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국방 브리핑이다. 기사는 쉼없이 쏟아냈지만(계엄 때는 기계처럼 쓰느라 토하는 줄 알았다...) 와중에 뉴스의 배경도 놓칠 수 없다. 편집장으로부터 북한 관저와 지역 이야기를 해주면 독자들의 배경지식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청탁을 받았기에 오늘은 그 이야기를 짤막하게 풀어보련다.
2024년 10월 3일. 대북전단 600장씩 실려 있던 무인기 2대가 평양으로 날아갔다. 작년 계엄령 직전에 최소 3차례에 걸쳐 7대의 무인기가 평양으로 날아갔고, 그 중 4대가 15호 관저로 향했다. 이 4대 중 1대가 추락했다.
지금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순간이다. 이건 작정하고 전쟁을 하겠다는 거였다(이 정도로 막장일 줄은 몰랐다. 이건 사이즈가 다르지 않은가). 계엄령 직전에 핑계를 만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는 걸 보면, 이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하는 게 15호 관저라 불리는 김정은의 집무실이다. 도대체 이곳은 뭐하는 곳일까?

김정은 15호 관저
1호 청사란 말이 있다. 언뜻 듣기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북한 사람들이라면 다 안다. 바로 <노동당 중앙 위원회 청사>가 1호 청사이다. 49호 병원이라고 하면, 남쪽에서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평양에서는
“아, 정신이 온전치 않은가 보다.”
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 49호 병원은 정신병동이다(정신질환자에 대한 내각결정 49호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이렇게 보면, 뭔가 좀 비밀스럽고 정보기관 냄새가 나는데… 맞다. 북한은 이걸 노리고 숫자 기관명을 명명했다.
이 역사는 꽤 오래됐다. 1949년, 그러니까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북한은 소련 정보기구 구성을 차용해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때 상급기관의 명칭을 숫자로 사용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관의 노출을 숨기고 이 기관의 목적 자체를 사람들이 모르게 하기 위해서다.

출처 - KBS 남북의 창
김정일이 좋아했던 곳이 원산 초대소, 바로 향산 1초대소이다. 김정은의 고향인 원산은 김정은이 정권을 잡자마자 각별한 대우(?)를 받았다. 집권 초기 원산을 미친 듯이 들락거렸고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개발에 신경 썼던 이유는 그가 원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산 송도원 옆에 있는 602초대소에서 태어났다.
이 부분은 좀 생각해 봐야 하는데, 김정일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보면 평양에서의 생활은 1년 중 두 달 남짓만 했었고, 그 나머지는 북한 전역에 있는 초대소들에서 생활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미국이나 한국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김정은의 친모인 고영희 같은 첩(그냥 네 번째 부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들을 초대소에 숨겨 놓고 찾아가 즐기는 걸 낙으로 삼았던 거 같다. 풍광 좋은 초대소에서 수상스키 타면서 권력자의 삶을 누린 거다.
김정일이 집권하던 시기 평양 안에서 주로 머물렀다고 하는 곳은 평양 중성동의 15호 관저와 85호로 불리는 동평양 관저, 그리고 중구역의 16호 관저 등이다.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게 중성동의 15호 관저이다.
우선 15호 관저가 있는 평양시 중구역(中區域)의 “위상”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평양의 19개 구역 중, 노른자 중에 노른자가 바로 중구역이다.
이게 맞는 표현일지 모르지만, 평양의 중구는 한국의 서초+한남+종로+용산+여의도를 합쳐 놓은 정도의 위상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평양은 중구역 하나를 위해 나머지 18개 구역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북한 아파트를 보면, 한국과 달리 1~5층 사이의 저층 아파트가 그 위의 고층 아파트보다 인기가 좋다.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전기 때문이다. 북한은 전력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수시로 전기가 끊긴다. 이렇게 되면, 엘리베이터가 멈추게 되고, 사람들은 걸어서 집으로 올라가야 한다. 당연히 저층이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수돗물도 마찬가지다. 상하수도가 다 연결돼 있지만, 고질적인 전기 문제 때문에 수돗물도 단수되는 게 일상이다. 이건 평양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김정은 시대에 만들어진 북한 드라마를 보면, 이 부분이 꽤 재미있게(?!) 묘사 돼 있다. 한 눈에 봐도 출신성분이 좋아 보이는 평양 아줌마들이 전기가 끊기자 양동이를 들고 오르락내리락 하며 물을 퍼 나르는 걸 보면 뭔가 이질적이면서… 괴이하다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전기와 수돗물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중구역의 특별함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중구역은 평양에서 유일하게, 아니 북한 전 지역에서 드물게… 아니, 북한 거주구역 중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전기가 들어오고, 단수가 되지 않는 구역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북교류나 행사를 위해 갈 때 마다 꼭 등장하는 옥류관이나 고려호텔, 평양 영상이라고 나올 때마다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평양역, 그리고 각종 군중집회, 열병식 등을 하는 김일성 광장 등등이 바로 중구역에 있다. 우리에게도 무척 낯익은 동네란 소리다.
교육적으로도 대단한데, 평양의학대학과 김책공대가 여기에 있고, 외무성, 대외경제성, 그리고 내각종합청사 등등이 여기에 있다. 한국으로 치면 국립중앙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조선중앙력사박물관도 여기에 있고, 로열패밀리를 위한 평양 제1백화점에, 고려호텔 등등이 다 여기에 있다.
이 정도면 중구역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여기는 평양의 핵심이자 북한의 중심이다.

출처 - SBS 뉴스 (링크)
중구역이 북한의 중심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노동당 1호 청사와 김정은의 관저인 15호 관저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조선노동당 3호 청사가 있다. 이게 삼각형 모양으로 포진해 있다(걸어서 움직일 거리다. 차량으로 움직이는 통로는 따로 있다). 1호 청사의 뒤편에 15호 관저가 있고, 15호 관저의 앞에 3호 청사가 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1호 청사의 정식명칭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다.
“민주당사나 국민의 힘 당사 같은 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건 착각이다. 북한은 노동당의 나라이다. 당이 군대도 장악한 나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 중앙당사라는 건 북한을 통치하는 곳이란 의미다. 미국의 백악관이나, 한국의 청와대 같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괜히 1호 청사가 아니다. 김정은도 여기 집무실에서 업무를 본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던 사진의 장소가 노동당 본부청사다
그리고 앞에 있는 조선노동당 3호 청사… 이게 정말 우리나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바로 <통일전선부 및 정찰총국 산하 부서 청사>라는 거다. 우리나라에 간첩 보내고, 테러하고, 뻑하면 뭐 터트리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68년 김신조 사건이나, 83년 아웅산테러, 87년 KAL기 사건 등등 굵직굵직한 건 모두 여기서 기획하고 실행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정원 같은 곳이라 생각하면 된다.
언론에서는 김정은이 잠자는 15호 관저에 무인기가 들어갔다고 호들갑이지만(15호 관저에서 생활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힘들다. 하도 여기저기 움직여서), 이보다 더 심각한 건 1호 청사와 3호 청사가 있는 곳, 평양의 핵심이자 북한의 핵심인 중구역 지역에 드론을 날렸다는 게 더 중요하다.
하긴, 정치적 상징성으로 보면 이건 전쟁하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통령실과 국정원에 무인기 날려서 도발하는 거 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도 북한을 움직이는 김씨 일가와 북한의 핵심 엘리트 계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날렸다.
윤석열은 참 어마무지한 일들을 했다. 이 인간이 대통령 자리에 몇 달만 더 있었다면, 평양에 미사일이라도 발사했을 놈이란 생각이 든다.

편집 : 꾸물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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