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국가가 불안해하고 있다. 그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방비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그 돈을 통해 국제정치의 속성과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3,716조 496억 원
(2조 7,180억 달러)
7월 24일 환율 기준으로 2024년 전 세계 국가들이 국방비에 지출한 금액이다. 2024년 12월 대한민국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우리 정부의 2025년 총예산 규모가 673조 원인 것을 고려하면, 10위 경제 대국으로 불리는 한국의 1년 예산보다 약 6배 많은 돈이 2024년 한 해 전쟁을 수행하고, 전쟁을 예방하는 데 사용된 것이다.

1988~2024년 지역별 세계 국방비 지출 현황
출처-<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위 <그래프>를 보면, 미국이 포함된 미주 지역이 가장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1988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던 국방비는 대략 2000년을 기점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국방비 지출 관련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2015년부터 10년간 세계 군사비 지출은 매해 증가했음.
2. 지난 10년 사이 37%나 증가했음.
3. 작년에는 전년도 대비 국방비가 9.4%나 증가했는데, 전 세계 국방비 지출 관련 조사가 시작된 1988년 이후 최대 증가율임.
4. 2024년 기준 (평균을 낸) 세계 시민의 1인당 군사비 지출은 334달러(약 46만 원)임.
세계 국방비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 핵심적인 이유는 단연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의 전쟁’이다. 2022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의 여파가 전 세계 국가들의 국방비 지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있고, 올해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겪는 등 여전히 유럽과 중동에서의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향후 몇 년간 이러한 증가세는 지속될 것이다.
국제정치의 속성과 작동 원리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해보자.
1.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하는데, 왜 전 세계 국가들이 모두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있는가?
2. 지역으로 보면 전쟁은 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왜 전쟁을 하고 있지 않은 미주 지역의 미국과 아시아 지역의 중국이 가장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는 국내 정치와 다른 국제 정치의 속성과 작동 원리가 잘 드러난다. 국내 정치와 다른 국제 정치의 속성은 ‘무정부성’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강대국 중심’으로 흘러간다.
예를 들어, 한국에 거주하는 A와 B라는 시민이 서로 칼을 들고 싸웠다고 가정해 보자. A와 B는 각각 전치 4주와 6주의 상해를 입고, 서로가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A와 B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기관인 경찰서를 찾거나 고소를 통해 또 다른 국가 기관인 사법기관의 도움을 구할 가능성이 크다. 즉, 국내(정치)에서는 개인 간 갈등을 공적인 권한을 가진 국가 기관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국내 정치는 개인 간 문제를 해결하는 상위 기구가 존재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은 법에 따라 이루어진다. 가장 중요한 건 국가 기관이 이를 강제할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정치는 다르다.
역시 예를 들어보자. 2022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이 3년 이상 지속되면서 두 국가가 입은 물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인명 피해가 지금도 늘어만 가고 있다.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의 한 마을
상상하기 어려운 피해들이 쌓여 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 전쟁을 해결할 방법은 요원해 보인다. 국제 정치에서는 국내 정치에서처럼 싸움을 벌인 당사자들을 공식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상위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혹자들은 유엔(UN) 혹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면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기구는 전쟁을 벌인 국가에 망신(shame)을 주거나 몇몇 제재(sanction)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들을 처벌할 수 없다. 즉, 국제 정치에서는 국내 정치와 달리 주권(sovereignty)을 가진 200여 개의 개별 국가의 행위를 제어할 수 있는 상위 권위체가 없다. 이것을 보통 ‘국제사회의 무정부성’(international anarchy)이라고 한다. 이것이 국내 정치와 본질적으로 다른 국제정치의 속성이다.
이런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전쟁과 같은 잘못된 행동을 벌인 국가를 단죄할 수 있는 기관이 부재하다 보니 모든 국가는 자신의 안전을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국방비는 불안정해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국가별로 국방비를 늘리는 것이다.

2024년 국가별 세계 국방비 지출 현황
한국은 전 세계 국방비 중 1.8%를 차지했다.
출처-<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 전쟁이 지속되면서 ‘전쟁이 일어난 지역에 있는 국가들’이나 ‘전쟁을 개시한 국가와 역사적으로 전쟁을 경험했던 국가들’이 국방비를 늘리는 것은 당연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핀란드나 폴란드와 같은 나라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위 <그래프>를 보면 전쟁이 없는 미주 지역의 미국이 전 세계 국방비의 37%를, 아시아 지역의 중국이 12%를 차지하고 있다. 이 두 국가의 국방비 지출이 전 세계 국방비의 거의 절반(49%)을 차지한다.
더 중요한 건, 이 두 국가의 국방비가 단순히 많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국방비 증가 정도가 엄청나다는 것이 더 중요한 포인트다. 미국과 중국은 2024년 전년 대비 국방비 지출을 각각 5.7%와 7.0%를 늘렸다. 전쟁을 하지 않는 국가이면서도 매우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국제 정치는 강대국 정치, 즉 힘의 정치가 작동 원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과는 국제 정세가 급속도로 바뀌며 불안정해지자, 국제 정치의 무정부성이 더 강해지고, 이런 상황에서 힘으로 패권을 잡으려는 강대국들이 힘을 키우는 데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문명화된 21세기라도 해도 여전히 군사력은 1순위로 중요하다. 그렇다 보니 21세기 들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비록 자신의 지역에서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전쟁으로 인한 힘의 공백과 균열을 자신의 힘을 투사할 기회로 삼으려 한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은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 혹은 강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지원해야 하고, 중국은 이 지역에서 새롭게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러시아와 이란의 편에 선다.
미국과 유럽의 균열

2024년 국가별 세계 국방비 지출 현황
출처-<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다시 한번 이 그래프를 보면, 2024년 국방비 지출 상위 10개국에 유럽의 대표적인 국가인 독일, 영국, 프랑스가 각각 4위, 6위, 9위를 기록했다(한국은 11위). 영국과 프랑스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고 전통적인 군사 강국이지만, 독일의 등장은 예사롭지 않다. 심지어 독일은 전년 대비 국방비 지출 증가율이 28%에 달하며 2023년 7위에서 2024년 4위로 3단계나 뛰어올랐다. 최근 독일의 심각한 경제난을 고려하면 이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전년 대비 국방비 지출 증가율에서 독일과 같은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 국가다. 폴란드 31%, 네덜란드 35%, 스웨덴 34%, 덴마크 20%, 루마니아 43% 등을 보이며 그 증가세가 매우 가파르다.
유럽 국가들의 이러한 국방비 지출 증가는 무정부적이고 힘이 작동 원리인 국제 정치에서 이전과 달리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국가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단순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인한 미국과 유럽의 오랜 대서양 동맹의 균열에 따른 것이다.

지난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가
서로 대치하고 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균열이 가는
미국과 유럽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다.
출처-<연합뉴스>
2024년 기준, 유럽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NATO) 예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66%로 여전히 압도적이다. 이런 미국이 트럼프의 등장 이후 유럽과 계속 마찰을 빚고 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시기부터 기존의 외교 관례와 문법을 철저히 외면하고 ‘돈’으로 모든 관계를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유럽의 방위를 위해 미국이 나토 예산의 2/3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부터 줄곧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 분담금을 자국의 GDP 대비 2% 이상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2018년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유럽의 방위를 책임지기 위해 미국이 너무 많은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며, 유럽이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미국이 나토를 탈퇴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을 고려하면, 매우 충격적인 행보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고 봉합될 것 같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2025년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악화일로에 있다. 일례로 트럼프는 취임과 동시에 덴마크령 그린란드 매입을 운운하고, JD 밴스 부통령은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 유럽의 안보 위협은 “러시아도, 중국도 아닌 유럽 내부에 있다.”라며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지난 6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NATO 정상회의에
마르크 뤼터 NATO 사무총장(중앙)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을 겪으며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미국을 신뢰하기보다 스스로 힘을 기르는 쪽이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부터 ‘이제는 미국으로부터 안보 의존도를 줄이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더욱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 5월 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나토 정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방위 목표를 설정했다. 이전에 트럼프가 요구하던 GDP 대비 국방비 지출 2%를 넘어 5% 상향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가 요구하던 것보다 강력한 방위 목표를 세운 것이다.
구체적으로 3.5%는 핵심적인 국방비에 할당하고, 1.5%는 사이버, 인프라, 국방산업 혁신 등 안보 관련 산업에 지출하기로 합의했다. 나토 가입 국가들은 이에 대해 2029년 중간 점검을 하고, 2035년까지 달성하는 목표를 공식화했다.
2024년 기준으로, 세계 국방비 지출 상위 10개국 중에서 GDP 대비 5% 이상을 지출하고 있는 국가는 전쟁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제외하고 사우디아라비아(7.3%, 추정치)가 유일하다. 독일, 영국, 프랑스 각각 1.9%, 2.3%, 2.1%로 5%에 한참 못 미친다.
이제 나토 회원국들은 GDP 대비 5% 국방비를 달성하기 위해 출발했다. 헤이그 정상회의에서의 합의 내용은, 이제 유럽이 안보를 유럽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것을 넘어 더 이상 유럽 국가들이 미국과의 대서양 동맹에 안보를 기대지 않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확고히 보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24년 세계 국방비 지출 현황을 토대로 국제정치의 속성과 변화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관계를 살펴봤다. 정치인의 말은 거짓말일 수 있어도, 돈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편집 : 임권산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Kuy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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