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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률이야말로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위한 법률이나 진시황의 분서 사건이나 일제의 치안유지법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일제가 만들고 이승만이 써먹었다

 

1925년 5월,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치안유지법’을 제정 발효했다. 치안유지법 제1호는 이랬다.

 

「국체를 변혁하거나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

 

‘국체의 변혁’이라는 이 모호한 표현은 곧 독립운동가나 독립운동 조직 탄압의 핵심적인 법률적 근거가 되었다.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근거로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조선의 독립에 대해 논의만 해도, 재정 지원만 해도 잔인한 처벌을 가했다.

 

1945년 일제는 패망했다. 그리고 치안유지법은 1945년 10월 15일 연합군 최고사령부령으로 폐지되었다. 해방된 조선에서 친일부역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이승만과 미군정에 의해 중용되었다. 친일부역자들은 이승만이 손에 쥐여준 ‘반공’이라는 이름의 면죄부를 들고 군대와 경찰 같은 무력을 보유한 기관을 중점적으로 장악했다. 그리고 1948년, 이승만 정권은 제헌국회에서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형법이 제정되기도 전에 국가보안법부터 부활시킨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의 탄생이다. 

 

이승만 정권은 부활시킨 국가보안법을 알차게 써먹었다. 이승만은 국가보안법을 명분으로 자신의 정적들을 검거, 고문, 투옥 심지어 살인까지 거리낌 없이 저질렀다. 국가보안법은 ‘국가 보안’이 아닌 이승만의 ‘권력 보안’을 위한 법이었다. 이승만의 정적 제거를 위한 법이었다. 이승만은 ‘국회 쁘락치 사건’이란 용공 조작을 통해 반민특위를 주도한 노일환, 김옥주 등 13명의 국회의원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하였다. 1949년 한 해 동안에만 1백 32개의 정당과 사회단체를 ‘이적’으로 몰아 해산시켰고, 11만 8천 6백 21명을 검거, 투옥하였으며 9천 명의 군인을 구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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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충청메시지> 링크

 

“이 법률이야말로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위한 법률이나 진시황의 분서 사건이나 일제의 치안유지법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며 위 발언을 한 노일환 의원은 앞서 말했듯 ‘국회 쁘락치 사건’으로 구속되어 국가보안법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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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환 의원

 

 

‘막걸리 보안법’, 박정희 전두환 권력의 필수 요소

 

국가보안법은 ‘막걸리 보안법’으로 진화했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막걸리 한잔에 내뱉은 말 한마디도 국가보안법 위반이란 죄명하에 체포 구속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도저히 법률 구성 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없는 이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문구는 코에 걸면 코걸이였고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1964년, 영화감독 이만희가 이 조항으로 구속되었다. ‘7인의 여포로(무려 반공 영화이다)’라는 영화에서 국군 여군 포로가 조선인민군 군관에게 “당신 참 멋진 남자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이었던 것이다. 

 

1969년, 자사 제품 크레파스와 포스터갈라 상품명에 ‘피카소’를 넣은 문구 업체 대표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되었다. 피카소가 사회주의자라는 이유였다. 이것이 막걸리 보안법의 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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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6월 9일 월요일 자 경향신문 보도

 

누구나 국가보안법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었고, 모두가 두려워해야 했다. 국가보안법은 박정희 철권통치와 공포정치의 토대가 되었다. 교과서는 헌법을 국가의 기본법이자 최고법이라 가르쳤지만 군사독재 정권 치하의 현실에선 공염불일 뿐이었다. 

 

국가보안법은 ‘헌법 위의 악법’이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가 아니라 철저히 독재 권력의 정치적 목적에 부역하는 법이었고, 민주주의와 여러 사회운동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탄압의 수단이었다. 국민 모두의 인권과 자유는 국가보안법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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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사편찬위원회>

 

1980년 출범한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권을 능가할 정도로 국가보안법을 활용했다. 반란 쿠데타와 반헌법 계엄, 그리고 광주 시민의 피를 바탕으로 집권한 전두환은 철저히 국가보안법에 의지했다. 국가보안법은 전두환의 가장 중요한 정권 유지 수단이었다. 

 

1980년 12월 30일, 전두환이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자신에 대한 부역자들을 모아 만든 반헌법 입법기관인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는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상정·제안 설명·가결에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박정희 시절 반공법의 처벌 조항들이 모두 국가보안법으로 흡수되었고, 형량과 처벌은 확대 강화됐다. 전두환은 자신의 집권 7년간 1,535명을 국가보안법으로 고문하고 기소했다. 

 

 

민청학련과 조희대, 여전히 살아 있는 국가보안법

 

1972년 10월, 박정희는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는 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하고 횟수 제한 없이 연임이 가능하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이른바 ‘10월 유신’이다. 

 

이후 격렬해지는 사회적 반발에 박정희는 다시 국가보안법 조작 사건을 터뜨리니 그것이 바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합(민청학련)’과 그 배후라는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이다. 이 사건들은 반드시 들어가는 단어인 ‘공산주의, 반정부, 체제전복’이란 프레임으로 치장되었다.

 

총 8명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대법원 상고심까지 걸린 시간은 10개월이었다. 1975년 4월 8일 오전 10시, 대법원(재판장 민복기)에서 사형 확정이 난 후 정확히 18시간 30분 만에 8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다. 스위스의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이라고 규정하였다. 

 

18시간 만의 사형 집행. 이것은 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 때의 일일 뿐인가? 

 

50년의 시간이 흐른 2025년 5월 1일, 대법원장 조희대와 아홉 명의 대법관은 당시 지지율 1위였던 이재명 후보가 2심에서 선거법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 9일 만에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선고했다. 소송기록만 7만 쪽에 달하는 사건임에도 말이다. 말이 9일이지 실제 읽어볼 수 있는 시간은 이틀도 채 안 됐다. 이틀도 안 되는 시간에 7만 쪽을 읽었다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기록을 읽어보지도 않았음이 자명하다.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으며 결국 숙주인 생물까지 죽이는 걸 ‘암’이라 한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인식 중 이런 ‘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걸 ‘망령’이라 부른다. 그리고 망령의 영향력이 여전히 발휘되는 것을 ‘퇴행’이라 부른다. 

 

국가보안법은 하나의 악법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정신이다. 일제강점기로부터 전두환까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것이며, 한 개인의 권력욕을 위해 구성원 전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다른 이름이며, 독재 권력과 함께 인권탄압, 반민주에 부역한 자들이 사회의 주류로 떵떵거리는 시대를 가리키는 지표가 되는 단어이다.

 

국가보안법은 살아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으로 표상되는 시대정신 역시 죽지 않고 망령이 되어 우리 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다. 50년 전 사법살인을 저지른 자들처럼 2025년에도 대법관이란 자들이 서슴없이 법비 짓을 자행하는 것, 그것이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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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링크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계엄 선포 연설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들의 계엄 선포 이유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아니 더 폭력적이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아직 살아있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망령이 있다.

 

만약 계엄이 성공했다면 윤석열은 조자룡 헌창 쓰듯이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며 정적들을 빨갱이로 잡아넣었을 것이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과 단체들을 친북 용공 세력으로 몰아 체포 고문 투옥했을 것이다. 

 

21세기 세계 선진국의 반열에 든 대한민국에 아직 국가보안법은 살아 있다. 이 망령이 아직 살아있는 한 우리 사회는 언제고 다시 국가보안법의 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  

 

 

윤석열 재발 방지와 민주주의를 위한 필연 : 국가보안법 폐지 

 

지난 14일, 조은석 특별검사팀(내란 특검)은 국방부, 국방부 정보본부, 드론작전사령부 등 군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강제수사에 나서며 정보사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윤석열이 지은 죄 중 가장 큰 죄는 ‘외환의 죄’이다. 윤석열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과의 긴장 관계를 심화시켜 국지전 유도까지 획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내란 특검은 윤석열에게 외환죄를 적용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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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링크

 

진보란 평화다. 자유 민주 번영 이 모든 진보적 가치는 평화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한반도의 현실에서는 평화의 진보적 가치가 더욱 커진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이 윤석열의 계엄을 만들었다. 북한이라는 존재, 분단이라는 민족의 비극을 이용해 자유와 민주를 탄압하여 정통성 없는 권력을 지탱하게 하는 것. 반공 반북이라면 반인권, 반헌법, 반민주 이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 국가보안법은 평화가 아닌 갈등과 위기가 그 본질이다. 칼이 손에 쥐어지면 쓰게 돼 있다. 폐지되지 않은 국가보안법이 윤석열의 계엄 선포를 불러왔다. 윤석열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과 김건희 권력의 수호를 위해 국가보안법이라는 칼을 휘두른 것이다.

 

이념은 행동의 잣대이지만 동시에 행동의 감옥이다. 국가보안법이란 구시대의 유물은 우리의 감옥이다. 독재 권력의 칼이었고 민주시민들의 감옥이었던 국가보안법이 세 번의 민주 정권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 누군가는 국가보안법의 실효성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죽었다’와 ‘(죽은 듯) 살아있다’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이다. ‘개정’도 안되고 ‘엄격한 적용’ 따위도 안 된다. 오직 ‘폐지, 완전한 폐지’, 그것만이 우리를 ‘새로운 한국’으로 진입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윤석열 내란이 말해주는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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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한민국 정책브리핑(사진은 연합뉴스)> 링크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드디어 국가보안법 폐지를 제안했다. 당시 입법부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단독 과반이었기에 모든 조건은 갖춰져 있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낡은 구시대의 종말이며 동시에 고졸 출신의 대통령이 열고자 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에 가장 걸맞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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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나라당 당사에서

“모든 것을 걸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겠다”

기자회견 하는 한나라당 의원들

출처-<오마이뉴스>

 

그러나 한나라당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자 소위 ‘온건파, 협치파’로 표현되는 이탈자들이 나왔다. 그 숫자는 50명이 넘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는 실패로 끝났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가보안법은 존속되었다. 초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원래 국가보안법 폐지론자였지만 장관이 된 후 '남용 방지' 정도로 후퇴했다. 2018년 1월 문재인 정부는 UN 인권이사회의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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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동아일보> 링크

 

그리고 2024년 윤석열은 멸공을 외치며 계엄을 선포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듯, 때를 놓친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60%를 넘어 70%대를 향해 가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으며 반대로 민주당은 56%라는 역대 최고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집권 초기라는 것과 함께 이 모든 지표가 지금이 개혁을 위한 최적의 시기임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이제야말로 국가보안법이란 낡은 시대정신을 끝장내고 새로운 시대로 진보해야 한다. 이것은 필연이다. 윤석열 재발 방지와 새로운 시대로의 진보, 국가보안법 폐지가 바로 이것을 위한 필연이다. 

 

 

추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국민이 나서는 것이 곧 정치권에 대한 강제력이 된다. 현재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 동의 청원이 진행 중이다. 8월 9일까지이다. 평화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바라는 모든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부탁드리며 링크를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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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하러 가기 (링크)

 

 

편집 : 임권산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인빅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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