 나오는 데 10년이면 1만 명이다. 그중 30%가 전문가나 파워 엘리트가 된다면, 이것은 대단한 네트워크다. 단추만 누르면 어떤 인맥을 통해야 할 것인가 순식간에 파악된다.”

 

그렇다. 일본 극우파는 후지모리가 다시 페루 대통령으로 복귀할 수 있다고 보고 미래에 투자하고 있던 것이었다. 실제로 후지모리는 일본에 있으면서도 2006년 페루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에서 2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일본 극우파의 지원으로 언론 및 인터넷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였다. 일본 극우파들은 후지모리와 식사 자리마다 이렇게 건배했다.

 

“후지모리 선생이 하루빨리 페루 대통령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건빠이!”

 

후지모리는 각종 지원을 받으며 재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후지모리에게 심판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계속>

 

 

다음 편 예고

 

망명 7년 만에 마침내 체포된 후지모리.

 

그러나 법원의 어이없는 석방 명령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후지모리는 호화 저택에서 정치인들을 만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과연 후지모리는 페루 대통령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