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한 고층 빌딩에서 28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주 월요일 총기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물은, 내가 지난 7년 동안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내 전 회사의 뉴욕 오피스가 같은 건물에 있었기 때문에, 뉴욕 출장 갈 때마다 그곳에 들렀다.
참고로 건물이 위치한 미드타운 지역은 우리나라로 치면 여의도 같은 느낌이다.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금융 중심지는 월 스트리트이지만, 임대 공간 부족 및 접근성 등을 이유로 많은 금융기관들이 최근 뉴욕/뉴저지 외곽으로 이전했다. 그 중에서도 사모펀드와 자산운용사들이 밀집해 있는 미드타운은 전 세계 금융의 최중심지라고 할수있다.
금융 중심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서, 블랙스톤사의 고위 임원 한 명이 사망했다. 블랙스톤사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전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이다. 이게 우리랑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우리나라 국민연금 자금 수조 원을 운용하는 등 알게 모르게 엮여 있다. 이번에 사망한 임원은, 블랙스톤사의 부동산 투자 부분을 설계하다시피 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고인이 대표로 있던 BREIT는 전 세계 최대 부동산 펀드이다.
그래서 희생자의 신상이 공개되었을 때, 대부분의 금융인들은 계획범죄, 암살을 떠올렸다. 불과 몇 달전에 유나이티드 헬스케어라는 의료보험회사 CEO가 맨하탄 한복판에서 암살된 일이 있었다. 아이비리그 출신 암살범은 의료보험회사들의 부정을 비판할 목적으로 암살을 자행하고 현장에 메세지를 남긴 바 있다. 이번 블랙스톤 임원 암살사건도, 혹시 사모펀드를 비판하려는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용의자 셰인 타무라가 소총을 들고 맨해튼 파크애비뉴 고층건물로 향하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타무라의 운전면허증 사진 - AP 통신
사건 직후 발표된 총기 난사범의 노트 등에 따르면, 용의자는 NFL(미식축구연맹)에 원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총기 난사범은 한때 장래가 촉망받던 미식축구선수 유망주였으나, 대학 진학 /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못해 진로가 막혔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부모님 집에 살면서 경비 일을 했다고 한다.
범인은 만성 외상성 뇌병증(CTE) 등의 정신 질환 문제 또한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보도에 따르면 CTE는 미식축구선수처럼 물리적 외상을 많이 겪는 스포츠인들 사이에서 흔한 질병이라고한다.
총기 난사범은 미국 서부(네바다)에서 동부(뉴욕)까지 직접 운전해서 총기 사건을 일으켰는데, 이는 4000km가 넘는 거리다. 범인은 이 거리를 불과 3일만에 주파했다. 장시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운전한 상태에서 이번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정신이 온전한 상태였을 리가 없다.
정황상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 개인적 원한을 가지고 일으킨 총기 난사 사건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넘기기에는, 이번 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가져다주었다.
1) 과거 대부분의 총기난사 사건은 학교에서 발생했다. 이번 사건은 외부인 출입이 드문 오피스 빌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직장인들은 오늘 출근했다가 영원히 퇴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2)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뉴욕에서 보안이 가장 잘 되어 있는 건물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로비에는 무장 경비가 상주 중이고, 사건 당시에는 현직 경찰관도 있었다. 그러나 라이플로 무장한 총기난사범을 막을 순 없었다. 아무리 보안이 잘 돼있는 건물이라도, 작정하고 달려드는 총기 난사범을 제압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미국인들은 무기력감을 느낀다.

3) 사건 발생 직후 해당 건물에 있었던 회사원들은 매뉴얼에 따라 사무실 내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안전 대피로를 따라 지정 공간으로 집결해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뉴욕 오피스 빌딩에서는 매년 의무적으로 총기 난사 대응 훈련을 받는다. 나도 뉴욕 출장 중에 안전 대피 훈련을 받았는데, 당시 블랙스톤사 직원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었다.
이렇게 대응을 잘해도, 이번 사건처럼 외부 침입자가 로비를 점거해 버리면 직장은 거대한 감옥으로 변하게 된다. 사고 당시 건물에 남아 있었던 피해자들은 상황이 완전히 종료되기까지 극심한 공포감을 느꼈다고한다. 이때 촬영된 동영상이 온라인에 공유되면서 현장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전달됐다.
4) 한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해 버리기에는, 미국에서 비슷한 총기 사고가 너무나도 자주 발생해 왔다. 시중에는 단기간에 많은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라이플이 너무 많이 굴러다니고, 그 중 상당수는 개인적 원한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총기 난사 범죄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위험인물 수중에 들어가 있다. 언제든 비슷한 사건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고, 이런 총기 난사에 희생되는 것은 대부분 총기 난사범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문제다. 대륙 반대편에서 운전해 온 정신 질환자가 총기 난사를 했는데, 사망자는 평범한 직장인, 경찰관 그리고 마침 그 장소를 지나가던 사모펀드계의 거물이다. 내가 아무런 원한을 사지 않았더라도, 그냥 재수 없으면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미국인들은 큰 현타를 느낀다.

총격 사건이 벌어진 현장 주위에 경찰들이 모여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총기난사사건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접한 총기 사건 중, 나와 가장 연관(전 회사)이 큰 사건이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건물에 드나들었던 게 전부인 내가 이 정도인데, 당시 건물에 남아 있던 내 전 직장 동료들과 주변 직장인들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이번 사건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요즘 애들을 학교에 내려줄 때마다 요새화된 학교 정문을 바라본다. 학교 곳곳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으며, 유일한 출입문에는 방탄 유리가 설치되어 있다. 평소엔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가도, 이런 사고가 한번 터지고 나면 과연 이 정도로 사고를 막을 수있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요즘 야외에서 열리는 대형 축제에는 어김없이 검문소와 차량 진입 통제를 위한 볼라드가 설치된다. 최근 축제에 대형트럭을 돌진시키거나 총기를 난사하는 사고가 워낙 잦았기 때문이다.
직장, 학교 그리고 축제. 이젠 사람이 모이는 곳엔 어딜 가더라도 총기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몇년째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전 매뉴얼에 내용이 추가되거나 방탄유리가 설치되는 게 고작이다. 개인이나 단체가 노력한다고 해서, 총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총기가 위험한 사람들 수중에 있는 한, 우리가 숨을 곳은 없다.
멀리서 울리던 총성이 점점더 내 삶 근처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요즘이다.
편집 : 꾸물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씻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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