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부당한 지시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간부들에 대한 특진을 추진하라”
지난 7월 28일, 이재명 대통령이 신임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내린 지시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예견됐던 일이다. 이미 대통령 취임하고 군 통수권 이양 전화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부터,

“비상계엄 사태 때 군 장병이 국민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부당한 명령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큰 혼란에 빠지지 않았던 것은 정말 잘한 일”
이라고 했다. 당연한 풍경인데 그동안 보지 못했기에 이질적이었다고 할까. 그렇다. 나라를 구한 일 아닌가? 전근대 시절이었다면, 공신이라며 3대가 공직에 나가고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렸을 거다.
군인사법 개정안도 궤를 같이 한다.
『특별진급 대상자를 해외파병(파견) 및 작전현장 지휘임무를 수행하는 대령이하 장교, 장교후보생, 부사관, 부사관후보생, 병까지 1계급 진급 가능하도록 적용함으로써 군인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고자 함.』
포인트는 대령을 준장으로 특별진급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게다. 대령급이라 하면, 언론에서 거론되는 몇몇이 있다. 콕 찍어 말하자면,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이다. 이미 안규백 의원 인사청문회 할 때부터 민주당에서는 조성현 경비단장의 이름을 거론하며 포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상황이다.
조성현 경비단장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윤석열 독재정권 아래서 살았을 수도 있다. 몇몇 군인들이 진급에 눈이 멀어 내란을 획책하고, 몇몇 군인들은 자신들의 자리에서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저항함으로써 이 나라를 지켰다.
공을 세운 이들에게 포상하고, 칭찬하는 건 당연한 일.
이 당연한 일 앞에서 이런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윤석열이 군대에 독을 풀었구나.”

출처 - 연합뉴스 (링크)
영화 <크림슨 타이드>에서 램지 함장이 내뱉은 명대사가 있다.
“우린 민주주의의 수호자일 뿐 실천자는 아니다.”
군대를 정의한 말 중 가장 이채로우면서 적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거다. 군대는 언제나 하기 싫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시킨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 민주주의 시스템 상 군대란 존재는 일정 부분 예외적인 부분이 허용되는 공간이다. 군에서 힘든 건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있지만, 자유를 억압당하는 게 더 클 거다. 내가 원치 않는 장소에 원치 않는 사람들과 계속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자체로도 스트레스다.
군대는 민주주의가 제한된다. 군대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한다?
어려운 일이다. <크림슨 타이드>란 작품이 무서운 이유가 “단순성”을 강조하는 프랭크 램지(진 해크만)과 하버드를 나온 똑똑한 부함장이자 ‘이견을 제시하는’ 론 헌터 두 사람 모두 군대를 대표한다는 거다. 램지는 자기 부관으로 온 헌터에게,

영화 - 크림슨 타이드
“왜냐면, 군에선 그런 자네를 필요로 하니까.”
라며, 납득을 한다. 여기서 군의 양면성이 존재한다. 램지 함장의 명대사는 계속 이어진다.
“내겐 단순성을 필요로 하고 (중략) 따라서 우린 대원들 앞에서 이견을 나타내선 안 된다는 거야.”
이 단순성은 군의 핵심이다. 양병십년 용병일일(養兵十年 用兵一日)이란 말이 있다. 병사를 키우는 데 10년이 걸리지만, 전쟁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이 하루를 위해 10년을 투자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군대는 유사시 단 한 번 쓰기 위한 일종의 “보험”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그 한 번은 언제나 시간에 쫓긴다.
명령이 내려오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무조건 명령을 쫓아가는 것. 그게 군대의 작동원리이다. 우리가 군대 내에서 겪은 말도 안 되는 행위들, 예를 들면 직각식사를 포함해 이해 안가는 군기교육 등의 핵심은, 군인을 바보로 만들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거다. 이런 멍청한 짓도 명령이니 따라야 하는 거다. 이 모든 게 단순성을 주입하기 위함이다(물론 정도란 게 있다).
여기까지 보면, 이런 단순성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멍청한 꼰대의 푸념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군대는 이런 단순성이 필요하긴 하다. 램지와 같은 단순성이. 그리고 헌터와 같은 ‘이견을 제시할’ 똑똑함도 필요하다.

만약 단순성만을 강조한다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된다. (편집자 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사법부에 의해 받은 재판을 기록한 책이다. 아이히만을 설명하기 위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저 생각 없이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삼고,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거다. 이후 서독이 독일 연방군을 창설하면서, 나치 시절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 유명한 <제복 입은 시민>이란 개념을 정립한다. (편집자 주: 독일 군인들은 비군인들과 함께 민주주의적 법질서를 지탱하며, 시민으로서 기본법과 인권의 적용 대상이다. 동시에 그들에게는 자신의 판단과 양심에 따라 무조건적인 명령(Kadavergehorsam) 및 범죄적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주어진다... 는 독일 연방군 핵심 이념)
이 덕분에 프로이센 시절부터 면면히 이어졌던 절대복종(Kadavergehorsam)이란 개념이 사라졌다.
자, 문제는 말이다. 아무리 제복 입은 시민이라고 하더라도 군대의 단순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다. 다시 영화 <크림슨 타이드>로 돌아가자면, 함장과 부함장, 모두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둘은 세상을 구한 것일 수도 있고, 군 체계의 핵심인 명령에 따르는 ‘무력’이란 군대의 근간을 해친 위험한 사례가 될 수도 있었다. 영화상에서는 이 부분을 슬기롭게 넘겼다. 램지는 퇴역하며, 헌터를 함장으로 추천했던 거다.
모두(冒頭)에서 "윤석열이 독을 풀었다" 하는 대목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군대는 명령을 받으면, 신속하게 출동해 적을 제압한다. 군인들에게 단순성을 강조하기 위해 했던 모든 것들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석열은 군인들에게 ‘명령’을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단계’를 추가했다.
생각하는 군대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개인의 상식과 의지로 현 상황을 판단하고 이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건 좋은 일이다. 문제는 군대란 조직은 비상사태에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모든 지휘관들이 이 명령이 정당하고 옳은 명령인지를 고민하게 됐다는 거다.
물론, 이런 경우는 국가 비상사태(내란급)가 아닌 후에야 고민을 할 필요가 있겠냐는 반문을 할 수 있다. 맞다, 요즘 같은 시절에 전부 핸드폰을 쥐고 있는 모든 이들이 정보를 확인하고 이를 교차 검증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단순성이 훼손됐다는 거다. 그것도 군 내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외부적인…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권에 의해서 말이다.

출처 - 연합뉴스 (링크)
12.3 내란에서 주목해 봐야 하는 건 이건 군인이 일으킨 내란이 아니란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에 2번의 쿠데타를 겪었다. 이 때문에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열차게 군대의 문민통제에 열을 올렸다.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키지 못하게 만들어야 해!”
라면서 군의 문민통제를 위해 열을 올렸다. 두 번의 쿠데타를 경험했기에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정치권은 문민통제란 명분 아래 군을 정치에 종속시키게 만든다. 언제부터인가,
“소장부터는 정치싸움이야.”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진급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손을 잡아야 했다. 결국 군대는 권력에 충성하게 됐고, 정치군인이 등장하게 됐다. 충암파란 게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핵심이 된 게 문민통제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후 모든 정치권력은 선출된 대통령이 군대를 통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2024년 12월, 윤석열은 통제해 온 군대를, 대통령으로서가 아닌, 개인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했다. 그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이때부터 문제가 발생한 거다.
군의 종속화가 <충암파>라는 정치군인들을 양성했고, 이 정치군인들을 활용해 군대를 <정치적 도구>로 만들었다.

12월 3일 밤 10시30분 김용현은 계엄발표 직후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계엄사령관을 임명한 뒤,
“모든 군사 활동은 장관이 책임진다 (중략) 명령 불응 항명죄가 된다.”
라며 내란을 지휘했다. 지휘관들은 근본적으로 이런 명령을 불복종할 수 없도록 통제돼 왔다. 문민통제의 순기능이 역기능이 된 거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소극적 태업>이 다였다. 이게 그들에게 최선이고, 가장 올바른 길이지만 근원적으로 이들이 정치권력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물론, 그건 어렵다. 지금 제도 하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을 거다.
다 떠나서 윤석열이 군대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한 순간, 군대의 정치화가 공식화됐다. 박근혜 시절의 <누나회>를 보자. 이미 정치권에 줄을 대지 못하면 진급할 수 없다는 게 암암리에 공식화된 상황이었는데 윤석열은 이걸 공식화했다. 군을 <정치적 도구>로, 마치 지금 서울구치소에 속옷만 입는 것처럼, 그야말로 '빤스를 내렸다'는 표현이 옳겠다. 이 파장은 두고두고 군 내부를 떠돌고 우리를 괴롭힐 거다.
왜?
안타깝지만 고위급으로 가면 진급 하나만 보고 산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즉, 계엄을 막은 시민과 국회와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그들'은 어느 쪽에 베팅하냐에 따라 앞으로의 길이 달라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성공했다면... 끔찍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사람을 통제하는 핵심은 인사와 예산이고 문민통제의 근간에는 군인들의 진급이 있으니까. 여기서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은 바꼈지만 시스템은 그대로라는 거다.

출처 - 연합뉴스 (링크)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윤석열은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과 하나의 숙제를 던졌다. 하나의 교훈은 간단하다.
“군대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해선 안 된다.”
라는 거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잊고 있었는데, 군을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동원해서는 안된다. 군은 민주주의의 수호자일 뿐이지, 정치에 활용하는 도구가 아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윤석열이 깨버렸다.
하나의 숙제는 <새로운 형태의 문민통제>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는 거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정치군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왜? 인사와 예산권을 정치권이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쿠데타가 무서워 군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선출된 권력에 이빨을 들이밀지 못하게 통제했는데, 윤석열이란 미친X이 나타나 그런 군대를 자신의 번견(番犬)으로 써버린 거다.
군의 정치적 도구화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큰 문제로 비화된다. 만약 이런 도구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종국에 가서는 군대 자체가 들고 일어나 군이 통치를 하는 시기로 접어드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군인이 자신이 가진 무력의 힘을 확인하고, 그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목격한 다음에는 권력자를 몰아내고 자신이 권력을 쥐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건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내란의 밤 당시를 보자. 판교 정보사 100여단 사무실에 육군 2기갑 여단 구삼회 여단장이 함께 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완전무장한 1개 기갑여단 병력이 서울로 진입한다면, 그 병력 만으로 쿠데타는 성공할 수 있다. 이미 진행이 되었다면 이걸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구삼회 여단장의 움직임에 따라, 쿠데타는 성공했을 수도 있다. 시민들의 저항? 어렵다. 1개 기갑 여단의 화력을 상대할 전력은 서울 안에 없다. 병력들을 완벽하게 장악했다는 전제 하에서 구삼회가 2기갑여단을 서울에 진입시켰다면, 내란 뿐만 아니라… 어쩌면, 대통령도 갈아 치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용현의 경우는 이 군대의 힘을 알고 있었기에 일선 부대의 태업이나 소극적 행동에 덜컥 겁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윤석열은 이게 무슨 말인지도 모를 거다.
자신이 뽑은 칼날이 자신의 목을 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말이다(그래, 여러 의미로 역대급으로 멍청한 대통령이라 되려 다행이라고 할까).

출처 - 한국일보 (링크)
문민통제는 이제껏 군대가 선출된 권력에 칼을 뽑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앞으로의 문민통제는 선출된 권력이 군대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도 통제돼야 한다. 어느 순간 정치군인이 양산되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윤석열이 던진 이 숙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다음 대선에서도 이재명 대통령 같은 사람이 나온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역사는 그런 식으로 흐르지 않을 때도 많으니 말이다.
편집 : 꾸물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펜더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