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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도 하는 거짓말

 

인간과 가장 유전적으로 가까운 침팬지도 거짓말을 한다. 제인 구달이 많은 양의 바나나를 받은 침팬지가 바나나를 숨기고는 다른 침팬지에게 천연덕스럽게 엉뚱한 곳을 가리키며 거짓말하는 침팬지를 소개한 후 많은 동물학자들과 진화학자들이 침팬지의 거짓말을 연구했다.

 

사실 지구상의 온갖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몸을 부풀리거나 색을 바꿔 위장하고 살기 위해 죽은 척 한다. 이 경우 의도적인 거짓말로 보기 어렵다. 자극에 반응하는 본능적 거짓말이다. 그런데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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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2008년 미국 하버드대 인류학과와 독일의 막스프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는 인간을 상대로 의도적으로 거짓말하는 침팬지를 보고했다. 논문의 제목은 ‘숨겨서 인간 경쟁자를 속이는 침팬지(Chimpanzee deceive a human competitor by hiding)’이었다. 연구의 결론은 침팬지가 속이려는 상대의 눈치를 보며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속이려는 상대의 눈치를 보며 거짓말을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판단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침팬지가 지능적 거짓말을 하는 것도 인간처럼 자기 이익(self-interest) 혹은 자기 잇속을 차리기(self-serving) 위해서다. 인간이 거짓말하는 동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간과 침팬지의 거짓말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자기 것을 지키는 것을 넘어 타인의 권리와 이익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아주 악의적이고 고약한 거짓말도 한다.

 

본능적이건 의도적이건 거짓말을 하는 동물들을 보면 사람이 거짓말하는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인간도 오래 전 시아노박테리아로부터 시작했던 지구 생명체 진화사의 일원이라 유기체 차원 혹은 유기체를 구성하는 유전자나 세포 차원에서 발현되는 생존 본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윤석열이 끊임없이 거짓말하는 것도 어떻게든 살려고, 자기 배를 채우려고 발버둥치는 생물학적 본능이라 간주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유전자 혹은 진화생물학의 문제로 윤석열의 거짓말을 치환해버리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아프리카 밀림의 침팬지 무리처럼 생물학적 진화 경로만 걷지 않았다. 인간은 인간을 제외한 어떤 생명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진화 경로를 밟아 왔다. 윤석열 때문에 24만 년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사를 퇴화사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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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다고?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

 

기독교의 영향으로 서양 문화는 인간의 본성을 기본적으로 악하다고 본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부터 시작된 원죄 유전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외쳤던 홉스(Thomas Hobbes)를 거쳐 서양 사람들이 인간을 바라보는 기본 시선이 되었다. 필자가 ‘못된 인간 신드롬’이라고 부르는 다소 불량한 이런 인간관은 뉴튼과 아인슈타인이 우주관을 두 번이나 뒤엎었을 때도 건재했다. 

 

오히려 다윈의 진화론과 교묘히 결합하여 ‘못된 데다 이기적인 인간 신드롬‘으로 발전했다. 스펜서가 진화론의 대표적 슬로건,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에 최상급을 사용하면서 자연에서는 힘세고 잔인하며 약삭빠른 존재만이 살아남는다는 오해가 일반 대중 사이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과학, 특히 정치학과 경제학은 생물학적 용어였던 경쟁과 포식 같은 용어들에 사회-정치적 폭력성을 뒤집어 씌워 오남용 하였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적 근연 관계가 드러나자 자연스럽게 인간의 본성을 침팬지에 빗대 유추하기 시작했다. 인간도 지구라는 환경 제약 조건을 부둥켜 안고 진화한 동물이라 침팬지 뿐만 아니라 많은 동물들과 유전적, 생물학적 공통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러니 인간을 양복 입은 침팬지 또는 원숭이로 묘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는 유전적 차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론적 간극이 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생명은 물질 조합이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이전에는 한 번도 출현하지 않은 새로운 작용 혹은 능력을 갖게 된다. 생물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창발(emergence)’이라 한다. 

 

행동과 표현으로 나타나는 계통 간 창발의 간극도 뚜렷하다. 아무리 침팬지에게 양복을 입히고 포마드를 발라 머리털을 가지런히 빗겨 넘겨도 인간은 되지 못한다. 인간과 침팬지가 공동 조상으로부터 분기된 후, 침팬지와 전혀 다른 인간은 사회-문화적 진화를 체현하며 현재를 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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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새끼도 낳지 못하는 동물

 

인간과 침팬지의 생애는 시작부터 다르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혼자는 새끼를 낳지 못하는 포유류다. 고양이, 개, 소, 양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도 혼자 새끼를 낳는다. 인간만 산파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가끔 미성년자 미혼모가 화장실에서 혼자 출산을 했다는 뉴스를 듣기도 하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산모가 혼자 힘으로 산도를 빠져나오는 태아를 꺼내려 하다간 십중팔구 연약한 태아의 목뼈를 부러뜨리게 된다. 산파의 도움이 없으면 산모와 태아 모두 죽은 목숨이다.

 

인간이 혼자 출산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큰 머리, 이족 직립 보행, 불로 음식을 익혀 먹는 화식이 만든 신체 구조 때문이다. 이렇게 혼자 출산이 불가능한 신체 구조로 진화하면서도 살아 남은 것은 호모 사피엔스만이 가진 고유 능력, 연대하는 능력 때문이다.

 

 

사망의 골짜기를 넘게 하는 힘, 연대하는 능력

 

인간은 출산, 자기 새끼를 낳는 데 남의 손을 빌린다. 연대라는 사회-문화적 진화로 생물학적 번식의 취약성을 보완했다. 보완이란 말은 부적절하다. 양성생식을 하는 인간의 번식은 수학적 표현을 빌자면 생리적 기제와 사회적 기제로 구성된 2원 2차 방정식이다. 생리적으로 암수가, 사회적으로는 자기와 타자들이 엮여 있다.

 

‘연대‘는 단순히 어떤 것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다. 인간의 연대는 침팬지 무리가 원숭이나 다른 사냥감을 집단 사냥할 때 보이는 협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람과 사람 사이 화학적 결합이고 ‘신뢰‘라는 효소가 있어야 연대가 가능하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집단적 행동력인 연대하는 능력 덕분에 인간은 지금처럼 번성할 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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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공감의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의 진정성을 확인했을 때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이렇게 인간의 공감 능력을 ‘마음 이론(Theory of Mind)’라는 가설로 설명한다. 신뢰는 우리의 오감으로 들어오는 타인에 대한 인지 정보와 그 정보가 우리 신체 안에서 만들어 내는 느낌이 결합하여 내 마음에 전사될 때, 즉 공감할 때 만들어지는 정신-물질 작용의 결과이고 인간만 가진 창발의 또 다른 증거다.

 

신뢰는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 초기 소규모 친족 집단에서 획득한 진화적 형질일 것이다. 초거대 도시에서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는 걸 기겁하고, 살갑게 굴던 이에게 사기를 당하고, 검찰을 사칭하는 보이스 피싱에 애써 모아 놓은 목돈을 털리는 현대 사회를 살고 있으니 신뢰를 생존의 본능으로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런 각박한 세상을 호모 사피엔스가 산 기간은 호모 사피엔스 진화사에서 1%도 되지 않았다.

 

 

신뢰의 씨앗, 엄마의 얼굴

 

인간의 신뢰 첫 단계는 신생아가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하고 엄마의 표정을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기가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고 따라 웃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탁월한 모방 능력 덕분인데 이 모방 능력이 호모 사피엔스 학습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이런 모방은 거울 뉴런의 작용이다. 거울 뉴런은 포유류 동물에게서 일반적으로 관찰된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마카크 원숭이 새끼가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실험자를 따라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미는 것도 마커크 원숭이의 뇌에 거울뉴런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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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Ferrari PF, Visalberghi E, Paukner A, Fogassi L, Ruggiero A, et al. (2006) Neonatal imitation in rhesus macaques.]

 

침팬지나 마카크 원숭이, 심지어 설치류인 쥐들도 거울 뉴런을 가졌다. 하지만 침팬지나 원숭이가 상대방을 흉내내고 공감을 표시하는 그것이, 인간 수준의 섬세한 모방과 높은 수준에서 동기화되는 공감은 관찰되지 않는다. 침팬지나 원숭이의 모방은 한계가 자명한 듯 하다. 자신들이 무리 지어 사는 집단 내에서 생존에 딱 필요한 만큼만 모방하고 공감한다.

 

인간의 모방이 다른 영장류와 현격한 차이를 만드는 역치는 얼굴 근육 수에 있다. 인간의 얼굴 근육은 43개인 반면, 침팬지의 얼굴 근육은 23개다. 사람이 입을 벌리거나 혀를 내미는 것 같은 큰 움직임은 침팬지나 원숭이도 따라할 수 있지만 미묘한 얼굴 표정의 변화는 따라하기에 얼굴 근육의 숫자가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인간이 이렇게 많은 얼굴 근육을 갖도록 진화한 것은 미묘한 얼굴 표정을 지어야 하는 선택압(서식처에서의 각종 환경조건(자원과 조건, 그리고 경쟁자의 존재 등)이 종 또는 개체들에게 해당 서식처에 살아남도록 하는 압력)을 받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양복을 입는 대신 털을 벗은 원숭이

 

털을 버리고 더 많은 근육을 가진 얼굴에 시선 방향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눈의 흰자위가 더해졌다. 얼굴 표정은 언어를 통한 의사 전달 이전에 인간이 획득한 가장 오래된 핵심적 의사 소통 수단이었다. 앵글로 색슨족, 게르만족, 바이킹족이 서로의 말은 못 알아 들어도 상대가 인간이라면 얼굴 표정만으로 상대의 심리적 상태,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게 그 증거다.

 

아이가 엄마의 얼굴 표정이나 눈동자에서 엄마의 생각과 느낌을 읽을 수 없고 반대로 엄마가 아이의 얼굴 표정과 눈동자에서 아이의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없었다면 인간 진화는 지금과는 딴판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호모족들의 뒤를 이어 멸종했을 수도 있다.

 

얼굴 표정과 함께 타인의 시선 읽기가 인간이 침팬지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모방 학습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표정과 행동만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도도 정확히 읽고 정교하게 예측하며 협력하며 학습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타인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예측하기 위해서는 표정과 말로 정확히 자신의 의도를 표현해야 한다. 환히 드러나는 얼굴 표정과 방향성이 분명한 시선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상대에게 숨기지 않고 전달해 줘야 문화를 누적하는 집단 협력 학습이 가능하다. 신뢰할 수 있어 모방하고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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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때문에 인간 지능과 학습의 핵심은 언어에 있다고 오해한다. 이제 겨우 말꼴을 갖추고 중얼대는 3 ~ 4살 어린이까지 국어, 영어, 수학 학원에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얼토당토 않은 오해다. 언어 능력은 인간 지능을 구성하는 일부에 지나지 않고 언어 능력만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언어 능력만 따로 떼어내 인간 지능을 구현하겠다는 발상자체가 무의미한 발상이다. 최신 인공지능 모델들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 언어 모델이라는 것이 원래 번역과 관련된 자연어 처리 알고리즘에서 시작해서 그렇다. 인간 언어 능력은 호모 사피엔스 전체 진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주 최근에 획득한 능력이고 형질이다. 오직 언어로만 사고하고 반응하는 인공지능은 결코 인간처럼 될 수도 없고 인간을 넘어설 수도 없다.

 

인간의 언어가 효과적인 의사 소통의 수단이 된 것은 감각기관, 운동기관과 긴밀하게 연결된 뇌가 그 전체로 반응하고 작동하며 감정과 느낌이라는 기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성대 근육이 움직이는 느낌, 폐에서 기도를 거쳐 나오는 공기흐름, 혀를 움직이며 구강의 크기를 조절하여 생기는 공명 진동의 느낌이 신경망을 타고 뇌에 들어와 다양한 청각 이미지를 만들며 언어능력이 진화했다. 그래서 우린 목소리의 떨림, 미세한 뉘앙스의 차이를 감지하고 상대의 정서와 상태를 파악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몸의 느낌과 운동이 만든 수많은 개념들이 뉴런의 시냅스를 통해 기억되고 연결되어 내 우주를 만들고, 네 우주를 만들며, 우리 우주를 만든다.

 

인지과학이나 뇌과학에서 이를 모델링이라 한다. 우리 뇌에는 개념 모델도 있고 맥락 모델도 있고 인지구조 모델도 있다. 우리가 말도 안되는 속도로 학습하고, 한번에 기억하고, 임기응변에 능한 것도 이런 모델을 만들어 뇌 속에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800억 개가 넘는 뉴런이 있고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만든 시냅스가 500조 개보다 많은 것은 언어로 만든 개념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비언어적 개념, 신체 내외부의 위치 정보와 운동 정보, 맥락, 인지구조로 축적하고 갱신하는 정보(혹은 기억)가 터무니없이 많기 때문이다. 과학을 통한 인간의 이해 수준은 아직까지 뇌의 작용을 전체로 파악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신뢰를 이야기하다 느닷없이 언어 학습을 하는 인공지능을 언급한 것은 신뢰가 말, 말을 적은 글, 그 글을 엮어 만든 계약서 따위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신뢰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표정을 읽고 목소리를 들으며 느낌을 있는 그대로 주고 받을 때 시작된다. 우리가 ‘정직’ 또는 ‘솔직‘이라고 말하는 상태다. 이 말은 인간이 빙하기의 오랜 세월을 지구상에서, 보다 나은 기후 환경에서 번성했던 공룡보다 더 번성하며 진화했던 것은 순전히 신뢰를 바탕으로 연대하는 능력 때문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유전이나 세포 차원의 진화에서도 인간이 신뢰를 바탕으로 연대하는 능력, 즉 집단 문화 진화압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연대하는 능력은 인간이 털을 벗었던 주요한 선택압 중 하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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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을 숨기거나 가장하고 시선을 피해 상대가 전혀 자기 생각과 느낌을 읽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거짓이고 이걸 언어로 시도하면 거짓말이 된다. 느낌과 뜻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어 신뢰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 철학적으로 선악을 구분하는 것보다 더 근원적 문제다. 인간이 이렇게 거짓을 배척하고 정직을 진화적으로 선호한 건, 철학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직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타자(들)와 연대하기 위해 체득한 생존 본능이었다.

 

이런 이유로 규모의 크고 작음과 상관 없이 거의 모든 인간 사회는 집단 내 거짓을 금기한다. 형이상학적 선악 개념을 동원해서 선험적 도덕 기준으로 간주하고 사회 규범으로 만들었다. 거짓말이 드러나면 반드시 징벌하고 비난하여 강력하게 통제한다. 특히 거짓말이 집단 내부로 향할 때 구성원들은 상호 신뢰를 상실하며, 토마스 홉스가 주장한 것처럼 집단 내에서 만인을 상대로 만인과 전쟁을 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만연하고 특정 거짓말이 수없이 반복되며 구성원 사이에서 공진(Resonance)하게 되면 파괴적 에너지가 무한대로 발산한다. 많은 집단(국가 포함)이 그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고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떤 인간 공동체이든지 자기 집단 내 거짓말을 살인만큼 엄격하게 징벌하고 통제해왔다.

 

 

마지막 보루, 사법제도와 주권자

 

우리도 권력을 행사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세력이 거짓말을 할 때 통제할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 그 장치들 중 반 이상이 고장 났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그래도 몽땅 고장 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윤석열 같은 희대의 거짓말쟁이를 제재할 수 있는 강제적이고 최종적인 힘을 가진 사법부와 대한민국 주권자인 국민(시민)이 남았다.

 

검찰과 법원의 합작으로 윤석열 구속 취소가 인용되었다. 다시 들어오게 될 텐데 귀찮게 왜 나간 건지 이해되지 않지만 같잖은 퍼레이드를 하며 풀려났다. 합작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검찰과 판사가 공모를 했는지는 모른다. 단지 일의 결과가 서로 도와 얻은 결과와 같다는 의미로 썼다. 결과적으로 상습적 거짓말쟁이인 윤석열-김건희, 국힘, 거리의 사이비 개신교 반국가 세력들은 가뭄의 단비 같은 희소식을 들은 셈이 되었다. 또 한번 거짓말을 쏟아 낼 거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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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링크)

 

이런 지경이니 과연 사법부가 권력자의 거짓말을 막을 수 있을지 강한 의심이 든다. 검사와 결이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판사들 역시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이고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다. 윤석열 변호인단의 면면을 봐도 대부분이 판사 출신이다. 윤석열의 똘마니, 이상민도 판사 출신이다.

 

하지만 윤석열이나 거리의 극우집단들이 하듯 우리 사법체계를 부정하고 겁박할 수는 없다. 사법부는 배타적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대통령의 새빨간 거짓말과 내란 범죄 행위를 최종적으로 단죄할 수 있는 유일한 헌법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달리 우리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책임 있는 주권자이니 더욱 가열차게 사법부가 어느 때, 어느 상황에서나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느 상황, 어느 때에 처하든 사법부가 효과적으로 권력자의 거짓말과 반국가적 일탈을 통제하려면 현행 사법제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모든 민형사 사건의 판결이나 법절차 집행 여부를 판사가 단독으로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빼앗고 절대 권력에 눈이 멀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 수괴를 다루는 중차대한 범죄 재판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법은 늘 시대 정신의 변화에 뒤쳐지기 마련이다. 세상 변화의 속도를 결코 법전의 갱신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 더구나 국가의 미래나 국민 일반의 이익보다 특정 재벌의 이익과 미래를 더 걱정하는 국힘 같은 정당이 원내로 들어와 땡깡을 부리기 시작하면 법이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것은 더 요원한 일이 된다.

 

이런 시대착오적 불일치, 시대 정신과 법 판단의 괴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시대 정신을 장착한 집단 지성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배심원제, 깨어 있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배심원제를 재판의 기본으로 삼고 배심원의 판단이 법률적 기속력을 갖도록 현행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

 

2008년 도입된 우리나라의 배심원제는 반쪽 자리, 존재감이 거의 없는 배심원제다. 배심원들의 판결은 법률적 기속력이 없는 권고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판사가 얼마든지 배심원의 판단을 뒤집을 수 있다. 이런 기형적 배심원제 덕분에 국민참여재판은 시들해졌다. 국민참여재판 시행 이후 피고인의 신청건수는 계속 늘긴 했지만 전체 재판의 4%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중에 59%는 철회했다. 그래서 2022년 실제 진행된 건수는 97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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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 (링크)

 

배심원제를 비판하는 의견을 살펴보면 대개 일반인의 판단 오류에 대한 염려, 일반인의 전문성 결여, 일반인의 이해력 부족, 배심원의 이해 관계 상충, 배심원 운영에 드는 과도한 재판 비용, 오심에 대한 국가 배상 문제 등이 거론된다. 하나 같이 검증된 적도 없는 기우이거나 법률 전문가 집단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법률 전문가들이 배심원제의 단점이라고 보여 주는 영국과 미국의 사례들도 대개 일회적이거나 우연히 발생한 경우다. 어느 제도에서나 관찰되는 문제 발생 빈도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만약 제시된 사례가 배심원제가 근본적 결함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였다면 이미 오래 전에 영국과 미국에서 배심원제는 폐지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영국과 미국이 배심원제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이유는 배심원제를 영국과 미국의 민주정치을 떠받치는 시민 정신의 신성한 의식(ritual)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과거 영국이 배심원제를 축소했던 건 사실이다. 높은 재판 비용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신자유주의 경제가 기승을 부리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영국 정부는 공공복리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거의 모든 예산을 삭감했다. 배심원제 축소도 그런 여파가 빚은 결과 중 하나였다. 정치 전문 집단의 잘못된 경제 운영이 시민 정신을 위축한 대표적 사례이지, 배심원제도의 결함 문제로 꼽을 사례가 아니다.

 

배심원제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사법 제도뿐만 아니라 국가 의무 교육 기간동안 어린 시민들의 교육 프로그램도 바꿔야 한다. 어린 시민들이 배심원 제도를 민주 시민의 신성한 책무로 인식하고 합리적이고 불편부당하며 인간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훈련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교사를 붙여 코딩 가르치고, 경제적 자유라는 말도 기괴한 용어를 만들어 자산 투자를 가르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어린 시민들을 깨어 있는 성숙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잘 훈련하고 교육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배심원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간 진화의 가장 중요한 능력, 연대 능력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어릴 때부터 부단히 제공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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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시스

 

또 한번 거리에는 법원도 윤석열 내란죄를 부정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의 높은 파도가 밀려올 것이다. 사법부마저 농땡이를 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주권자인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신발끈도 더 단단히 고쳐 매야 하게 생겼다. 새빨간 거짓말을 쏟아내는 무리로부터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공화정을 지켜내려면 어쩔 수 없다. 유사 이래 주권자는 고달팠다. 주권을 지키려면 큰 수고와 꼭지 돌게 비싼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윤석열 같은 입벌구의 재출현을 막으려면 보복 정치의 망령을 걷어치우기 위해 용서해야 한다는 둥의 한가한 소리도 집어치워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 수괴이자 수많은 광주 민중을 학살한 희대의 살인 범죄자였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공익을 훔쳐 사고를 채우고 국민 안전 책임을 완벽하게 해태한 중범죄자들이지 보복정치의 희생양이 아니다. 죄를 졌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 용서는 뉘우치는 자만 받을 수 있는 선별적 자비다. 선별적 복지에는 목숨 걸며 왜 자비는 무차별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할까? 제발 국힘이나 수구세력의 쏟아내는 새빨간 거짓말에 놀아나면 안 된다.

 

새빨간 거짓말로 대한민국 대한국인이 어렵게 축적한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려는 이들은 용서 없이 징벌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가혹한 비난의 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상습적인 거짓말에 무뎌진 편도체가 재작동하며 스스로 거짓말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