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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한미 무역 협상이 타결되었다. 양국은 상호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하였다. 아울러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와 2주 내에 정상회담을 갖는 데도 합의했다.

 

굉장히 잘된 협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미국이 합의한 15% 관세율은, 앞서 무역 협상에 합의한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이다. 한국은 사실상 최혜국 대우를 받게 된 셈이다.

 

이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나아가 기존 한미 FTA를 거론하면서 왜 남들보다 낮은 12.5%를 받아내지 못했냐고 비판하는 글들이 있다. 그걸 읽다가 솔직히 내가 긁혔다. 그래서 이번 기사를 적는다. 이번 무역 협정이 왜 대단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하나씩 설명하겠다.

 

한미 무역 협상.jpg

 

 

1) 트럼프가 주도하는 신무역 질서에서, 15% 관세율은 사실상 최저 수준이다

 

'사실상'이라고 적은 것은, 영국은 10% 관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영국이 미국과 얼마나 가까운 우방인가 하는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구조적으로 미국은 영국에 세게 관세를 때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영국은 몇 안 되는 미국의 흑자 교역 대상국이기 때문이다. 관세를 세게 때릴수록 미국의 대영(對英) 무역 흑자 규모는 줄어든다.

 

그러니까 15% 관세율을 사실상 최저 수준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이 15% 관세율을 적용받는다는 건, 일본, EU 등과 함께 미국의 우방으로서 최저 수준만 내고 무역을 계속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1티어 교역국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 미국의 대중 견제 파트너인 베트남은 20% 관세를 적용받는다. 우리의 라이벌인 대만또한 20% 관세에 합의했다. 베트남은 20% 관세를 적용받기 위해, 미국에 시장을 전면 개방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산 제품에 대해선 무관세를 적용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베트남은 완전히 백기 투항을 하고도 20% 관세를 내는데, 우리는 15% 관세를 내면서도 쌀과 소고기 시장 개방을 막아냈다. 이건 우리가 협상을 잘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부분이다.

 

아직 무역 협상에 합의하지 못한 인도, 중국 등은 이보다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을 것이 확실시되어 보인다. 다시 말해, 한국 기업들은 다른 1티어 국가(일본, 유럽) 등과 같은 조건으로, 2티어(베트남) 혹은 3티어(인도, 중국)보다 더 유리한 조건으로 교역할 수 있게 됐단 말이다.

 

한미 무역 협상 내용.webp

출처 - BBC (링크)

 

2) 한미 FTA는 이미 폐기된 지 오래다

 

아직도 FTA를 들먹이면서, 왜 우리가 일본이나 유럽보다 낮은 관세를 적용받지 못했냐고 징징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러면 되묻고 싶다.

 

지난 3월 미국이 한미 FTA를 깨고 일방적으로 25% 관세를 부과했을 땐 왜 찍소리도 못 했냐고. 당시 국내 정치 상황이 개판이라, 우리나라는 미국과 제대로 된 협상 테이블에 앉아보지도 못했다. 이는 전적으로 민생과 경제를 포기하고, 계엄이라는 희대의 병크를 터뜨린 전임 정권의 잘못이다.

 

현 정권의 무역 협상 베이스라인은 현행 25% 관세율이지 0%(FTA)가 아니다. 이 점을 먼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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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FP=뉴스1 (링크)

 

아울러, 현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국가들과의 FTA를 인정하지 않는 행보를 보여왔다. 훨씬 예전부터 미국과 FTA를 맺고 있던 멕시코와 캐나다는 미국으로부터 30%대 관세를 처맞았다. 추후 협상을 통해 좀 내려갈 수 있겠으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아직 결론이 안 났다.

 

"우린 FTA 국가니까 다른 나라보다 관세 좀 낮춰주세요. ㅎㅎ." 씨알도 안 먹힐 소리다.

 

미국 놈들이 이렇게 패악질을 벌일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시장이 압도적으로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합의를 깨는 게 치사하더라도, 미국 시장에 들어가서 돈을 벌려면 미국이 정한 룰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가 정한 룰은 개별 국가와의 무역 협상이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는 것이 협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무역 협상이 잘됐다고 보는 것이다.

 

 

3) 이번 무역 협정에는,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일본이 5,500억 달러, 유럽연합이 6,0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싸게 막았다.

 

일부는 한국과 일본과의 경제 규모 차이를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무역 협정에서 투자 규모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지표는 전체 경제의 규모가 아니라 대미 무역 흑자의 규모이다. 앞으로 미국으로부터 벌어들일 무역 흑자 일부를 미국에 투자하라는 성격의 투자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국과 미국 간의 무역 협정에는 대미 투자 내용이 쏙 빠졌다. 앞서 얘기한 대로 영국은 경제 대국이지만 미국과의 교역에서는 적자를 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연간 66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일본의 대미 무역 흑자 규모인 685억 달러와 별 차이가 없는 규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00억이나 덜 내고 무역 협정에 합의했으니 싸게 막았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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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머니투데이 (링크)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국가들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약속을 이행할 것인가에 대한 디테일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추측할 따름이다.

 

지금까지 나온 트럼프의 발언들과 백악관 공식 보도자료를 종합해 보면, 유럽과 일본의 합의안에서는 그들의 ‘돈’이 핵심인 느낌이다. 트럼프 정권은,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에너지, 인프라 등)에 외국 정부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사실을 선전하고 있다. 일본 정부에서는 일본은 그저 트럼프 임기 동안 미국에 대출을 해주는 것뿐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아마 미국 기업이 주도해서 개발 사업을 시작하면, 유럽이나 일본이 돈을 빌려주는 형태가 될 것이다. 유럽과 일본은 미국에 돈을 뜯기는 쩐주 느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무역 협정을 보면, 한국이 미국 조선 사업에 1,5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이 핵심으로 담겨 있다. 이는 한국이 약속한 전체 투자금의 40%에 달하는 규모이다. 액수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미국 조선업 재건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많이 담겨 있다.

 

 

MASGA

 

나는 이번 합의가 한국을 단순히 ‘쩐주’가 아니라, 조선업을 부흥시켜 줄 ‘협력자’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나는 당연히 이게 훨씬 나은 대우라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잘나가는 조선 사업을 통째로 미국에 갖다 바치는 거 아니냐고 비난한다. 나는 지나친 우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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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화 (링크)

 

첫째, 새롭게 지어지는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선박의 상당수는 군함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갑자기 미국이 조선업을 부흥시키겠다고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중국과의 해군 경쟁 때문이다. 미국에는 그동안 늘어난 해군 선박 수요를 감당하고, 기존 선박의 정비를 맡길 조선소가 부족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서 미 해군은 한화오션에 군함 3척에 대한 MRO(유지, 보수, 정비) 사업을 맡긴 바 있다. 나는 미국 본토에서 아예 대형 군함을 건조할 만한 조선소를 직접 지어달라는 게 이번 무역 협상의 핵심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이는 기존 한국의 조선업을 미국에 뜯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장(미국 군함 건조 사업)에 진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 조선소는 여타 제조업과 달리 인력의 비중이 매우 큰 산업이다. 소품종을 대량 생산하는 사업의 경우, 설비 투자를 통해 생산량을 늘리는 게 가능하다. 고도로 자동화된 자동차 공장이나 반도체 공장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조선은 다품종 소량 생산의 형태로 발주가 들어온다. 발주처, 목적 등에 따라 선박을 전부 맞춤 제작을 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자동화로 모든 걸 커버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형 군함이나 LNG 조선소를 보면, 여러 노동자가 달라붙어 거대한 건물을 올리는 느낌이지 공산품을 찍어내는 느낌이 아니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 조선소를 짓는다고 해도 현지에서 단기간에 케파를 갖출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조선업이 몰락한 이유는 조선소 지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조선소를 돌릴 인력이 없어서였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이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에, 조선소를 잘 운영하는 우리나라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조선소를 짓더라도, 상당 기간은 한국 노동력에 의존해야 조선소가 굴러갈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한국에서 선박 모듈 대부분을 제작한 뒤 미국 현지에서 조립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배를 생산한다는 구색은 맞추면서도, 한국의 생산 효율 대부분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다수의 한국 인력을 미국 현지로 파견한다든가 부품을 한국에서 조달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국내 조선소의 일감이 전부 옮겨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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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거제신문 (링크)

 

셋째, 자동차 산업을 보라. 현대와 기아차가 미국 현지 공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이후로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점유율은 크게 올라갔다. 미국에 투자해서 몰락하기는커녕, 오히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메이저로 자리 잡았다.

 

한국 조선업의 미국 투자도 비슷한 맥락에서 봐야 한다. 이 투자가 성공하면, 한국 조선업체들과 그 협력업체는 큰 이익을 볼 것이다. 어쩌면 이번 투자가 중국을 제치고 한국 조선산업을 도약시킬 수 있다.

 

물론 그 성공을 장담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기왕 미국에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잘하는 거’,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사업’에 들어가서 협력자로서 대우받는 게 돈만 뜯기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은가? 이걸 가지고, 조선업을 갖다 바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악의적인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윤석열 정부 욕하면서 이 글을 끝내겠다. 이번 무역 협상은 15%라는 관세율, 대미 투자 금액 그리고 조선업 분야 협력 등 여러 가지를 다 따져봐도 그 자체로 흠잡을 데 없는 협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욱 대단한 점은, 윤석열 정권이 싸놓은 거대한 똥을 치우고 이러한 성과를 냈다는 점이다. 보수 언론에서는 그동안 한국이 무역 협상을 타결하지 못하고 트럼프를 만나지 못한 게, 미국이 이재명을 싫어해서라는 식으로 프레임을 짜왔다. 이건 매우 악의적인 왜곡이다.

 

지난 3월에 미국이 한미 FTA를 깨고, 25% 관세를 부여했을 때 우리가 아무 대응도 못 했던 건, 당시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대통령이 지금까지 트럼프를 만나지 못했던 것도, 이재명 당선 전까지 우리나라엔 대통령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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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미국은 이재명 당선 전까지, 한국의 외교 라인을 아예 무시해 왔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것은, 국민을 대표하지도 못하고, 약속한 합의를 이행할 능력도 없다. 괜히 만나줬다가, 오히려 특정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내정간섭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어떤 미친놈은 권한대행을 마치자마자 대선에 나오려고 했다.)

 

그래서 미국은 의도적으로 한국과의 외교를 미뤄 왔다. 그리고 외교적 결례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계엄으로 이러한 상황을 자초한 윤석열 정권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미국에 약점(국내 정치 실패로 지난 몇 개월간 외교 라인을 비워 둔)을 엄청나게 잡힌 상태로 이번 무역 협상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도 이재명 정부는 옆 나라 일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나은 조건으로 무역 협상에 합의했다.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갖는 데도 합의했다. 멈춰 있었던 외교를 정상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나는 그 자체로 이번 협상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편집 : 꾸물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씻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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