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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이토록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

 

드라마 <환혼>의 대사인 이 문장은 여러 커뮤니티와 SNS를 떠돌며 ‘네임드 짤’이 됐다. 이제는 <환혼>을 아는 사람보다 이 대사를 아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기도.

 

12.3 불법 계엄 이후 백 일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내란 진압 과정은 대통령 탄핵 선고라는 가장 큰 분수령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며칠 전 그 놈의 ‘절차적 문제’ 때문에 내란 수괴가 구치소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은 이 대사를 떠올리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정말로 그렇다. 자신의 길을 가는 악은 말그대로 거칠 것이 없어 보이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며 붙들려야 하는가. 

 

악은 쉽고 단순하다. 선은 복잡하고 어렵다. 

 

악에게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게 악이다. 심지어 목적이 선하다 해도 과정이 악하다면 그건 악이다. 

 

선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중심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선은 어렵다. 세상이 복잡다단해질 수록 더 어렵다. 얽히고 섥힌 관계 속 이해를 되묻고 고쳐물어가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정답에 한 없이 가까워지기 위해 가는 여정이 곧 선이다. 

 

그래서 악은 주변을 굴복시키면 그만이지만 선은 끊임없이 주변을 설득해야 한다. 줄곧 선하다가 순식간에 악으로 변질되기도 쉬워서 스스로 경계해야 하며, ‘나는 선하다’는 생각에 너무 깊이 빠지면 거기서부터 악이 싹트기도 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에는 결말이 없다. 상대는 독재라는 결과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온다. 저들을 끝내 막아낸다 하더라도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다음 과정일 뿐이다.

 

시작부터 입맛 씁쓸하다만 그래도 이번 주 다른 뉴스들을 함 잡솨보셔야 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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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링크)

 

‘요즘 경기 진짜 안 좋아’라는 말은 ‘요즘 애들 버릇 없다’는 말과 더불어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먹히는 말이라지만 지금은 다시 한 번 얼굴을 고쳐 잡아 정색을 하고 ‘진짜’를 서너 번 앞에 달아줘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골목상권의 지난 몇 년 동향은 이렇다.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아도 5, 6층 되는 제법 넓은 상가 건물 여러 동에 그 뒤로 소형 상가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이 상권은 주변을 아파트 단지 여럿이 둘러싸고 있어 장사 해 먹고 살기가 그리 팍팍한 곳은 아니었다. 한창 때만큼은 아니어도 월세 적당히 내면서 그럭저럭 유지는 해나갈 만 했다고 들었다.

 

그러다 2~3년전쯤부터 슬슬 소액이나마 권리금을 걸고서 가게를 내놓는 집이 하나둘 늘어갔다. 시간이 지나도 가게는 빠질 줄을 몰랐다. 권리금을 포기한 매물로 빠르게 대체됐다. 이쯤되면 본인 인건비도 못건진 지는 오래라는 말이다. 그래도 새 임대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지난해부터는 공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원상복구 비용이라도 들이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티다 계약이 만료되어 돈 들여 인테리어 한 걸 다시 돈 들여 다 철거하고 나온 결과가 그런 공실이었다. 몇 년 전만해도 한둘 보일까 말까하던 1층 상가 공실이 지금은 한 건물에 세 개까지도 보인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도록 공실은 여전히 공실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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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수가 두 달 만에 20만 명이 줄어 코로나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통계는 그저 ‘회귀’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보통의 경우 자영업자의 폐업은 곧 가정 경제의 심각한 위기를 뜻한다. 짧은 시간 사이 줄어든 자영업자의 수만큼 위기에 빠진 가구수가 늘어났다. 여전히 자영업자로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대부분은 코로나 때보다 훨씬 상황이 악화됐다. 코로나로 까먹고 당겨 쓴 돈을 채 갚기도 전에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나마 대목이라는 연말연시를 기대했는데 그 대목의 초입에 대통령이라는 자가, 야당의 전국민 지원금이 독을 푸는 것이라며 거부해왔던 그가 불법 계엄을 저지르면서 침체된 경기를 아예 박살냈다. 빠른 사태 수습을 기대했으나 여당과 대통령 권한대행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질질 시간을 끄는 데에만 힘을 쏟고 있다.

 

윤석열은 파면되어야 하고 내란 세력은 진압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 시라도 빨리’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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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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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링크)

 

지난 1월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지난해 1월 대비 약 27% 증가했단다. 윤 대통령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혼란 때문에 불안감을 느낀 외국인들이 서울을 찾지 않을까봐 걱정했는데 경제 상황 악화에 따른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전화위복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단다.

 

서울시가 비상계엄 사태 후 외국인 관광객 달래기에 집중한 것 역시 영향을 미친것으로 풀이된단다.

 

그 분석과 풀이의 주체가 몹시 궁금하다. 전화위복이라는 표현을 이렇게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의아하다. 계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건 열심히 그들을 달랜 서울시의 영향인가 계엄을 신속하게 해제시키고 내란수괴의 직무를 정지시킨 국회의 영향인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12월 16일 주요 외신이 참석한 행사에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 3개 언어로 “서울은 안전하고 다채로운 즐길 거리가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라고 기사는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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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서울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3월 11일, “지금 상태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진다면 국민들로부터 졸속이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이 외국인들에게는 안전할지 모르겠다만 최소한 윤석열이 파면되기 전까지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대한민국이 전혀 안전하지 않다. 그럼에도 탄핵 심판 지연을 드러내놓고 바라는 서울시장과 그런 서울시장을 치켜세우기 위해 ‘계엄 타격 없었다’ 운운하는 헤드라인을 뽑아 기사를 쓰는 기자. 이런 자들을 내란 동조 세력이라 부르지 않을 도리가 나에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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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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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링크)

 

이준석은 마이너스 삼선을 하는 동안 이 방송 저 방송 열심히 불려 나가며 정치 평론을 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여기저기 나가 정치 평론을 한다. 차기 대권 의지를 밝히고 나서도 여전히 정치 평론을 한다. 축구로 치면 선수가 볼은 안 차고 스포츠 중계 방송에 나와 다른 선수 볼 차는 거 평가만 한다.

 

이준석은 계엄 당시 담을 넘고 국회에 들어가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 하는 대신 경찰이 가로 막은 문 앞에 서서 카메라를 앞에 두고 열심히 비키라고 소리를 쳤다. 그 장면만 놓고 보면 그는 계엄 해제에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 계엄이 해제되고 윤석열이 탄핵된 뒤에는 언제나처럼 ‘모두까기인형’이 되었다. 이재명도 까고 여당 대선 주자들도 까고 윤석열도 깐다. 그가 계엄 이후 벌어지고 있는 정치 국면 한복판에 던져진 초선의 중진 국회의원이자 사실상 ‘바지 당대표’ 뒤에 선 실질적 야당 대표 그리고 차기 대선주자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도통 보이는 것이 없지만 방송 출연 빈도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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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정치 평론에는 대부분 동의하지 않지만 그간 여러 방송들이 이준석을 불러 정치평론을 시키고, 그런 그의 발언이 정치면 기사에 인용되는 건 이해 되는 면이 있다. 정치 평론가의 말 중에서는 이준석의 말이 제법 장사가 잘되거든. 뭘 좀 아는 거지. 멘트가 찰져. 이 글에서 인용하는 기사의 헤드라인만 봐도 알 수 있잖나. 스포츠에서 사용하는 ‘역동작’을 정치판에 가져와 비유하는 센스!

 

그런데 본인이 플레이어가 되고 나서도 이준석은 정치 평론가 같은 말만 한다. 언론은 그런 그를 예전처럼 부르고, 그의 말을 기사로 낸다. 이건 분명 문제가 있다. 정치인들이 다른 정치인의 말이나 행보를 두고 평을 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이준석은 경우가 좀 다르다. 꺼내는 말, 인용되는 말의 중심에 ‘이준석의 정치’ 는 찾기 어렵고 다른 정치인에 대한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것이 정치인 이준석이 대중을 상대로 인지도를 쌓고 친근함을 유지하는 전략일 수는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옮음’을 이야기 하는 것보다는 ‘남의 옳지 않음’을 비평하는 편이 훨씬 쉽고 편한 길이긴 하다. 허나 우리는 그런 정치를 나쁜 정치라고 말한다.

 

그런 이준석을 즐겨 부르는 대표적인 방송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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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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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링크)

 

영향력과 인지도, 청취율 면에서 모두 대한민국 정치 시사 프로그램 최상위권이라 할 수 있는 <김현정의 뉴스쇼> 진행자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김현정 CBS 특임국장. 인용한 기사 내용을 보아도 알 수 있듯 그 중립성을 의심받을 만한 여러 논란이 터져 나왔음에도 예정된 연수 휴가였다며 돌연 자리를 비우고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알다시피 그 논란 가운데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이준석 의원이다. 이준석은 자신이 선수임에도 평론가처럼 행세해 정치적 이익을 노리려 한다는 비판을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에게서 받고 있다. 그리고 김현정 국장과 <김현정의 뉴스쇼>는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특정 선수와 너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의혹의 당사자인 이준석 의원은 ‘원래 다 이런 식으로 방송한다’는 논조로 해명을 한 바 있다. 김현정 국장은 복귀 방송에서 ‘니들(정치판) 개싸움에 나(언론) 끼워넣지 마’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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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 이래서 기자가, 언론인이 차암 부럽다. <김현정 뉴스쇼>와 진행자 김현정에 대한 의혹에 대해 ‘내’가 아니라 ‘언론’을 끼워넣지 말라고 할 수 있는 바로 그 지점이 부럽다는 거다. 언론에 종사하는 개인이 자신을 향하는 의혹에 언론 자체를 끌어와 맞서는데도 비판하는 다른 언론 기사를 찾기 어려운 바로 그 지점이 부럽다는 거다.

 

의도까지는 묻지 않겠다. 본인이 말하는 정치판 막장싸움을 중계하며 단 한 번도 이를 부추긴 적은 없었는가. 중계를 통해 본인과 본인의 방송이 얻은 이익은 없었는가. 그 이익에 대해 예상한 바는 없었는가. 적어도 그 막장 싸움에 연루된 의혹이 제기 되었다면 본인이 ‘심지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방송 제작진, 방송국 노조가 무슨 해명을 내놨다 한들 자신의 제대로 된 해명은 있어야 한다. 그걸 굳이 방송중에 하라는 것도 아니다.

 

왜 <김현정의 뉴스쇼>는 이준석이 나오지도 않은 방송에서, 언론사가 만든 여론조사 그래픽이 아닌 이준석 측이 공유하는 그래픽을 내보냈는가. 출연하지 않은 정치인의 의견을 출처도 밝히지 않고 방송에서 질문으로 활용해도 괜찮은가. 아무도 대한민국 ‘언론’에 이를 묻지 않았다. 김현정이라는 진행자, 개인에게 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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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악은 쉽고 선은 어렵다고 했다.

 

악은 결과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선은 과정 전체에 존재해야 한다고 했다.

 

악은 주변을 굴복시키면 그만이지만 선은 끊임 없이 주변을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불공평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삶 또한 본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삶의 결과는 죽음인데, 우리의 사는 이유가 죽음에 닿기 위함은 아니지 않나.

 

끊나지 않은 여정 속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여정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독재에 맞서기 위해 거리로 나갔던 그 시간 속에서

 

윤석열이 돌아올 가능성이 0.1%라도 보였을 때 불안에 떨며 불안 속에서도 서로를 북돋아주고 위로 받았던 그 시간 속에서

 

윤석열이 파면되고 나서도 닥쳐 올 그 모든 증명의 과정과 위기 속에서도

 

우리에게 종착점은 영영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치지 말자.

 

거침없는 악에 맞서면서도 끊임없이 증명해내야 하는 이 과정이 곧 의미이자 기쁨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