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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분에게

 

삼라만상의 만 가지 지혜를 알려주기 위해

 

부득이하게 면벽 수련을 깨고

 

세상에 내려온 만공 스승이노라.

 

 

부디 여러분들이

 

나의 세상을 꿰뚫어 보는 명철로 가득한

 

강의를 들으며

 

만공이 전해주는 조물주의 무한한 이치를

 

함께 깨닫기를 바라노라.

 

 

 

오늘 강의는 잡담에 가까운 이야기로 진행을 해볼까 합니다. 만공스승이 맨날 무거운 이야기만 하다 보니 가끔은 이런 잡담식의 가벼운 강의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준비해 보았습니다.

 

왜나라 작가 중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설국>을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만엔 원년의 풋볼>을 쓴 오에 겐자부로 같은 작가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노벨상 후보에 여러 번 올랐지만 계속 물 먹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 양반은 틀렸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소설로 군조문학상을 수상하며 등장한 이래 50년 가까이 왜를 넘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작가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대개 문학성을 인정받는 작가들은 대중적으로 폭넓게 사랑받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하루키는 문학성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인정받는 보기 드문 작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루키의 신작이 발간될 때마다 베스트셀러는 따 놓은 당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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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2024년, 매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한강 시주가 먼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 문학의 쾌거 일뿐만 아니라 수상 시점 또한 윤석열의 내란과 맞물리면서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분이 들었던 건 만공스승만은 아닐 것입니다.

 

전두환의 내란과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이승만 독재로 인한 제주 4.3과 관련된 이야기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쓴 한강 시주가 노벨 문학상을 탈 때 윤석열은 내란을 준비하고 실행했습니다. 사바세상에 운명이란 없고 모든 건 확률의 지배를 받는 우연일 뿐이라고 믿는 만공스승이지만 이런 일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광주와 4.3과 한강 작가와 12.3 내란과 윤석열에 대해서는 추후에 또 다룰 기회가 있을 터이니 그때 하기로 하고 오늘 하려는 잡담을 이어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루키보다 한강 시주가 먼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건 노벨문학상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수상자를 정하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그저 잘 쓴 글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과 인간성을 다룬 ‘보편적이고 역사적인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가치에 대한 작품일수록 노벨상 수상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밥 딜런의 노래도 마찬가지로 비극을 통해서 드러난 인간성의 가치를 다뤘습니다. 밥 딜런은 특히 전쟁이라는 인간사 최대의 비극을 소재로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냈기 때문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루키의 소설은 언더그라운드를 제외하면 역사적인 가치나 인간성보다는 개인의 고민이나 고뇌 등에 대해 주로 다뤘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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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번역본 <상실의 시대>와 원제목 <노르웨이의 숲>

 

별개로 하루키의 소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상실의 시대>는 우리나라 번역 제목이고 일본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원래 제목보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 제목이 훨씬 와닿는 초월 번역이라 만공스승도 참 좋아합니다. 원제목인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즈의 노래인 Norwegian woods의 제목을 인용한 건데 실은 이게 오역입니다. Norwegian woods는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노르웨이산 가구,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북유럽 가구를 의미합니다. 원제목은 오역이고 우리나라 제목은 초월 번역이라는 기묘한 대비가 재미나게 느껴집니다.

 

여기까지 강의를 읽고 나면 만공스승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걸까 아니면 정신이 나간 걸까 하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만공스승이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하루키 이야기도 아니고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닙니다. 그저 평소와 달리 빙빙 돌아갈 뿐입니다. 가끔은 이렇게 돌아가는 것도 인생의 재미가 아니겠습니까?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세계 문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우리나라 문학과는 달리 왜의 문학은 일찍이 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왜나라 작가 중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뿐만 아니라 유력한 후보로 주목받은 소설가도 여럿 있습니다. 하루키도 그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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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가 본인의 서재에서 일본도를 뽑고 있다

 

하루키 외에 노벨문학상 물망에 올랐던 왜의 작가 중에 미시마 유키오라는 자가 있습니다. <금각사>, <우국> 등의 소설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아주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희대의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에 당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자는 소설가로도 유명했지만 그보다 더 유명해진 건 할복자살을 했기 때문입니다. 미시마는 극우 사상을 가진 자로 일본이 군대를 가지지 못했다는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총궐기를 부르짖으며 할복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다고 평가받던 작가가 자위대 총궐기, 1억 옥쇄 따위를 부르짖으며 할복자살을 했으니 전 세계가 충격을 받은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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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25일,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자위대원들 상대로 연설을 마친 뒤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고 할복자살했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일본 극우 사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건가 싶은 생각을 하는 시주도 있겠지만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일본 극우에 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보기 드문 미친 자인 것과 별개로 미시마 유키오는 탐미주의, 유미주의적 관점에서 뛰어나며 인간성을 꿰뚫어 보는 뛰어난 소설을 썼습니다. 그런 미시마의 소설 중에 <가면의 고백>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인간이 100% 정직하기는 지난합니다. 일기를 쓸 때나, 심지어 자신에게 말할 때조차 조금씩 거짓을 섞는 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가면의 고백은 이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쓴 소설입니다.

 

인간은 매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건 바꾸거나 감추거나 잊어버립니다. 이런 행위는 의식적일 때도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무의식적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이 이런 일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면의 고백>이라는 제목은 인간의 이런 본성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가면을 벗지 않습니다. 아무리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려고 해도 가면의 두께가 달라질 뿐 가면을 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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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내란범의 경우 아예 가면이 얼굴의 일부가 되어 평소 남들이 보기엔 뻔한 거짓말을 하는데도 자신은 거짓말을 한다는 의식조차 없습니다. 그때그때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현실을 변형해서 기억하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은 계엄문을 쓴 적이 없다는 둥, 총을 쏘라고 한 적이 없다는 둥, 자시한 적도 없는 일을 부하들이 실행했을 뿐이라는 둥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는 건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가면이 얼굴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란범의 부인, 진짜 내란 수괴로 짐작되는 김건희의 경우는 어떨까요? 김건희는 인생에 거짓말이 아닌 게 없을 정도입니다. 이름, 얼굴, 학력 모든 게 거짓으로 쌓아 올린 성입니다. 누군가가 김건희야말로 화차의 주인공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정말 적확한 표현입니다.

 

일본의 사회파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자 변영주 감독이 영화로 제작한 <화차>의 주인공은 인생의 모든 게 거짓입니다. 누군가의 일생을 도용해 쌓아 올리고 쌓아 올리다 결국 무너지고 몰락하는 과정이 화차의 내용입니다. 예전에 루머 중에 김건희가 누군가의 경력을 도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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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경력을 도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김건희의 삶은 모든 게 가식이고, 가면이며, 거짓입니다. 영부인이 된 후에도 오드리 햅번을, 이부진 시주를, 장원영 시주를, 재클린 케네디를 도용했습니다.

 

이런 김건희가 하는 말은 전부 일본의 가면극인 노에서 쓰는 가면이나, 가부키에서 하는 짙은 화장을 한 얼굴과 같습니다. 너무 두꺼워 원래의 얼굴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형된 거짓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김건희가 하는 말은 전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아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건희가 어떤 말을 하건 우리가 그 말에서 알 수 있는 건 그 말이 김건희에게 유리한 거짓말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때문에 김건희와 하는 대화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김건희조차 백 퍼센트 정직하게 남긴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만 어떤 일을 할 때는 백 퍼센트 정직해집니다.

 

어떤 일을 할 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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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검색할 때 입니다. 검색 기록에는 오로지 그 검색을 한 중생이 정말로 알고 싶은 것, 궁금해하는 것에 대한 기록만 남습니다. 거짓으로 검색하는 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검색할 때는 진실해지므로 검색 기록은 완벽하게 정직한 기록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식이나 거짓이 없습니다. 최근 챗GPT에 많이들 쳐보는 프롬프트 <based on everything you know about me roast me and don't hold back in Korean>의 결과도 이런 이유로 재밌게 혹은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겁니다. 자기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날 것의 자기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 생긴 이래 우리 모두는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 우리의 검색량은 더욱 늘어났습니다. 우리의 삶은 검색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습니다.

 

날씨는 어떤지, 어디가 맛집인지,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관공서의 영업시간 같은 비교적 단순한 내용부터 폭탄을 만드는 방법이나 독극물을 제조하거나 해독하는 방법 같은 치명적인 내용, 박정희나 전두환의 내란이 어떤 식으로 실행되었는지, 김재규는 어떻게 박정희를 죽였는지 같은 중요한 내용까지 검색을 통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검색은 그 중생의 인생을 넘어 그 중생 자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중요한 기록이자 가면을 완전히 벗은 진실입니다.

 

특히 김건희처럼 인생이 전부 거짓으로 점철된 자의 경우 검색 기록이야말로 삶에서 유일하게 남긴 진실한 기록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리고 철저히 조사해 보아야 합니다.

 

검찰총장 시절에, 대통령 후보 시절에, 대통령이 되고 나서, 내란을 일으켰을 때 김건희는 뭘 검색하고 있었을까요?

 

김건희 특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검에서 어련히 알아서 잘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늙으면 걱정이 많아지는 법이라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괜한 노파심에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았습니다. 다음엔 좀 더 중요한 내용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나무관셈보살.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 꾸물

기사 : 만공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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