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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치나 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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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차이나(China, 중국)를 철자 그대로 발음하면 ‘치나’가 된다. 좁게는 중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이지만, 유럽이나 북미 계통의 사람들은 아시아인을 조롱할 때 사용한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가끔 낯선 이들이 다가와 “치나!”라고 부르고 웃으며 지나간다. 어안이 벙벙해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다. 처음 영국 땅을 밟았던 2009년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 전이라 제재할 법도 이렇다 할 규제도 없었다(지금은 이런 경우, 경찰에 신고할 수 있고 심한 경우 징역형에 처한다). 언뜻 보기엔 말끔한 도시, 정돈된 거리, 점잖은 사람들 같지만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 보면 제국의 유령이 아직 이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친구가 농담처럼 알려주었다.

 

“그럴 땐 그냥 'Are you German(너 독일 사람이지)?"라고 해. 아무 말도 못 할 걸?”

 

갑자기 독일?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었다. 진심 반 장난 반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길을 걷고 있는데 "헤이 치나, 니하오" 하고 나를 부르는 것이다. 친구가 말한 '져먼(German)'이 떠올랐다. 순간 발걸음을 돌려 그 사람 얼굴을 보고 말했다.

 

“소!, 아유 져먼? 유 져먼? (So, are you German? You German?)”

 

그렇게 반응할 줄 몰랐는지 아니면 정말 듣기 싫은 말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도 없이 홱 돌아서 사라져 버렸다. 그때 알게 되었다. 영국인들은 '독일'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걸.

 

실제로 그때 당시, 연세 있는 분 중 2차 세계대전 런던 대공습의 기억을 생생하게 가진 이들이 많았다. 어떤 이는 직접 대피소에 숨어 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또 어떤 이는 아직도 독일이란 나라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독일을 믿지 않아. 그들은 언제든 다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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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영국 템즈 강 상공을 비행하는 독일 전투 폭격기

 

전쟁이 끝난 지 70년 가까이 흘렀지만, 영국 사람에게 독일에 대한 적개심은 성별 세대 불문이었다. 브렉시트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는 상태에서 탈 EU를 선택한 영국인들의 마음엔 ‘독일에 대한 불신’도 있었다.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정치적 무기로 사용되었다.

 

“히틀러는 총칼로 유럽을 장악하려 했지만, 지금의 독일은 유로화를 앞세운 정치 전략으로 다시 유럽의 중심에 서려 한다.”

 

이런 말이 자주 회자되었다. 물론 일부의 목소리일 수 있겠으나, 내가 경험한 이들 대부분은 여전히 독일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했다. 거리엔 독일 차가 즐비한데, 왜 사람들 마음엔 독일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할까. 그럼 독일 차도 안 타야 하는 거 아닌가?

 

영국은 독일을 신뢰하지 않는다

 

독일이 그렇게 못마땅하면 독일 물건도 안 사야 하는 거 아니야? 영국인 친구들에게 이 질문을 꽤 많이 하고 다녔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건 그거고, 차는 차지!"라고 답했다. 한때 제국을 건설했던 실용주의 나라다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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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지난 17일,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단독으로 다우닝가 10번가를 방문했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 뉴스였다. 이날 체결된 ‘켄싱턴 조약(Kensington Treaty)’은 단순한 공동성명이나 외교적 제스처를 넘어, 양국 간의 포괄적 협력을 법적으로 공고히 하는 ‘전쟁 후 첫 양자 조약’이었다.

 

자, 이제 영국이 전쟁의 아픔을 뒤로 하고 독일을 신뢰하기 시작한 걸까? 아니면 신뢰와는 별개로 외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손을 내민 것일까?

 

실용적 공리주의. 신뢰 문제와 관계없이 당장 필요로 하니 일단 협력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어쩌면 마지막 자존심까지 내 걸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일 수도 있다.

 

현재 영국은 안보, 외교, 경제 모든 분야에서 고립의 경계에 서 있다. 브렉시트 이후 유럽 연합과의 제도적 연결은 끊겼고, 미국과의 특수관계도 점점 '상대적 거리감'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한편, 독일은 EU 안에서 가장 큰 경제국으로, 재무장과 전략 기술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되면서 유럽 안보 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이다. 그 속에서 독일은 믿고 싶지 않아도 믿어야 하는 상대가 된 것이다.

 

영국은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 프랑스는 유럽 통합의 상징이며, 독일은 그 실질적 설계자다. 미국은 유럽보다 아시아와 자국 문제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그런 상황에서 방위 산업, 이민 정책, 전략 기술 경쟁력, 유럽 내 외교 입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파트너는 현실적으로 독일 뿐이다.

 

실제로 이번 영국과 독일이 체결한 켄싱턴 조약은 광범위한 협력을 이뤄냈다. 드론 공장과 미사일 공동 개발,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협력, 밀입국 대응을 위한 국경 감시 시스템 통합, 런던–베를린 직행 고속열차 계획, AI와 반도체, 그린 에너지 등 전략 기술 분야의 공동 투자 등 군사, 외교, 안보, 경제, 과학, 에너지 그리고 교통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포괄적이고 구조적인 재결합을 이뤄냈다. 다만 하나 주목할 점은 EU 체계 안에서 체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브렉시트를 거친 영국과 전통적 다자주의 틀에 익숙한 독일이 서로를 독립된 협력 파트너로 인정하고 움직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만남은 곧 프랑스 방문과 함께 ‘E3’라는 유럽 삼각 축의 부활로 이어졌다. 결국 영국은 독일을 믿어서 손을 잡은 것이 아니다. 지금 손을 잡지 않으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기 때문에 손을 내민 것이다. 국제정치는 구조에 의해 움직인다. 전쟁의 기억은 남아 있을지언정 생존의 계산은 냉정했다.

 

이 선택으로 독일은 또 한 번 유럽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유럽 세 강국의 재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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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FP 연합>

 

역사적으로 세 민족 앵글로-색슨(영국), 프랑크(프랑스), 게르만(독일)은 50년 이상 평화를 유지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늘 싸웠고 시종일관 피로 얼룩진 역사가 전개되었다. 하지만 왕가의 자제들은 결혼해 사돈을 맺고 교류도 활발했다. 신뢰하지 않지만 차는 사고 협상도 하는 관계가 1,500년이 지속되어 온 것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6천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상대지만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상황은 여전했다.

 

한때 유럽 대륙을 두고 전쟁을 벌였던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이 세 나라가 다시 한 자리에 섰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난 후 ‘유럽 외교의 삼각 축’이라 불렸던 이 조합(E3)이 재결합하는 모습을 보일 줄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브렉시트는 그만큼 돌이킬 수 없는 이별처럼 보였고, 이후의 유럽 안보 전략은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EU 중심 질서’로 기울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영국·독일 간의 켄싱턴 조약 체결을 계기로 이 삼각 축이 다시 복원되기 시작했다. 조약이 체결된 직후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영국을 방문하면서 E3라는 이름이 다시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했고 단절되었던 삼국 외교의 톱니바퀴가 조심스럽게 맞물리기 시작했다.

 

이번 영프독 회동은 단지 친선 방문이나 형식적 외교 행보가 아니다. 지금의 유럽이 직면한 총체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가장 전통 깊은 유럽의 세 강국이 목적을 가지고 뭉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불안정한 동맹으로 흔들리는 가운데 NATO 체계마저 장기적 재조정 국면에 들어선 지금, 유럽은 자생력을 갖춘 리더십 구조가 필요하다. E3의 귀환은 바로 그 공백을 메우려는 중요한 움직임이다.

 

영프독 세 나라는 그동안 긴장과 갈등, 경쟁과 협력을 반복해 왔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대서양을 보았고, 프랑스는 유럽 중심의 정치적 독립성을 주장해 왔으며, 독일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럽 통합의 설계자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개별 국가의 전략적 입장 차이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공통된 위기 앞에서 함께 대응하는 실용적 연합체로 변화하고 있다. 이번엔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유럽을 건설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E3의 재결합이 EU와 NATO 틀 밖에서 자율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은 EU의 정식 멤버가 아니며 프랑스와 독일은 여전히 EU의 핵심 국가다. 그러나 이번 연합은 EU의 형식적 합의 절차나 다자기구를 거치지 않고 정상급 차원의 전략적 판단으로 직결된 결정들이 이어졌다. 그것도 매우 유연하고 빠르게. 이는 새로운 ‘미니레터럴(minilateral)’ 구조, 즉 소수 정예국 중심의 실용 외교가 부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 꾸물

기사 : BRY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