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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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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유튜브<장윤선의 취재편의점>

 

1. 이 이야기는 윤석열, 김건희 망명설이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거 실제 일본으로 망명했던 다른 나라의 내란수괴 이야기를 다룬다.

 

2.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수천 명의 국민을 죽이고 나라를 망친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

 

3. 탄핵 위기에 몰리자 “나는 사실 일본인이었다”며 일본으로 도피한다.

 

4. 일본에서 일본 극우파의 후원을 받으며 잘 먹고 잘살던 그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기사

    

1. 일본 재단이 개입한 사례가 있다

 

2. 일본이 망명한 대통령을 보호하는 방법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한 분은 클릭!

 

 

‘유주얼 서스펙트’같은 후지모리의 입국

 

일본으로의 망명 5년 만인 2005년 11월 5일, 후지모리가 아무런 예고 없이 인터넷 방송에 나타났다.

 

“여기는 비행기 안입니다. 저는 지금 결단을 내려 남아메리카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 후원자들이 마련해준 전세기를 타고 칠레로 향하고 있었다(페루의 옆 나라이기 때문에 칠레로 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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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한 후

전세기에서 내리는 후지모리

출처-<FAZ>

 

칠레 출입국관리관은 전세기가 착륙한 개인 격납고로 직접 찾아갔다. 

 

후지모리가 곤란할 때마다 믿는 구석은 뭐다?

 

그렇다. 또 일본이다.

 

후지모리는 일본 여권을 당당히 제시했고, 출입국관리관은 후지모리에게 “웰컴”을 외치며 ‘관광 비자’ 도장을 찍어줬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돌아가는 칠레 출입국관리관, 그때 페루 특별검사로부터 긴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후지모리 그놈은 인터폴 국제 수배범이다! 빨리 체포해.”

 

칠레 출입국관리관이 부랴부랴 쫓아갔지만, 후지모리는 간발의 차이로 변호사가 준비한 벤츠 차량을 타고 공항을 떠난 후였다. 카를로스 멜렌데즈 기자는 이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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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아시죠? 경찰이 카이저 소제를 체포하려고 하는데, 사실 000이 카이저 소제였잖아요. 경찰이 카이저 소제를 체포하려고 뛰쳐나갔는데, 그는 이미 자동차를 타고 사라졌죠. 바로 이런 상황이 칠레에서 벌어진 겁니다.”

 

이게 말이 되냐구? 이 사건 후 칠레 인터폴 국장과 출입국관리관들이 줄줄이 파면됐는데, 이들은 이렇게 변명했다.

 

“인터폴 국제 수배자 명단 업데이트가 24시간 동안 꺼져있었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른다.”

 

칠레 입국 후 감쪽같이 사라진 후지모리, 그를 찾아낸 건 칠레 경찰이 아니라 언론인들이었다.

 

“산티아고 내 호텔을 샅샅이 뒤진 끝에, 후지모리가 메리엇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를 들었죠. 기자들은 호텔 앞에서 버텼습니다.”

 

후지모리 입국을 접한 말도나도 페루 특별검사는 곧바로 칠레로 날아왔고, 칠레 경찰과 함께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던 후지모리를 호텔에서 체포했다. 후지모리의 일본 도피 생활 5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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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경찰에 체포되는 순간에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후지모리

출처-<elcomercio.pe>

 

 

망명 5년 만에 페루로 돌아오려던 이유

 

그렇다면 후지모리는 왜 일본 도피 5년 만에 칠레로 돌아온 것일까? 

 

후지모리가 노린 것은 1년 앞으로 다가온 2006년 4월 페루 대통령 선거였다. 국제 수배 중인 상태에서 정계 복귀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후지모리의 속셈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내 아들·딸과 일족들이 페루 국회의원에 출마했고, 나를 ‘묻지마’ 투표해 주는 유권자들이 아직 있다. 비록 페루 입국은 못하지만, 이웃 국가인 칠레에서 선거운동을 벌이면 페루 정치권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면 국제 수배가 풀리고, 페루에 당당하게 입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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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네 자녀

출처-<AFP>

 

실제로 후지모리의 계획대로 상황이 돌아간다. 6개월 만에 칠레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후지모리의 페루 송환을 불허한다. 살인죄에 대한 페루 특검의 증거가 불충분하다.”

 

뿐만이 아니었다.

 

“후지모리의 석방을 허가한다. 다만, 칠레 밖으로 출국할 수 없다.”

 

후지모리는 보석금으로 단돈 2,500달러를 내고 칠레에서 자유의 몸이 된다. 

 

어떻게 칠레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후지모리가 칠레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었다. 후지모리는 10년 독재를 벌이면서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를 모델로 삼았다. 심지어 자신의 별명을 ‘치노체트’라고 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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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프레이 칠레 대통령과 후지모리

출처-<게티이미지>

 

2005년 당시 피노체트는 대통령에서 퇴임했지만, 그의 영향력이 살아있다 보니, 칠레 정치권도 후지모리를 대놓고 범죄자 취급하기는 쉽지 않았다. 

 

칠레 정치권의 노골적인 비호 아래 풀려난 후지모리는 선언했다.

 

“2006년 페루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명예를 회복하겠다!”

 

실제로 후지모리의 칠레 입국 후, 후지모리의 대선 지지율은 20%에 달했다. 군소 후보가 난립하는 페루 대통령 선거에서 ‘묻지마 극우 표’로 승부를 걸어볼 만한 지지율이었다. 

 

그러나 여러 상황 판단상 후지모리는 결국 대선 출마는 포기했다. 대신, 국회의원에 출마한 자기 자식들과 극우파들을 팍팍 밀어줬다. 후지모리는 칠레의 호화 저택에서 이들을 대놓고 만나며 선거운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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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산티아고의 호화 아파트에서

페루 국회의원에 출마한

딸 게이코와 만나는 후지모리

출처-<게티이미지>

 

결국 후지모리의 아들·딸, 남동생 등은 2006년 국회의원에 대거 당선되었다. (딸 게이코는 훗날 유력 대선후보에까지 오른다)

 

“모든 게 계획대로다. 이제 페루 정치권이 기소를 취하하면, 나는 개선장군처럼 페루로 복귀한다.”

 

그러나 후지모리의 원대한 계획이 꼬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스텝 꼬인 후지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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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2006년 12월 피노체트가 사망한 것이다. 피노체트는 17년간 독재하면서 자국민 3,000명을 살해하고 3만 명을 고문했지만, 죗값을 하나도 치르지 않고 자기 집에서 편하게 죽었다. 그러자 칠레와 페루 국민 사이에서 여론이 들끓었다.

 

“인간 백정 피노체트도 잘 먹고 잘살다 죽었는데, 후지모리도 그렇게 만들 거냐!”

 

칠레와 페루 정치권은 물론 국제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불리한 상황에서 후지모리가 믿을 구석은 뭐다?

 

그렇다. ‘일본’이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2007년 후지모리는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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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일본 중의원 선거에

후보로 출마한

후지모리의 선거운동 전단

출처-<게티이미지>

 

“2007년 7월 12일 일본 중의원 선거에 국민신당 후보로 출마한다!”

 

일국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는 충격적이고도 몰상식한 발상. ‘라스트 사무라이’를 선거 구호로 내세운 후지모리의 속셈은 뻔했다.

 

“칠레 정부, 페루 정부 잘 들어라. 내 뒤에는 일본이 있다. 내 몸에 손가락 하나만 대봐라. 내 친구(일본 극우 정치인)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후지모리의 꼼수에 페루 국민들도 더욱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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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리의 일본 선거 출마를

‘비겁자’라고 비난하는 페루 언론

출처-<게티이미지>

 

그러나 후지모리의 꼼수도 오래가지 못했다. 2007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것이다. 참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자 후지모리의 ‘믿을 구석’은 사라졌다. 마침내 칠레 법원은 후지모리의 페루 송환을 결정했다. 후지모리 독재 17년, 일본 망명 5년 만에 죗값을 치를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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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2일

칠레에서 페루로 송환되는 후지모리

출처-<AFP>

 

그 이후의 이야기는 딴지 기사 <윤석열이 내란에 성공했다면? 1 : 윤석열의 롤모델은 '후지모리'였나>(링크)에서 소개한 대로다. 후지모리는 살인, 납치, 고문, 부정부패로 징역 25년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후지모리가 쭉 감옥에 있게 되진 않았다. 후지모리 이후 막장이 된 페루 정치권으로 인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감옥을 들락날락했다. 그러다 2024년 9월 11일 암으로 사망하고 만다. (후지모리로 인해 얼마나 페루 정치권이 막장이 되었는지 궁금한 분은 딴지 기사 <윤석열이 내란에 성공했다면? 3 : 성공한 윤석열의 나라, 그 이후>(링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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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건강상의 이유로 풀려나는 후지모리

출처-<게티이미지>

 

그리고 일본은 후지모리가 죽을 때까지 그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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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후지모리의 묘지에

참배하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출처-<knews.com.tw>

 

 

다음 편 예고

 

윤석열, 김건희의 일본 망명 가능성은 없을까. 만약, 그들이 망명한다면 어떤 시나리오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