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뉴스>
지난 2월 28일 전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트럼프와 젤렌스키가 충돌했다. 회담은 파국으로 끝났다. 곧이어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중단을 지시했다. 며칠 뒤, 젤렌스키는 결국 머리를 숙였다.
이 일련의 사건으로부터 약 2주의 시간이 지났다.
이미 정해진 협상 대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맥락은 두 가지가 있다.
1. 미국, 우크라이나, 그리고 ‘유럽’의 맥락
2. 미국,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의 맥락
지난 기사(링크)에서는 1번 ‘유럽의 맥락’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러시아 맥락’을 짚어보려 한다.
위 일련의 사건이 벌어진 직후인 3월 6일, 푸틴은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전사자 유족을 만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며칠 전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숨진 군인 가족들을 위한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이후 나온 행보였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외교적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과 달리 푸틴은 러시아 내부 결속을 다지는 행보를 보여준 것이다. 상대적으로 잠잠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전사자 유족들을 만나
발언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유가족과 만나 내부 결속을 다진 날,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역에 있는 에너지 인프라 시설에 대규모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해당 공격이 벌어지고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건물 모습
영국 BBC(링크)는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다.
‘트럼프가 젤렌스키와 충돌 후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와 군 위성사진 제공을 유예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 시설에 대규모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자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해 관세와 대규모 제재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strongly considering)라고 밝혔다. 이는 마치 지난 2018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 이전에 고조되었던 한반도 위기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즉, 트럼프와 푸틴 대통령이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긴장을 고조시켜 협상의 결과를 극대화하려는 계획인 듯 보인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제재를 언급한 다음날 발언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출처-<백악관>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와 협상하는 것이 수월하다.”
(Trump says Ukraine 'more difficult' to deal with than Russia)
트럼프는 이미 협상 대상으로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를 생각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러시아의 전략
지난 3일 나온 CNN 보도 내용도 일맥상통한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와 충돌한 것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전략적으로 한 행동이라고 보도했다. 애초 러시아만을 협상 대상으로 생각하는 트럼프 입장에서 젤렌스키는 장애물일 뿐이기 때문에 이번 충돌로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푸틴도 이런 트럼프의 전략에 매우 만족해한다고 했다.
트럼프-젤렌스키 충돌 직후(3월 2일), 크렘린궁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Dmitry Peskov)는 러시아 국영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
출처-<Reuters>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트럼프 2기 행정부)가 모든 외교 정책 노선을 변경하고 있다... (중략)... 이러한 변화들은 대부분 우리(러시아)의 비전과 부합한다.”
같은 날 러시아에서 나온 발언 중 더 주목해야 할 발언이 있다. 앞으로 러시아의 외교적 방향성이 담긴 발언이기도 하다.
발언의 주인공은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그는 지난 2004년부터 무려 21년간 외무장관을 역임하고 있는 역대 러시아 최장수 외무장관이다. 3연임 금지 헌법으로 인해 4년간 푸틴이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잠시 넘겨줬던 시절에도 외무장관직을 지속했던 인물이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출처-<러시아 외무부>
그는 이렇게 발언했다.
‘(트럼프-젤렌스키 충돌에서 트럼프의 행동은 전쟁 종식을 위해) 상식적(common sense)이었다. 반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겠다는 유럽의 행보는 전쟁을 지속시키려 하는 행태다.’
미국은 칭찬하고 유럽은 비난하며, 바이든 행정부 당시 끈끈했던 대서양 동맹에 균열을 만들려고 했다.
중요한 포인트는 이 다음 발언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길 바라고 있으며,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모든 사안에 동의하진 않지만 상호 이익이 될 경우 실용적으로 서로 동의할 수 있다.”
(the United States still wanted to be the world's most powerful country and that Washington and Moscow would never see eye to eye on everything, but that they had agreed to be pragmatic when interests coincided.)
이 발언의 의미를 짚어보자.
먼저, 여전히 ‘미국이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길 바란다’는 것은 소련이 붕괴하고 1990~2000년대 초반과 달리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미국이 가장 강력한 국가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계속 우위를 점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모든 분야에서 미국과 국익이 일치하진 않지만, 상호 이익이 될 경우에는 언제든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면, 미중 경쟁에서 러시아는 미국에 유리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라브로프는 현재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향후 미국-러시아 관계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경쟁도 치열하지만 동시에 ‘상호 협력’(mutually beneficial things)으로 전쟁 가능성을 제한하는 관계로 보았다.
이러한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현재 푸틴의 러시아는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을 바이든 행정부 당시 냉랭했던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기회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 전략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배제하는 것이다. 이후 장기적으로 경쟁할 것은 경쟁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미·중 관계를 미국과 러시아 관계의 모델로 상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식해야 할 현실
출처-<AP>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났다. 우크라이나는 나라가 풍비박산 났고, 러시아는 건재하다. 미국은 최근 정권이 바뀌면서 러시아를 옹호한다.
지금 시점에서 두 가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첫째, 러시아의 현실 인식과 전략이다.
러시아는 불과 30년 전 미국과 함께 G2 국가였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 이후 세계 정치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 미국 일극 시대였고, 이후 명실공히 미국과 중국의 G2 시대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유럽과 손을 잡았다.
제국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러시아는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최근 트럼프 등장 이후 미국-유럽의 대서양 관계를 균열 내려 한다. 러시아가 미국과 중국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하고, 최소한 유라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파트너로서 유럽을 대체하려는 것이다.
둘째, 노골화되는 힘의 정치다.
일반적으로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의 가장 큰 차이는 ‘무(無)정부성’이다. 국내 정치는 민주 정부든 독재 정부든 정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질서는 유지되는 반면, 국제 정치는 개별 국가 상위의 권력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강대국에 의해 국제 질서가 작동하는 측면이 강하다.
탈냉전 이후에는 개별 국가들이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 유럽연합과 같은 지역통합 등에 참여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규범들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며 힘의 정치는 다소 약화하는 듯했다. 때문에 개별 국가들이 대놓고 공개적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고수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한계가 있긴 하지만 1992년 리우환경협약, 1997년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협약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경향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국제사회의 무(無)정부성이 극대화되고 있다. 개별국가들의 각자도생이 요구되고 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도 친구라는 생각을 해서는 곤란하다. 트럼프가 보여주듯 동맹도 하루아침에 흔들릴 수 있다. 가치 동맹만을 부르짖으며 플랜B, C를 세우지 않는다면 국익을 담보할 수 없다.
트럼프 정부의 재등장과 함께, 러시아는 국제 사회에서 과거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치 외교를 부르짖으며 미국과의 일방 외교 및 중국과 러시아를 배척하는 것은 곧 죽는 길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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